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인수된 인스타그램 창업자 시스트롬

입력 2013.07.13 03:05

10억달러 벤처 神話그 성공비결은 '집중'
“개인마다 메신저 달라‐ 이걸 통합하면 인터넷 새 메가트렌드될 것”
일도 삶도 몇가지에만 집중
'사진 올리는 시간 단축' '누구나 쉽게 조작하기'… 덕분에 직원 12명 회사가…
카오톡·라인·와츠앱부터 페이스북 메신저까지 서로 호환되지 않아… 이메일처럼 통합돼야
제품 개발 철학, 단순함·신속·아름다움이 완벽하게 조화 이루도록 노력하고 집중한다.
페이스북을 택한 이유는, 회사 가치가 5억달러로 치솟자 트위터·페이스북이 인수 제안…
구글·트위터·페이스북과 인연, 2004년 저커버그와 함께 일해 대학시절 트위터서 인턴 근무…

'캘리포니아 멘로파크 해커웨이 1번지'.

지난 6월 20일(현지 시각) 자동차 내비게이션 앱에 페이스북 본사 주소를 넣고 엘 카미노 레알(82번 도로)에 올라탔다. 숙소 서니베일에서 40분쯤 지났을까. 과연 '해커웨이(Hacker Way)'라는 특이한 이정표가 나왔다. 구글의 모토가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면, 페이스북은 '해커웨이'다. 소수 정예 부대처럼 두려움 없이 빨리 움직이자는 뜻이다.

오전 10시. '캠퍼스'라 불리는 페이스북 사옥 18번 빌딩에는 미국 전역에서 100여명의 기자가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페이스북이 기자들에게 보낸 간담회 초대장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다만 "작은 팀이 큰 목표를 향해 일해 왔습니다. 커피 한잔하면서 신제품에 대해 알아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눈치 빠른 기자들은 페이스북이 지난해 인수한 인스타그램의 신제품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주고받았다.

지난 6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 페이스북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케빈 시스트롬 인스타그램 창업자 겸 CEO가 새 서비스인 동영상 공유 기능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6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멘로파크 페이스북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케빈 시스트롬 인스타그램 창업자 겸 CEO가 새 서비스인 동영상 공유 기능을 소개하고 있다./블룸버그
"헤이(Hey)."

청중석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처음 등장한 사람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겸 CEO였다. 검은 후드 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굵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이날 행사의 메인 스피커는 저커버그가 아니었다. 그는 주인공을 무대로 불러냈다.

"약 1년 전 우리는 12명으로 구성된 작은 팀에게 페이스북에 합류해 달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인스타그램이 만든 것에 대해 집중합니다. 케빈!"

약관 28세의 미국 벤처 신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케빈 시스트롬(Kevin Systrom) 인스타그램 창업자 겸 CEO이다. 넉넉한 감색 남방에 역시 청바지를 입은 그는 무척 키가 컸다.

지난해 4월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약 10억달러(약 1조1438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대형 인수·합병(M&A)이 잦은 실리콘밸리에서도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인스타그램은 당시 3000만명에 달하는 사용자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설립 2년밖에 안된 스타트업(초기 기업)이었고, 직원 수는 12명에 불과했다.

인스타그램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친구들과 공유하는 서비스로 케빈 시스트롬과 마이크 크리거(Mike Krieger·27)가 2010년 10월 출시했다. 사진을 쉽게 공유하고, 각종 필터를 통해 사진에 색깔과 효과를 쉽게 덧입힐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인스타그램에는 모두 160억장의 사진이 올라와 있고, 매일 4500만장씩 추가된다. 사용자 수는 1억3000만명에 이른다.

시스트롬씨는 페이스북에 주식을 매각해 4억달러(약 4600억원)의 돈방석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당신은 사진뿐만 아니라 비디오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시스트롬씨가 발표를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의 신제품은 '동영상' 공유 서비스였다. 사진에 이어 동영상까지 공유한다는 것이다.

기자간담회가 끝나고 시스트롬을 따로 만나 단독 인터뷰했다. 그가 들어오자 유난히 긴 다리 때문에 회의실이 꽉 찬 느낌이었다.

―키가 상당히 큽니다.

"하하. 저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큰 키에 놀랍니다. 한국은 미터를 쓰나요? 제 키는 6피트 5인치입니다."

그 옆에 있던 페이스북 직원이 스마트폰으로 단위를 환산해 보더니, 약 2m, 정확히는 1.98m라고 말했다.

―당신은 인스타그램을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찍어 아름답게 만들고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창업 과정에서 당신이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요?

"아마도 공동 창업자인 마이크를 만나 그와 의기투합한 것입니다. 저희 둘은 인스타그램의 전신인 버븐(Burbn)을 창업했습니다.

