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부터 비행기까지 통하는 기술

입력 2015.03.21 03:03

[Cover Story]'수퍼 을' 3M 잉게 툴린 회장 "꿈의 영업이익률 비결은…"

독자 여러분은 '3M' 하면 뭐가 생각나시는지? 십중팔구 '포스트-잇'이나 '스카치테이프'일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가 이런 소비재에서 거둬들이는 매출은 전체 매출의 16%에 불과하다. 나머지 84%는 일반인이 이름도 잘 모르는 각종 소재나 부품에서 거둬들인다. B2B(기업 간 거래) 기업인 것이다.

잉게 툴린 쓰리엠 회장
사진=이태경 기자, 그래픽=박상훈 기자
최근 방한한 잉게 툴린(62·사진) 3M 회장(이사회 의장 겸 CEO)에게 포스트-잇 이후의 혁신 사례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는 '너 이런 건 몰랐지' 하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포스트-잇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그걸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혁신적 제품들이 완제품의 부품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열차, PC, 노트북 컴퓨터, 휴대폰에 들어 있습니다."

B2B 회사는 소비재 기업과는 다른 고민에 시달리기 일쑤다. 이를테면 구매 기업들이 단가를 일방적으로 후려치는 일이 많이 벌어진다. 이른바 '갑질'이다. 3M도 비슷한 일을 겪지 않을까. 툴린 회장은 테이블을 가볍게 내려치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우리가 납품하는 거대 기업들은 납품 단가를 깎는 걸 모토로 하는 회사입니다. 그래서 R&D가 중요한 겁니다. 우리는 남들도 다 만들 수 있는 제품들로 거래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차세대 기술에 기반을 둔 제품들로 협상합니다. 우리는 거래 기업들에 '이런 게 당신들이 원하는 제품인가? 당신들이 꿈꾸는 미래의 제품은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기술 중에 당신들이 원하는 기술이 뭔지 한번 살펴보자' 이런 식으로 접근합니다. 이렇게 되면 가격은 문제가 안 됩니다. 우리는 거래 기업들이 기능, 외양, 디자인 등에서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초기 단계부터 제안하고 협상을 이끌어갑니다. 그러기에 일반적인 납품 협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협상이 이뤄지고, 가격 협상이란 건 의미를 잃게 됩니다."

3M이 '수퍼 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도 R&D를 줄이지 않고 계속해 남들이 따라오지 못할 기술력을 확보한 데도 기인한다.

"2008~2009년처럼 경기가 안 좋을 때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게 장기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겁니다. 3M은 다릅니다. 물론 당시에 우리 역시 비용을 줄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두 가지만은 건드리지 말자'고 결정했습니다. 연구·개발비와 개발 인력입니다. 일부 감원도 했고 사업 부문을 축소하기도 했지만, 두 가지는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경기 침체 후 회복기에는 잘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용 절감을 위해 근로시간을 주 4일로 줄이고, 일시적으로 월급을 10% 깎았고, 출장을 줄이는 등 갖가지 대책을 실행했습니다. 하지만 연구·개발 부문은 예외였습니다. 그게 우리 회사 문화였기 때문이고, 연구·개발비를 줄이면 2년 후, 5년 후, 10년 후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최고경영진 모두가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힘든 시절을 떠올리는 듯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쓰리엠의 높은 영업이익률  2014년 기준
3M과 관련된 숫자 중엔 깜짝 놀랄 만한 게 적지 않다. 제품 가짓수가 5만개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지난 5년간 영업이익률이 계속 20%를 넘었다는 것이다. 작년엔 22.4%였다. 한국 100대 상장사 평균이 5.3%에 불과하고, 미국 S&P 500 기업이 14.6%인 것과 큰 차이다.

―22.4%의 영업이익률은 많은 한국 기업으로선 꿈도 꾸기 힘든 숫자입니다. 어떻게 그런 숫자가 가능합니까?

