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그룹 '타타'의 길, '릴라이언스'의 길

    • 장세진 KAIST 경영대 교수

입력 2014.09.13 03:07 | 수정 2014.09.14 20:15

정경유착 택한 '릴라이언스' - 암바니 회장 인도 제1부자
장관 갈아치울만큼 권세 글로벌 기업으론 성장못해
글로벌 스탠더드 '타타' - 자선단체가 지분 66% 소유
인도서 존경받는 기업 1위 세계적 경쟁력 갖추게 돼

장세진 KAIST 경영대 교수
장세진 KAIST 경영대 교수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백성으로부터 두려움과 사랑을 함께 받아야 하지만, 그중 하나만 선택한다면 두려움의 대상이 돼라"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배신하지만, 두려운 사람에겐 그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권모술수의 화신으로 알려지고, 군주론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최근 국내에서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마키아벨리가 경영자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리하기 위한 처세술을 가르쳐준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렇다면 경영자 역시 사랑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그러나 마키아벨리를 처세술로 이해하는 것은 오해다. 마키아벨리는 무엇보다도 '네세시타(Necessita)'라는 시대적 상황을 강조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때로는 교활하거나 잔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항상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보다 두려움을 선택하라는 충고는 군주론이 쓰일 당시 약육강식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똑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각각 두려움과 사랑을 선택한 인도의 두 대표 재벌 릴라이언스와 타타그룹의 사례를 보면, 그 선택이 향후 기업 전략과 사업 구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릴라이언스는 창업자 시절부터 정경 유착을 통해 성장했다. 인도가 1990년대 초반 규제 완화와 개방을 추진할 때, 릴라이언스는 정경 유착을 통해 여러 사업권을 따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릴라이언스는 내수 시장에 집중하는 화학, 석유, 에너지, 통신, 유통, 미디어 등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시가총액은 증시의 4%에 달한다. 2세 경영자인 암바니 회장의 재산은 235억달러로 인도에서 가장 부자이다.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 암바니 회장이 보유한 대저택(왼쪽). 라탄 타타 타타그룹 회장이 2008년 초저가 자동차 나노를 공개하는 모습. / 조선일보 DBㆍAP 뉴시스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 암바니 회장이 보유한 대저택(왼쪽). 라탄 타타 타타그룹 회장이 2008년 초저가 자동차 나노를 공개하는 모습. / 조선일보 DBㆍAP 뉴시스
암바니 회장의 영향력은 필요에 따라서는 장관을 갈아 치울 수 있을 정도로 크다. 그러나 기업 지배 구조는 혼탁하기 그지없다. 절반 가까운 지분을 암바니 가족이 지배하리라 예상들은 하지만, 수많은 투자 회사를 통해 분산 소유되기 때문에 정확한 실상은 알 수 없다. 연 12억달러 규모의 내부 거래는 암바니 개인 소유의 기업에 큰 이윤을 가져다준다. 27층 규모로 영화관, 스포츠시설, 헬리콥터 착륙장을 갖춘 암바니 회장의 대저택은 뭄바이의 빈민가와 대조를 이룬다.

반면, 타타그룹은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다. 타타그룹은 식료품, 자동차, 철강, IT 컨설팅, 소프트웨어, 화학, 발전, 호텔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으며, 시가총액은 증시의 7%를 차지한다. 릴라이언스가 규제 완화의 흐름에 정경 유착을 기반으로 내수 위주로 사업을 확장한 것에 비해, 타타는 오히려 규제 완화의 결과로 향후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것에 대응하고자 글로벌 경영 스탠더드를 받아들이고 해외 진출을 추구했다. 영국의 코러스철강과 재규어, 랜드로버 자동차를 인수하고, 한국에서도 대우 상용차를 인수했다. 현재 해외 매출 비중이 60%가 넘는다.

타타는 일찍부터 뇌물과 같은 부정적인 방법을 지양했다. 지배 구조도 투명하다. 지주회사인 타타선스는 자선단체가 지분의 66%를 소유하며, 타타 가족의 지분은 3%밖에 안 된다. 이는 선대 회장들이 자신의 개인 지분을 헌납해 문맹 퇴치, 병원, 예술, 학술 활동을 지원하는 자선단체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타타 직원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기부를 하기 위해 돈을 번다"라는 말을 한다. 전임 회장인 라탄 타타는 독신으로 검소하게 살며, 유일한 낙이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타 자동차가 3000달러의 초저가 자동차 나노를 개발하게 된 동기도, 오토바이에 위험하게 여럿 타고 다니는 인도 서민을 안타깝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라탄 타타는 2012년 은퇴하면서 가족이 아닌 인물(사이러스 미스트리)을 회장으로 선임했다.

릴라이언스는 내수 위주의 사업 구조로 앞으로도 정경 유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릴라이언스가 2009년 리온델바셀이란 화학회사를 인수하는 데 실패한 이유도 회사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반면 타타는 일찍부터 정경 유착을 지양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했다.

수익성과 같은 현재의 경영 성과만 보면, 릴라이언스와 타타 둘 다 성공적인 기업이다. 과연 두 재벌 중 앞으로 누가 더 성공적일지는 향후 인도라는 나라가 어떤 길로 가느냐에 달렸다. 만일 인도가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경쟁을 촉진한다면, 타타가 승자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한국의 재벌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의 재벌이 마키아벨리에게 자문을 한다면, 아마도 타타처럼 두려움보다는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를 충고할 것이다. 그 길이 주주, 종업원, 국민이 투명한 지배 구조를 원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며,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시대 상황에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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