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기사! 車 돌려"… 내비앱 출시 2년여 만에 공룡 T맵과 맞짱 뜨다

입력 2013.11.09 03:00

가입자 550만명… 내비게이션 김기사 만든 '록앤올'
소비자에게만 신경 쓴다
기발한 것 만들어 놓으면 주문한 대기업 '그분'의 입맛에 맞게 변해 환멸
매일 괴로워 결국 독립
핵심만 남겨라
프로그램과 지도 데이터용량 최대한 작게 만들어 검색·재탐색 스피드 높여
돈은 해외서 벌어라
한국은 테스트 마켓…
日 최대 온라인 마케팅社인 사이버에이전트의 자회사 등 3곳으로부터 30억원 유치

록앤올의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김기사' 개발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앞줄 왼쪽이 김원태, 오른쪽이 박종환 공동대표 / 최원석 기자

지난 4일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에서 한 블록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10층 건물. 대형 빌딩에 가려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이 건물 7층의 50여평쯤 되는 사무실에서 10여명이 컴퓨터 앞에 앉아 분주히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다.

출시 2년 반 만에 가입자 550만명을 넘은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김기사'를 개발한 록앤올(LOC&ALL) 본사다.

박종환 공동대표는 기자를 직원 휴게실로 안내했다. 인터뷰할 수 있는 공간이 회의실 두 곳뿐인데, 전부 회의 중이었기 때문이다. 사장·임원실은 없다. 공동대표 2명, 기술 총괄 부사장, 마케팅 이사 등 임원 4명의 책상은 뻥 뚫린 사무실 안쪽 구석에 다닥다닥 몰려 있다. 박 대표는 "사장까지 합쳐 전 직원이 31명, 김기사에 관여하는 팀은 모두 15명"이라고 했다. 국내 최대 가입자 수(1700만명)에 직원이 150명인 T맵(SK텔레콤이 자체 개발한 내비게이션)의 최대 라이벌치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단출했다.

박 대표에게 어떻게 T맵의 10분의 1의 인력으로 맞설 수 있었는지 물었더니 "작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야기는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 윗사람 대신 소비자에게만 신경 썼다

록앤올 창업자는 내비게이션이란 한 우물을 15년간 판 사람들이다. 박종환·김원태 공동대표와 신명진 부사장은 1990년대 말 한국통신의 사내 벤처 한국통신정보기술(KTIT)에서 내비게이션을 개발하다 2000년 독립해 '포인트아이'라는 국내 최초의 위치 기반 서비스 업체를 만들어 내비게이션 외주 제작을 시작했다. 당시 KT의 길 안내 서비스를 도맡아 개발했다. 2004년 KTF가 내놓은 피처폰의 내장형 내비도 그들 작품이었다.

그러나 외주 개발 10년 끝에 얻은 것은 대기업에 대한 환멸뿐이었다. 사용자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데, 윗분이 '이거 좋더라' 한마디 하면 공들여 만든 서비스를 전부 뒤엎고 새로 만들어야 했다. 담당자도 너무 자주 바뀌었다.

"뭘 좀 해 놓으면 바뀌고 또 바뀌고 하니, 나중엔 '그분' 입맛에 맞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 저희 모습을 보게 되더군요. 개발하는 저희가 우선 재미있어야 소비자도 좋아할 텐데, 매일매일이 괴로웠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들은 2010년 록앤올을 창업해 자체 브랜드인 김기사 내비게이션 개발을 시작했다. 신명진 기술 담당 부사장은 "대기업 상대로는 주인 의식을 갖고 일하기 어려웠다"면서 "김기사를 개발할 때는 소비자가 즐거워할 만한 서비스 개발에만 집중했다"고 말했다.

록앤올에 따르면, 내비게이션은 돈과 인력만 많다고 잘 만들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다. 오래도록 노하우를 쌓은 '뛰어난 소수'가 힘을 발휘한다. 록앤올은 10년 이상 합을 맞춰온 직원이 대부분이다. 신 부사장은 "대기업 하도급을 오래 하면서 아무리 많은 자본과 뛰어난 인력이 모여 있다 해도 무조건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했다. 록앤올은 직원에게 주인 의식을 가지라고 말로만 외치는 게 아니라 실제 주인이 되게끔 만들었다. 2010년 회사 설립 멤버 15명 모두가 각기 1% 내외씩 회사 지분을 갖고 있다. 이직한 직원은 한 명도 없다.

