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내면 먼저 본다"… 전세계 IT 수익 모델 선도하는 한국 기업들

입력 2014.01.18 03:11

넥슨의 부분 유료화 모델 - 공짜로 게임 즐길 수 있지만
아이템 원할 때만 돈 지불하게 만들어…
전세계 게임업체들 - 유료화 공식으로 자리 잡아
레진코믹스, 새로운 시도 - 만화, 남보다 먼저 볼 권리 돈 주고 사게 해…
거대 포털에 종속 안 되고 - 글로벌 콘텐츠로 성장할 기반 될 가능성 높아

IT 기업의 수익 모델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전 세계 5억 명의 가입자를 가진 트위터는 오히려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사용자와 매출은 늘어가지만, 수익을 낼 강력한 수단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의적 수익 모델에서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분야가 있다. 인터넷·모바일 게임산업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넷 하면 '공짜'를 생각한다. 그런 공짜 세상에서 지갑을 열게 하는 데 한국의 게임업체들은 탁월한 선견지명을 보이며 시장을 선도해 왔다.

공짜 경제 시대 수익 모델 선도하는 한국 게임업체

크리스 앤더슨 와이어드지 전 편집장은 위클리비즈와 인터뷰에서 '공짜 경제' 시대의 가장 똑똑한 기업의 하나로 국내 최대 온라인 게임업체인 넥슨(Nexon)을 꼽았다. 넥슨은 세계 최초로 이른바 '부분 유료화' 모델을 개발했고, 지금은 전 세계 게임의 공식이 됐다.

이를테면 카카오톡의 '애니팡' 게임은 누구나 공짜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블록을 빨리 깨게 해주는 '폭탄'을 사거나, 게임 시간을 기본 60초보다 연장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넥슨의 창업자인 김정주 회장은 공짜 경제 시대에 돈 버는 방법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①돈을 낼 만한 가치를 제공하기, ②기분 안 나쁘게 돈 받기이다.

글로벌 게임업계 스타로 떠오른 핀란드 게임업체 '수퍼셀'의 일카 파나넨 CEO는 위클리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부분 유료화 모델을 처음 선보인) 넥슨을 존경한다"고까지 말했다. 수퍼셀은 부분 유료화 방식을 활용한 '클래시 오브 클랜(Clash of Clans)' 등 2개의 모바일 게임으로 작년에 전 세계에서 1조원을 벌어들였다.

세계 최대 비디오 게임업체 일렉트로닉아츠(EA)의 앤드루 윌슨 신임 CEO도 최근 위클리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매출 신장의 대부분이 한국 지사에서 개발을 주도한 '피파 온라인' 등 부분 유료화 방식 온라인 게임과 모바일 게임에서 나왔다"며 "부분 유료화 모델은 한국에서 처음 나와 세계로 확장된 매우 중요한 사례이며 현재 한국 게임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미래 글로벌 시장에서 일어날 일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레진코믹스의 공동 창업자 권정혁 최고기술책임자(CTO₩왼쪽에서 둘째)가 14일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모였다. 한희성 CEO는 사진 촬영을 끝내 거부했다. 그는
레진코믹스의 공동 창업자 권정혁 최고기술책임자(CTOㆍ왼쪽에서 둘째)가 14일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모였다. 한희성 CEO는 사진 촬영을 끝내 거부했다. 그는 "음지에서 고생하 는 웹툰 작가들이 많은데 혼자 부각되는 게 부담스럽다"며 "나중에 회사가 더 커지고 더 많은 작가가 돈을 벌게 되면 그때 작가들과 함께 나오고 싶다"고 했다. / 오종찬 기자
이번엔 웹툰…'시간을 판다'

세계를 선도한 공짜 경제 시대 돈 벌기 노하우가 이번엔 게임이 아니라 웹툰(모바일·인터넷 등으로 보는 만화) 쪽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작년 6월 웹툰 유료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의 레진코믹스가 그것이다. 이 회사는 서비스 첫 달 이미 손익 분기점을 넘었고, 이후 매달 20~40%씩 성장해 작년 12월 한 달간 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안드로이드폰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국내 만화 부문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이 회사가 새로 선보인 독창적인 과금(課金) 아이디어는 '만화를 남보다 먼저 볼 수 있는 권리를 돈 주고 사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이 회사는 만화 전편(全篇)을 작가에게 미리 받은 뒤 여러 편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순서대로 만화를 본다면 돈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런데 다음 번에 공개될 만화를 미리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시간을 판다'고 할 수 있다.