두 번째 순간은 버븐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사업 방향을 완전히 전환하기로 한 것입니다. 버븐은 '포스퀘어(Foursquare)'처럼 나의 위치를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체크인(check-in) 서비스였습니다. 우리는 그걸 버리고 사진 공유 앱인 인스타그램을 만들었습니다."

―12명의 직원으로 이렇게 큰 가치를 만든 비결은 무엇인가요?

"잠을 많이 안 잔 거죠. 하하. 저는 스타트업을 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결정적인 비결을 꼽으라면 '집중(focus)'입니다. 인스타그램은 여러 가지를 잘하려고 하기보다 정말 크게 중요한 몇 가지에만 엄청나게 집중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진 올리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하기' 등입니다. 덕분에 정말 작은 팀이 엄청난 성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서비스 방향을 ‘위치 공유’에서 ‘사진 공유’로 갑자기 바꾼 이유는 뭔가요?

“위치 공유 서비스인 버븐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 반응은 별로였어요. 사용자의 반응을 살펴보니까 사람들은 위치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위치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우리는 그 점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마침내 사진 공유 앱인 인스타그램을 내놓았을 때 이번엔 사람들이 사진이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전문 사진가들이 인화할 때 각종 효과를 주는 것처럼 우리도 여러 가지 느낌을 주는 필터를 개발했습니다. 사업 방향을 바꾼 과정은 사실 이용자들이 부닥치는 실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온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번에 많은 문제에 덤벼든 것이 아니라 정말 몇 가지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중에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기업을 하기 위해 기업을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스타그램은 팝가수 저스틴 비버, 영화배우 제시카 알바,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등 유명인들이 소소한 일상생활을 담은 사진을 올리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왼쪽부터 미국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와 소녀시대 태연의 인스타그램 화면
인스타그램은 팝가수 저스틴 비버, 영화배우 제시카 알바,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등 유명인들이 소소한 일상생활을 담은 사진을 올리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다. 왼쪽부터 미국 농구 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와 소녀시대 태연의 인스타그램 화면.
사진광이 만든 사진 서비스

두 창업자는 사업 방향을 바꾼 뒤 회사 이름도 바꿨다. 새 회사 이름 인스타그램(Instagram)은 ‘즉각적인(instant)’이라는 단어와 ‘멀리 보낸다(telegram)’는 단어를 합성해 만들었다.

사진 공유로 서비스를 전환한 것은 시스트롬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어릴 때부터 카메라를 가지고 놀기를 좋아하는 ‘포토넛(photo nut·사진광)’이었다. 부모님은 크리스마스마다 새 카메라를 선물로 줬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사진부 회장이었고, 대학 2학년 겨울방학 때는 이탈리아 피렌체로 건너가 사진 수업을 듣기도 했다. 당시 시스트롬의 선생님은 그의 니콘 카메라를 못 쓰게 하고,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홀가(Holga)라는 사진기를 쓰도록 했다. 온갖 화려한 촬영 기교에 익숙한 그에게 예술적 감각을 길러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홀가의 렌즈는 정말 형편없었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오늘날 인스타그램의 필터링 기술이나 사진을 찍으면 16대9가 아니라 정사각형으로 변환하는 기술의 아이디어는 홀가 사진기에서 나왔다. 홀가로 사진을 찍으면 마치 폴라로이드로 찍은 것처럼 추억이 깃든 옛날 사진처럼 보인다.

시스트롬 CEO는 위클리비즈 인터뷰에서“‘단순함·신속·아름다움’세 단어를 포스터에 써서 개발실 곳곳에 붙여놓는다”고 말했다.
시스트롬 CEO는 위클리비즈 인터뷰에서“‘단순함·신속·아름다움’세 단어를 포스터에 써서 개발실 곳곳에 붙여놓는다”고 말했다./블룸버그
―당신은 단순함(simplicity), 신속(fast), 미(beauty) 세 가지를 간담회 내내 강조했습니다. 당신의 제품 개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나요?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잊어버릴까 봐 포스터까지 만들어 여기저기에 붙여 놓았습니다. 제가 앞에 ‘집중’을 강조했지요? 우리는 많은 것을 ‘오케이’ 수준으로 만들기보다 이 세 가지를 ‘완벽하게’ 이루기 위해 정말 노력하고 집중합니다.”

―왜 단순함이 중요한가요?

“단순함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성공 요인입니다. 특히 모바일일수록 단순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찍기만 하면 바로 창(feed)에 사진이 실시간으로 올라갑니다.”

