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마케팅으로 성공한 브랜드 '러쉬'

입력 2014.12.13 03:15 | 수정 2014.12.16 14:36

화장 안 한 화장품
포장 안 하는 '러쉬'
고객이 향 바로 맡을 수 있게 제품을 있는 그대로 진열 재활용 종이에 둘둘 말아 줘
"식물성 천연재료만 고집‐ 광고·포장엔 돈 안써요"
'착한 회사' 강조하는 캠페인도 포장일 뿐
그래봤자 브랜드 정체성도 의미도 퇴색 이제 소비자들은 '이면'까지 들여다봐
러쉬의 3원칙 '천연재료·無광고·無포장'
조리도구 써서 식물성 원료로 반죽 中서 동물실험 요구하자 '안 팔겠다'

러쉬 제품들
흔히 화장품 회사는 '꿈을 파는 회사'로 통한다. 화장품 매장에 가보면 세련되고 깔끔한 매장 인테리어에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제품은 근사한 디자인의 유리 케이스에 100mL 정도 담겨 있고, 제품 이름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는' 같은 미사여구가 잔뜩 붙어 있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른 화장품 회사가 한 곳 있다. 이 회사 매장은 무슨 과일 가게 같다. 입욕제나 비누, 마사지바, 팩 같은 제품들을 포장 없이 날것 그대로 진열해 놓았다.

꺼끌꺼끌한 비누가 덩어리째 매대 위에 올려져 있고, 사려고 하면 덩어리를 원하는 양만큼 잘라 재활용 종이에 둘둘 말아 건네준다. 액체 화장품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지만, 이중 삼중의 포장 없이 그냥 용기째 판다.
러쉬 제품은 포장지로 싸지 않고 민낯 그대로 진열하는 게 많다. 목욕할 때 사용하는 입욕제‘발리스틱’이 상자에 가득 담겨 있다
러쉬 제품은 포장지로 싸지 않고 민낯 그대로 진열하는 게 많다. 목욕할 때 사용하는 입욕제‘배스 밤’이 상자에 가득 담겨 있다./러쉬 제공
이런 풍경은 이 회사, 즉 러쉬(Lush)의 정신을 잘 나타낸다. 억지로 예뻐 보이려 애쓰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화장품 회사라는 카테고리에서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깜짝 스파크(unexpected spark)', 즉 재래시장 같은 풋풋한 활기와 재미를 제공한다.

화장품 업계에선 이단아(異端兒)인 셈이지만 1995년 설립 이후 연평균 10%씩 성장, 지난해 매출액 8000억원을 달성했다.

창립자 마크 콘스탄틴(Constantine·62)씨를 영국 본사에서 만났다. 영국 남부에 있는 인구 15만명 항구 도시 풀(Poole)에 있었다. 그는 CEO 자리를 오래전 물려주고 지금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러쉬 창립자 마크 콘스탄틴
러쉬 창립자 마크 콘스탄틴
그는 제품을 포장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유요? 일부러 향이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포장재로 꽁꽁 싸매 놓으면 고객이 그 냄새를 맡아보기 어렵잖아요. 저희는 이걸 '벌거벗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든 포장지 회사가 도산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웃음)."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JOH의 조수용 대표는 "가식적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고급스러움과 세련미를 강조하는 다른 화장품 회사들과 달리 러쉬는 제품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진열함으로써 제품 본연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는데 오히려 이 때문에 진정성이 강조된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깜짝 스파크는 여기저기서 묻어 나온다. 주력 제품 중 하나인 '배스 밤'이라는 입욕제는 형형색색 모양에 욕조에 집어넣으면 마치 샴페인처럼 뽀글뽀글한 기포를 뿜어내면서 욕조 물을 핑크나 보라색으로 물들인다. 홍성태 한양대 교수는 "해외 출장을 다니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대인기"라며 "마치 하루의 끝자락에 샴페인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목욕하면서 하루의 피로를 푼다"고 말했다. 러쉬 제품들은 향이 워낙 강렬해 매장이 백화점 7층에 있다면 5층에서부터 알아차릴 정도다.

