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생명은 팀워크… 존중하는 마음 있어야 창의성 나와"

입력 2014.12.06 03:04

[7 Question] '미슐랭가이드 ★★★ 21년' 佛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

걱정하는 습관 들여라, 아주 약간만
세심하게 통제된 걱정, 긴장 유지시켜
마음에서 우러나는 욕구 있어야 '롱런'

조리법 중요하지만, 그건 테크닉일 뿐
고객이 더 맛있고 행복하게 먹는 상상
그것에 집중할 때 멋진 요리가 완성된다

'미슐랭 가이드' 별 셋은 요리사에겐 최고의 훈장으로 통한다. 조사 대상 전 세계 23개국 식당 수만개 중 별 셋을 받는 곳은 50개 안팎. 2003년 프랑스 유명 요리사 베르나르 루와소는 자신의 식당이 별 셋에서 둘로 강등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슐랭 가이드 별점은 성공 보증수표이지만, 독이 든 성배(聖杯)일 수도 있는 셈이다.

그 별 셋을 1993년부터 21년째 달고 있는 요리사가 있다. 요리사 집안에서 태어나 요리사를 천직(天職)으로 알고 자란 피에르 가니에르(64)씨다. '요리계의 피카소' '식탁 위의 시인'으로 불리며 파리를 비롯, 전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미슐랭 별을 받은 요리사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 조사에서도 최고 요리사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달 TV조선이 주최한 글로벌 리더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그를 위클리비즈가 만났다. 가니에르씨는 "미슐랭 별 셋은 '조화'와 '일관성'을 갖춰야 유지할 수 있다"며 "음식 맛은 기본이고 편안한 서비스와 내부 장식이 조화를 이루고 그 조화가 한결같이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헐렁한 청바지와 가벼운 검은색 카디건 차림으로 나타났다. 대화 도중 자주 고개를 쳐들고 생각에 잠겼다가 답변을 이어갔고, 그럴 때마다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은 더 깊게 팼다.
피에르 가니에르씨는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요리사도 요리를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말했다. 만남이 쌓여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는 얘기였다.
피에르 가니에르씨는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요리사도 요리를 먹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말했다. 만남이 쌓여 인생이 아름다워진다는 얘기였다. / 롯데호텔 제공
①미슐랭 별 셋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세계 최고 요리사라는 자의식이 생기는 순간, 끝이다. 자만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룩한 것만 갖고는 오래 버틸 수 없다. 그걸 유지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평소 늘 '약간' 걱정하면서 산다. 약간의 걱정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걱정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세심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욕구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중요하다. 주방은 군대가 아니기 때문에 서로 빡빡하게 대해선 곤란하다. 좋은 스태프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면 최고의 식당을 만들 수 없다. 요리도 팀워크가 생명이다."

②요리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는

"아버지가 요리사였다. 15세 때 처음 요리를 시작해서 친구들과 파티를 했는데, 요리를 맛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 요리는 내게 음악, 춤, 도자기, 원예처럼 예술적 표현 방법의 하나다. 사람과 멋진 만남을 할 수 있는 교류 수단이자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도구다. 누구에겐 요리란 단지 먹는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내겐 요리가 삶을 지탱하는 원천이며 행복의 근원이다. 요리를 통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만족하게 하는 게 내 일이다. 다행히 요리에 재능이 있었고 그건 행운이었다."

③요리사란 어떤 직업인가

"전에는 기술자에 가까웠다. 같은 조리 과정을 반복하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35~40년 전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요리사들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창의적인 요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이제 요리사는 예술가로 인정받는 풍토다. 멋진 가구를 만드는 공예가처럼 요리사는 손으로 음식을 작품으로 빚는 공예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에는 요리에 감수성을 투여하는 걸 부정적으로 바라봤지만 지금은 요리사가 요리에 자신의 가치와 감수성을 담아 표현하는 게 당연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④창의적인 요리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는가

"특별한 비법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1년 365일 24시간 요리에 대해 생각한다. 매일 요리를 경험하고 요리와 대화하고 있다. DNA 자체가 요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그걸 정리해서 우선 새로 만들어본다. 창의적인 요리는 성실함과 솔직함을 반영하는 결과물이다. 그리고 동료 요리사들과 상의해서 문제점을 개선하고 고객들에게 내놓는다."
(왼쪽부터) 스페인식 돼지 요리를 곁들인 농어·단호박·올리브·시금치. 치즈에 코코넛 가루를 입힌 볼과 흑마늘, 고추향 샐러드.
(왼쪽부터) 스페인식 돼지 요리를 곁들인 농어·단호박·올리브·시금치. 치즈에 코코넛 가루를 입힌 볼과 흑마늘, 고추향 샐러드.
⑤'분자 요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유행을 어떻게 보나

"분자 요리가 큰 혁신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전에는 무조건 찬양하다가 요즘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 지적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지만 어쨌든 유행일 뿐이다. 스페인에서는 분자 요리를 모르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처럼 간주해 너도나도 분자 요리에 뛰어들었으나 실패한 사례도 많았다. 요리란 조리법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건 테크닉일 뿐이다. 요리는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 맛있고 행복하게 먹을 수 있을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멋진 요리가 탄생하는 법이다."

⑥식당을 관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한국 롯데호텔에도 (내 이름을 단) 레스토랑이 있지만, 어느 나라에 있든 적절한 근무 환경을 보장하는 걸 강조한다. 말단 직원이라도 존중받아야 하고 자율성을 인정해야 한다. 사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식당을 운영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강요받는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자율성을 부여해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단지 팀워크를 해치는 직원에겐 좀 냉정하게 대한다. 어딜 가나 실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변명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수에 대해 물론 한 번 더 기회를 주지만, 변화가 없다면 결단을 내린다. 평소에는 친절하고 부드럽다가도 이럴 땐 싸늘하다. 그렇지 않으면 퀄리티를 유지할 수 없다."

⑦심리학자들은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게 행복을 느끼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겠다. 나야 요리사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얘기해야 하겠지만(웃음). 사실 정확한 답은 없다. 어떤 사람은 먹는 것보다 낚시를 떠나 사색을 하는 게, 또는 버섯을 따러 가는 게 행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음식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뭔가를 경험한다는 것, 먹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부부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만남과 교감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닐까."

☞미슐랭 가이드

프랑스 타이어 회사인 미슐랭에서 발간하는 ‘미식가들의 성서’와 같은 책. 조사원이 식당을 암행(暗行) 방문해 맛·가격·분위기·서비스 등을 종합해 등급을 매긴다. 최고 등급인 별 셋(★★★)은 요리를 맛보고자 여행을 떠날 만한 식당, 둘(★★)은 그 지역을 방문하면 차를 돌려서라도 가볼 만한 식당, 하나(★)는 해당 가격대에서 요리가 특별히 훌륭한 식당을 뜻한다.

☞분자 요리(molecular gastronomy)

음식을 분자 단위까지 철저하게 연구하고 분석한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 음식 재료의 질감이나 조직·요리법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새롭게 변형하거나 완전히 다른 스타일로 창조하는 걸 말한다. 예컨대 올리브기름을 액화질소로 순간 냉각해 아이스크림으로 만들어 전혀 새로운 맛과 질감을 창조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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