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기능에만 치중하면 실패… 소비자 깊숙한 내면적 욕망 읽어야"

입력 2013.10.05 03:05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 '관찰의 힘' 저자 얀 칩체이스
한 나라 문화 이해하려면 - 현지인 숙소에 묵고
도시의 '맨얼굴' 볼 수 있는 이른 아침 통근 체험하고 이발소에서 머리 깎아라
고급 호텔에 머물고 미리 약속해 방문해선 진면목 발견 못한다

세계적 디자인 컨설팅 업체인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관찰의 힘' 저자 얀 칩체이스(Chipchase)씨는 회색 노스페이스 아웃도어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그는 '관찰의 힘'에서 자전거의 유용성에 대해 이렇게 썼다."외국에 막 도착하면 적응할 시간이 별로 없기에 우리는 당장 동네 자전거 가게로 가서 자전거를 몇 대 받아 온다. 자전거로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도시의 리듬과 운율에 금방 익숙해진다."

그가 정한 약속 장소도 회사 사무실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커피 명소인 '블루보틀(bluebottle)' 카페였다. 이른 아침부터 카페는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대도시 특유의 활기가 느껴졌다. 앉을 자리가 없어 카페 앞 공터에 있는 이동식 플라스틱 의자로 자리를 옮겼다. "외국 문화를 느끼려면 그 나라의 아침을 체험하라"는 그의 주장을 실천하듯 이번 인터뷰는 아침 일찍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가운데서 분주하게 출근하는 사람들과 식자재를 실어 나르는 트럭들을 배경 삼아 진행됐다.

고객인 글로벌 기업이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거나 새 사업을 구상할 때 이를 위한 현지 시장조사를 하고,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세워 제안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는 이 업무를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수행한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자료를 분석하는 대신 현지로 가서 현지인들과 함께 거주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아 보며 현지인의 생활을 직접 체험한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그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관찰해 비즈니스 영감을 얻는 것이다.

그의 책 '관찰의 힘'은 지난 6월 국내에 출간돼 교보문고 경제 경영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1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관찰의 힘’ 저자 얀 칩체이스.
‘관찰의 힘’ 저자 얀 칩체이스는 낯선 도시에 갈 때마다 골목을 누비며 1000장 이상씩 사진을 찍어온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사진 찍히는 걸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 / 칩체이스 제공

현지 문화를 이해하려면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라

―당신은 한 나라의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관찰, 기록 그리고 직접 질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관찰엔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고, 질문을 할 때도 답변자가 거짓말을 할 수 있어요.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관찰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현지 직원을 고용하는 거예요. 외국인은 현지 문화를 해석할 때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지인의 시각과 통찰력을 빌리는 겁니다. 대체로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가서 조사할 때 호텔에 가서 묵으면서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가이드와 함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곤 하죠. 하지만 외국인 조사자가 방문한다고 하면 아마 집주인의 95%는 집을 깨끗하게 치울 거예요. 그럼 당신은 그들이 실제 살고 있는 환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보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지 아파트를 빌려서 팀원들이 함께 머무릅니다. 현지인들과 같은 식탁에 앉아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화장실을 쓰고…. 그렇게 얻는 정보는 신뢰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엔 빅 데이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추세인데, 그에 비하면 관찰은 상당히 아날로그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관찰이라는 고전적 방식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양적 조사와 질적 조사를 모두 합니다. 단순히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보디랭귀지를 읽고 그 안에 숨어있는 맥락을 읽는 것만이 아니에요. 책에선 그것을 다 다룰 수가 없었어요. 저는 어떤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이 관찰뿐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어요. 그것은 단지 한 방법, 매우 중요한 한 방법일 뿐입니다."

―흔히 디테일을 중시할 때 큰 그림을 보는 걸 놓치곤 합니다. 어떻게 하면 디테일과 큰 그림을 함께 볼 수 있을까요?

"우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내가 지금 알고자 하는 것이 뭔지 생각하는 겁니다. 어떤 고객 회사는 정보 수집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서 사업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죠. 고객 회사가 영감을 얻는 데 더 치중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지금 내가 관찰하고 있는 한 사례가 영감을 얻는 데 필요한 지구 상의 단 하나뿐인 사례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정보 중심 조사와는 관찰 방법이 달라지겠지요. 첫째 경우에는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적절한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시간을 투자해야겠죠. 둘째 경우는 우리가 조사하고 배운 것들이 어떤 가치가 있을지, 그것이 올바른 가치 판단인지,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걸 우리는 '센스 메이킹(sense making)'이라고 부릅니다. 아까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얘기 했잖아요? 그렇게 몇 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가 수집한 정보와 사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배우는 거죠."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시(市)의 길거리에서 곡물을 팔고 있는 상인(위)과 몽골 울란바토르의 한 휴대폰 수리점.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시(市)의 길거리에서 곡물을 팔고 있는 상인(위)과 몽골 울란바토르의 한 휴대폰 수리점. 모두 칩체이스가 시장조사차 방문한 곳이다. / 칩체이스 제공

