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미쳤다고 할 때 깨고 나갔다

입력 2015.05.02 03:03

[Cover Story] 어도비 CEO 나라옌 "판매 방식 바꾸고도 잘나가는 비결은"

어도비
Getty Images/멀티비츠
'어도비, 제정신인가?(Adobe, What Were They Thinking?)'

2008년 12월 포토샵(Photoshop)과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 등으로 시각 예술 소프트웨어 시장점유율 90% 이상을 유지하던 소프트웨어업체 어도비가 돌연 판매 방식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CD나 박스 제품으로 팔던 포토샵을 매달 사용료를 내고 온라인 구독하는 형태로 서비스한다는 것이었다.

언론과 관련 업계가 일제히 경악했다. 포토샵 패키지 하나를 팔면 곧바로 1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그러나 온라인 구독은 매달 1만원 수준의 소액이 들어오는 구조다. 눈앞의 매출이 급감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지(紙)는 "어도비가 말하는 '계획'이란 건 이론상으로만 가능할 것"이라며 비웃듯이 보도했다. 기사만 보면 곧 망할 것 같았다. 관련 업계에서는 가만있어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는 어도비의 변화에 '미쳤다'는 평가를 내렸다.

주주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3월까지 6개월간 어도비의 주가는 60% 이상 떨어졌다.

어도비는 시각 예술 업계의 표준을 정립한 회사다. 흔히 '사진을 수정한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포토샵'(흔히 '뽀샵'으로도 불린다)이란 단어는 어도비의 제품명이다. 셀로판 테이프를 '스카치테이프'라고 하고, 복사한다는 말을 한때 '제록스한다'고 말했듯, 사진 수정 업무를 통칭하는 업무는 포토샵이라고 흔히들 부른다. 전 세계적으로 웹디자이너, 사진 전문가, 그래픽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90% 이상이 어도비의 제품을 쓴다.

이렇게 업계 표준을 장악하고 있던 어도비가 기존의 사업 모델을 바꾼다고 발표한 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고육책(苦肉策)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IT(정보기술) 회사들은 매출 감소와 주가 하락에 시달렸다. 어도비도 마찬가지였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 끝에 어도비는 업계 최고의 위치를 고수한다고 해도 당시의 수익 모델로는 큰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포토샵을 사용하는 수요자가 갑자기 늘어날 리 없고, 높은 가격 때문에 판치는 불법 복제 상품도 성장을 방해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택해 위기를 타개하려 한 것이다.

현재까지 상황을 보면 어도비의 결정은 옳았다. 업계의 우려와 달리 어도비의 구독자는 올해 390만명을 넘기며, 예상을 뒤엎었다. 어도비의 주가도 지난 3년간 130% 상승, 상승률이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70%)의 거의 두 배에 이르렀다.

어도비의 상승 반전(反轉)과 혁신을 이끌어온 샨타누 나라옌(Narayen·51) 최고경영자(CEO)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어도비 디지털 마케팅 콘퍼런스에서 만났다. 그는 인도 오스마니아 공대를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MBA를 수료했다. 이후 애플을 거쳐 1998년 어도비의 상품개발 부사장으로 입사해 2005년 최고 운영 책임자(COO)로 승진했고 그후 2년 만에 어도비 CEO 자리에 올랐다. 전형적인 인도 공대생 스타일의 나라옌은 말쑥한 양복 차림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스스로 말재주가 별로 없다고 했지만, 빠르고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 탄 보트를 태워 버리라(Burn the Boats)"고 말했다. 그래야 새로운 보트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는 것은 현재의 안정적인 매출처를 없앤다는 점에서 고통스럽지만, 이런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포토샵 등 주력 제품을 왜 온라인 구독제로 팔기로 결정하셨습니까?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때 포토샵을 포함해 우리 회사의 소프트웨어 사업부를 면밀히 검토했는데, 점유율로 따졌을 때 시장에서의 위치는 견고했지만, 앞으로 더 큰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시각 디자이너, 웹 디자이너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상품을 매년 살 순 있지만, 포토샵 제품을 사용하는 수요자가 급격히 늘기도 어렵고, 불법 복제된 상품도 문제였습니다.

