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값 빼고 뭐든 지원된다 중국 창업의 요람 '車庫' 카페

입력 2014.01.04 03:05

현장 리포트 중국판 실리콘밸리 '中關村'의 젖줄
車庫서 창업한 잡스처럼
2011년 4월 문 연 이래 카페 거쳐간 사람 중 벤처 세운 사례 110건
예비 창업자·투자자의 오작교
매일 아이디어발표·토론회 한쪽 벽면에는 求人 등 공고문
은행과 손잡고 창업자用 카드발급도 도와줘

쑤띠 처쿠 카페 사장
쑤띠 처쿠 카페 사장
중국 베이징 서부 하이뎬(海澱)구에 있는 중관춘(中關村) 지역은 흔히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카메라와 전자제품 상가가 밀집한 모습이 겉보기엔 서울 용산 전자상가를 연상케 하지만, 이곳엔 중국 이공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칭화(淸華)대를 비롯해 베이징대, 런민(人民)대 등 명문대가 밀집해 있고, 중국의 구글 격인 검색 포털 사이트 바이두(百度) 같은 세계 유수 기업도 1만여개나 된다. 중국 PC 시장에서 1위를 놓치지 않는 레노버(Lenovo)도 중관춘의 허름한 건물에서 벤처회사 형태로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이 지역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것은 세계 유수 IT 기업이 아니라 '처쿠(車庫)'라는 이름의 허름한 카페다. 여느 카페처럼 커피를 팔지만,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의 90% 이상은 예비 창업자다.

이 카페는 중관춘 번화가에서 도보로 15분가량 떨어진 후미진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회색 건물 2층에 있는 카페로 올라가기 위해 아래층에 있는 숙박업소 수납계 직원에게 가는 길을 물어보자, 그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1층 뒤편 계단을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보니 하루에도 몇십 번씩 비슷한 질문을 듣는 모양이었다.

카페에 들어가니 800㎡(약 240평)의 널찍한 공간에 빈자리 하나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었다. 운영자에 따르면, 늘 100명 정도가 자리를 지킨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자료를 찾거나, 삼삼오오 모여서 시끌벅적 토론을 하고 있었다. 출입구 옆엔 카페 고정 출석자 자리 배치표와 함께 '구인: 엔지니어 모집' 'XX 창업준비회, 투자자 구함' 같은 공고문이 벽 한 면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처쿠 카페는 2011년 4월 중국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 회사 란쉰(藍迅)의 투자 총괄 책임자를 지낸 쑤띠라는 사람이 세웠다.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하루에도 2~3팀씩 미팅을 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와 투자자가 매번 일대일로 만날 필요 없이 모두가 한곳에 모여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없을까.' 쑤띠는 특히 벤처회사를 차리려는 젊은이들을 위해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자는 꿈을 품게 됐다.

투자자 모집은 차치하고라도 중국에서 젊은이가 창업한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원 5명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무실을 구하려면 임대료가 한 달에 약 1만위안(약 170만원)이 들고, 인터넷과 전기 이용료까지 합치면 한 달에 2만위안(340만원) 이상 유지비가 필요하다. 쑤띠씨는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그 공간을 창업자와 투자자가 만나는 장(場)으로 활용한다면 많은 젊은이가 더 쉽게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차고(車庫)라는 뜻을 가진 '처쿠'라는 이름은 스티브 잡스가 차고에서 회사를 차렸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쑤띠씨는 장소를 물색하면서 세 가지를 염두에 뒀다고 한다. 첫째 IT가 집중된 곳, 둘째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이용하도록 넓은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곳, 셋째 그냥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확실한 창업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주고객이 될 수 있도록 번화가를 의도적으로 피할 것. 이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한 것이 바로 지금의 자리다.

2011년 4월 7일 개점한 뒤부터 처쿠 카페는 단 하루도 쉰 적 없이 1년 365일 24시간, 직원 3~4교대로 운영하고 있다. 미래 사업가들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커피 가격은 평균 30위안(약 5200원)으로, 중국 스타벅스 카페라테 한 잔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예비 창업자들은 커피 한 잔 가격으로 온종일 이곳을 이용하며 창업의 꿈을 키울 수 있다.

