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스·버냉키… 제3차 경제학 대전

    •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입력 2015.04.25 03:03

1930년대 이후 세계 경제학계 양분한 '케인지언'과 '통화주의자'의 논쟁 3탄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낸 벤 버냉키(Bernanke·오른쪽)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Summers·왼쪽) 하버드대 교수.
지금 미국에서는 세계적인 학문적 깊이와 정책적 영향력을 지닌 경제학계의 두 거물이 벌이는 역사적인 공개 대결이 한창이다. 두 인물은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낸 벤 버냉키(Bernanke·오른쪽)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Summers·왼쪽) 하버드대 교수이다.

두 인물의 대결은 1930년대 이후 세계 경제학계를 양분하며 벌어졌던 케인지언(Keynesian·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지지)과 통화주의자(Monetarist·통화 공급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지지)의 논쟁을 잇고 있다. 제3차 경제학 대전이라고 불릴 만한 상황이다.

일반 관중에게는 이번 논쟁이 경기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해 금리 인하나 양적완화 같은 통화정책이 유효한지, 아니면 정부 지출을 늘리는 재정정책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정책 논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조금 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논쟁의 핵심은 이자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축이 적절한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투자에 비해 과잉 저축이 존재한다면 경제 전반의 수요가 부족해 경기 침체에 이를 수 있다. 그렇기에 과잉 저축을 없애고 투자를 늘리려면 이자율을 낮추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까지도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에서 과연 이것이 가능한지가 문제가 되고 있다.

버냉키는 중앙은행이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물가를 상승시키고 이를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를 형성한다면, 명목이자율이 '제로(0)%' 아래로 내려가진 못해도 실질이자율은 '마이너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명목이자율을 0%까지 낮춘 후 유동성을 공급해 주택 가격 상승을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이때 실질이자율은 마이너스가 되고, 이렇게 되면 저축보다 주택 구입 같은 투자가 유리해지기 때문에 과잉 저축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경기 침체 상황에서 버냉키는 연준의 통화정책을 통해 사실상 마이너스의 실질이자율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결과 현재 같은 미국의 경제 회복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서머스도 실질이자율을 낮춰 소비와 투자를 늘리고 저축은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버냉키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통화정책으로 경기가 회복될지는 의문스럽다고 서머스는 지적한다. 특히 미국 경제는 이미 '구조적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에 접어들었고, 과잉 저축은 고착화한 문제라는 것이 서머스의 주장이다. 미국의 새로운 산업은 많은 자본 투입이 필요하지 않고, 인구도 크게 늘지 않고 있어, 투자에 자본이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율을 마이너스로 만들어도 구조적인 과잉 저축을 흡수할 정도로 투자가 발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금리로 유동성을 계속 공급하면 부채의 과도한 증대와 고위험 추구로 금융 안정성이 저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으로 서머스가 제시하는 것이 인프라 투자 등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재정정책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경제학계에서 대공황과 관련해 비슷한 논쟁이 두 차례 진행된 적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명한 제1차 논쟁은 대공황의 와중에 있었던 하이에크(Hayek)와 케인스(Keynes)의 대결이다. 시장의 자율적 회복 기능을 강조한 하이에크에 비해 케인스는 대공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것과 같은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의 주장은 '케인스의 일반이론'이라 불리는 케인지언 거시경제학의 기초로 이어졌다. 전비(戰費) 지출을 포함해서 정부의 역할이 대공황 극복에 일정 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특히 어떤 부분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이후 대공황의 좀 더 구체적인 원인과 처방과 관련된 제2차 논쟁이 1950~60년대 진행되는데, 이것이 최근 두 거물의 대결과 밀접하다.

제2차 논쟁에서 초기 케인지언들은 대공황 때 명목이자율이 0%에서 1% 미만이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고 금리를 낮춘 통화정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지적하며, 재정정책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한 통화주의자들은 버냉키의 주장과 연결될 수 있는데, 당시 명목이자율은 낮아 보였지만 실제로 물가가 하락하고 있어서 실질이자율은 높았기 때문에 물가 상승 기대를 만들지 못하고 과잉 저축과 수요 부진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했다. 이러한 주장은 1963년 프리드먼과 슈바르츠의 논문 이후 설득력 있는 학설로 정립됐고, 초기 케인지언과 달리 현대적인 케인지언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모두 경기 관리에 유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미국 경제가 회복된 현재까지를 보면 과잉 저축 해소를 위해 '마이너스' 이자율을 만들어낸 버냉키의 통화정책은 일단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머스의 주장 역시 인프라 투자를 통한 재정지출이라는 또 다른 측면에서의 과잉 저축 해소법을 제시하고 있어 시사점이 있다. 통화정책과 인프라 투자 확대를 통한 재정지출을 병행하며 경기 부양에 대한 강력하고 일관된 정책 당국의 의지를 시장에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침체된 경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핵심 요소가 될 것임을 지금까지의 논쟁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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