직접 만나 보니 창립자 콘스탄틴씨 자체가 깜짝 스파크였다. 그는 검정 재킷 안에 보라색 꽃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는 러쉬가 파는 꿈은 다른 화장품 회사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죠. 문제는 많은 화장품 업체가 파는 꿈은 영원히 늙지 않는 예쁜 얼굴, 즉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겁니다. 저희가 파는 꿈은 조금 다릅니다. 즐거움과 만족감입니다. 저희 제품은 모양도 독특하고 향도 특이하죠. 사용할 때 재밌고, 편안합니다. 이런 종류의 감성이 저희가 파는 꿈입니다."

러쉬가 제품을 포장하지 않고 파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나는 환경 문제다. 조류 관찰자이기도 했던 콘스탄틴씨는 오염된 바다를 보면서 친환경 제품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러쉬 제품 절반 이상이 포장 없이 팔린다. 나머지도 모두 재생 플라스틱 용기 등에 넣어서 팔고, 100% 재활용이 가능하다. 둘째 이유는 비용이다. “포장을 근사하게 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예컨대 보디클렌저 한 병을 사면, 원가는 아마 20%도 안 될 겁니다. 포장을 간소하게 할수록 소비자에게 더 큰 만족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를 맞아 빛을 본 진정성

―러쉬는 수익성이 높은데, 비결이 뭔가요?

“제품의 포장에 투자하지 않고, 광고에도 거의 돈을 쓰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수익성이 올라가는 거죠. 큰 회사는 매출의 20~30%를 광고에 쏟아붓습니다. 광고의 단맛을 본 화장품 업체들은 더더욱 광고에 치중하게 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도덕적 해이’도 발생합니다. 제품이 어떻든 광고부터 세게 넣죠.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최근 시대가 바뀌고 있어요. 모든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공유됩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더 이상 기업이 말해주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 있는 것까지 찾아보죠. 이런 소비자들이 늘면서, 돈을 벌고 있는 겁니다.”

―20년 전 회사를 세울 때부터 이렇게 될 것을 예측하셨나요?

“그럴 리가요(웃음). 단지 ‘차별화’를 하고 싶었어요. 원래 조향사(향을 만드는 사람) 출신이라 젊었을 때부터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화장품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실 30년 전에도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화장품은 있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천연 재료를 쓰지 않는 곳도 많다는 걸 알고 실망했어요. 그래서 반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①천연 재료를 고집하겠다 ②광고를 하지 않겠다 ③포장을 세련되게 꾸미지 않겠다. 이 세 가지 차별화 포인트가 결과적으로 저희에게 경쟁 우위를 가져다줬습니다.”

러쉬는 공장을 ‘주방(kitchen)’이라고 부른다. 또 제품을 100% 손으로 만들며, 밀대나 식칼 등 요리 도구로 반죽하고 자른다. 원료는 식재료로 써도 문제가 없는 식물성 원료만 쓴다. 러쉬는 공익 캠페인을 많이 벌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동물 실험 반대에서부터 탈북 청소년 교육에 이르기까지 33가지 캠페인을 벌였다. 중국이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은 화장품을 반입 금지한다는 이유로 중국 진출을 거부하는 옹고집을 보이기도 했다. 50조원 시장을 걷어찬 셈이다.

러쉬는 화장품 제조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하는 행위를 반대한다. 이를 상징하는 이벤트도 자주 벌인다
러쉬는 화장품 제조 과정에서 동물 실험을 하는 행위를 반대한다. 이를 상징하는 이벤트도 자주 벌인다./러쉬 제공
캠페인과 비즈니스모델을 분리해야 성공한다

―러쉬는 캠페인을 많이 하는데,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캠페인과 비즈니스 모델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많은 회사가 캠페인을 광고처럼 이용하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합니다. ‘우리 회사는 착한 회사예요. 그러니까 우리 제품을 쓰세요’라고 말합니다. 이건 캠페인이 비즈니스 모델에 포함된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캠페인의 의미가 퇴색되고, 캠페인으로 광고하는 데도 한계가 드러납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봐주지 않거든요. 그러면 회사가 무너지게 됩니다. 러쉬는 캠페인과 비즈니스를 별개로 봅니다. 정확하게는 비즈니스로 돈을 벌어서 캠페인 벌이는 데 쓰고 있습니다.”

콘스탄틴씨는 방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긴 대답을 이어갔다.

