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처방을 팔고 교사는 지식을 팔아… 우린 모두 세일즈맨

입력 2013.10.12 03:06 | 수정 2019.09.12 21:41

미래학자이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대니얼 핑크

사고파는 행위는 넓어지고 성격도 달라졌다
타인을 설득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게 세일즈

물건 이외의 것을 파는 건 '非판매 세일즈'
직장생활 중 40%의 시간을 쓰고 있어

이 시대엔 문제 해결자 아닌 발견자 돼라
그러기 위해선 고객에게 질문을 잘해야

대니얼 핑크씨
대니얼 핑크씨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세일즈맨으로 토머스 에디슨을 꼽았다. 위대한 발명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기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고 팔았던 위대한 세일즈맨이었다는 것이다. / 워싱턴DC=오윤희 기자

세계적 미래학자 대니얼 핑크 인터뷰는 오전 8시에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급한 일정 때문에 당초 약속을 번복해 아침 이른 시간으로 잡은 것이다.

단독주택 별채를 개조해 만든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잔뜩 휘갈겨 쓴 화이트보드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잊어먹지 않도록 여기다 적어 놓곤 한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벽 한 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엔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그를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린 '새로운 미래가 온다' '드라이브' 사이로 최신작 '파는 것이 인간이다'가 보였다.

모두가 세일즈맨인 시대

새 책에서 그는 "이 시대엔 사실상 누구나가 세일즈맨이 됐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의사는 환자에게 처방을 팔고, 변호사는 배심원에게 평결을 팔고, 교사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를 판다. 타인을 설득하고, 납득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세일즈맨이 물건을 파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진한 블랙커피가 가득 담긴 머그컵을 들고 와서 기자와 마주 앉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다소 피곤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의 목소리는 금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달변가로 유명한 앨 고어(Gore) 전 부통령의 수석 대변인 출신답게 그는 마치 답변을 준비하기라도 한 듯 매끄러운 문장으로 막힘없이 대답했다.

사람들은 '세일즈'라는 행위를 어떻게 정의 내릴까? 그는 사람들에게 "'세일즈'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까?" 하고 설문 조사를 해 보았다. 그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돈'이었다. 실제로 이제까지 사고파는 행위는 내가 세일즈맨에게 돈을 주면 그는 내가 요구했던 물건을 주는 식으로 이뤄졌다. 즉, 돈과 상품의 교환인 것이다. 하지만 핑크는 "오늘날 사고파는 행위는 범위가 더 넓어지고, 성격도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현대사회의 일터에선 화이트칼라 근로자들 사이에서 과거와는 다른 종류의 교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보스라고 칩시다. 당신은 나를 위해 당신의 시간과 노력을 주고, 저는 그 대가로 어떤 종류의 이득을 얻게 되겠지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위를 점령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면 저는 그 결과에 따른 보상을 당신에게 나눠줍니다. 이것 역시 거래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말하던 거래는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이 달러나 원이나 유로 같은 금전적인 것이었지만, 현대의 거래는 시간, 노력, 에너지, 신념, 헌신 같은 가치로 측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 모든 직장에서 이러한 가치 교환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세일즈맨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처럼 물건 이외의 것을 판매하는 행위를 '비판매 세일즈(non-sales sell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미국 내 정규직 성인 근로자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람들은 직장에서 약 40%의 시간을 비판매 세일즈에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픽 미국 경제활동 부문 직업별 고용인원
사람들은 왜 세일즈에 부정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스스로가 세일즈맨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걸까요? 혹은 왜 의식한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세일즈맨이라는 사실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할까요?

"첫째, 일반적으로 세일즈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쁘기 때문입니다. 대개 '세일즈'라는 단어를 접하면 부정직하고, 소비자를 속이며, 조작적이고,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해지는 행위라는 인상을 받아요. 이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세일즈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려 드는 것입니다. 둘째로 세일즈 과정에서 거절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어떤 언어를 쓰든 사람들은 거절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이유 가운데 첫째 관점은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입니다. 세일즈맨과 소비자 사이의 '정보 불균형'에서 비롯된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세일즈맨이 소비자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세일즈맨이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우기 십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정보 균등화' 시대에 살고 있고, 세일즈맨과 소비자가 대등한 위치가 되었습니다."

