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개의 팩트를 연결했을 뿐인데…통찰은 평범 속에 있다

입력 2015.03.07 03:03 | 수정 2015.03.07 04:18

[인지과학자 게리 클라인 인터뷰]

우연의 일치도 반복된다면… 보이지 않는 패턴 찾을 수도
서브프라임 사태때 돈 번 투자자 "그럴 리가 없는데"하는 의심 덕분

"통찰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과 훈련으로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40년 넘게 '사람이 어떻게 사고하는지'를 연구해온 인지과학자 게리 클라인(Gary Klein·71) 박사는 통찰(insight)이 빛났던 역사적 사례 120건을 연구하고 분석했다. 신문과 책, 인터뷰를 통해 수집한 과학적 발견, 발명, 경영의 사례다.

그는 그런 통찰이 촉발된 계기를 분석했다. 그것은 다섯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연결, 우연의 일치, 호기심, 모순, 창의적 절망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책 '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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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날 워싱턴 로널드레이건 공항에서 클라인 박사를 만났다. 자택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폭설 때문에 클라인 박사의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공항의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대신하게 됐다. 그는 갸름한 얼굴에 백발 수염이 뒤덮여 있었다. 그에게 통찰에 대한 정의부터 물었다.

"그동안 믿어왔던 것에 대한 변화입니다. 통찰은 그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방식,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보는 방식, 느끼는 방식, 심지어 욕구하는 것까지 바꿉니다. 통찰은 노벨상 수상자 같은 대단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늘 일상생활에서 통찰을 얻습니다."

그는 일상생활 속 통찰의 사례로 어느 경찰관의 이야기를 들었다.

"순찰차를 탄 경찰관 두 명이 교통체증으로 도로에 멈춰 있었습니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다가 둘 중 젊은 경찰관이 앞에 보이는, 뽑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고급 BMW를 힐끗 쳐다봅니다. 운전자는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 입 밖으로 뿜어내고는 시트 위에 재를 떨었습니다. 젊은 경찰관은 외쳤습니다. '저거 보셨어요? 저 사람이 방금 자기 차에 재를 떨었어요. 저건 분명 새 차라고요.' 이것이 바로 그 경찰관의 통찰이었습니다. 누가 새 차 안에 담뱃재를 떨겠습니까? 그 차 소유주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친구가 그 차를 빌렸더라도 당연히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그 차를 훔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경찰관은 경광등을 켜고 도난 차량을 추격했습니다."

가장 흔하고도 중요한 통찰 전략은 '연결'

클라인 박사는 첫째 통찰 전략으로 '연결'을 꼽았다. 다양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연결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가장 흔한 방식일 수 있지만, 그만큼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첫째 전략으로 꼽았다"고 말했다.

"언뜻 보기에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여러 아이디어를 조합하면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혁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2008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마틴 챌피 교수를 예로 들었다.

"컬럼비아대 생물학 교수인 그는 외피(外皮)가 투명한 벌레의 신경 체계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벌레를 죽여서 조직을 조사했는데, 당시 일반화된 작업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과 세미나에 참석한 그는 한 연사로부터 해파리가 어떻게 발광(發光)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됐습니다. 일본의 한 과학자가 해파리에서 초록빛을 내는 형광성 단백질을 발견했는데, 자외선을 그 단백질에 쐬면 초록색을 발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는 순간이 바로 챌피 교수에게 '유레카의 순간'이었습니다. 챌피는 투명한 벌레에 이 단백질을 넣고 자외선을 쐰다면 벌레를 죽이지 않고도 단백질이 퍼지는지 그렇지 않은지 볼 수 있겠다는 걸 순간적으로 알게 된 겁니다. 두 가지를 연결한 셈이죠."