“돈을 벌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벌면 벌수록 더 많이 벌고 싶어집니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서 돈을 잔뜩 쥔 투자자를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는 브랜드 정체성을 훼손합니다. 이런 경우를 ‘메뚜기가 된다’고 표현합니다. 메뚜기는 탐욕의 제왕입니다. 농작물을 집어삼키고 기근을 불러오죠. 메뚜기는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반대가 꿀벌입니다. 꿀벌은 차근히 회사를 키우고, 돈을 벌려고 조바심 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은 일을 하죠. 저희의 목표는 꿀벌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캠페인과 성장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군가 큰 돈을 들고 찾아와서 ‘회사를 파세요’라고 하면,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벤앤제리는 유니레버에, 바디샵은 로레알에 인수됐습니다. 그리고 윤리 경영은 희석돼 버렸죠.”

그는 러쉬를 창업하기 전 1977년 보디용품 제조업체를 차려 환경친화적 제품을 만들었다. 더바디샵 창업자 애니타 로딕(Roddick)이 이에 동조했고, 그는 바디샵에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디샵의 사세(社勢)가 갑작스럽게 커지면서 ‘영리 추구’와 ‘환경 보호’라는 상반된 가치에 대한 이견이 발생했고, 콘스탄틴씨는 바디샵과의 관계를 종료하고 떠났다. 그리고 1995년 새로 차린 회사가 바로 러쉬다.

바디샵과 결별

―애니타 로딕과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그녀는 작은 회사로 시작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면서 처음 가지고 있었던 원칙을 조금씩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회사에는 자신의 이념과 다른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입사하게 됐고, 의견이 충돌하면서 비즈니스는 결국 표류하고 말았습니다. 그때쯤 바디샵에 납품하던 일을 관두고 헤어졌습니다. 마치 비틀스가 해체한 것처럼요. 헤어지고 나서 러쉬는 최근 10년, 특히 5년 동안 급성장을 이뤘습니다. 반면 바디샵은 2006년 로레알에 인수된 이후 매출의 20%가 줄었다고 합니다. 로레알은 대표적인 상업적 화장품 회사죠. 어쩌면 소비자들은 신뢰감을 잃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바디샵은 원래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자연주의 화장품이었는데, 동물 실험을 하는 브랜드를 보유한 로레알 그룹에 인수되면서 브랜드 정체성에 타격을 입었다. 또 벤앤제리 아이스크림은 유전자조작 농식품(GMO)에 반대했는데, GMO를 사용하는 유니레버에 팔리면서 정체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러쉬에 캠페인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고, 브랜드 정체성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저희는 고래 사냥에 반대합니다.’ ‘동물 실험에 반대합니다.’ 만약 소비자들이 저희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억지로 설득하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좋아하면 오고, 싫어하면 오지 않습니다. 캠페인이 중요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올바른 직원을 채용하는 척도가 된다는 겁니다. 저희 캠페인에 반대하는데 우리 회사에 입사하려는 직원이 있을까요?”

리먼 쇼크 이후 진정성을 평가받다

―결과적으로 러쉬는 기업 윤리를 지키면서, 성장도 이뤄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어려웠어요. 아무리 원칙이 훌륭해도 소비자들은 우리 생각만큼 큰 관심을 보내주지 않아요. 많은 ‘착한 기업’이 여기서 딜레마를 겪습니다. 윤리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면 적어도 원가라도 조금 낮출 수 있거든요. 그러나 저희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버텼습니다. 그러니 고객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회사가 어느새 제대로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리먼 쇼크를 겪고 난 다음부터 신뢰라는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어느 정도 그런 마음을 충족시켰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구민정 성균관대 교수는 “러쉬가 벌이는 캠페인 중 동성애 지지 같은 논쟁적인 캠페인은 지역에 따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면서 “이런 점에서 베네통을 연상시키는데, 대중 시장 마케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쉬의 제품은 하나같이 색과 향이 강한데, 이유가 뭔가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브라질 카니발 같지 않나요? 그렇다고 위험한 제품은 하나도 없어요. 거의 모두가 자연에서 추출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향기가 강렬한가. 그건 ‘잔뜩’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주 많은 레몬 오일을 넣으면, 화학 시트러스 향을 쓴 것처럼 냄새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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