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광고, 유재석을 이길 수 있는가

    • 채용준 SK플래닛 플래너

입력 2014.04.19 03:04 | 수정 2014.04.19 03:21

광고가 예능을 따라가는 시대, 뒤바뀐 트렌드 연구
예능 프로가 광고를 차용하던 시대는 갔다
예능의 두려움 없는 시도 광고는 이제 예능을 흘끔흘끔 볼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광고 내용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코미디언 유재석의 경쟁력을 광고 제작자들이 이길 수 있느냐가 화두다.
과거에는 광고 내용을 예능 프로그램에서 패러디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코미디언 유재석의 경쟁력을 광고 제작자들이 이길 수 있느냐가 화두다. /뉴스1
'피인용지수'라는 것이 있다. 논문 1편이 얼마나 많은 논문에 인용되었는가를 측정한 것으로 연구 성과의 우수성과 영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이 '피인용지수'를 광고와 예능으로 치환해 보면 어떤 양상이 나타날까?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광고가 꽤 잘나갔던 시대였다. 광고가 입소문을 타면 다양한 영역에서 광고의 화법이나 스타일을 차용하곤 했다.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광고 장면을 따라 하며 웃음을 유발하는 일도 많았다. 다시 말하면 '피인용지수'가 높았다고 할 수 있었던 시기다. 3~4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오히려 광고가 여러 문화 현상을 인용하는 횟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최근 흘러나오는 라디오 CM 중 상당수는 개그콘서트의 유행어 포맷에 상업 메시지를 대입한 것이다. TV CM 역시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이나 형식 등을 그대로 안고 가는 경우가 늘어났다. 즉, 광고의 피인용지수는 하락하고, 예능의 피인용지수는 급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나는 가수다' '슈퍼스타 K' 같은 경연 프로그램은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했다.

초코바 브랜드 ROM
과연 그런 역전 현상을 일으킨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없는 즉각적인 시도'가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해외의 다양한 광고 캠페인이나 프로젝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과연 광고일까? 예능일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잦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가적인 스케일로 '몰래카메라'를 시도한 루마니아 초코바 브랜드 ROM(사진)의 'The American Rom' 캠페인을 들 수 있다.

루마니아 과자 회사의 미국 찬양 캠페인

이 캠페인이 시작되기 전 루마니아 젊은이들의 국가적 자긍심은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정치·경제 불안으로 자국에 대한 불신이 심해졌으며, 루마니아와 관련된 모든 것을 오래되고 촌스럽고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ROM은 루마니아 국기를 넣은 포장 용기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브랜드의 인기는 날로 하락하고 있었다.

그래서 극단적인 캠페인을 기획했다. 루마니아 젊은이들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나라인 미국의 국기로 ROM의 패키지를 하루아침에 바꿔 버린 것이다. TV CM도 극단적인 방법을 선보였다. 영어로 말하고 루마니아어로 자막을 달아 버린 것이다.

옥외광고도 자극적이었다. '여기에 미국을 짓자' '애국주의가 밥 먹여주느냐' 등의 카피를 달았다. 캠페인이 시작되자 루마니아에 대해 그토록 부정적이었던 젊은이들이 자신의 조국이 모욕당하는 것에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루마니아의 자긍심을 표출하고, 원래 ROM의 포장 용기로 되돌려 달라는 시위까지 벌였다.

이때에야 ROM은 이 모든 것이 다 장난이었으며, 원래의 디자인으로 되돌리겠다는 약속을 TV CM을 통해 알렸다. 전 국민을 상대로 일종의 '사기극'을 펼친 덕에 ROM은 인지도나 매출 등 다양한 지표가 드라마틱하게 상승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더불어 루마니아 국민에게 국가적 자존감을 고취해 주었다는 공로로 대통령이 직접 광고대행사에 감사장을 주었다.

빙(BING)은 가수 제이 지 광고를 찾아내는 행사를 펼쳤다.
'무한도전'과 닮은 빙의 보물찾기 - 빙(BING)은 가수 제이 지 광고를 찾아내는 행사를 펼쳤다.
빙의 보물찾기 행사

