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人거인의 공격에 반격하는 인간… 단순한 플롯이 '진격의 거인' 성공 비결"

입력 2013.11.02 03:08

'진격의 거인' 원작자 이사야마 하지메

한·일 관계가 냉랭해질 대로 냉랭해진 2013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일본 상품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만화 '진격(進擊)의 거인'이다. 개그 코너 제목부터 광고 문구까지 이 만화 제목을 패러디했다. 발단은 지난 4월 국내의 한 케이블TV 채널에서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동명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면서부터다. 원작 만화책은 일본에서 2500만부, 한국에서도 50만부가 팔렸다. 네이버의 유료 콘텐츠 다운로드 장터인 'N스토어'에서는 국내 모든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제치고. 10월 한 때 다운로드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만화의 원작자 이사야마 하지메(諫山創)씨를 만화의 출판사 고단샤(講談社)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27세 남성이었고, 내향적이고 섬세한 초식남(草食男)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진격의 거인' 원작자 이사야마 하지메
‘디지털 영상 시대가 되면서 이야기의 깊이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사야마 씨는 픽사가 만든 ‘월-E’라는 3D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었다. “‘월-E’는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로봇 이야기이지만 깊이가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히 무해한 것은 없어요. 디지털 영상이든 뭐든 결국 그것을 접하는 개인이 내면에서 소화해내느냐, 거기에 휘둘리느냐의 문제 아닐까요?” /이덕훈 기자
1 '인간을 먹어치우는 거인과 그들에 맞서 싸우는 인간'이라는 단순한 플롯이 돋보인다.

"내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야기나 그림 솜씨보다도 역시 플롯(plot)이 재미있는 만화가 진짜 재미있는 만화라는 것이다. 몇 개의 단어나 아주 짧은 문장으로 스토리가 설명되지 않으면 영화 각본으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점을 처음부터 크게 의식하면서 만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신인인 데다 그림도 별로 잘 그리지 못하는 만화가였기 때문이다. 보통의 내용 갖고는 읽힐 리 없다고 생각했다."

2 거인 캐릭터를 어떻게 구상했나?

"초등학교 때 '지옥선생 누베'라는 호러 만화를 읽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모나리자'라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모나리자가 그림 속에서 튀어나와 사람을 잡아먹어 버리는 이야기다. 너무 무서워서 한동안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갔다. 그때 느꼈던 무서움의 이미지가 거인에 반영돼 있다.

또 고향 규슈에서 스무 살 때 도쿄로 올라온 뒤 PC방 심야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술 취한 남자 손님과 상대하면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데서 오는 공포, 불쾌감 같은 것들이 거인 이미지에 포함돼 있다.

괴물을 무섭게 그리고 싶을 때 보통 으르렁거린다든가 엄청나게 화를 내는 모습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뭔가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동은 흉포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보여주면 더 무섭지 않을까 생각했다(만화 속 거인들은 사람을 잡아먹으면서도 이를 드러내며 '히죽' 웃고 있다).

처음엔 거인의 무서움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연재 만화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리다 보니 스스로도 거인이 지겨워져 뭔가 다른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거인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미스터리 설정을 강조하게 됐다. 독자의 관심을 계속 붙잡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만화 ‘진격의 거인’의 한 장면.
만화 ‘진격의 거인’의 한 장면. /학산코믹스 제공
3 거인의 공격을 피해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설정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었나?

"성벽 안에 사는 사람들의 설정은 어린 시절과 관련이 있다. 태어나서 자란 곳(규슈 오이타현)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이었는데, 창문 밖 경치라는 것이 우뚝 솟아 있는 벽처럼 보이는 산뿐이었다.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갇혀 있는 듯한 이 마을에서 나가고 싶다는 기분이었다."

4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가.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사실은 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어떤 공포나 위협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 경험을 담아 표현했다. '진격의 거인'에는 무엇인가에 대해 '싸워라'고 말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 어릴 때 강에서 놀 때 친구들은 높은 데서 강으로 뛰어내리곤 했지만 나는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또 어릴 때 학교에서 스모 경기를 할 때에도 나는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리는 식이었다. 그런 것들은 성인이 되기 위해 중요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대로 성인이 돼 버린 것이다. '그때 뛰어내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 싸웠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5 성 밖 거인들의 공격에 반격하는 인간들이라는 설정이 지금의 일본 현실과 비슷해 보인다. 거인은 급성장하는 중국, 거인에 맞서는 인간은 재무장에 나서는 일본으로 치환해 분석하기도 한다.

"일본이 오른쪽으로 가지 않을까, 만화의 인기가 그걸 보여주는 것 아닐까라는 질문일 텐데. 개인적으로는 일본이 그렇게 갈 것 같지 않다. 옛날에 주변국들에 엄청난 폐를 끼친 일이 있었지만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패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섬나라이기 때문에 외부와 격리돼 있다가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순간에 그런 식으로 폭주한 것이다. 패전을 겪은 이상 다시 싸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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