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멋있는 말의 유혹을 이겨라

    • 강원국 '회장님의 글쓰기' 저자

입력 2014.12.20 03:03

신년사는 심리적 밀당
지나치게 막연하거나 너무 구체적이면 곤란
적절 명분 있으면서도 달성 가능한 비전 줘야 스스로 확신은 필수적

강원국 '회장님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회장님의 글쓰기' 저자
기업은 이맘때가 되면 마음이 분주하다. 특히 새해 준비로 그러하다.

아마 신년사를 준비하는 팀은 지금도 최고 경영자와 함께 여러 번 고치기를 되풀이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준비된 새해 경영전략을 쉽고 설득력 있게 담는 것이 가장 고민일 것이다.

신년사를 준비하는 '회장님'의 심리는 어떠할까. 한마디로 설렘과 걱정이다.

가까이에서 본 리더들은 이때쯤이면 들뜬다. 무언가를 새롭게 해볼 수 있는, 일년이란 시간이 다시 주어진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설렌다. 새해의 경영 환경이 아무리 각박해도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없는 희망도 어떻게든 만들어보려고 머리를 쥐어짠다. 자신만이 아니라 구성원들에게도 희망과 자신감을 갖자고 주문하고 호소한다. 그래야 보이지 않던 길도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낙천을 자처하고 희망을 주입해서 그들이 오늘 그 자리에 서 있다.

다른 하나는 걱정이다. 희망에 부푼 만큼 걱정이 한시름이다. 새해에 한 번 더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한 해 동안 주춤거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들만큼 겁쟁이가 없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게 그들이다.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엑스레이로 사방팔방 찍어보고도 미심쩍으면 안 건넌다. 그래서 그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호방한 리더는 1980년대 중반까지 존재했다. 경영 환경이 변하면서 그런 리더는 모두 집에 갔다.

문제는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희망에 부풀어도 직원들에게 들떠 보여선 안 된다. 속으로는 걱정이 앞을 가려도 움츠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금물이다. 그래서 고민이다. 새해를 밝고 희망차게 그리자니 현실이 그렇지도 않거니와, 설사 그렇다 해도 긴장감이 떨어진다. 직원들이 경각심을 놓을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마냥 무겁게만 접근할 수도 없다. 그래도 새해인데 말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늘 나올 수밖에 없다.

"위기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새해 경제를 걱정하는 소리만 난무한다. 이런 때일수록 리더는 희망을 줘야 한다.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자는 것이 아니다. 어두운 터널에 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리더의 첫째 덕목이고, 구성원들에게 줘야 할 비전이다.

이럴 때일수록 회장님은 멋있는 말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손에 잡히게 보여줘야 한다. 유치한 건 괜찮지만 어렵고 복잡한 건 안 된다. 새해 계획을 얘기할 때 직원들이 곧장 머리를 끄덕이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다. 둘 중 하나다. 공감하지 못했거나 이해가 안 되었거나. 이럴 때에는 계획을 새로 만들든지, 설명하는 문안을 다시 만들든지 해야 한다.

그리고 '나'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최고 경영자의 고독한 계획은 계획이 아니다. 그 계획을 이뤄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그것이 달성됐을 때 그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선명하면서도 그들을 들뜨게 해야 한다. 그랬을 때 회사 계획에 맞춰 자신의 새해를 설계한다. 새해 계획을 보고 "또 죽어나겠구먼." "그래 봤자 그게 내게 무슨 이득이 있는데?" 하는 반응이 나오면 반드시 실패한다.

만평
신년사는 직원들과의 심리적 '밀당(밀고당기기)'이다. 달성 가능성, 구체성 정도, 정당성 여부를 놓고 절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먼저, 달성 가능성이다. 너무 쉽게 달성할 수 있어도 곤란하고, 너무 어려워도 안 된다. 너무 쉬우면 계획이 아니고, 너무 어려우면 도전하지 않는다. 있는 힘껏 도전하면 이룰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구체성 정도도 마찬가지다. 너무 막연해서도, 너무 구체적이어서도 안 된다. 너무 구체적이면 설렘이 없고, 너무 막연하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정당성 여부도 그렇다. 적절한 수준의 대외적 명분이 필요하다. 내 이익만 좇으면 직원들이 자부심을 잃게 되고, 공익에 치우치면 실익이 없다. 어느 정도 당위성과 정당성을 갖춰야 옹색하지 않다.

무엇보다 리더가 성공 가능성을 확신해야 한다. 이것 아니면 안 된다, 이것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으로 목을 매야 한다. 계획 달성의 광적인 전도사가 돼야 한다. 그리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성공 확률이 50퍼센트 정도는 된다.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준비할 때다. 연설 비서실에서 만든 초안을 대통령이 수정해서 내려보냈다. 그런데 수정본이 '국민 여러분, 개해가 밝았습니다'로 시작했다. 2006년은 병술년 개띠 해였다. '개의 해'였던 것이다. 연설 비서실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개띠 해지만 설마 대통령이 '개해'라고 했을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개띠 해에 '개해'라고 표현한 것이 뭐가 문제냐고 했다. 결국 여쭤봤다. 대통령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그거 오타네"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 자판에서 'ㄱ'과 'ㅅ'은 맨 위줄 중간에 나란히 붙어 있다. 2015년은 양띠 해다. 양의 해 연말에 직원과 고객, 주주를 반갑게 만나려면 신년사부터 개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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