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대륙에 국가 운명 걸었다… 한·중·러, 유라시아 프로젝트

입력 2015.07.25 03:04

3國 정책 대해부

'유라시아(Eurasia)'라는 광대한 대륙을 무대로 한·중·러 3국의 국가 전략이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2012년 이후 한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러시아는 '신동방정책(New Eastern Policy)'이라는 대형 슬로건을 각각 내놓았다.

세 정책은 유라시아 경제협력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그러나 목표와 실행 계획은 다르다. 한국과 중국이 '서진(西進)' 전략이라면, 러시아는 '동진(東進)'이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과거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 재현을 연상케 하는 대형 정치 슬로건이자 경제 슬로건이다. 중국~중앙아시아~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벨트인 '경제벨트 실크로드'와 중국~동남아시아~아프리카~유럽 바닷길인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동시에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 전략을 프로젝트 안에 끌어들여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올 들어 미국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의 일각을 허문 것으로 평가받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도 기본적으로 이 일대일로 정책의 일환이다.

러시아의 신동방정책은 강대국 지위를 지키기 위해 극동(極東)을 개발하는 정책이다. 러시아는 국가 주 수입원인 에너지 수출의 새로운 루트를 개발하면서, 극동을 전략적 요충지로 재평가하고 있다.

한국은 한반도를 관통하는 철도를 중국·러시아·몽골 등 대륙의 철도와 연결하는 게 관건이다. 이를 통해 중·러, 중앙아시아와 교역을 늘리고, 북한의 개방까지 이끌어 내겠다는 포석이다.

이 세 나라의 국가 전략은 어느 면에선 상호 보완적이고 어느 면에선 상충된다. 극동에서 국가 전략의 합종연횡이 이뤄질 강력한 에너지가 꿈틀대고 있다.

그래픽=박상훈 기자
그래픽=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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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해로 뚫어 '팍스 시니카' 노리는 중국 일대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팍스 시니카(Pax Sinica·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의 실천 방안으로 2013년 가을 일대일로 카드를 꺼냈다. 이는 아시아 전체는 물론 중동과 동유럽까지 포괄하는 슬로건이다.

일대일로는 당나라(육상)와 명나라(해상)의 실크로드를 현대에 재현하는 프로젝트로, 천문학적 투자를 전제로 한다.

일대일로는 단순히 길 하나를 뚫는 게 아니라, 다양한 루트를 합한 개념이다. 육상(一帶)으로는 '롄신야(連新亞·장쑤성 롄윈강~신장위구르자치구~카자흐스탄 알마티)' '이신어우(義新歐·저장성 이우~신장자치구~스페인 마드리드)' '위신어우(渝新歐·충칭~신장자치구~독일 뒤스부르크)' 장안호국제화물열차(산시성 시안~터키~네덜란드 로테르담) 등 10여개 길이 있다. 해상(一路)은 푸젠성(福建省) 취안저우(泉州)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탄자니아·지중해로 이어지는 길이다. 최필수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중국이 최근 해상 실크로드 범위를 남태평양 호주까지 확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공산당 1인자로 취임하는 연설에서 "중화 민족의 위대한 중흥을 시현하는 게 근대 이래 가장 위대한 꿈"이라며 '중국의 꿈(中國夢)'을 드러냈다. 시 주석은 2014년 11월 "일대일로를 추진하기 위해 실크로드 기금을 설립해 400억달러(약 45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57개국이 참여하는 AIIB 설립이 추진됐다. AIIB의 초기 자본금은 1000억달러(약 116조원) 정도 될 전망이다.

중국은 일대일로와 AIIB를 통해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견제하는 효과를 노린다. 일대일로 과정에 중국 토목·철도 회사들이 참여해 중국의 고질적인 과잉 설비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AIIB가 위안화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집행하면 자연스레 위안화의 기축통화 시대도 앞당길 수 있다. 뒤떨어진 서부를 개발해 소수민족의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도 있다.

그러나 장애물도 있다. 장원차이(張文才)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는 "각국 입장 조율이 중국의 숙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견제 심리를 누그러뜨려야 하는 문제도 있다.

새 에너지 시장 찾아 동진하는 러시아 함대

러시아는 서유럽과 겪는 갈등을 극동 개발로 돌파하겠다는 심산이다. 미국이 셰일가스를 개발하고 유럽이 수입처 다변화로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를 낮추려 하면서 러시아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기존 광구 매장량이 고갈되면서 새 수급처가 요긴하다.

그런 면에서 극동은 자원이 풍부하고 중국·한국·일본 등 큰손도 있어 러시아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다. 실제 작년 5월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년 넘게 끌어온 천연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는 연간 380억㎥의 천연가스를 이르면 2017년부터 30년 동안 중국에 공급하기로 했다. 계약액은 4000억달러(약 46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이 작년 9월 국회에서 "극동 개발은 러시아 21세기의 최우선 과제"라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결과다.

2012년 5월 재집권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광역화해 러시아 동부를 발전시키는 신동방정책을 가동했다. 장관이 부총리급인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선도 개발 구역을 모두 9곳 지정했다. 이 지역에 투자하는 해외 기업들에 법인세 감면 및 무비자 혜택을 주기로 했다. 외국 기업들의 자율 경영권을 대폭 인정해주는 것을 두고 러시아 내부에선 '역사상 유례없는 혁신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는 9월 3~5일엔 대통령령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동방경제포럼(East Russia Economic Forum)'을 최초로 열고 직접 연설을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경제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에 예산 투입 및 인프라 구축 등의 계획이 불투명한 상황임을 우려한다. 과연 러시아가 뿌리 깊은 유럽 중심주의를 어느 정도까지 버릴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철도로 중·러 경협 확대와 통일까지 노리는 한국

한국은 북한과 통합하고 이를 발판으로 유라시아로 뻗어나가겠다는 그림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10월 유라시아를 철도로 엮어 역내 경제협력을 확대하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끊어진 물류 네트워크의 회복이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Silk Road Express)'의 건설이다. 북극 항로를 연계한 부산~네덜란드 로테르담 해양 루트도 있지만 초점은 철로에 있다. 이는 한반도종단철도(TKR)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중국횡단철도(TCR)·만주횡단철도(TMR)·몽골횡단철도(TMGR) 등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면 유럽 수출의 경우 현행보다 운송 기간이 3분의 1로 줄어들고, 물류 비용도 30% 이상 절감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집중 토론 회의에서 경원선 복원의 '특명'을 위원회에 내렸다. 경원선은 서울~원산 간 224㎞ 구간이지만 넓게는 나진·선봉을 지나 러시아 하산까지 포괄한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중국 일대일로나 러시아 신동방정책의 하위 지역 개발안으로 전락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작년 12월 북·중·러 접경지 두만강 하구에 자유경제도시 조성안을 건의하고 나선 건 한국이 극동 지역 개발에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북한 나진·선봉과 중국 팡촨(防川), 러시아 하산이 포함된 부지 총 300만평에 에너지·자동차·철강·농식품·전자 단지를 조성하고, 남·북·중·일·러 5개국이 자유롭게 투자와 무역을 하도록 국제경제특구로 만드는 안(案)이다.

이윤식 경성대 교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성공을 위해선 북한·미국·일본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고 중·러와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치력이 요구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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