"수직 통합형 비즈니스 모델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원천 기술들은 전 세계 72개국의 모든 3M 자회사와 모든 사업부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46개의 기술 플랫폼(원천 기술군)을 모든 자회사와 사업부에서 융합해 새로운 제품들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의 기술로 사무용품부터 비행기 부품까지 만들어내기 때문에 비용은 줄고 이익은 늘어난다는 것이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인 셈이다. 툴린 회장은 46개 기술 플랫폼 중 하나인 접착제를 예로 들었다. "우리는 접착제 원천 기술 하나로 세 가지 완전히 다른 제품군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포스트-잇과 스카치테이프입니다. 둘째는 비행기에 쓰이는 접착제입니다. 셋째는 상한 치아를 덮어씌우는 크라운(치관)입니다. 하나의 원천 기술 기반을 갖고 포스트-잇부터 비행기까지 쓰는 겁니다."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도 이유로 들었다. "우리는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5년 내 개발된 신제품에서 거둡니다. 우리 매출이 300억달러가 넘는데 그중 100억달러 정도는 6년 전에 존재하지도 않던 제품에서 벌어들이는 겁니다." 단가가 높은 신제품이 기존 제품을 대체하면서 이익이 증가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매우 슬림한 조직을 운영합니다. 우리는 조직의 최상층부터 최하 단위까지의 계층 구조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영자는 늘 '시장과 최고경영진 간 거리를 최소화하라'는 명제를 기억해야 합니다."

3M의 2014년 매출은 318억달러로 '2014 포천 500대 미국 기업' 순위에서 101위를 차지했다. 3M은 또 업종별 초우량 기업 30개만 편입되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DJIA)에 1976년부터 계속 자리를 지켜왔다.

113년 역사의 3M이 최근 ‘젊은 회사’로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비로 매출의 6%를 투입하고, 전 세계에 연구·개발 인력 8500명을 둔 첨단 기술 회사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여전히 포스트-잇과 가정용 수세미 만드는 회사란 인식이 깊다. 스마트폰 화면을 밝게 만들어주는 필름이나 자동차 부품용 경량 플라스틱 같은 제품을 3M 제품이라고 알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3M은 올해 ‘3M 과학. 생활에 적용되다(3M Science. Applied to life)’라는 새로운 슬로건을 내걸고, 트위터 등 SNS 마케팅을 강화했다. 또 13일 개막한 세계 최대 스타트업 행사이자 뮤직 페스티벌인 ‘2015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 자사가 발명한 물질로 만든 미래형 전시 공간 ‘3M 라이프 랩(Life Lab)’을 열어 젊은 층에게 다가가고 있다.

13~22일 미국 오스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행사인‘2015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SXSW)’ 에 3M이 전시관을 만들어서 자사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1987년부터 시작된 SXSW에 3M이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3~22일 미국 오스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행사인‘2015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SXSW)’ 에 3M이 전시관을 만들어서 자사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1987년부터 시작된 SXSW에 3M이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3M 제공
비즈니스의 핵심 두 가지, 과학과 예술

―3M은 굴뚝 산업 시대 혁신의 아이콘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IT 기업들에 밀리는 듯 보입니다.

“맞습니다. 매우 통찰력 있는 질문입니다. 한때 사람들은 3M을 혁신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습니다. 우리도 혁신을 해왔지만 어느 때부턴가 다른 회사들이 혁신적 회사 순위에서 우리를 앞질렀습니다. 그러나 IT 회사들이 하는 혁신과 우리 같은 회사의 혁신은 다릅니다. 3M은 재료과학에 기초한 회사입니다. 반면 다른 회사들은 아주 간단한 제품 개선이나 아이디어만 갖고도 TV 광고 등을 통해 혁신이라고 강조합니다. 제가 3M의 슬로건을 ‘3M 과학. 생활에 적용되다’라고 새로 만들고 13일부터 대대적 홍보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과학에 기반한 회사임을 알리고, 그들이 일할 만한 회사임을 알리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은 회사 슬로건에 쓰긴 좀 무거운 얘기가 아닐까요?

“세계경제를 추동하는 힘인 기술은 결국 과학에서 나옵니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건 예술과 과학 두 가지입니다. 먼저 과학으로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다음으론 사람들이 제품에 대해 갖는 느낌을 창조해내는 겁니다.”

