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드 알-라흐만 1세
안달루시아의 중심도시 코르도바 756년에 정복
스페인 땅에 새롭게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가 시작됐음을 선포
열린 정권
유대인에게 정권 문호 개방… 종교 벽 허문 '공존의 문명'
안달루시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꽃피어
떨림은 코르도바의 메스키타(Mezquita) 사원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이곳은 한때 이슬람 신전인 모스크였다. 오늘날에도 모스크의 형태를 거의 유지하고 있다. 유럽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이슬람의 성전(聖殿)! 그 낯섦은 강렬하다. 그러나 더욱 낯선 것은 이 모스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다. 지금으로부터 1200년도 더 전에, 바로 이 공간을 중심으로 인류 역사상 드물게 '관용'이 싹텄던 것이다.
관용의 주체는 이슬람 세력이었다. 그들은 711년 정복자로 스페인에 왔다. 절대적인 소수였지만, 기존 지배 세력 서고트족의 분열로 손쉽게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했다.
하지만 승리는 언제나 교만과 분열을 부르는 법. 이슬람 세력은 풍요로운 전리품 앞에서 서로 더 많이 갖기 위해 다퉜다. 질서는 무너지고, 번영은 사라졌다. 750년 이슬람 제국의 주인이 우마이야 왕조에서 아바스 왕조로 바뀌면서 제국의 가장 서쪽 끝에 위치한 안달루시아(이슬람 지배하의 스페인)의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755년 여름, 한 사나이가 안달루시아 남쪽에 위치한 해변 도시 알무네카르에 상륙했다. 그가 바로 훗날의 '아브드 알-라흐만 1세'(731~788)였다. 동행은 북아프리카 출신 기병 1000명이 전부였다. 그는 몰락한 우마이야 왕조의 일원으로, 아바스 왕조의 무자비한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극소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바스 왕조의 척살대를 피해 5년 동안 북아프리카를 떠돌았다. 오로지 스스로의 의지와 용기, 인내에 기대어 살아남았다. 고난은 그를 강철같이 담금질했고, 고난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의식을 자각해 나갔다.
그는 스페인과 지척인 마그레브(북서 아프리카 일대)에 숨어 살면서 안달루시아의 혼돈스러운 정치 상황을 주시했다. 바로 그곳에 자신의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 그는 기병대를 1000명 이끌고 해협을 건넜다.
기존 지배자들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들과 옛 왕조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한 사람들, 아브드 알-라흐만 1세의 리더십에 매료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그의 세력은 순식간에 불어났다. 군사 수는 기존 지배자들이 월등했지만, 용기와 전술은 아브드 알-라흐만이 뛰어났다. 756년 그는 과감한 기습으로 안달루시아의 중심 도시 코르도바를 정복하고, 스페인 땅에서 새롭게 우마이야 왕조가 시작됐음을 선포했다.
그러나 왕조 개창은 시작에 불과했다. 안달루시아는 여전히 분열, 반란, 폭동의 땅이었고, 음모와 배신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지방의 토호들은 코르도바 정권에 도전했고, 아바스 왕조는 새로운 총독을 파견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중하면서도 현명한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아브드 알-라흐만 1세는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는 동시에 새로운 통치 체제 수립에 주력했다. 바로 '열린 정권'이었다. 종족과 부족의 경계를 초월해 모든 이슬람교도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제공하는 체제를 뜻했다. 그 스스로 수없이 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부족, 계급, 지위보다 능력과 충성심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시스템이었다. 그는 이슬람 교도를 뛰어넘어 경제, 행정, 학문에 유능한 유대인에게까지 정권의 문호를 개방했다.
나아가 그의 철학은 관용과 상호 의존을 뜻하는 '콘비벤시아(Convivencia)'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가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공존의 문명'이 안달루시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꽃피게 된다.
콘비벤시아가 코르도바 정권의 국시(國是)가 된 데는 그들이 수적으로 소수였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도 관용보다는 불관용을, 공존보다는 복종을 강요하다 멸망한 수많은 공동체의 예를 기억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수준의 폭넓은 관용은 아니었다. 차별은 존재했고, 상대를 인정하면서도 섞이기보다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때가 8세기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안달루시아는 당시 유럽에서 유일하게 관용이 존재하는 땅이었고, 공존이 가능한 곳이었다.
관용은 번영을 가져왔다. 아브드 알-라흐만 1세는 그 상징으로 새로운 모스크를 세웠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메스키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백성에게 호소했다.
"사람에 대한 증오를 부추겨 부당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하라."
그때로부터 1200년도 더 지났건만, 인류는 여전히 불관용과 싸우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갖가지 이유를 들어 사람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이들과 싸우고 있다. 어쩌면 끝없는 싸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코르도바에 관용과 공존의 씨를 뿌렸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