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부자 서열 47위 '디엔에이' 창업자, 난바 도모코

입력 2013.06.29 03:05

日서 당대에 가장 돈 많이 번 여성
"컨설팅? MBA? 직접 창업해보니 다~ 쓸모없더라"
컨설턴트로 잔뼈 굵은 하버드 MBA 출신
모바일 게임 장터 서비스… 벤처 신화의 주역으로
"옆에서 조언하는 것과 실제 사업은 전혀 달라
나중에 경영 잘 하겠다고 MBA 스쿨 간다는 사람 말리고 싶네요"
"우즈 되기 위해 레슨 프로부터 해보는 건 시간 낭비"
경영자와 컨설턴트는 가는 길이 다르다
경영자, 제한된 정보로 결정할 때 있지만 컨설턴트는 자료 갖춰질 때까지 안움직여
무엇이든지 3가지로 압축하려 하고 자명한 걸 굳이 차트로
그리고 돈 감각 없지만 듣기 좋은 얘기 잘해
MBA 다닐 때 딱 한번 "와우" 해봤다
학교서 가르치는 건 대부분 상식… 수준 좋은 인맥 만들기 위해 간다고요?
얼마나 바쁜데 누가 와서 도와주겠나

"컨설팅 회사는 경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영을 잘하려고 MBA 스쿨에 간다고요? 말리고 싶네요."

세계 최고 경영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는 두 곳의 무용론을 설파하는 이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일본 최대 인터넷 서비스업체 '디엔에이(DeNA)'의 창업자 난바 도모코(南場智子·51)씨, 일본 여성 중 당대에 가장 많은 돈을 번 인물이다. 5억4500만달러(약 6300억원)의 자산을 가진 그는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일본 최고 부자 베스트 50' 랭킹에서 47위에 올랐다. 그를 포함해 여성 4명이 순위에 포함됐는데, 다른 3명은 유산을 물려받은 경우이다.

"컨설팅 회사와 MBA가 필요 없다"는 그의 주장이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의 이력 때문이다. 그는 24세 때 일본 매킨지 컨설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하버드 MBA를 거쳐 34세 때인 1996년에 파트너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창업을 해보니 MBA 스쿨이나 컨설팅 회사에서 배운 경험들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뭔가를 제안하는 입장이 아니라 정하는 입장이 된다는 게 힘들었다"며 "'해야 합니다'와 '하겠습니다'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컨설턴트가 'A안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판단이긴 하지만,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 경영자가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더군요."

'디엔에이' 창업자 난바 도모코 그래픽
그래픽=정인성 기자

그는 세계 최고 컨설팅 회사의 파트너 자리를 걷어차고 1999년 인터넷 서비스 업체 '디엔에이(DeNA)'를 창업했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내가 생각해낸 사업이나 서비스가 세상에 나와 히트할 때까지 주체적으로 관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컨설팅과 실제 기업 경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각지도 못한 여러 문제에 부딪혔고, 사업을 접을 뻔한 위기도 여러 번 넘겨야 했다.

그의 사업은 2006년 휴대폰용 게임 플랫폼인 '모바게(Mobage)'를 내놓은 이후에야 궤도에 올랐다. 온갖 모바일 게임을 백화점처럼 모아 이용자가 골라 쓰게 하는 일종의 장터다. 2008년 4400억원 수준이던 매출이 작년에는 2조4000억원까지 뛰어올랐다. 직원 2000명이 낸 영업이익이 9000억원에 달한다. 2011년에는 적자에 허덕이던 프로야구 구단 요코하마 베이스타스를 인수하기도 했다.

그는 2011년 6월 암에 걸린 남편의 병간호에 전념하겠다며 사장직을 내려놓았다. 남편의 병세가 호전되자 지난 4월 현업에 복귀, 모리야스 이사오 사장을 도우면서 대외 홍보, 채용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그를 도쿄 시부야의 초고층 빌딩에 있는 디엔에이 본사에서 만났다. 21층에 있는 회의실이었는데, 서울 청담동과 비슷한 오모테산도와 아오야마 명품 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근사한 회사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엘리트 여성이 직접 회사를 차린 뒤에 겪은 말도 못 할 고생담, 그리고 자신이 최고라고 믿으며 쌓아왔던 컨설턴트로서의 경력이 얼마나 쓸모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모아 이달에 '볼품없는 경영(不格好經營·국내 미출간)'이라는 자서전을 일본에서 출간했다.