저는 시대가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소프트웨어 제품을 '파는' 시대가 아니라고 봅니다. 과거의 어도비 제품은 소프트웨어 코너에서 박스 속에 담긴 CD의 형태로 팔렸습니다. 하지만 상당히 비쌌습니다. 최근 소비자 트렌드를 보면 큰 비용을 지불하면서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소유'하려는 욕구가 매우 줄어들었습니다. 기업 역시 비용을 줄이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사용권을 빌려주고 구독료를 받는 방식'이 현재 흐름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도비가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다고 했을 때 업계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네, 당시 매우 힘들었습니다. 언론에서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지고 아무도 저의 결정을 지지해주지 않았습니다. 가장 힘든 부분은 우리 직원들이 저의 비전에 수긍하지 못할 때였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주도할 때는 항상 '항체(antibody)'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이 항체는 변화에 반대해 그대로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기업의 리더로 염두에 둬야 할 건, 단순히 밀어붙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주주는 사업이 다시 정상 궤도로 돌아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지만, 그 사업을 우선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직원들을 설득하고 그들이 나와 함께 가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가끔 단순히 자신의 결정을 그대로 신속하게 실행하기 바쁜 CEO가 있는데, 직원들이 무조건 CEO의 말을 믿고 따라올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어도비 CEO
사진=조인원 기자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진 어도비가 구독제 방식의 서비스로 전환하자, 업계에서는 '당장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오히려 저렴해진 가격에 새로운 소비자층이 유입됐고, 고객층이 다양해지는 효과를 봤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사무용 소프트웨어의 대표 격인 '오피스'를 구독화하는 등 이제는 구독 방식이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어도비는 자사의 서비스를 활용해서 웹사이트와 광고 이미지를 제작하고, 바로 퍼블리싱까지 돕는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다.

"만족스럽지 않다면 고객은 언제든 떠날 것"

―구독제로 전환하면 어느 순간 고객을 잃을 수도 있는데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어도비의 포토샵 기능을 원하는 고객은 여전히 많습니다. 오히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에서 사진과 그림, 비디오 등 이미지 형태의 SNS 활동이 늘어나면서 더 예쁜 사진을 올리기 위해 고도의 수정을 원하는 고객이 늘고 있습니다. 물론 구독자 이탈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제품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저희는 기존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며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포토샵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구독을 끊겠지요. 이 때문에 리스크(위험)도 큽니다. 과거에는 제품의 만족도 여부와 상관없이 한번 팔아버리면 분기 기준, 연도 기준으로 상당한 수준의 매출이 잡혔지만, 지금은 적은 금액을 꾸준히 받기 때문에, 중간에 구독자가 이탈하면 우리도 상당한 매출 감소를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포토샵을 판매할 때보다 구독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고객의 만족도는 높아졌습니다."

―구독제에 대한 실제 고객의 반응이 좋다는 얘기인가요? 매달 내는 방식이 오히려 귀찮거나, 전체적으로는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할 수도 있습니다만.

"성과는 구독자 숫자로 나타납니다. 올해 초 기준으로 어도비 소프트웨어 구독자 수가 390만명에 도달했습니다. 현존하는 시각예술 전문가의 수가 대략 1000만명으로 추산되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확장할 여력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어도비의 고객층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어도비 제품을 새롭게 구독하는 고객의 20%가 기존의 박스형 어도비 제품을 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포토샵이 부담없는 가격(affordable price)이 됐기 덕분입니다. 포토샵은 전문적인 기술자뿐만 아니라, 웹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 페이스북에 '셀카'를 올리는 10대 소녀까지 수요가 충분한데, 그동안 비싼 가격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월 1만원 수준으로 내려가면서, 젊은 고객들도 충분히 살 수 있게 됐습니다."

―SNS에서 이미지를 올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수요가 생긴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요즘 웬만한 스마트폰 앱에는 보정 기능이 있습니다. 사진의 톤을 바꾸고 얼굴의 잡티를 없애는 기능이 있는데, 결국 포토샵이란 소프트웨어로서는 점점 시장이 좁아지는 것은 아닐까요?

"일반 스마트폰 유저는 그동안 우리의 고객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좀 더 전문적인 시각예술 작업을 하는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주 고객입니다. 최근 늘어난 SNS 열풍과 자기 표현 욕구로 많은 사람이 셀카를 찍은 뒤 자신의 얼굴을 더 밝게 표현하고, 인스타그램에 음식 사진을 색 보정 후에 올리고 있는데, 이들이 만약 좀 더 정교한 사진 수정을 원한다면 포토샵의 새로운 구매층으로 떠오를 것입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미래 고객층이라는 얘기지요."