레진코믹스의 성공이 특히 의미를 갖는 것은, 게임 이외 콘텐츠 서비스 가운데 유료화에 성공한 사실상 국내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유통회사인 돌도래의 황의웅 대표는 "세계 최대 만화 시장인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 나라가 아직 출판 만화 위주이지만, 웹툰이 유료화에 성공한다면 전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한국 만화가가 그린 웹툰이 번역돼 게임과 K팝에 이은 제3의 한국발 글로벌 콘텐츠가 될 가능성도 그려볼 수 있다.

이런 의미가 높게 평가받아 레진코믹스는 미래창조과학부·한국인터넷진흥원·구글코리아가 작년 11월 말 공동 주최한 '글로벌 K-스타트업'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무료' 웹툰 시장을 넓혀온 네이버나 다음도 레진코믹스와 비슷한 과금 모델을 일부 도입한 상태다.

그동안 국내 웹툰 시장은 '유료화의 무덤'이었다. 네이버 같은 포털업체는 물론, KT·SK텔레콤 같은 통신업체까지도 '무료' 웹툰을 자사 서비스 사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웹툰의 유료화 성공은 웹툰의 다양성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네이버 웹툰 인구가 1700만 명에 이를 만큼 이용자가 늘어났지만, 웹툰 작가들은 거대 포털에 종속되지 않고는 자립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유명 작가들은 웹툰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웹툰이 유료화에 성공해 유통업자와 작가 모두 수익을 낼 수 있게 되면 다양한 작가가 배출되고 장르가 다양해질 수 있다. 포털의 경우, 초·중·고생 대상 웹툰이 위주가 되면서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레진코믹스의 한희성(32) 대표는 게임업체의 과금 모델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수퍼셀의 '클래시 오브 클랜' 게임은 건물을 짓고 영역을 키워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A건물을 지어야만 B건물을 지을 수 있고, B건물을 지어야 C건물을 지을 수 있는 식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게임이 워낙 재미있기 때문에 몰입하다 보면 마을을 키울 때까지의 기다림을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돈을 내고 게임 진행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콘텐츠 유료화 모델 비교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반성

'시간을 파는' 비즈니스 모델은 부분 유료화 모델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비롯됐다. 게임업체들이 부분 유료화로 큰돈을 벌어들이면서 사회적 반감도 비례해서 높아지기 시작했다. 돈이 곧 권력인 현실 사회를 닮아갔기 때문이었다.

게임업계에서는 어떻게 하면 사용자의 반감을 줄이면서 기분 좋게 과금할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깊이 연구하게 됐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해 등장한 것이 바로 '시간에 대해 과금하는' 진화된 부분 유료화 방식이며, 2009년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009년 미국 게임업체 '징가'가 이런 방식으로 게임을 히트시키면서 업계 주목을 받았다.

예를 들어 미국 라이엇게임즈에서 만든 '리그 오브 레전드'란 게임이 있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끄는 이 게임은 무료로 게임을 해도 유료 사용자와 기본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 게임에서 사용하는 가상화폐는 게임을 하면서 쌓을 수 있는 것과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그런데 전세(戰勢)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이템은 오직 게임을 하면서 쌓은 가상화폐로만 살 수 있다. 대신 돈을 주고 산 가상화폐로는 게임상의 분신을 꾸미는 등 전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아이템을 구입하거나, 사용자가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수행해야 하는 게임 과정의 번잡함이나 시간을 줄이는 데만 쓸 수 있다. 즉 시간을 충분히 들여 게임을 해나간다면, 무료로 게임을 하는 사람이 돈을 쓰는 사람에 비해 불리할 것이 없지만, 남보다 좀 더 편하게 더 빨리 게임을 진행하고 싶다면 돈을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업체 '네시삼십삼분'의 장원삼 이사는 "게임 시간을 앞당겨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것도 결국 '돈을 들이면 게임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과거 방식과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무료 이용자들도 게임이 공정하다고 느끼게 하고, 자발적으로 돈을 지불하게 하는 '기막힌 과금 방법'을 만들어냈다는 것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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