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사업철수… 야반도주 말고 웃으면서 나와라

    • 박상훈 딜로이트 중국비즈니스센터 상무

입력 2013.08.31 03:05

야반도주하는 원인 - 기업들, 공무원에 뒷돈 주고 호형호제하며 규제 피해
中정부는 투자 유치 위해 모호한 규정도 대충 넘어가
떠난다 하면 장기 세무조사… 형·아우하던 것 사라져
중국서 웃고 나오려면… 中, 편법·부정 점차 없어져
稅혜택에 딸린 조건 확인 등 철저한 점검이 우선 돼야

박상훈 딜로이트 중국비즈니스센터 상무
박상훈 딜로이트 중국비즈니스센터 상무

2008년 중국 상하이의 회계 법인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을 때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 맹위를 떨치던 터라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 기업들 역시 상당한 충격을 체감하고 있었다. 갈수록 사업 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사업을 접고 중국을 떠나는 기업이 속출했다.

업무차 만난 박 사장 또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청도에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하던 그는 급속한 경기 하락에 지방정부의 인건비 인상 압력이 가중되면서 사업 철수를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번 돈을 현금화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요. 정리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 예상되는 문제는 없을까요?"

들어오기는 쉬워도 나가기는 어려운 나라, 중국. 중국 비즈니스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런 말은 한두 번 들어보았으리라. 불법 환치기나 심지어 야반도주의 무용담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 역시 이러한 사정과 무관치 않다.

정말 소문대로 중국에서 정상적 사업 철수는 불가능한 일이며, 벌어 놓은 돈을 다 두고 와야 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상당수 한국 기업에 이런 우려는 많은 부분 사실에 가깝다. 원인은 몇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성장 초창기 중국 정부는 투자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100억원만 투자해도 해당 기업의 대표이사가 중국을 방문할 때 경찰이 호송하며 길을 터 주던 시절이 있었다. 세제 혜택도 많았다. 이익이 발생한 시점부터 2년간은 면세, 그 후 3년간은 50% 면세라는 이른바 '2면 3반감' 혜택뿐 아니라 부가가치세와 관세, 개인 소득세와 관련해 다양한 우대 제도가 있었다. 음성적 눈감아 주기도 많았다. 당국은 규정이 모호한 사항을 외국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호탕하게' 해석해줬다.

여기에 일부 한국 기업인의 비뚤어진 인식이 가세했다. 관계 당국의 호의에 안주한 나머지 공무원들과 도를 넘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는 기업이 늘어났다. 때마다 공무원들에게 뒷돈을 주고 술을 사면서 호형호제하고 지냈다. 일각에서는 세무조사가 나와도 아는 공무원들이 무마해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그런데 이러한 당국의 혜택과 잘못된 관행이 막상 중국을 떠날 때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올가미가 된다. 중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기 위해서는 기업 등기를 말소해야 한다. 이때 세무 등기도 함께 말소해야 하는데 말소 전에 미납된 세액을 확인한다. 이른바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세무조사를 하는 공무원은 더 이상 '형 동생'이 아니다.

중국의 세무 공무원들은 한국 기업이 어떤 분야의 세법을 준수하지 않는지 잘 알고 있다. 규정상 모호한 사항은 더 이상 '호탕하게' 해석되지 않는다. 세무조사가 시작되면 외국 송금에도 제한이 가해진다. 경상 거래를 제외한 송금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세무조사 기간이 길어지고 적발 사항이 많아지면서 기업은 당황하게 된다. 회계와 세무 시스템이 허술한 소규모 기업은 더더욱 그렇다. 소식을 전해 들은 종업원들이 술렁이고, 생산성은 눈에 띄게 떨어진다. 사장이 홀연히 회사를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이 이때다.

앞으로도 중국에 있는 많은 한국 기업이 다른 나라 이전 등을 위해 철수를 고민할 것이다. 일부 기업처럼 시간에 쫓겨 등 떠밀려 나오면서 챙길 것도 잃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중장기적 관점에서 시간을 두고 철수 작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먼저, 외국인 투자 기업으로 누렸던 각종 혜택에 딸려 있는 조건들이 충족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조세 혜택은 그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앞서 말한 '2면 3반감' 혜택은 1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또한, 모호한 규정 때문에 유리하게 해석해 왔던 부분들은 좀 더 보수적인 잣대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고정 사업장 또는 이전 가격 관련 해석이 대표적 예다. 외국 투자 기업, 특히 한국 기업들의 보편적 세무 관행 중 위법 소지가 있는 사항에 대해 중국 당국은 계속 영업을 할 때에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사업을 철수할 때는 반드시 이슈가 된다. 주재원의 개인 소득세, 수입 물품의 해관 코드 적용 등이 그렇다.

앞으로도 중국의 기업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할 것이다. 변화의 방향은 당연히 엄정한 규정 준수 쪽이며, 편법과 부정이 설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철저한 자기 점검은 순조로운 사업 철수를 위해서뿐 아니라 지속 경영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며, 그 준비는 지금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중국에서 웃으며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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