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레이디 가가… 한 디자이너와의 운명적 만남

입력 2015.06.20 03:03

요한 바오로 2세 등 유명인 옷 만든 패션 디자이너 카스텔바작
살아남기 위해선 일단 튀어라… 20년 지나도 팔릴 그런 옷을 만들어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가수 레이디 가가의 공통점이 과연 무엇일까. 공통점이 있기는 할까.

전혀 비슷하지 않은 두 사람에게 옷을 만들어 입힌 사람이 있다. 패션 디자이너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Castelbajac·66)이다. 교황에게 무지개가 그려진 옷을 만들어 준 사람도, 유명 팝 가수에게 개구리 인형이 주렁주렁 달린 코트를 입힌 사람도 그다.

패션 디자이너 카스텔바작
카스텔바작을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났다. 그는 패션그룹 형지가 후원하는 '카스텔바작 미술전' 개회식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전시회는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오는 26일까지 열린다.

2시간의 강연을 마친 그의 손에는 물감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일일이 그려주다 보니 손이 이렇게 됐다"며 웃었다.

오랫동안 패션업계에서 성공을 거둔 비결에 대해 물었더니 "패션을 대중적인(pop) 시각에서 다루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가의 명품이 아닌 누구나 편하고 즐겁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이 나의 철학"이라며 "유행을 좇기보다는 입는 사람이 즐거운 옷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카스텔바작에게 성공의 요인 네 가지를 들어봤다.

①고정관념 깨라

"수많은 디자인의 옷이 매일 쏟아지는 패션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단 튀어야 합니다. 저는 1980년대에 미키마우스, 스누피 등 여러 만화 캐릭터를 프린트한 옷을 처음으로 디자인해서 대중에게 선보였습니다. 이전까지 패션 디자이너들이 주로 화려한(glamorous) 의상을 만들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선택이었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1970년대 만들었던 스포츠 웨어도 상업적인 성공에 도움이 됐습니다. 당시 스포츠 웨어는 기능을 주로 강조했는데, 전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스포츠 웨어를 만들었습니다. 몸의 라인을 드러내고 원색을 사용했습니다. 골프 웨어를 만들 때에는 라운딩이 끝나고 바로 파티룸에서 입어도 손색없는 옷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운동을 할 때도,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편한 옷을 만들었더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제가 했던 것들이 당시에는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지금은 패션업계에서 하나의 흐름이 됐습니다. 프라다가 제가 했던 것처럼 옷에 그림을 그리고, 모스키노에서 만화 캐릭터를 찍어낸 옷을 만듭니다. 왜 그럴까요. 전 제가 디자이너로서 사람들에게 '해답'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숨은 욕구를 잘 찾아서, 원하는 옷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 같은 일을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②유행 좇지 말아라

"다른 패션 디자이너들처럼 '올해는 레이스가 유행이네' '내년에는 시스루(속이 비치는 옷)가 인기가 있겠군'이라는 생각을 하고 옷을 만들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제 정체성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 원칙은 유행을 좇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좋은 소재, 깔끔한 원색, 친근한 캐릭터를 사용해 모든 사람이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입니다. 런웨이의 모델들이나 입을 수 있는 옷보다는 티셔츠나 바지처럼 누구나 입는 옷에 제 개성을 심는 것입니다. 제가 패션쇼에 일반인 모델을 종종 쓰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패션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유행을 만들고, 이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끊임없이 만드는 패션업계의 속성 때문이죠.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가면 제가 만들었던 티셔츠들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20년 전에 만들었던 옷까지 팔립니다. 유행과 상관없이 옷을 만들다 보니 사람들은 꾸준하게 제가 디자인한 옷을 삽니다. 유명한 힙합 가수인 제이지(Jay-Z)는 제가 만든 티셔츠를 100개 정도 수집했다고 합니다. 가장 간단한 아이템인 티셔츠를 이렇게 많이 사는 이유가 뭘까요. 언제나 편하게 입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③유명인을 활용해라

카스텔바작이 교황청의 요청으로 1997년에 디자인한 사제단 의상(위 사진). 유명 팝 가수 레이디가가가 입어서 화제가 된 개구리 인형 코트.
카스텔바작이 교황청의 요청으로 1997년에 디자인한 사제단 의상(위 사진). 유명 팝 가수 레이디가가가 입어서 화제가 된 개구리 인형 코트.
"요한 바오로 2세, 레이디 가가 그리고 마돈나, 비욘세 등 유명한 사람들이 제 옷을 입었다는 것은 제게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들 덕분에 사람들이 제 이름을 확실히 기억하게 됐습니다.

1997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복과 주교 500명, 사제 5000명의 옷을 디자인했습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옷을 디자인했습니다. 홍수가 끝난 후 신께서 화해의 뜻으로 무지개를 만들었다는 것을 착안해 무지개 색깔이 들어간 옷을 여럿 만들었습니다.

레이디 가가의 경우 가수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연락이 왔습니다. 정말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의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죠. 그때 제가 만든 것이 개구리 인형이 100여개 달린 코트였습니다. 모든 방송과 신문이 그 의상을 보도했습니다. 이후 꾸준히 작업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마돈나, 비욘세, 케이티 페리 등이 저에게 필요한 의상을 요청하곤 합니다.

제가 유명한 사람이라고 무조건 옷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가수 셀린 디옹의 노래를 좋아하지만, 제 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교황님이 만약 엄숙한 사제복을 고집하셨다면, 제 옷을 입지 않으셨겠죠. 중요한 것은 저의 디자인 철학을 이해하고, 제가 만든 옷에 어울리는 사람이 제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야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습니다."

④컬래버레이션(협업)

"컬래버레이션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각자의 장점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몇 년 전 레고와의 컬래버레이션 이야기를 해볼까요. 당시 레고 블록 무늬가 들어간 의상을 비롯해 레고 블록으로 만든 시계, 모자 등 다양한 패션 소품을 선보인 적이 있습니다. 레고와 저의 공통점은 바로 색깔입니다. 레고 블록의 색깔은 빨강, 파랑, 노랑 등 강렬한 원색인데, 이는 제가 즐겨 쓰는 색깔들입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제 정체성을 잘 보여준 컬래버레이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너지가 확실히 있었습니다. 저의 친구였던 앤디 워홀의 그림을 디자인에 사용한 것도 장점을 극대화한 컬래버레이션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작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방 브랜드 키플링과의 협업은 키플링 제품의 장점인 실용적인 주머니 디자인과 제 장점인 색깔의 조화가 잘 어우러져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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