챌피 교수의 통찰은 유기체의 내부를 들여다보면서 생물학적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 손전등' 아이디어로 이어졌고, 분자생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발판이 됐다. 이를테면 암 연구자들은 전립선 암세포 내부에 자라는 바이러스에 초록색 형광 단백질을 삽입해서 그 생리 작용을 관찰한다.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박사는 "최근 연구자들은 빨간색처럼 투과율이 높은 형광성 단백질을 이용해 투명하지 않은 생물, 예를 들어 쥐의 내부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결의 통찰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클라인 박사는 "우연적인 관련성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자신과 관심사가 다른 커뮤니티와의 교차점을 늘리는 식으로 스스로를 낯선 활동에 더 노출시켜야 합니다. 여러 취미를 가지는 것도 좋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연결의 중요성을 잘 알았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가 픽사 사장 시절 지었던 사옥은 모든 직원이 지나치지 않으면 안 되는 공간을 늘려 사람끼리 마주치는 빈도를 늘렸습니다. (픽사 사옥은 남녀 화장실 4개, 회의실 8개, 카페, 식당이 모두 거대한 중앙 로비에 몰려 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과 접촉하는 게 혁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초록색 형광 단백질을 주입한 쥐의 뇌에 자외선을 비추면 특정 뇌 신경세포들이 빛을 내 자세한 연결 구조를 볼 수 있다.
초록색 형광 단백질을 주입한 쥐의 뇌에 자외선을 비추면 특정 뇌 신경세포들이 빛을 내 자세한 연결 구조를 볼 수 있다. / 네이처 제공

우연의 일치 속에서 보이지 않는 패턴 찾는다

새로운 통찰은 우연의 일치를 단순히 운에 의한 것이라고 치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인과적 고리를 찾아내려는 노력으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클라인 박사는 에이즈란 질병을 처음 발견한 마이클 고틀리프라는 의사를 예로 들었다.

"고틀리프는 1980년 UCLA에서 조교수로 일할 때 특이한 면역 체계를 가진 환자를 발견했습니다. 칸디다질염이란 병에 걸린 31세 남성이었는데, 감염이 심해지면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했습니다. 고틀리프씨가 환자의 혈액 샘플로 몇 가지 테스트를 한 결과,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보통 인간 몸에는 면역 체계를 억제하는 '억제 세포'보다 활성화하는 '도움 세포'가 많은데, 이 환자는 딱 반대였습니다. 우연히 넘길 수 있는 이례적인 사례였지만, 고틀리프씨는 환자에 대한 다른 정보를 알아봤습니다. 외모가 매력적인 이 젊은 남성은 모델이었고, 게이로 살기 위해 LA로 이사 왔습니다. 고틀리프씨는 몇 달 후 LA에 살면서 비슷한 증상을 가진 다른 두 명의 환자를 조사했는데, 증상의 유사성을 보았고 우연의 일치를 발견했습니다. 두 남자 모두 게이였습니다. 이후 고틀리프씨는 1981년 6월 에이즈로 불리게 된 전염병의 등장을 처음 발표했습니다.

면역 체계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두 번째와 세 번째 환자를 만났을 때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는데, 그는 의심을 품고, 주의 깊게 지켜봤습니다."

고틀리프씨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연의 일치를 끈기 있게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라인 박사는 자신이 분석한 120건의 사례는 보통 연결, 우연의 일치 등 두 개 이상의 성격을 가진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호기심은 거의 모든 통찰 사례에 공통적으로 적용됐다고 말했다.

모순에서 투자 기회를 발견하다

클라인 박사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할 때 '왜 그럴까'하고 의심하는 태도도 통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분석한 120개의 사례 중 3분의 1 정도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 사례로 클라인 박사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오히려 돈을 번 투자자들의 사례를 꼽았다.

"월가에서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마이클 버리씨는 누구보다 일찍 버블을 눈치챘습니다. 2004년 각종 자료를 분석한 결과 그는 금융기관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해줄 때 기준이 완화되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당시 최고의 분석가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택 가격은 내려간 적이 한 번도 없고, 앞으로 더 많이 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버리씨는 '만약 주택 가격이 항상 오를 거라고 믿는다면, 왜 은행이 자격이 불충분한 지원자들까지 쫓아다닐까'라고 의심했습니다. 주택 가격이 항상 오를 것이라고 믿는다면, 대출 기준을 더 엄격하게 조정했으면 했지, 더 느슨하게 조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불일치성이 그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낙관하면서 속으로는 대출 기준을 낮추는 영업 사이의 모순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동산 시장은 곧 내리막길로 갈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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