카페 홍보와 운영 전반을 담당하는 쉬톈하이(徐田海·24)씨는 쑤띠 창업자가 고용한 운영진 4명 가운데 한 명이다. 운영진은 창업 희망자에게 장소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크게 두 가지 방면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 그중 하나가 투자자와 창업 희망자를 연결해 주는 것이다. 쉬톈하이씨는 이렇게 말했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2011년 말부터 투자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운영진은 그들이 어떤 분야, 혹은 어떤 사업에 관심이 있는지 자세히 듣고 가장 적합한 창업 지원자를 소개해 주지요. 카페에 새로운 사람이 올 때마다 자기소개를 듣고, 되도록 단골 하나하나의 신상을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저기 붙어 있는 단골 이용자 좌석 배치도는 처음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덩후이민(鄧惠民)씨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이날 오후 소액 투자자들과 처음 만났다. 얼마 전 창업한 그는 투자자들에게 홈페이지를 보여주며 빠른 말투로 사업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사업은 기업 축구 동아리들에 축구 대회를 하기에 적당한 축구장을 물색해 주거나, 지역 조기 축구회 대결을 위해 알맞은 상대를 알선해 주는 축구 이벤트 회사 '90분(90分鐘)'이다. 축구 경기 시간이 90분이라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텔레비전에서 처쿠 카페를 알게 된 후 몇 달간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했어요. 마침 오늘 투자자와 축구 전문가(전직 심판)를 만나게 돼 앞으로 사업할 때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 같습니다."

영하 10도에 가까운 날씨에도 800㎡에 이르는 처쿠 카페 내부는 이용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은‘미래의 스티브 잡스’를 희망하며 창업 꿈을 키우고 있다.
영하 10도에 가까운 날씨에도 800㎡에 이르는 처쿠 카페 내부는 이용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곳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은‘미래의 스티브 잡스’를 희망하며 창업 꿈을 키우고 있다. / 베이징=오윤희 기자
처쿠 카페가 창업 희망자를 돕는 둘째 방법은 카페 이용자들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발표하고 서로 토론할 기회를 하루에 한 시간씩 마련해 주는 것이다. 매일 오후 1시 30분부터 1시간씩이다. 새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자기소개도 하고,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나서서 자신이 구상하는 사업 아이디어 발표도 하는 시간이다. 발표를 듣는 다른 이용자들은 의견을 내놓기도 하고, 자신과 뜻이 비슷하다 싶으면 나중에 사업 논의를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처쿠 카페를 이용한 사람 중에 창업한 사례는 집계된 것만 110여건이며, 주로 20~30대 초반이라고 카페 운영진이 전했다. 이 가운데 연 매출이 3억위안(약 500억원대) 이상 규모로 성장한 회사가 3개다.

올해 23세인 장궈(張果)씨도 이곳을 꾸준히 드나들며 창업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 대학을 중퇴하고 베이징 근교 가장 값싼 하숙집에서 머물며, 매일 왕복 2시간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처쿠 카페에 출석했다. 올해 초 투자자를 만난 그는 인터넷에서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회원제 인터넷 영화 관람 웹사이트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현재 운영 6개월째인데 하루 조회 수가 300만건가량 된다고 말했다.

최근 처쿠 운영진은 인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마법 편집 사진기(魔漫相機)' 개발 소프트웨어 회사 창업자로부터 "공짜로 처쿠 카페 모바일 웹페이지를 만들어 주겠다"는 제안을 듣고 깜짝 놀랐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나 역시 창업하기 전에 한 번씩 이곳을 드나들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처쿠 카페의 수많은 창업 도전과 성공 사례는 지난달 중국에서 '처쿠 카페(車庫��)'라는 책으로도 출판됐다. 언론에 소개되고, 소문을 타면서 처쿠 카페와 비슷한 아류 카페가 중국 전역에 200군데가량 생겼다.

처쿠 카페는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베이징 최대 은행인 베이징은행과 업무 협약을 맺고, 이달 중순 처쿠 카페가 추천하는 예비 창업자에 한해 창업자 전용 신용카드를 만들게 된 것이 그중 하나다. 신용카드는 월급이 많을수록 카드 대출 한도가 높은데, 초기 창업자는 회사가 돈을 벌더라도 본인 월급은 적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창업자 전용 신용카드로는 최대 50만위안(약 8500만원)까지 대출이 가능해 벤처 창업자도 고액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또 미국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이나 향후 중국에서 사업하고자 하는 교포를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도 처쿠 카페를 열어 시험 운영 중이다. 올해 상반기에 정식 오픈할 계획이다. 중국과 달리 미국에선 1박 19달러(약 2만원)에 장기 투숙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쑤띠 창업자는 중국 잡지 샤오캉(小康), 차이즈(財志)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처쿠 같은 카페로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저는 수많은 풀뿌리 기업이야말로 중국 경제를 이끄는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풀뿌리 기업을 위한 인큐베이터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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