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위기 이후 新경제학 키워드 '융합'과 '현장'

입력 2014.01.11 03:01

전통 이론 탈피한 新경제학… 교육학ㆍ진화론 더해 현실 파고든다
글로벌 금융위기 예측 못한 경제학… 新경제학 기수들의 통렬한 반성
체티 교수의 '敎育 경제학'
유치원 시험성적 1% 높으면 성인됐을때 132달러 더 벌어
저소득층을 증산층 만들려면 보조금 들여 우수교사 키워야
로 교수의 '進化 경제학'
주가 폭락 등 돌발상황 겪을때 투자자는 타인 판단에 휘둘려
위험투자 규제 등 적응 못하면 대형은행들, 스스로 滅種될 것

글로벌 금융 위기로 휘청거린 것은 세계경제뿐만이 아니다. 경제학도 충격을 받았다.

경제학자들이 신봉해 왔던 '인간은 합리적이며, 시장은 효율적이고 자기 교정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뿌리부터 흔들렸다. 1980~1990년대 경제학이 지나치게 이론 위주로 연구하다 보니 실제 삶에 영향을 주는 분석이 부족했다는 반성도 나왔다는 게 최승주 런던대 교수의 전언이다.

이런 반성과 함께 경제학에는 새로운 조류가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새로운 경제학 흐름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융합'. 심리학·뇌과학·생물학 등 다른 학문과 교류해 이론적 바탕을 재구성하려는 움직임을 가리킨다. 심리학과 접목한 행동경제학이 대표 주자로 꼽힌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항상 이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때때로 감정에 휩쓸려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기 때문에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인간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현장'이다. 거시 분석보다는 개인의 삶에 직접 연관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려는 움직임을 뜻한다. 이지홍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 경제학이 주로 국가나 지역 단위의 거시 데이터를 활용했다면, 요즘은 기업 활동·실적 같은 미시 데이터를 활용하며, 개인 주체들의 선택을 더 눈여겨본다"고 말했다.

교육·정치·보건·사회관계망처럼 다른 분야 학문 주제를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새로이 분석해 색다른 결과를 내놓는 연구도 늘고 있다. 빈곤 국가에서 예방접종률을 높이는 방법, 초등교육 확대 방안, 결혼한 여성의 사회 참여 확대 등이 경제학 연구 주제로 편입됐다.

한국도 새로운 경제학 물결에서 예외는 아니다. 서강대는 실험경제학을 위한 실험실과 교수진을 갖추었으며 이정민 교수 등이 활동하고 있다. 안도경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행동·실험경제학의 방법론으로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다. 최정규 경북대 교수와 서강대 황성하 교수는 진화경제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수형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는 한국의 결혼 중매 시장과 성형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김병연 교수와 이석배 교수, 서강대 이정민 교수는 실험경제학 방법론을 활용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조사한 뒤 북한 체제의 붕괴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위클리비즈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융합과 현장을 강조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경제학의 흐름을 대변하는 신진 경제학자 두 명과 만났다. 지난해 3월 미국 경제학회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남긴 40세 미만 젊은 경제학자에게 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라즈 체티(Chetty)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교육학과 경제학을, 2012년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힌 앤드루 로(Lo) MIT 경영대학원 교수는 진화론과 경제학을 융합했다.

