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5.03.07 03:03
[허윤의 무역 이야기] 예멘 모카, 커피 무역 중심지
2014년 스타벅스는 몇 년 내에 미국의 수천 개 매장에서 술을 판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성한(?) 커피 전문점에 생뚱맞게 웬 술이냐는 비판도 만만찮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커피는 술이었다. 와인이라는 뜻의 아랍어 카와(quawah)가 터키로 건너가 카베(quaveh)가 되었고, 이탈리아에서 카페(caffe)가 되었다. 커피를 세상에서 처음 마신 사람들은 15세기 초 예멘 지역의 이슬람 신비주의자 수피(Sufi)들이었다. 이들은 주전자에 커피 빈 한 움큼을 집어넣고는 물에 팔팔 끓여 우려낸 진한 블랙커피를 마셨다. 취한다는 점에서 와인과 비슷했지만, 와인과는 달리 몸이 취할수록 머리는 맑아지고 신경이 흥분되어 기도와 명상에는 그만이었다. 한 사람에 한 주전자씩 커피를 마신 수피들은 서로 손을 잡고 신전 안을 뱅뱅 돌면서 알라신을 반복해서 부르고 춤을 추었는데, "눈앞에서 접신의 황홀경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커피는 알코올이 금지된 이슬람 사회에서 '숙취가 없는' 술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커피는 술이었다. 와인이라는 뜻의 아랍어 카와(quawah)가 터키로 건너가 카베(quaveh)가 되었고, 이탈리아에서 카페(caffe)가 되었다. 커피를 세상에서 처음 마신 사람들은 15세기 초 예멘 지역의 이슬람 신비주의자 수피(Sufi)들이었다. 이들은 주전자에 커피 빈 한 움큼을 집어넣고는 물에 팔팔 끓여 우려낸 진한 블랙커피를 마셨다. 취한다는 점에서 와인과 비슷했지만, 와인과는 달리 몸이 취할수록 머리는 맑아지고 신경이 흥분되어 기도와 명상에는 그만이었다. 한 사람에 한 주전자씩 커피를 마신 수피들은 서로 손을 잡고 신전 안을 뱅뱅 돌면서 알라신을 반복해서 부르고 춤을 추었는데, "눈앞에서 접신의 황홀경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커피는 알코올이 금지된 이슬람 사회에서 '숙취가 없는' 술로 각광을 받았다.

15세기에서 18세기 초까지 300년 이상 세계 커피 무역의 중심지는 예멘의 모카(Mocha)항이었다. 아랍인·인도인·이집트인 중간 상인들은 예멘의 산악 지역에서 소량으로 생산되는 커피 원두를 독점적으로 매집, 낙타와 배로 홍해를 거쳐 이집트의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로 운반했고, 다시 배로 프랑스의 마르세유항이나 터키의 이스탄불로 수출했다. 따라서 커피는 진귀한 고가품이었다.
메카의 종교 지도자들은 한때(AD 1511~1524) 커피를 마약으로 분류, 커피를 팔다 걸리면 처음에는 몽둥이로 때리고, 두 번째는 사람을 가죽 부대에 넣어 자루를 꿰맨 후 보스포루스 바다로 던졌다. 커피의 중독성이 '지고를 향한 영적 탐구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금지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벌이는 정치 토론이 체제 유지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도시는 런던이었다. 남성들의 고급 사교 클럽이 된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사무실이기도 했다. 브라질산 담배를 물고 예멘 혹은 자바산 커피와 대서양 섬에서 온 럼주를 마시며 정치와 사업을 도모했던 런던의 로이드 카페(Lloyd's cafe)는 훗날 세계 최대 보험사가 되었다. 예술가와 정치인 또한 파리와 빈의 카페에 밤낮으로 모여 예술적 영감을 나누고 혁명을 꿈꾸며 정치적 음모를 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커피는 산업 현장의 각성제로 전락한다. 커피가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사고율을 낮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업과 공장에서 커피 브레이크가 도입됐다. 직원들의 졸음을 쫓아내고 긴장감을 높이되 카페인에 취하지는 않게, 그래서 농도는 묽고 양이 많은 아메리카노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됐고, 군대에서 지급됐던 인스턴트 커피가 일상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산업화 시대의 검은 윤활유이자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소모품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커피를 입에 머금은 채 '나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왜 깨어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최근 서울의 스타벅스 커피 값이 뉴욕이나 도쿄보다 높은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매장에서 장기 체류하는 손님이 많아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업주 측 의견이 보도된 적이 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죽치는 행위'야말로 커피 문화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커피 잔 하나를 앞에 놓고 명상에 잠긴 사람, 정치 토론에 열 올리는 아저씨들, 떠오르는 영감을 기록하고 있는 예술가, 10시간째 책 읽고 있는 대학생, 이들이야말로 세계사를 찬란하게 장식했던 커피 문화의 한국판 후예들이다.
메카의 종교 지도자들은 한때(AD 1511~1524) 커피를 마약으로 분류, 커피를 팔다 걸리면 처음에는 몽둥이로 때리고, 두 번째는 사람을 가죽 부대에 넣어 자루를 꿰맨 후 보스포루스 바다로 던졌다. 커피의 중독성이 '지고를 향한 영적 탐구 활동'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금지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은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마시면서 벌이는 정치 토론이 체제 유지에 위협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에서 커피를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도시는 런던이었다. 남성들의 고급 사교 클럽이 된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귀족과 부르주아들의 사무실이기도 했다. 브라질산 담배를 물고 예멘 혹은 자바산 커피와 대서양 섬에서 온 럼주를 마시며 정치와 사업을 도모했던 런던의 로이드 카페(Lloyd's cafe)는 훗날 세계 최대 보험사가 되었다. 예술가와 정치인 또한 파리와 빈의 카페에 밤낮으로 모여 예술적 영감을 나누고 혁명을 꿈꾸며 정치적 음모를 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커피는 산업 현장의 각성제로 전락한다. 커피가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사고율을 낮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업과 공장에서 커피 브레이크가 도입됐다. 직원들의 졸음을 쫓아내고 긴장감을 높이되 카페인에 취하지는 않게, 그래서 농도는 묽고 양이 많은 아메리카노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됐고, 군대에서 지급됐던 인스턴트 커피가 일상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산업화 시대의 검은 윤활유이자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소모품이 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커피를 입에 머금은 채 '나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왜 깨어 있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최근 서울의 스타벅스 커피 값이 뉴욕이나 도쿄보다 높은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는 외국과 달리 매장에서 장기 체류하는 손님이 많아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업주 측 의견이 보도된 적이 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죽치는 행위'야말로 커피 문화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커피 잔 하나를 앞에 놓고 명상에 잠긴 사람, 정치 토론에 열 올리는 아저씨들, 떠오르는 영감을 기록하고 있는 예술가, 10시간째 책 읽고 있는 대학생, 이들이야말로 세계사를 찬란하게 장식했던 커피 문화의 한국판 후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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