―최근 어도비의 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주주들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2008년 여러 소프트웨어 회사의 전략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경기 침체기에도 꾸준한 수익을 내는 기업의 주가 상승률이 어도비의 주가 상승률 보다 높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과거 어도비의 매출 방식은 간단히 말해 제품을 팔고 신제품이 나올 때까지 특별한 수익이 잡히지 않는 주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구독형 소프트웨어 업체는 고객이 정기적인 비용을 지불해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완만한 매출 흐름을 유지했습니다. 경기 흐름에 따른 큰 부침이 없다는 얘기지요. 우리는 상장사이기 때문에 주주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안정적인 매출 모델을 선호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도비는 그동안 많은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인수 전략이 성장 동력이 됐기도 합니다. 어떤 인수 전략을 가지고 계십니까?

"기술이 가장 중요합니다. 기술 회사는 기술로 먹고살아야 하죠. 그 기술로 '어떤 마술(magic)을 부리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고객들에게 필요한 기술인지, 그래서 상용화가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새로운 기술을 보면서, 이 기술이 소비자에게 먹힐지는 현시점에서 판가름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위해 끊임없는 시장조사와 전략 수립이 중요합니다.기술 다음으로 눈여겨보는 것은 유기적(organic)인 조직 문화입니다. 매끄럽게 인수가 이뤄져야지요. 우리 회사가 생각하는 비전과 그 회사의 비전이 맞아야 합니다. 기술이 가장 중요하지만, 인수하고 나서는 함께 일할 동료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일하는 방식도 고려 대상입니다."

새로운 산업 '디지털 마케팅' 분야 창출

―최근에는 디지털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고 하시는데, 정확히 알기 힘든 분야입니다만.

"이 분야는 어도비가 '창출'해낸 신규 사업입니다. 우리는 5년 전에 존재하지도 않은 산업군(群)인 '디지털 마케팅'이란 산업군을 만들었고 현재 10억달러 규모 매출을 내고 있습니다.

디지털 마케팅이란 단어는 소프트웨어 역사에 존재하지도 않았고 어도비 내에서도 없었는데,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디지털 마케팅은 인터넷 웹페이지와 앱을 만들고, 어디에 광고를 붙일지 정해주는 통합 솔루션을 뜻합니다. 이를 통해 회사는 인터넷과 모바일에서 제품을 알리고 판매를 늘릴 수 있습니다. 요즘 대부분 기업이 웹과 앱을 통해 창업하기 때문에 그만큼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잘 만드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게 된 것입니다. 예컨대 차량 공유 기업 우버(UBER)는 고객과 운전자를 연결한다는 훌륭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고, 이런 비즈니스를 실현하기 위한 유일한 제품이자 마케팅 수단이 웹과 앱입니다.

가트너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따르면 디지털 마케팅의 시장 규모는 200억달러 규모로 추산됩니다. 또 가트너에서는 이미 수차례 어도비를 디지털 마케팅의 창시자이자 리더로 인정했습니다. 신규 사업을 창출해야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 같은 기술 회사는 먼저 창조하고 자리 잡아야 선발 주자로 입지를 다질 수 있습니다. 후발 주자가 아무리 모방하더라도, 우린 한발 더 앞서나가서 더 좋은 기술을 선보이면 됩니다.그동안 팔아오던 제품을 구독제로 바꾼 것은, 이미 확고한 제품과 서비스가 변화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고, 디지털 마케팅 산업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도 원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혁신을 죽 얘기하셨습니다. 다만 혁신이 성공하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어떻게 가능했다고 보십니까.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저는 자신을 CCO라고 부릅니다. 'Chief Customer Officer'(최고 고객담당 임원)의 약자입니다. 모든 CEO는 CCO가 되어야 합니다. 고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일하고, 일하면서 뭐가 불편할지 늘 생각합니다. 이를 제대로 알아야지, 제대로 된 변화가 가능하고, 변화가 성공으로 이어졌을 때 '혁신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요즘 소비자는 사실 니즈에 대한 혼동이 큽니다. 이미 있는 기술도 너무 많기 때문에 내 생활을 더 편리하게 해줄 기술에 대해서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사실 새로운 앱이 하루에 수백개씩 생겨나지만, 우리가 정작 쓰는 건 몇 개 안 되지요? 그래서 우리 같은 기술 회사도 어려움을 겪는 게, 소비자에게 정말 필요한 기술 혹은 비즈니스 모델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부분입니다. 어도비의 미션은 재창조입니다. 재창조를 말로만 하기는 쉽겠지요. 어도비는 끊임없이 비즈니스 모델, 타깃 고객층, 상품을 혁신해 왔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산업군을 만들고 주도해 나가는 부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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