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출근 빼고 뭐든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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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4.01.04 03:05 | 수정 2014.01.10 06:17

      890만 사로잡은 앱 개발 회사
      우리 회사 딱 한 수 - 음식배달 앱 '배달의 민족' 만든 '우아한 형제들'
      '아~'하면서 '풋~'하게… 판촉품이 '이런 십육기가'… 직원들이 원한다고 금발미녀 직원 채용
      1분만 지각해도 경위서… "우린 평범한 사람들… 성실하지 않으면 낙오"

      '배달의 민족'이란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고객이 먹고 싶은 음식을 쉽게 배달받을 수 있도록 식당과 소비자를 이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싶어도 동네 음식점 정보가 인터넷에도 흔치 않다는 점에 착안, 길바닥에 뿌려진 전단을 끌어모아 입력한 뒤 편하게 전화 걸어 주문할 수 있게 한 이 기발한 프로그램은 3년 만에 890만명이 내려받은 '킬러 앱'이 됐다.

      벤처기업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가운데) 대표가 부서장이 추천한 사내‘우수 사원’들, 재치가 돋보이는 판촉용품 USB(오른쪽 위)와 포스터(오른쪽 아래)
      벤처기업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가운데) 대표가 부서장이 추천한 사내‘우수 사원’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벽면에 새긴‘우아한 모의고사’는“배달의 민족 브랜드 콘셉트는?”등 회사 핵심 가치 를 묻는 질문으로 채워져 있다. 재치가 돋보이는 판촉용품 USB(오른쪽 위)와 포스터(오른쪽 아래)도 회사 분위기를 말해준다. / 이태경 기자

      이 프로그램을 만든 벤처기업 '우아한 형제들(woowahan.com)' 회사 분위기는 더 기발하다.

      사무실은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바로 뒤 석촌호수가 눈앞에 펼쳐지는 건물의 4·5·8·10층. 출입문 앞에는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배달산업을 발전시키자'라는 포스터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복도 바닥은 빨간 벽돌을 깔아 울퉁불퉁하다. 사무실 안에는 낙서처럼 '씻고 자자', '효도하자', '살찌는 것은 죄가 아니다', '엄마가 하지 말라는 짓은 하지 말자' 등 엉뚱한 문구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이 회사가 올 초 벌였던 고객 이벤트의 경품은 '소녀시대 멤버 전원이 각각 인쇄된 비타500 9병'이었다. 문제는 '비타500' 병에 소녀시대 구성원 모습이 인쇄되어 있긴 하지만, 무작위로 판매처에 공급되기 때문에 9명의 모습이 인쇄된 병을 다 구하려면 일일이 돌아다니며 물어봐서 맞춰야 한다는 점. 이 회사 직원들은 이 행사를 위해 약국이나 편의점 등을 찾아다니며 수소문해 9병 풀세트를 만들었다. 이 행사는 인터넷에서 화제에 올랐고, 소녀시대 팬클럽 홈페이지에도 언급됐다.

      잡지에 낸 제품 광고는 하얀 종이 위에 '주식 오르면 뭐하겠노 치킨 사묵겠지', '복날은 간다', '먹을 땐 개발자도 안 건드린다' 같은 문구만 시커멓게 써넣어 잡지 광고 담당자들로부터 "이거 다 보내신 거 맞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김봉진(38) 대표는 "제품 철학이 '편하고 딱딱하지 않은 표현과 디자인'이기 때문에 키치(kitsch)와 패러디가 회사에 흐르는 조직 문화의 근간(根幹)이 됐다"고 말했다. 회사 이름은 손담비·빅뱅·애프터스쿨 등의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 '용감한 형제'를 패러디한 것이다.

      직원에게 버킷리스트 받아 실행

      원래 사무실은 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에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한적한 곳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보채자 이전을 결심했다. 김 대표는 "'직원들이 창 밖의 어떤 풍경을 보면서 일하는지도 중요하다'는 현대카드 정태영 대표 얘기에 크게 공감한 적도 있어 당장 경치가 좋은 곳을 물색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즐거워야 좋은 제품이 나온다"면서 "직원들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회사란 뭡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이 나오면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95명 직원들로부터 '버킷 리스트(bucket list·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를 받는다. 부제는 '죽기 전이 아닌 2014년 12월 31일까지 이런 회사 만들어요'.