작고 단합된 조직의 강점은 스피드다. 방향만 정해지면 잡담 중에 튀어나온 제품 아이디어도 단 며칠 만에 상품화한다. 임원·사장 결재를 받고, 이리저리 책임을 떠미느라 시간 끌 필요가 없다.

직원들이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면서 나온 아이디어 가운데, 김기사만의 독특한 기능으로 제품화된 것이 많다. 블랙박스와 헤드업 디스플레이(내비 정보를 운전자 앞 유리창에 반사해 주는 장치) 기능을 먼저 탑재한 것이 대표적이다.

2. 핵심만 남기고 전부 덜어냈다

최근 들어 T맵이나 김기사의 길 찾기 기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만큼 좋아지고 있다. 실제로 T맵이나 김기사로 검색해 보면, 실시간 교통 정보를 감안해 찾아주는 경로가 거의 비슷할 만큼 최적화 쪽으로 수렴해 가고 있다.

그러나 김기사가 비교 우위를 갖는 분야 중 하나가 경로 검색과 재탐색의 '스피드'다. 사용자가 입력한 목표지 정보가 유무선 통신망을 통해 서버로 전달된 뒤 계산 과정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다시 결과를 알려주는 것인데, 록앤올은 축적된 노하우를 통해 소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한다.

비결 중 하나는 프로그램과 지도 데이터의 용량을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이다. 초기 개발 때부터 프로그램을 최대한 가볍고 단순하게 만들어 속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15메가를 넘어가는 T맵이나 올레내비와 달리, 김기사는 앱 용량이 12메가 정도이다. 지도 크기는 김기사가 140메가 정도이지만, 다른 내비는 270메가 이상이다. 이 때문에 김기사의 지도가 너무 단순하다고 불평하는 이도 있다.

3. 사용자 정보를 활용한다

차량 부착형 내비게이션과 달리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의 장점은 수많은 사용자 정보 자체를 빅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사용자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어떤 장소를 몇 번이나 방문했는지와 같은 데이터를 수집, 가공해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고 이를 다시 사용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

김기사가 지난 5월 출시한 '버전 2.0'은 김기사 프로그램 사용자들의 실시간 교통 정보까지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텄다. 이전엔 다른 내비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택시 기사들의 운행 정보를 활용하는 정도였다.

김기사는 550만 사용자를 엮어 새로운 SNS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우선 다음 달부터 김기사 사용자가 자주 찾아가는 식당 정보를 가공해 맛집 안내 서비스를 개시한다.

4. 국내는 테스트마켓, 돈은 해외에서 벌어라

그러나 김기사의 수익 기반은 취약하다. 길 안내 사이에 음성 광고를 넣고는 있지만, 손익분기점을 맞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돈을 벌겠다는 걸까? 박종환 대표는 "한국은 테스트마켓일 뿐이고, 진짜 돈은 해외에서 벌어들이겠다"고 말한다.

네이버는 일본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장악한 네이버의 '라인'과 협력해 일본 시장 진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록앤올은 지난달 네이버와 신규 사업에서 협력한다는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지난달에는 일본 최대 온라인 마케팅 기업인 사이버에이전트의 자회사 등 3개 투자사로부터 30억원을 투자 유치했다. 박 대표는 "스마트폰 내비의 기술력은 한국이 가장 뛰어나고 기술의 진입 장벽도 높기 때문에 김기사의 글로벌 진출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미국·유럽을 기반으로 김기사와 비슷한 서비스를 했던 웨이즈(WAZE)는 지난 6월 구글에 13억달러에 매각됐다.

장세진 KAIST 경영대 교수는 "'김기사'의 경우 수익 모델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데, 해외 진출은 적절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축적된 고객 길 안내 데이터를 통해 '고객에게 의미 있는 제안을 계속 해줘야 김기사의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중국에 진출하겠다는 김기사의 계획과 관련, 우선 일본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만약 중국에서 사업을 하겠다면 중국에서 스마트폰을 더 많이 팔기 위해 '킬러앱'을 고민하는 국내 휴대폰 업체와 협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장 교수는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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