빙(BING)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검색 사이트다. 하지만 구글의 압도적인 점유율 덕분에 큰 관심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광고대행사 드로가5(Droga5)는 '디코드 제이 지(Decode Jay-Z)'라는 획기적인 캠페인을 기획했다. 사람들이 다양한 지역을 돌아다니며 숨은 '보물'을 찾는다는 점에서 '1박 2일'이나 '런닝맨'과 같은 국내 예능 프로그램의 미션 수행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빙 웹사이트에 유명 힙합가수 제이 지(Jay-Z) 페이지를 만들고 그의 자서전인 'Decoded'를 활용한 옥외광고를 제작했다. 옥외광고는 자서전 내용과 관련된 버스 정류장, 길거리, 자동차, 접시, 농구 골대, 수영장 바닥 등에 자서전 페이지를 입혔다. 그리고 이런 옥외광고가 전 세계 15개국에 걸쳐 설치되어 있으니 그 광고를 찾아내 보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힌트는 빙의 웹사이트에만 공개되었으며, 빙의 지도 서비스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게 했다. 참여자들은 해당 위치에서 자서전의 한 페이지에 해당하는 옥외광고 사진을 찍고 업로드를 하면 된다. 이렇게 찾아진 페이지가 모여 가상의 책 1권을 완성하는 것이 캠페인의 미션이다. 캠페인 결과 제이 지의 페이스북 페이지 팬은 100만명 증가하고, 빙의 방문자가 11.7% 증가하였으며, 11억달러에 달하는 미디어 노출 효과를 기록했다. 보물찾기라는 전통적인 놀이를 디지털과 결합해 엄청난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2011년 나이키가 벌인 술래잡기 이벤트는 은색 점퍼를 입고 도망가는 술래를 휴대전화 앱으로 찍는 내용. 국내 방송 프로그램 '런닝맨'과 흡사하다.
'런닝맨'과 닮은 나이키의 술래잡기 이벤트 - 2011년 나이키가 벌인 술래잡기 이벤트는 은색 점퍼를 입고 도망가는 술래를 휴대전화 앱으로 찍는 내용. 국내 방송 프로그램 '런닝맨'과 흡사하다.
나이키의 술래잡기

2011년 1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나이키가 주최하는 독특한 술래잡기 대회가 열렸다. 은색의 점퍼를 입은 사람이 술래가 되고, 그 술래를 대회 참가자들이 따라잡는 방식이다. 단, 손으로 술래를 잡는 것이 아니라 플래시를 터트려 잡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참가자들은 나이키가 제작한 앱을 내려받는다. 이 앱에는 도망치고 있는 술래들의 위치가 지도 위에 표시된다. 술래를 찾은 뒤 앱에 있는 플래시 단추를 누르면 술래가 입고 있는 은색 점퍼 소재 때문에 강한 빛을 발함과 동시에 지도 상에 숫자가 표시된다. 이 숫자는 각 술래가 입은 점퍼의 등 번호이다. 앱에는 빛을 받음과 동시에 데이터가 서버로 전송되어 앱에 표시되게 하는 기술이 숨겨져 있어 90분간 진행된 술래잡기가 끝나고 매장에서 가장 많이 플래시를 터트린 사람에겐 상품과 상패가 수여됐다.

KLM은 승객을 대상으로 깜짝 선물을 건네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홍보에 활용했다.
'몰래카메라'와 닮은 KLM의 선물 - KLM은 승객을 대상으로 깜짝 선물을 건네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홍보에 활용했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의 깜짝 선물

공항에서 비행기 환승을 해야 하는데 연착이라도 된다 치자. 기다림의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지옥이 될 수도 있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트위터를 이용한 깜짝 카메라로 공항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기분 좋은 선물을 선사해 큰 효과를 거두었다. 그들은 자사 비행기를 이용하려는 고객들에게 여행 계획을 트위터로 올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D데이. 아부다비 공항에서 항공사 직원은 첫 번째 주인공이 될 승객을 찾아 나섰다. 그 승객은 트위터를 통해 로마 여행 계획을 알려준 여성이었다.

직원은 승객에게 인사와 함께 이런 말을 건넨다. "혹시 트위터에 여행 계획을 올리시지 않았나요? 당신을 위해 작은 놀라움을 준비했어요. 당신은 활동적인 여성이죠? 로마를 여행할 때 유용하게 쓰실 수 있을 거예요"라며 신발에 장착해 운동량을 측정하는 센서를 선물한다. 고객의 성향에 맞춰 준비한 맞춤 선물이었기에 더욱 기쁨이 컸을 것이다.

워싱턴DC의 IT 관련 세미나에 참석하는 승객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아이튠스 기프트 카드였다. 그 승객이 아이패드를 통해 트윗을 남겼기 때문이다.

노숙자를 위한 집을 지으러 멕시코에 간다는 승객에게는 영양제와 케어키트를 줬다. 이 깜짝 카메라 이벤트는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1000만명 이상이 공유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당신의 광고는 김태호 PD를 이기는가?

모든 문화 현상은 광고의 라이벌이다. 광고에 예능은 가장 큰 적으로 등장했다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행여 예능의 잘나감을 질투해 그 가치를 깎아내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한정된 광고비를 예능 프로그램의 PPL(간접광고)에 빼앗기고 있다고 탄식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성공 요인을 분석해보고 따라잡으려 부단히 애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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