―구글이나 아마존 등 최근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기업들은 무인차, 우주비행, 드론 등 실험적이고 대중이 좋아할 만한 것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새로운 실험의 일부로 기여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이름을 내걸고 하진 않습니다. 우린 현실에 기반한 알찬 회사를 지향합니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3M도 새로운 분야에서 혁신적인 실험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리에게 유망하다고 권했던 프로젝트 대부분은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건재합니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스스로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근본 가치에 어울리지 않는 어떤 것을 시도한다면 그건 진짜 3M이 아닙니다. 우린 재료과학에 기반한 회사이며, 그것을 파고들 겁니다. 우린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달에 보내려고 하진 않을 겁니다. 그건 우리 비즈니스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경영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


―3M의 신제품 개발 과정은 다른 회사와 어떻게 다릅니까?

“신제품 개발에는 크게 두 가지 프로세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내부적으로 ‘OEM 사양(OEM specification)’이라고 부르는 프로세스입니다. 우리가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는 특정 고객사의 품질 기준에 맞춰 개발하는 형태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객으로부터 영감 받은 혁신(customer inspired innovation)’이라 부르는 것으로, 소비 시장에 초점을 맞춘 혁신입니다. 중요한 건 두 프로세스 모두 우리 R&D 연구소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고객에게서 시작된 혁신이란 점입니다.”

―연구·개발에 주력한다는 말은 CEO 대부분이 자주 하는 말이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그게 곧 우리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3M의 근본적인 힘은 네 가지입니다. 원천 기술 플랫폼, 제조 능력, 전 세계적 조직, 브랜드 자산이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는 우리가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내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이건 절대 건드려선 안 됩니다. 지난해 우리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2.4%, 순이익률은 15.7%로 매우 높았습니다. 그럼에도 일부 주주는 ‘지금 이익률도 높지만, 더 높일 수도 있지 않소?’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회사를 위해 옳은 일이 아닙니다’라고 답합니다. R&D 투자비를 줄이면 당장엔 좋겠지만, 그건 3년 후를 봤을 때 옳은 결정이 아닙니다. 제 책임은 당장의 실적뿐 아니라, 미래에 대비하는 겁니다. 3M을 경영하는 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입니다.”

―3M이 가장 최근 이뤄낸 혁신 사례는 무엇입니까?

“새로운 연마재(硏磨材·돌이나 쇠를 갈고 닦을 때 사용하는 사포와 같은 상품) ‘큐비트론2’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특허 16개를 출원한 혁신적 제품입니다.”

개발 5년 내 신제품이 매출의 35% 달성

3M은 인종, 국적에 열려 있는 회사다. 툴린 회장 본인부터가 스웨덴 출신으로 스웨덴 IHM경영대학원(MBA)을 나와 스웨덴 3M에 입사해 33년 만에 일인자에 오른 인물이다. 툴린 회장을 포함한 본사 최고경영진 총 16명 중 절반인 8명이 한국, 중국, 인도, 스페인, 호주, 캐나다 등 비(非)미국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툴린 회장은 “3M에선 직원의 국적이나 배경, 문화에 따른 차별이 전혀 없다”면서 자기 자신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예라고 했다. “저는 스웨덴인이고, 36년 전에 입사해 지금은 미국 본사에서 회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신학철 부회장은 한국인으로, 한국 3M에서 시작해 28년 만에 우리의 글로벌 부문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저와 신 부회장은 세계의 양쪽 끝에서 작은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신 부회장을 한국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고, 신 부회장 역시 저를 스웨덴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강력한 이유입니다.”

3M은 숫자와 관련이 많은 회사다. 이름부터가 ‘미네소타 광업·제조(Minnesota Mining & Manufacturing)’에서 따온 3M이다. 혁신을 위한 기업 문화에도 숫자로 표시된 룰이 많다. 이를테면 그 유명한 ‘15% 룰’이 있다.

“15% 룰은 연구·개발 부서 직원 전체가 자신들의 업무와 관계없는 프로젝트에 업무 시간의 15%를 할애할 자유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걸 회사가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전통이며 직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40% 룰’이란 것도 있다. 5년 내 개발된 신제품으로 매출의 40%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툴린 회장은 그러나 “목표에 약간 미달해서 35%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고객들에게 항상 새로운 제품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우리의 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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