―스티브 잡스도 단순함을 굉장히 강조했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이야기를 꺼내니 그는 눈빛을 반짝이면서 테이블 쪽으로 몸을 당겼다.)

스티브 잡스가 인스타그램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서비스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단순함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요?

“몇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인스타그램 첫 버전을 만드는 데 8주가량 걸렸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스크롤을 얼마나 빠르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최적화하는 데 무려 3주를 보냈습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스크롤하고 멈추고 반응해야 하는데 우리 뜻대로 안 됐어요. 리뷰할 때마다 만족스럽지 못해 불행하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3주나 걸려 우리는 ‘오, 인스타그램이 제대로 작동하네!’ 하는 말을 했습니다. 드디어 사용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상황에 이른 것이지요.

비디오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손끝 하나로 앱을 움직이고, 당신 스스로 정말 자연스럽다고 느끼며, 당신이 실제로 앱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까지 우리 엔지니어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은 아마추어들도 프로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함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름다워야 비로소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사진을 공유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당신의 관중이니까요.”

트위터의 2배 제시한 페이스북 택해

그는 이번에 비디오 인스타그램을 내놓으면서 ‘시네마’ 기능을 추가했다. 비디오 과학자들과 의기투합해서 만든 흔들림 보정 기술이다.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면 손 떨림으로 화면이 흔들리기 마련인데, 시네마 기술을 이용하면 마치 고성능 카메라로 촬영한 것처럼 안정적인 화면으로 바뀐다.

인스타그램은 수익을 전혀 내진 못했지만, 사용자는 꾸준히 늘었다. 가능성만 있으면 당장 돈을 못 벌어도 버틸 수 있는 곳이 실리콘밸리였다. 페이스북에 인수되기 직전, 회사 가치는 벤처캐피털이 평가한 5억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 당시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아이폰 유저 중에서만 3000만명 이상으로 불어났고, 안드로이드용 인스타그램도 막 출시한 상황이었다. 이때부터 트위터와 페이스북 양쪽으로부터 적극적인 인수 제안이 들어왔다. 그는 페이스북을 택했다. 페이스북이 제안한 인수 대금 10억달러는 트위터의 2배 수준이었다. 게다가 트위터는 전액 주식을 제안했던 반면, 페이스북은 현금 3억달러가 포함돼 있었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인수한 뒤에도 독립 경영을 보장해 시스트롬이 CEO로 남았다. 공동 창업자 마이크 크리거는 수석 엔지니어를 맡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빅 3’ 모두와 인연

시스트롬은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세 군데 모두와 인연이 있다.

페이스북과 맺은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스트롬은 스탠퍼드대 3학년 시절 ‘포토박스’라는 웹 기반 사진 공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당시 사진 공유 기술을 개발 중이던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CEO는 스탠퍼드 인맥을 통해 시스트롬에게 학업을 중단하고 페이스북에 와서 일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시스트롬은 저커버그의 제안은 거절했지만, 둘은 인연을 계속 이어갔다.

또 시스트롬은 대학 시절 트위터의 전신인 오데오라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의 바로 맞은편에서 일했던 사람이 잭 도시 트위터 공동 창업자이다. 잭 도시는 시스트롬이 창업한 뒤 개인적으로 출자했고, 시스트롬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시스트롬이 페이스북 인수를 택한 뒤엔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시스트롬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으로 택했던 곳으로 2년 정도 일했다.

―인스타그램은 아직도 수익 모델이 없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요. 기업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면밀히 따져보고 있어요.”

“메신저 통합 기술 내놓으면 빅히트 칠 것”

―부자가 되고 나서 개인적인 삶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요?

“그러고 보면, 제 삶도 참 단순한 것 같습니다. 비즈니스 외에는 가족과 여자 친구를 돌보는 데만 신경을 씁니다. 예전엔 스트레스를 풀려고 디제이(DJ)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 그마저도 못 하고 있군요. 저는 계속해서 내 삶을 정말 더 적은 몇 가지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일과 여자 친구와 가족 정도. 저는 더 적은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I’m a big believer in doing a few things better).

―인터넷 분야에서 다음 메가 트렌드는 무엇일까요?

“저는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아직 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갈수록 우리는 분절되고(fragmented)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씁니다. 한국에서는 무슨 메신저를 쓰나요? 카카오톡을 쓴다고요? 미국에서는 와츠앱부터 페이스북 메신저까지 또 다른 것을 씁니다. 이건 정말 철저하게 나뉘어 있어요. 이메일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서비스 회사에서 만든 이메일 계정이라도 다 통했습니다. 지금은 음성 통화할 때, 문자 보낼 때, 길게 대화할 때, 짧게 대화할 때 쓰는 서비스가 각각 다릅니다. 이걸 해결하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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