      사무실 위치 이동도 여기서 시작됐고, '라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회사', '사원증을 목에 당당하게 걸고 다닐 수 있는 회사(사원증을 예쁘게 디자인해달라는 의미)', '금발 미녀와 함께 근무하고 싶다' 같은 바람도 현실이 되고 있다.

      간식 방에 컵라면을 산처럼 쌓아 놓고, 금발 미녀는 금발로 염색한 여직원을 받아들여 '절반의 성취'로 충족시켰다. 김 대표는 "즐겁게 다니는 회사, 아침에 일어나서 가고 싶은 회사라고 직원들이 얘기할 때 창업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기발한 고객 배려

      이런 식이라면 '회사가 장난인가'라는 누군가의 찡그린 표정이 떠오를 법하다. 하지만 그들에겐 확고한 마케팅 철학이 있다. "쓸데없는 겉멋이나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우리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 사용자(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데서 출발하자는 원칙이다.

      '배달의 민족' 앱 초기 화면은 오토바이를 탄 배달원 주변에 돼지와 닭이 팔을 치켜들고 있는 만화다. 글씨체는 투박한 붓글씨체. "음식을 주문하면 결제는 상사가 하지만, 주문은 막내가 한다. 직접 앱을 실행하는 막내 세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꾸몄다"는 설명이다.

      이 회사의 판촉용 머그컵에는 '스타벅스 맛 나는 맥심커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USB에는 '이런 십육기가'(16GB), 플라스틱 신용카드 케이스에는 '덮어놓고 긁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헝겊 쇼핑백은 '나는 너의 든든한 빽', 볼펜에는 '나도 언젠가는 쓰일 때가 있겠지', 우산에는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란 글자가 들어 있다. 이 판촉용 물품들이 재밌다고 소문이 나자 지금은 인터넷 쇼핑몰 등을 통해 판매하기도 한다. 피플팀(홍보팀을 이 회사에선 이렇게 부른다) 안연주 팀장은 "큰 감동이 아닌 작은 감탄사가 목적"이라면서 "'아~' 하면서 '풋~' 하는 반응을 기대하고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계단에서 회의한다

      '다락방 회의실'로 불리는 사내 회의 공간은 야외 공연장 객석처럼 계단형이다. 계산에 걸터앉아야 하는 구조이다 보니 옹기종기 회의를 할 때 멀리서 보면 누가 상사이고 직원인지 분간이 어렵다. 그게 노림수다. 김 대표는 "창의력에 관련된 회의를 할 때는 제삼자가 회의석상에 처음 들어왔을 때 누가 보스인지 모르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급자가 중앙에 앉고 양옆으로 죽 둘러앉는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는 있던 창의력도 짓눌린다는 생각에서다.

      간식도 나눠주고 청소 상태도 점검하는 '당번'을 매월 직원 중에서 뽑는데, 방법은 제비뽑기다. 이른바 '안보총(안전보건총책임자)'. 여기에는 열외가 없다. 신입 사원이나 임원이나 걸리면 동등하게 마치 환경미화원처럼 임무를 마쳐야 한다. 이런 사소한 '직책 파괴형' 업무 속에서 서열 질서가 완화되면서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다는 취지다.

      김 대표는 "혼자만 일 잘하는 싸가지 없는 독불장군형은 뽑지 않는 게 채용 원칙"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무한정 방종으로 치닫게는 하지 않는다. 이 회사의 철의 규율은 정시 출근이다. 3대 핵심 가치는 '근면 성실, 새 시대 새 일꾼, 근검절약'. 출입문 앞에는 '9시 1분은 9시가 아니다'라는 표어가 달렸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하는지를 불시에 점검하는데, 걸리면 매일 출근 보고를 해야 한다. 덕분에 아침마다 회사 건물 앞에서 헐레벌떡 뛰는 직원들 풍경이 드물지 않게 보인다.

      김 대표는 "회사가 친목 동아리가 아닌 만큼 지켜야 할 규율은 서로 존중하면서 지켜주길 기대한다"면서 "우리 회사는 스펙이 화려한 엘리트들이 모였다기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드는 비범한 회사라 그나마 성실하지 않으면 낙오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입사 면접 때 "지각을 자주 할 것 같으면 아예 입사할 생각을 버리는 게 낫다"고 권유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