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鐵의 경영' 시대의 종언

입력 2015.08.15 03:04

"리더에 필요한 건 관용 유전자"
'잭 웰치의 마지막 강의' 책 발간한 잭 웰치 前 GE 회장

잭 웰치
"유능한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세요. 그러기 위해서는 관용 유전자(generosity gene)를 키우세요."

이 말을 하는 그는 과연 잭 웰치(Welch·80) 전 GE 회장이 맞는 것일까. 그는 퇴직하고 나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세상이 달라졌다고도 했다. 무자비한 철(鐵)의 경영 시대에 종언을 고하듯, 그는 변해 있었다.

잭 웰치가 누구인가. 그는 목표를 세우고 직원들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불도저식 경영'의 화신이었다.

그는 1981년부터 2001년까지 GE 회장을 역임했는데, 그가 회장으로 일하던 기간 동안 GE의 매출은 4배 이상 성장했고, 시가총액은 30배 가까이 늘었다. 동시에 엄청난 강도의 구조조정도 진두지휘했다. 실적 하위 10% 직원을 해고하고, 세계 1위가 될 수 없는 부서는 모두 매각하거나 폐쇄했다. 회장으로 취임한 후 5년 동안 11만명을 해고했다. 자신과 뜻이 맞지 않거나 실적을 내지 못하는 임직원들에게 '나가라'고 말하는 것이 자비로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람들을 하도 많이 자르다 보니 '중성자탄 잭(Neutron Jack)'이라는 악명도 얻었다.

그랬던 그가 나이 80이 된 지금, 때로는 직원들에게 자유를 주고, 기를 살려주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워크아웃', '식스 시그마' 등 경영 기법들을 도입해 조직 관리에 박차를 가했던 그가 이런 말을 하다니.

더군다나 이건 그의 마지막 메시지다. 그는 최근 '잭 웰치의 마지막 강의(The Real-life MBA)'라는 책을 냈다. 지난 2005년 썼던 '위대한 승리' 이후 10년 만이다.그는 "GE에 있던 40년보다 지난 10년 동안 비즈니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변화를 예고했다. 그리고 "더 이상 책은 쓰지 않겠다(No more books)"고 선언했다.

웰치 전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중순 대서양 한복판에 있는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낸터킷 섬의 그의 여름 별장을 방문했다. 그의 첫인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온화했다. 근황을 물었더니 "사모펀드 이사로 일하면서 여러 기업의 컨설팅 업무도 하고, 강연도 하면서 여전히 바쁘게 지낸다"고 말했다. "조용히 쉴 생각은 전혀 없는가?"라고 물어보니, "쉬는 것보다는 일을 계속하는 편이 훨씬 즐겁다"고 웃으면서 답했다.

잭 웰치
세계 굴지의 기업을 운영하던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무엇을 배운 것일까. GE 회장에서 물러난 후 주로 누구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친구처럼 지내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나 임원, 말단 직원, MBA 학생들까지 다양하다"며 "대체 몇 명이나 만나봤나 계산해보니 100만명은 된다고 하더라"고 했다. "경영자의 롤모델로 생각하고 당신을 만나러 왔는데, 이제 보니 유능한 컨설턴트가 된 것 같다"고 말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며 껄껄 웃었다.

리더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관대함'

웰치 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극과 극이다. 한쪽에서는 '경영의 귀재'라고 부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구(舊)경영의 화신이라고 평가절하한다. 심지어는 같은 언론의 평가도 극과 극이다. 1999년 그를 최고 경영자(manager)로 꼽았던 미국의 경영전문지(誌) 포천(Fortune)은 지난 2006년에는 '미안합니다, 잭 웰치(Sorry, Jack Welch)'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싣기도 했다.

웰치 전 회장에게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별명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갑자기 질문을 자르며, "그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라고 말했다. 버럭 화를 낼 줄 알았는데,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잭 웰치의 마지막 강의' 한국어판에 쓰인 본인의 사진을 가리켰다.

