돈 되는 곳 찾아내 연결… 지금 잘 나가는 기업은 모두 '미들맨'

입력 2015.08.22 03:04

'미들맨' 4가지 키워드

대니얼 올트먼 뉴욕대 교수
대니얼 올트먼 뉴욕대 교수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는 미국 증시 사상 최대 규모의 IPO(기업 공개) 기록을 세우며 지난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했다. 주식 공모를 통해 알리바바가 조달한 자금은 217억2000만달러(약 22조7200억원). 알리바바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만난 대니얼 올트먼(Altman) 뉴욕대 스턴비즈니스스쿨 경제학과 교수는 알리바바 같은 기업이 바로 '미들맨(middleman)'이라고 말했다. 올트먼 교수는 "미들맨은 단순한 중개인이 아니다"라며 "국가 간, 기업 간, 개인 간 거래를 촉진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이를 통해 돈을 버는 기업이 바로 미들맨"이라고 설명했다.

올트먼 교수는 "알리바바는 가격이 싼 물건을 찾아 나선 영미권 기업들과 저렴한 비용으로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중국 본토의 제조업자를 효율적으로 연결해 성공한 사례"라고 분석했다. 올트먼 교수는 IT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더 많은 미들맨이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봤다. 그는 "거래를 원하는 서로 다른 집단을 연결하는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이라는 가상 공간을 통해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됐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오가면서 영화나 패션 등 세분된 관심사에 따라 거래하기도 과거보다 훨씬 쉬워졌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앞다퉈 해외시장에 진출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가 많아지는 것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라고 봤다. 그는 "사업 아이템이나 중개 방식이 다양해지고, 소비자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미들맨 역할을 하는 기업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트먼 교수는 25세 때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땄다. 이코노미스트지(誌) 기자를 거쳐 뉴욕타임스 최연소 논설위원을 지냈다. 지난 2011년 출간한 '10년 후 미래(Outrageous fortunes)'가 세계적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미래학자이자 경제학자로서 명성을 쌓았다. 그는 이 책에서 중국 경제성장의 한계, 유럽연합(EU)의 붕괴 가능성을 지적해 화제가 됐다.

올트먼 교수에게 '미들맨'을 설명하는 네 가지 키워드에 대해 들어봤다.

미들맨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플랫폼

"미들맨 중에는 플랫폼(여러 가지 관계가 이뤄지는 공간)을 잘 만들어 수익을 내는 기업이 많습니다. 플랫폼을 잘 만들어 성공한 기업 중 하나가 바로 애플입니다. 애플은 지난 2003년 당시에는 생소했던 유료 음원 사이트 아이튠스(iTunes)를 만들었습니다. 아이튠스를 통해 여러 판매자가 음원을 팔고, 판매자들의 수익 가운데 일부를 수수료로 챙기는 애플의 사업 모델은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알리바바, 이베이, 아마존 등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성공한 이유도 단순합니다. 어떤 기업도 전 세계에서 동시에 사업을 할 수 있는 기반과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고, 수많은 시장과 기업을 연구하고, 판매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지만 기업 대부분은 눈앞에 있는 사업을 위해 시간을 내기도 빠듯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약간의 수수료만 내면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해주니 공급자와 소비자로서는 정말 고마운 일이죠. 스마트폰 앱을 플랫폼으로 활용, 공급자와 소비자를 직통으로 연결해주는 공유 경제 분야의 기업들도 미들맨에 포함됩니다. 빈방을 공유하게 해주는 에어비앤비나 당장 사용하지 않는 승용차를 콜택시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우버가 그 예입니다."

필터링

"한 시장에서 개발된 제품 중 어떤 상품이 다른 시장에 진출할 것인지를 찾아내는 것도 미들맨의 역할입니다. 처음부터 일일이 상품을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다른 시장에서 성공한 상품을 가져와 파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 부담도 덜합니다. 상당히 영리한 사업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버티고 엔터테인먼트'라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가 있습니다. 로이 리(Lee)라는 재미 한국인 프로듀서가 대표인데, 그는 구성이 탄탄하고 미국에서 흥행 가능성이 높은 아시아 영화를 찾아내 해외시장용 저작권을 구입한 뒤 다시 할리우드에 판매해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는 주로 한국과 일본의 공포영화 판권을 구입했는데, '링'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주온' '무간도' 등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것도 그입니다. 필터링을 제대로 하려면 좋은 상품을 찾아내고, 이를 어디에 팔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플랫폼을 주력으로 한 미들맨들이 판을 크게 키워 돈을 번다면 필터링 능력이 있는 기업들은 판돈을 크게 걸 곳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현지화

"라코스테는 프랑스의 의류 업체지만, '현지화'에 능한 미들맨들을 잘 활용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 의류 업체는 악어 로고가 붙은 셔츠, 바지, 재킷, 신발, 액세서리를 판매합니다. 그런데 라코스테가 모든 나라에서 똑같은 의류를 파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아르헨티나에서는 현지 디자이너들을 고용해 라코스테 제품을 현지 시장에 맞게 다시 디자인합니다. 이 디자이너들은 프랑스 본사의 디자인을 기본으로 현지인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디자인을 수정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집니다. 중국 가전제품 회사 하이얼 역시 같은 제품이라도 해외시장에 따라 여러 버전을 만듭니다. 언론사 중에서도 현지화를 통해 성공한 곳이 있습니다. CNN은 CNN인터내셔널을 만들어 유럽 및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영어에 능통한 현지인을 고용해 영어 뉴스를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발 더 나가 한국어, 일본어, 아랍어, 터키어 등 현지어를 사용한 뉴스를 제공했습니다. CNN인터내셔널은 출범 이후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해결사

"게임의 법칙이 다르게 적용되는 곳에서 기업이 동시에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이른바 '해결사' 역할의 미들맨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법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대형 로펌, 세계 각국에 금융 거래 기반을 갖추고 있는 은행과 보험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를테면 A라는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한다고 합시다. 현지에서 해당 기업의 실질적 가치를 분석해주는 애널리스트, 기업 인수를 주관하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기관 등이 필요합니다. 국제 거래는 점점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규모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를 잘 해결하는 기업이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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