―하버드 MBA를 나오고 매킨지에서 파트너까지 한 사람이 MBA와 컨설팅은 필요 없다고 얘기하시는 건가요?

"도움이 된 게 없어요. 전~혀. 매킨지에서 컨설팅 스킬은 굉장히 기르게 됐지만, 실제 사업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였습니다. 사업을 하고 나서는 컨설턴트를 고용하지 않습니다(웃음). 내가 나중에 사업을 할 거라는 것을 미리 알고 컨설팅 회사가 아니라 일반 회사에서 일을 배웠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예요."

―하지만 우선 컨설턴트로서 경험을 쌓은 뒤에 기업가가 되겠다는 사람도 많은데요.

"컨설턴트는 말하고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고, 기업가는 실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입장도, 요구되는 자질도 극단적으로 다릅니다. 컨설턴트를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컨설턴트를 한다면 그 분야에서 일류 프로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나아요. '경영자가 되고 싶으니 우선 컨설턴트부터 해보겠다'는 것은 '타이거 우즈가 되고 싶으니 우선 레슨 프로부터 해보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컨설턴트와 경영자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담력이 아닐까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택한 결정을 올바른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합니다. 리더의 담력은 팀의 경쟁력으로 바로 연결돼요. 클라이언트에게 도움이 됐는지, 깊은 인상을 줬는지에 목숨을 거는 컨설턴트 출신으로서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죠. 컨설팅 회사는 담력을 기를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그는 불완전한 정보에 기반을 둔 신속한 결정이 충실한 정보에 기반을 둔 느린 결정보다 몇 단계 위라는 것도 몸으로 익혔다고 했다. "컨설턴트는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해 분석하지요.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정보의 순도를 계속 높여나가는 것은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서면 완전히 무의미해요. 그런 일로 타이밍을 놓친다면 회사에 엄청난 죄를 짓는 겁니다."

도쿄 시부야의 디엔에이 본사 로비에 선 난바 도모코 디엔에이 창업자.
도쿄 시부야의 디엔에이 본사 로비에 선 난바 도모코 디엔에이 창업자. 모바일 게임회사라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더니, 본인이 알아서 온갖 포즈를 다 잡아 줬다. / 도쿄=최원석 기자

난바 도모코 디엔에이 창업자는 컨설턴트와 경영자의 또 다른 결정적인 차이로 현금 감각을 꼽았다.

"자금 사정이 어려운 회사가 대형 컨설팅 회사의 클라이언트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인지 컨설턴트들은 현금 감각이 둔한 편입니다. 경비를 풍족하게 쓰는 데다 봉급도 많이 받아서인지 낭비벽도 있어요. 돈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모르다가 창업하는 건 큰 핸디캡입니다. 저도 이익보다 전략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버릇을 고치려고 지금까지 애를 쓰고 있어요."

―컨설턴트에게 안 좋은 버릇 같은 게 또 있을까요.

"컨설턴트 중에는 최대한 유능하게 보이고 아는 척하려는 자세가 몸에 익은 사람이 아주 많아요. 사업에는 일원어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회사 경영은 아수라장에서 매일같이 구르는 일이에요. 자신이 바보라는 것을 밝히고서라도 도움을 구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합니다. 또 컨설턴트들은 고객사에서 누가 핵심 인물인지 재빨리 파악하고, 그 사람이 듣기 좋은 얘기를 많이 해 제안이 잘 받아들여지도록 수완을 발휘합니다. 결정권자가 이런 것에 속으면 안 되는 거죠."

그는 "컨설팅 회사에서 우수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논리적 사고인데, 디엔에이를 세우고 나서는 회사란 논리적인 사람만으로는 조금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칭 매킨지의 에이스 3명이 1년 안에 수익을 내겠다고 선언하고 회사를 만들었는데, 실제로는 4년간 줄곧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했어요. 회사란 논리적인 사람 이외에 다양한 부분에서 뛰어난 사람이 필요해요."

―컨설턴트 출신은 정말 한 명도 뽑지 않나요?

"아뇨. 뽑긴 해요. 컨설팅 경험을 평가해서가 아니라 컨설팅 업계 자체가 인재 유동성이 높은 인재 공급원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뽑을 경우에는 가능한 한 컨설팅 업계에 물들지 않은 인재를 뽑으려 합니다. 그리고 컨설턴트와 실제 사업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고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얘기해 줍니다.

