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5.06.20 03:03
지난 20년 동안 중기물가목표제(inflation targeting)는 통화정책의 가장 중요한 틀이었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유럽중앙은행(ECB), 스위스 중앙은행 등 주요 중앙은행들은 중기물가목표제를 기본 정책으로 채택해 왔다. 그러나 지난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 이후 아직 세계경제가 회복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제도가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중기물가목표를 쫓다 보면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중기물가목표제는 물가 상승률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달성하는 제도다. 한데 이 경우 금융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돈을 푸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통화정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기물가목표제 덕분에 1990년대 초부터 물가 상승세가 약해졌다는 주장도 맞는지 의문이다.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은 중기물가목표제도가 등장하기 전인 1980년대 초부터 나타났는데, 이는 폴 볼커 미국 FRB 전 의장이 재임 당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었다. 또 1990년대의 물가 상승 둔화 현상은 중국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 시기 중국이 세계경제에 편입됐고, 이것이 전 세계적인 물가 안정으로 이어졌다. 결국 중기물가목표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1990년대부터 물가 상승률이 낮아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많은 중앙은행이 통화 확장 정책을 써서 물가 상승을 이끌어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해 봤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으로 물가 상승률을 높일 능력이 없다는 뜻이고, 반대로 낮출 능력 역시 없다고 봐야 한다.
사실 중앙은행은 원래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해 생긴 기관이 아니다. 중앙은행들이 설립됐던 때 소비자물가지수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고, 각국 정부가 중앙은행들은 창립한 것은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서였다. 이후 중앙은행의 임무가 확장되면서 '최종 대부자'의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또 중앙은행이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한 일을 해야 한다는 역할론이 대두된 것은 1970년대에 물가 급등을 겪고 난 후의 얘기다.
그런데 '통화 가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비자물가지수로 통화 가치를 재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통화 가치는 주로 통화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통화 공급과 물가 사이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우선 통화 공급량 변화가 실제 물가 상승이나 하락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시간이 길고, 불규칙한 데다 예측하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설령 2~3년 후의 소비자물가 목표치를 정해 놓더라도 통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소비자물가는 측정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가령 주거 비용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헤도닉 가격 모형(다양한 환경 요소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계산법)을 적용하는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요약하자면 통화정책은 물가에 의해 결정되는데 물가를 측정하는 데 사용된 표본의 숫자는 적고, 부분적이고, 정확하지 않다.
통화정책 담당자는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해 노력하지만 대부분 헛된 노력에 그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중앙은행의 정책 목표가 통화 가치 안정보다 소비자물가 안정에 있다고 본다. 덧붙여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보지 과도한 통화 공급으로 인해 통화 가치가 하락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 중앙은행들은 소비자물가에만 신경을 쓰고 있고, 이 때문에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안정시켜야 하는) 통화 가치에는 소비자물가뿐 아니라 환율을 비롯해 원자재, 부동산, 주식, 채권 등 '모든' 물가가 반영된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중기물가목표제를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단기간 내 '소비자'물가 안정에만 집중한다면 (자산 가격을 포함한) 전체적인 물가 안정은 달성할 수 없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많은 나라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자산 및 원자재 가격은 급락했다가 다시 상승했고, 환율의 등락도 심해졌다.
중앙은행이 소비자물가에만 집중하면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자본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고, 잘못된 투자를 부추길 수도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를 기반으로 한 통화정책은 경제 구조를 왜곡시키고,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도덕적 해이를 낳고, 미래의 통화 가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다.
경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고, 더 발전하고 있다. 단순한 중기물가목표제로는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어렵다.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해서는 명쾌한 공식보다는 복잡하면서도 매우 유연한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리스크를 관리하고 정책 담당자의 판단을 믿을 필요가 있다. 이런 접근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과도한 리스크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는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참고할 만한 케이스가 있다.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약 25년간 상당수 중앙은행이 통화 유통량 등의 분야에서 중간 목표를 사용했던 일이 있다. 신용, 금리, 환율, 자산 및 원자재 가격, 리스크 프리미엄, 중간재 가격 등에도 이런 중간 목표들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를 안정시켜도 경제와 금융이 안정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중앙은행들은 이를 인정하고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화정책에 접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가 안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더라도 말이다.