"저에 대한 이미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한국어판도 그런 사진이 실렸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제 비서는 벌써 20년 가까이 저와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나쁜 리더였다면, 제 비서는 벌써 저를 떠났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리더십으로 옮겨갔다. 그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유능한 인재를 관리할 수 있는, 관대한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신이 말하는 관대함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좀 다르지 않나요. 가령 당신은 능력이 없는 직원이 다른 조직으로 가도록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자비롭다고 얘기해왔습니다.

"물론 그것도 있습니다만, 지금 얘기하는 것은 유능한 인재, 가령 천재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 필요한 '관대함'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비즈니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첨단 기술이 등장하면서 아주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곳곳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성장을 걱정하는 와중에도 혁신에 바탕을 둔 기업들은 오히려 더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애플이 대표적이죠.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같은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혁신에 성공한 기업들을 보면 정말 유능한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사람들이 소위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업의 운명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리더라면 그들과 일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1999년 포천지
잭 웰치 전 GE 회장을‘세기의 경영자’로 선정한 1999년 포천지
―유능한 인재들과 일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이 있는 천재들에게 기존의 경영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서는 곤란합니다. 무엇보다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윗선의 결재를 받지 않고 스스로 도장을 찍게 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건 경영자로서 위험한 결정이 아닌가요?

"무작정 내버려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연히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에게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세요. 그리고 계속 질문하세요. 그들이 하는 일이 기업에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판단하고, 주시해야 합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리자가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IT 분야의 천재들이라고 해서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 온갖 이유를 찾는 일에 몰두할 때도 있죠. 그런 부분은 당연히 관리를 해야 합니다."

웰치 전 회장은 첨단 기술 발달로 유능한 인재들이 더 필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기업에 이른바 '천재'가 요구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능한 인재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것이 조직의 운명을 좌우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리더가 관대하게 마음껏 베풀어서, 유능한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라고 했다.

유능한 인재에게 최대한 자유를

―리더가 목표를 제시하고, 유능한 직원이 성과를 달성하도록 끊임없이 몰아가는 것이 당신 스타일 아니었나요?

"그런 방법이 필요할 때도 있었습니다만, 요즘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단기간 숫자나 성과에 집착하는 것이 능사가 아닌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리더보다 뛰어난 직원이 조직에 있는데, 리더 생각이 옳다고 무작정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요."

―이번 책을 읽어 보니 유능한 인재 중에서도 '천재들과 함께 일하는 법'에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급 기술과 고급 두뇌가 필요한 시대니까요. 누구도 역할을 대신할 수 없는 사람들을 관리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그들을 붙잡아 두려면 일단은 돈이 필요합니다. 조직 관리자라면 성과에 근거해 넉넉하게 돈으로 보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관용 유전자를 키우고,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을 좋아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상사와 하는 저녁 식사 같은 것은 절대 보상이 아닙니다. 업무의 연장이죠. 아울러 돈의 영향력이 크지만, 돈이 직원들의 행복 지수를 올리는 유일한 수단은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와우(Wow)'라고 부릅니다. 기분 좋은 놀라움을 표현하는 감탄사죠. 재미있고 신나게, 자율적으로 일하는 환경을 뜻하는 말입니다."

2006년 포천지
웰치의 경영 방식을 비판한 내용의 기사가 실린 2006년 포천지
―그런 직장 문화는 누구나 꿈꾸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은 게 현실 아닐까요.

"유능한 인재들에게 그만한 권한을 부여하세요.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주세요. 기다릴 때도 있어야 합니다. 가령 탁월한 아이디어가 효과를 거두지 못해도 질책당하지 않고, 노력 자체로 칭찬받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관리자가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해 자유롭게 일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을 받는 문화를 만들지 못하면, 가장 유능한 직원이 떠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갈 곳이 많은 사람들이니까요. 불합리한 보상과 부당한 대우를 견딜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리더는 초등학생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집과 같은 곳으로 직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재미있는 장난감도 많고, 재미있는 놀잇거리도 많았던, 모두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던 곳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유능한 인재를 잡아두기 위해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라니, 뜻밖입니다. '기업은 노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무작정 파티하고 놀이하는 문화를 만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휘하며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구글 같은 회사가 이런 점을 잘 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기업 문화를 유지하면서 구글이 미래에도 지금처럼 계속 성공을 이어갈 수 있다면, 이런 기업 문화를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기업이 성장하고 돈을 많이 벌어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배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능한 인재를 잡아두기 위해 리더가 할 일이 또 있을까요?