라즈 체티
“유치원 교육이 평생 소득을 결정한다”
유치원 때 시험 점수 1% 차이가 27세 성인이 됐을 때의 소득 132달러를 좌우한다? 믿기 어렵겠지만, 체티 교수 연구로 규명된 결과다. 그가 1980년대에 태어난 1만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유치원 시험 점수가 40점대에 그칠 경우, 미래의 연간 소득은 1만5000달러 수준이었지만, 100점을 받았다면 연간 2만5000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치원 시험 점수가 100점이면 대학 입학률이 80% 정도였지만, 40점 미만이면 입학률이 40%를 밑돌았다.
유치원 교사의 경험도 아이들 미래 소득에 영향을 미쳤다. 유치원 교사가 10년 이상 경험을 가진 경우, 성인이 된 학생들의 연간 소득은 다른 학생들보다 평균 1000달러 이상 많았다.
체티 교수는 “어렸을 때 얼마나 질 높은 교육을 받는지가 평생 소득을 좌우한다”며 “누구나 가는 유치원 교육이 일부만 가는 대학 교육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학과 경제학을 융합해 보편적 교육 정책을 제안한 그는 28세에 하버드대 종신 교수가 됐고, 2008년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세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젊은 경제학자’ 8인 중 한 명으로 선정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초 이 논문을 직접 인용하면서 유치원 무상교육을 약속한 바 있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도 “(의무 교육 단계에서) 질 높은 교육을 하는 교사에게는 보너스를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체티 교수는 경험 많고 훌륭한 교사를 ‘고부가가치 교사(high value added teacher)’라고 불렀다. 예컨대, 유치원 6세반(班)에서 80점을 받았던 아이가 7세반에서 새 교사에게 1년을 교육받은 다음 90점을 받았다면 이 교사의 부가가치는 10점이 된다. 체티 교수는 뛰어난 교사는 32만5000달러의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추정했다. 그 교사 밑에서 배운 학생들의 미래 소득 증가 효과를 현재 가치로 환산해 합한 것이다.
“지금의 저소득층이 미래에 중산층이 될 수 있을까요? 이를 실현하려면 경험 많고 우수한 교사들이 저소득층을 가르쳐야 합니다. 현재 다른 분야에 불필요한 정부 보조금이 너무 많은데, 그 돈을 고부가가치 교사를 육성하는 데 써야 합니다.”
그는 이어 “경제학자는 경제학이라는 어려운 과학적 공식을 사회가 요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해석해서 세상에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앤드루 로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호모 스키초프레닉’이다.”
“지금 인류는 ‘호모 스키초프레닉(Homo Schizophrenic·정신분열증 환자)’입니다. 생각을 할 때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한다는 뜻입니다. 2008년 같은 위기에서는 전통 경제학에 나오는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인간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의미)’는 없습니다. 전통 경제학에는 중요한 게 빠져 있어요. 인간의 행동과 심리가 그것입니다.”
로 교수는 2004년 경제학과 진화론을 융합한 ‘적응적 시장 가설론(adaptive market hypothesis)’을 발표하면서 ‘진화경제학’이라는 분야를 발전시켰다. 그는 심리를 기반으로 경제를 분석하는 ‘행동경제학’에서 더 나아가 과학적인 부분을 강조해 경제학에 생물학, 뇌 과학을 연계한다. 그는 연구를 거듭할수록 전통 경제학의 가설이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연구 초기에 ‘랜덤워크 가설(주식시장의 움직임은 과거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움직인다는 이론)’과 같은 전통적인 경제학을 실험했어요. 그런데 실제 데이터는 가설과 맞지 않았습니다. 뭔가 연구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 10년쯤 지나고 나니 아무래도 가설이 잘못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때부터 심리학을 분석하면서 행동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로 교수는 인간 본성이 복잡하고 사람들은 때때로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이 폭락할 때는 사람들이 다들 동물처럼 떼를 지어 몰려다닙니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 판단에 따라 휘둘린다는 거죠. 이런 게 행동경제학이 다루는 지점입니다.”
그는 그러나 행동경제학의 가설도 불완전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에게 주먹을 날리면 왜 그러는지 파악하기 전에 일단 몸을 움직여서 피할 겁니다. 본능에 의존하는 거죠. 반면 인간은 합리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적응적 시장 가설은 인간의 본능과 합리성을 함께 연구하려는 것입니다.”
로 교수는 “진화론의 ‘단속(斷續) 평형 이론’에 따르면 매우 큰 규모의 충격은 한 번에 수많은 종(種)을 멸종시키고,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며 “금융 위기가 이 같은 충격”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금융 위기로 리먼브러더스·베어스턴스·메릴린치 같은 종이 멸종하고, 헤지펀드 같은 새로운 종이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헤지펀드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볼커룰(금융기관의 위험 투자를 제한하고 대형화를 억제하는 규제)이 시행되면 많은 은행 트레이더가 그만두고 헤지펀드를 창업할 겁니다.”
그는 “대형 은행이나 연금이 몸집이 무거운 브라키오사우루스라면, 헤지펀드는 벨로키랍토르(사냥꾼이란 별명을 가진 민첩한 공룡)처럼 빠르고 공격적”이라며 “앞으로 볼커룰 같은 규제나 다양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대형 은행들은 몰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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