어차피 소비자물가지수란 것은 적은 표본으로 부정확하게 측정된 것이 아닌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화 가치의 안정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면 일시적인 소비자물가 상승이 그다지 큰 비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중기물가목표제 덕분에 1990년대 초부터 물가 상승세가 약해졌다는 주장도 맞는지 의문이다.
물가 상승률이 떨어지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은 중기물가목표제도가 등장하기 전인 1980년대 초부터 나타났는데, 이는 폴 볼커 미국 FRB 전 의장이 재임 당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었다. 또 1990년대의 물가 상승 둔화 현상은 중국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 시기 중국이 세계경제에 편입됐고, 이것이 전 세계적인 물가 안정으로 이어졌다. 결국 중기물가목표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1990년대부터 물가 상승률이 낮아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또 많은 중앙은행이 통화 확장 정책을 써서 물가 상승을 이끌어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해 봤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중앙은행들이 통화정책으로 물가 상승률을 높일 능력이 없다는 뜻이고, 반대로 낮출 능력 역시 없다고 봐야 한다.
사실 중앙은행은 원래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해 생긴 기관이 아니다. 중앙은행들이 설립됐던 때 소비자물가지수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고, 각국 정부가 중앙은행들은 창립한 것은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서였다. 이후 중앙은행의 임무가 확장되면서 '최종 대부자'의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또 중앙은행이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한 일을 해야 한다는 역할론이 대두된 것은 1970년대에 물가 급등을 겪고 난 후의 얘기다.
그런데 '통화 가치'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소비자물가지수로 통화 가치를 재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문제는 통화 가치는 주로 통화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통화 공급과 물가 사이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우선 통화 공급량 변화가 실제 물가 상승이나 하락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시간이 길고, 불규칙한 데다 예측하기도 힘들다. 이 때문에 설령 2~3년 후의 소비자물가 목표치를 정해 놓더라도 통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소비자물가는 측정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가령 주거 비용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헤도닉 가격 모형(다양한 환경 요소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계산법)을 적용하는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요약하자면 통화정책은 물가에 의해 결정되는데 물가를 측정하는 데 사용된 표본의 숫자는 적고, 부분적이고, 정확하지 않다.
통화정책 담당자는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해 노력하지만 대부분 헛된 노력에 그친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의 경제학 교과서들은 중앙은행의 정책 목표가 통화 가치 안정보다 소비자물가 안정에 있다고 본다. 덧붙여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보지 과도한 통화 공급으로 인해 통화 가치가 하락한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라 중앙은행들은 소비자물가에만 신경을 쓰고 있고, 이 때문에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안정시켜야 하는) 통화 가치에는 소비자물가뿐 아니라 환율을 비롯해 원자재, 부동산, 주식, 채권 등 '모든' 물가가 반영된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중앙은행이 중기물가목표제를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단기간 내 '소비자'물가 안정에만 집중한다면 (자산 가격을 포함한) 전체적인 물가 안정은 달성할 수 없다. 지난 2008년 금융 위기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많은 나라에서 주택 가격이 급등했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 이후 자산 및 원자재 가격은 급락했다가 다시 상승했고, 환율의 등락도 심해졌다.
중앙은행이 소비자물가에만 집중하면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 자본 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고, 잘못된 투자를 부추길 수도 있다. 소비자물가지수를 기반으로 한 통화정책은 경제 구조를 왜곡시키고, 경제성장을 가로막고, 도덕적 해이를 낳고, 미래의 통화 가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다.
경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고, 더 발전하고 있다. 단순한 중기물가목표제로는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어렵다. 통화 가치 안정을 위해서는 명쾌한 공식보다는 복잡하면서도 매우 유연한 방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리스크를 관리하고 정책 담당자의 판단을 믿을 필요가 있다. 이런 접근법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과도한 리스크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는 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참고할 만한 케이스가 있다.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약 25년간 상당수 중앙은행이 통화 유통량 등의 분야에서 중간 목표를 사용했던 일이 있다. 신용, 금리, 환율, 자산 및 원자재 가격, 리스크 프리미엄, 중간재 가격 등에도 이런 중간 목표들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를 안정시켜도 경제와 금융이 안정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중앙은행들은 이를 인정하고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화정책에 접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소비자물가가 안정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더라도 말이다.
어차피 소비자물가지수란 것은 적은 표본으로 부정확하게 측정된 것이 아닌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화 가치의 안정을 확보한다고 생각하면 일시적인 소비자물가 상승이 그다지 큰 비용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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