"그들이 마음껏 일하는 데 방해가 되는 조직 내 장애물을 제거하세요. 쓸데없는 일로 바쁘게 만드는 멍청하고 답답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유능한 직원들을 벤처 기업에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 직원들이 뭔가를 해내고자 조직 내부를 헤매고 돌아다니며 권력자들에게 아부하는 문화는 최악입니다. 또 두둑한 월급을 주지도 못하면서 관리자가 직원들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주는 발언을 일삼아서는 곤란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솔직함'은 최고의 미덕

―경영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를 악물고 솔직해져라"고 말했습니다. 이 생각은 변함이 없나요?

"물론입니다. 전 언제나 솔직함을 강조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성과가 떨어지는 직원에게 그 직원이 처한 위치를 알려주고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조직의 리더가 할 일이라는 생각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든 후 리더가 다음으로 할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차별'입니다. 성과에 따라 직원을 평가하는 것 말입니다. 당신보다 열심히 일하지 않은 사람이 똑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억울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사람을 자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직원을 해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영자에게 퇴직금은 비용입니다. 하지만 조직에 필요 없는 사람들을 계속 데리고 가 조직 분위기를 해치는 것보다는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이 여러모로 낫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사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후한 퇴직금을 지급했습니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의 별장
잭 웰치 전 GE 회장의 별장에서 바라본 미국메사추세츠주 낸터킷섬 전경./ 낸터킷(미국)=온혜선 조선비즈 기자
―그러나 일부 최고경영자나 임원이 너무 많은 퇴직금을 받아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과를 내지 못한 CEO에게는 후한 퇴직금 같은 보상이 없어야 합니다. 이미 많은 연봉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성과 없이 퇴직금을 많이 받는 것은 분명히 문제입니다."

―고용 안정이 오히려 직원들에게 일하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글쎄요. 조직 내에서 적절한 보상과 질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오히려 조직에 더 필요한 유능한 인재의 의욕이 꺾이지 않을까요."

―기업에 꼭 필요한 유능한 직원이 오히려 후한 퇴직금을 챙겨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막을 방법은 없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기업이 곤경에 처하면 리더들이 직원 숫자를 무작정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퇴직하는 직원에게 후한 퇴직금과 해고 수당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더 많은 퇴직을 유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고액 연봉을 받는 유능한 직원들이 그 조건을 덥석 받아들이고 회사를 떠납니다. 그들은 다른 기업에 쉽게 취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유능한 직원에게 연봉을 인상해주고, 장기적으로 성과에 따른 주식 양도까지 약속하세요. 쉽지 않지만, 분명 필요한 일입니다."

―이제는 컨설턴트로서 오랜 세월을 지내셨습니다. 컨설턴트로서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궁금합니다.

"너무 다양해서 하나만 말하기 어렵네요. (옆에 있던 아내 수지 웰치가 'SNS'라는 단어를 말하자) 그렇군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관한 질문이 많습니다. 나쁜 소문이 퍼졌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물어봅니다. SNS는 굉장한 도구입니다. SNS를 통해서 브랜드를 만들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저와 수지도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는 편입니다(웃음). 좋을 때나 나쁠 때나 SNS를 가까이 두세요. 위기가 닥쳤을 때 SNS의 최대 장점은 사용자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단어를 사용해 당신의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언론에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SNS는 당신과 대중 사이에 누구도 개입시키지 않습니다. 지난 2013년에 타코벨 직원이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타코를 혀로 핥는 사진이 SNS로 퍼져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타코벨은 즉각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직원을 해고하고, SNS를 통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침을 묻힌 타코를 고객에게 제공할 의도로 한 짓은 아니라고 계속 알렸습니다. SNS를 활용한 위기 대응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경영 방식이 옛날 방식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양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그렇다면 내 책이 팔리지 않았겠죠.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면서 달라져야 하는 것은 분명히 있습니다. 또 그래도 변하지 않는 원칙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해 충분히 얘기했습니다. 이제 책은 더 안 쓸 겁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젠 다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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