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원 교수, 7년간 픽사에서 일해보니…

    • 박석원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영상학과 교수

입력 2013.09.14 03:32

일은 완벽주의 데드라인 2번 정도 어기면 해고감
분위기는 방임주의 출퇴근 자유롭고 1週 파티 2번 즐겨

박석원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영상학과 교수
박석원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영상학과 교수
나는 픽사에서 2004년부터 약 7년간 레이아웃 아티스트(영상의 배열·배경·색채 등을 총괄해 화면을 구성하는 직업)로 일했다.

"석원! 회사 정문에 들어오는 지금부터 이제 당신은 우리 가족이에요." 픽사 정문으로 들어가면서 나에게 건넨 상사의 첫마디다.

첫 참여 작품이 '카(Cars)'였는데, 영어 때문에 리뷰 회의 때마다 항상 긴장을 했다. 리뷰 땐 보통 10~15가지 지적 사항이 나오는데, 그중 몇 개를 오해해 놓친 이후로 수퍼바이저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첫 성과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고, 다른 영화에서 선뜻 나를 부르려 하지 않았다.

그때 다른 수퍼바이저가 내게 제대로 된 기회를 주겠다며, 더 많은 샷을 작업하게 했다. 나는 밤과 주말을 반납하고 매진한 결과 1년 반 후 부서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캐스팅 1순위가 되었다.

픽사는 작품의 질과 데드라인을 생명처럼 여긴다. 완벽주의가 너무 심해서 때로는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해도 수정은 계속된다. 퀄리티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캐스팅이 되지 않아 일감이 없어져서 자연스럽게 회사를 떠나게 된다. 또 만약 데드라인을 2번 정도 어기면 해고를 당할지도 모른다. 일이 바쁠 때는 분 단위로 업무를 쪼개야 할 정도로 빡빡해진다.

'월-E'의 감독인 앤드루 스탠턴은 자주 이런 말을 했다. "가장 빨리 실패하라(Be wrong as fast as we can)."

픽사에선 초기 단계에 직원들이 자기 작품을 다른 직원들에게 많이 보여주고, 수백 번 수정을 거친다. 처음엔 보여주기 솔직히 부끄럽다. 그래도 공개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수백 번, 수천 번 수정을 거치면 명작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협력 문화에 신기하게도 모두가 동참한다. 내가 픽사에서 제일 많이 들은 단어는 '커뮤니케이션'과 '콜라보레이션'이었다.

하지만 회사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야행성 직원은 정오에 출근해 늦게 퇴근하고, 비교적 데드라인에서 자유로운 엔지니어 중엔 오후 3시쯤에 서핑을 하겠다며 서핑보드를 들고 퇴근하는 사람도 있다.

픽사에는 파티광이 많다. 일주일에 파티 최소 두 번은 기본이다.

픽사의 가장 큰 장점은 직원들로 하여금 재미있는 공부를 하면서 창의력을 키우게 한다는 점이다. 픽사는 대학처럼 봄 학기, 가을 학기로 나눠 직원을 위한 점심, 저녁 수업을 연다. 학기마다 50개가 넘는 강좌가 열리는데, 영화와 예술 수업이 중심이지만 그 밖에도 다양한 수업이 있다. 동물처럼 행동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연기 수업도 있었다.

픽사에서 가장 나를 감동시킨 경험은 스티브 잡스가 디즈니와 합병한다는 소식을 발표한 2006년이었다. 사실 그때 직원들은 잡스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불과 한 달 전에 디즈니와 합병하는 건 루머일 뿐이라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우린 디즈니와 사이가 최악이어서 픽사가 디즈니에 소속되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잡스는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다.

"디즈니의 CEO는 제가 사적으로 만나보니 좋은 사람이에요. 디즈니는 지금 픽사의 배급사이죠. 그런데 만약 다른 배급사와 계약한다면 전과 같이 흥행할 것이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디즈니만 한 배급사가 없으니 말입니다. 특히 2004년 췌장암 진단 이후 건강이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픽사의 문화가 변할 것이란 염려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디즈니 최대 주주가 됩니다. 그러는 한 픽사의 문화는 안 바뀝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초상집 분위기는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는 잡스에게 감동한 것이다.

픽사를 나온 지 2년이 된 지금, 때로는 픽사에서 배운 많은 것을 조금씩 잊어버리지 않나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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