정보 불균형이 횡행하던 과거의 세상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애컬로프(Akerlof) 교수는 '레몬 시장 이론'을 통해 잘 표현한다. 레몬 시장 이론에서 레몬(lemon)이란 우리말로 치면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애컬로프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중고차는 크게 나눠서 좋은 차와 나쁜 차, 즉 '레몬'으로 나뉜다. 품질이 떨어지는 레몬은 마땅히 가격이 싸야 하지만, 차가 레몬인지 레몬이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세일즈맨뿐이다. 상대적으로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소비자는 위험 부담을 안고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세상은 바뀌었다고 핑크씨는 주장한다. 중고차 구매자는 인터넷을 통해 판매자가 제시한 가격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검증할 수 있게 됐고, 소비자를 속이는 판매자는 인터넷에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힌다.

―소비자들은 정보의 균등화를 환영하겠지만, 세일즈맨으로선 정보의 균등화 때문에 과거엔 존재하지 않던 위험 부담을 안는 동시에 무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겠군요. 모든 사람이 세일즈맨이 되는 세상은 유토피아인가요, 디스토피아인가요?

"대단히 흥미로우면서도 복잡한 질문인데요 (그는 생각에 잠기며 '흥미롭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우선 정보의 균등화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일이란 건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반면 당신이 지적한 대로 세일즈맨은 이 상황을 그리 반기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고, (목소리를 높이며) 세일즈맨은 여기에 적응해야만 합니다. 이제까지 많은 경제학자가 '정보의 평등이 완벽하게 이뤄지고, 거래 비용이 들지 않는 세상'을 가정했어요. 그게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 정의대로라면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좀 더 유토피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봅니다. 정보 균등화가 이뤄짐으로써 훨씬 더 효율적이고 공정한 사회, 즉 이상적 사회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세일즈맨과 소비자가 대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지요. 하지만 아직 유토피아라고는 볼 수 없어요.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으니까요."

어떻게 세일즈를 차별화할 것인가

―2009년 조선일보와 인터뷰할 때 "미래는 하이테크(hightech)가 아니라 하이 콘셉트(high concept)가 필요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래의 세일즈에서 하이 콘셉트는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시나요?

"좋은 질문인데요. 세일즈에서 하이테크는 '당신이 필요할 때에 필요한 정보를 가질 수 있는가?'입니다. 이 방면에선 컴퓨터가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반면 하이 콘셉트는 '컴퓨터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서비스를 해 줄 수 있는가?'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요?

"(잠시 생각하다가 천장을 가리키면서) 저 전구 중 하나가 나갔다고 칩시다. 나는 새로운 전구가 필요할 거예요. 보통 세일즈맨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불이 나간 전구 대신에 어떤 전구가 필요해? 어떤 종류의?' 그리고 컴퓨터로 여러 가지 전구를 살펴본 다음에 소비자에게 어떤 어떤 종류가 있고, 그들의 특성은 무엇이고, 가격은 얼마 수준이다, 이렇게 제시하겠지요. 이건 하이테크의 이슈예요.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면, 전구가 나갔다는 것은 어쩌면 전기 배선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하이 콘셉트 개념에서 세일즈맨은 근본적인 문제점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전구가 나갔다고? 문제가 뭐지? 어쩌면 이 방의 주인은 전기를 너무 많이 썼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좀 더 창문을 열어서 방에 자연 채광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고 나서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거예요. '당신의 문제는 전구가 나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 이유는 당신이 창문을 너무 닫아 두고 있었고, 햇빛 대신에 전기를 너무 많이 써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앞으로는 좀 더 창문을 열고 자연광을 방 안에 들여오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합니다.' 전자는 컴퓨터가 훌륭한 역할을 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지요. 당신의 문제는 전구가 나간 것뿐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이테크만으로는 그러한 사실을 도출해 낼 수가 없습니다."

핑크씨는 이런 이유를 들어 "현대의 세일즈맨은 문제 해결자가 아니라 문제 발견자가 돼야 한다"고 책에 썼다. 지금까지 최고의 세일즈맨은 문제 해결에 능숙한 사람이었지만, 이 시대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갖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밝혀내는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가진 진짜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 세일즈맨은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할까. 핑크씨는 "질문을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객 스스로도 모르는 문제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적절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 최고의 세일즈맨은 고객의 질문에 대답하는 데 능통했다면, 요즘 최고의 세일즈맨은 고객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좋은 질문을 하려면, 질문 리스트를 만든 뒤 각 질문의 장단점을 생각하며 질문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연습을 하라고 그는 조언했다.

핑크씨는 현대의 세일즈맨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또 하나 있다고 했다. 정보의 '큐레이터'가 그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막대한 정보를 살펴서 정리하고, 그중 가장 적절한 정보를 취해 다른 고객에게 제시하는 일이다. 요즘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데, 정작 선택지가 너무 많은 것은 싫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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