소비자의 깊은 내면적 욕망을 읽어라

칩체이스는 한국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에 서울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놓았다. 동네 수퍼마켓이 음료수를 넣은 냉장고를 가게 바깥에 내놓은 사진이다. 이를 인상적이라고 느낀 이유는 냉장고를 매장 밖에 내놓는 것이 외국에선 흔치 않은 풍경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길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이 한 도시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줄 수 있습니다. 대도시에 갈 경우엔 사진을 1000장 이상 찍어 와요. 그 냉장고도 그런 작은 관찰의 한 부분입니다."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 기업들은 시장에서 얄팍한 상술을 쓴다는 비판을 가끔씩 받는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요?

"사실 이건 한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 기업도 마찬가지인데요. 최근 6~7년간 출시된 휴대전화를 보면 너무 기능적인 측면에 치중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능'이라는 것이 상품 본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매번 소개하는 새로운 기능을 소비자들이 과연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도요. 결국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예요. 회사가 기능에 너무 치중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부패했다(morally corrupt)'고 해도 틀리는 말이 아닙니다.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제품을 파는 게 아니니까요. 멋지고 아름다운 물건을 사면 소비자는 한순간 달콤한 흥분을 느낄지 몰라도 곧 그것을 벽장에 처박아 두고 다시 사용하지 않죠."

‘관찰의 힘’ 저자가 말하는 ‘해외 문화 관찰 노하우’ 5가지 표

그는 "몇 년 전 르완다에서 겪은 일이 이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며 르완다 농촌 여성을 인터뷰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는 그 여성에게 "전기가 들어온 이래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가장 크게 바뀌었나?"라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전혀 뜻밖이었다.

"'외출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했어요. 말도 안 되는 대답이었죠. 그녀는 우리를 집 안으로 데려가 필립스 다리미를 보여줬어요. 전기가 들어온 뒤 다리미질을 할 수 있게 됐고, 외출할 때마다 정성껏 옷을 다리는 거예요. 구김살 하나 없이 잘 다린 옷을 과시하고 싶으니까요. 그러면 사람들이 '아, 저 집에는 다리미가 있구나' 하고 부러워할 테지요. 우스꽝스럽지만 이건 당신이 가진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해요. 아이폰이나 멋진 운동화를 사거나 하는 소비 행태와 마찬가지로 말이죠.

이건 맥락상 앞서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하이테크 회사는 소비자들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주기 위해 제품을 만듭니다. 하지만 르완다 여성은 전기 때문에 외출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해야 했어요. 단순히 과시하기 위해서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기업이 상품을 만들 때 예를 들어 '남들과 다른 옷을 입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좀 더 순수한 동기와 욕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겁니다. 피상적 수준의 만족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내면을 이해해서 더 깊은 만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체험을 통해 얻은 정보가 혁신적 아이디어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요?

"아시아의 어느 화장품 브랜드가 중국 등 다른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새로운 상품 개발을 원했어요. 그래서 우리 팀은 3개월간 남성 미용실을 돌아다녔지요. 무엇이 남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소비를 부추기는지 이해하기 위해서였어요. 단순히 관찰하자면 편의점 같은 곳을 찾아가서 어떤 종류의 미용 상품이 있고, 소비자들은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조사하는 데 그쳤을 거예요. 하지만 관찰을 통해 어떤 관점(perspective)을 가지려면 남성들의 심리까지 이해해야만 해요. '왜 남자들이 아름다워지려고 할까?' '왜 자신을 가꿀까?' 하고요. 그러려면 백화점이나 마트에 찾아가 장을 보러 온 사람들과 어울려 봐야겠죠. 자동차 인테리어 시장에 대한 조사를 한다면 직접 여러 자동차를 몰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관찰의 힘'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는 기업은 어디인가요?

"디즈니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이해하고, 단순히 표면적인 부분에 머무르지 않고 소비자들의 심리를 잘 읽어낸 기업이지요."

―반대로 실패한 사례는요?

"시장에서 성공하는 사례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100 중에 90~95는 실패한다고 봐요. 그래서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를 특정해 말하기가 더 어려울 것 같네요."

―2011년 패스트 컴퍼니지(誌)는 당신을 '비즈니스 분야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 100명' 중 한 사람으로 꼽았습니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요?

"최근 인도 도시 빈민층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프로젝트 조사를 위해 인도를 방문했습니다. 인도는 위계질서가 뚜렷한 나라더군요. 인도에선 모든 결정과 권한이 최고경영자에게 몰려 있습니다. CEO가 내리는 결정이 없이는 아무것도 진행이 되지 않아요. 한국도 조직 위계질서가 세계에서 아주 강한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실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창의적 인재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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