첫째, 무엇이든 세 가지로 요약하려고 기를 쓰지 않는다. 어떤 것이 반드시 세 가지로 정리돼야 할 필요는 없다. 둘째, 중요 정보는 서류가 아니라 머릿속에 새겨둔다. 셋째, 자명한 것을 굳이 차트로 그리지 않는다. 넷째, 사람을 평가해 가며 술 마시지 않는다. 다섯째, 미팅에 지각하지 않는다."

그는 컨설턴트 시절엔 고객 기업의 약점만 잘 보였지만, 지금은 보통 회사라 해도 사실은 보통이 아닌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돌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매킨지 시절 고객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 부끄럽습니다.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라도 하고 싶어요."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까지? 그는 창업 초기 겪은 실패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계 게임 업체 비교
인생 최대의 패닉

그는 1999년 3월 도쿄 시부야에 회사를 설립했다. 첫 사업은 인터넷 경매 사이트였고, 연내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 도쿄 긴자에 있는 제휴사에 가서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 12시간 동안 서비스의 골격에 대해 토론하고, 서둘러 시부야 회사로 돌아온 뒤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 내에 전날 밤 결정된 것을 사양서로 정리해 다시 긴자로 가 토론하는 식이었다. 하루에 1시간밖에 자지 않는 생활이 이어졌다.

개발로 눈코 뜰 새 없을 때 출자를 약속한 소니 본사 법무부에서 편지가 배달됐다. 자본금을 보내 주기 전에 디엔에이의 사업이 어떤 특허도 침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만약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를 난바 도모코 개인이 전액 변상한다는 계약서에 사인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편지를 들고 바로 특허사무소로 갔다. "선생님, 이 작업 좀 처리해 주세요. 전 시간이 너무 없어요"라고 했다. 특허사무소의 변리사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당신 바보입니까?" 변리사는 "난바씨 자신도 자기 사업에 어떤 것들이 사용되고 있고, 어떤 특허를 침해하는지 모르는데, 저보고 판단해서 처리하라는 얘기인가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죠.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상대방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었겠어요?"

어떻게 처리를 하긴 했지만, 시간이 모자라 황급히 소니 측에 전화해서 서비스 개시일을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허락은 받았지만 늦어지는 만큼 출자금 납입도 늦추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난감했다. 자본금이 안 들어오면 자금이 바닥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수난은 계속된다. 개발이 완료되고 테스트가 예정된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만다. 개발 성과물 제로(0), 다시 말해 시스템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개발업체의 N씨에게 "사양서대로 시스템이 잘 개발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겁니까?"라고 물었더니 N씨는 죄송하다며 허둥거릴 뿐이었다. N씨는 규슈(九州)의 자사 개발팀이 일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한 말만 믿은 채 직접 확인하지 않은 것이었다. 실제로는 회사에 분쟁이 있어서 개발팀이 아예 꾸려지지도 않았고, N씨에게는 마치 개발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고만 되고 있었던 것이다.

난바씨는 "제 인생에서 두 번째 패닉이었죠"라고 말했다. 첫 번째 패닉은 매킨지 1년 차 때 아침 9시에 고객사 사장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9시 반에 집으로 걸려온 회사 비서 전화에 잠에서 깼던 것.

두 번째 패닉은 첫 번째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심각했다. 손이 떨려서 컴퓨터 시작 버튼을 제대로 누르지 못할 정도였다. 새벽 4시 반쯤, 집으로 돌아와 자고 있던 남편을 깨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매킨지 시절 상사였던 남편은 세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체념할 필요 없다. 그 정도 예산이라면 천재 엔지니어 3명만 있으면 1개월 내 끝낼 수 있다. 둘째, 출자자들에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빨리 전하라. 절대 줄여서 얘기하지 마라. 셋째, 사기당했다는 말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마라. 사장이 최대 책임자고 가해자다.

결국 개발팀을 다시 꾸려서 한 달 만에 시스템 개발을 완료했고, 1999년 11월 말에 인터넷 경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때 새로 영입한 개발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이렇게 완벽한 사양서는 본 적이 없다"였다. 사양서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만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시스템 개발을 감독하지 못해 일을 그르친 것. 난바씨가 컨설턴트 시절의 버릇을 없애야겠다고 뼈저리게 반성한 계기가 됐다.

MBA가 도움이 안 되는 이유

―MBA는 왜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나요?

"비즈니스 스쿨에서 가르치는 것 대부분이 상식 수준이라는 게 제 느낌이었어요. 이런 것들은 몸으로 체득하는 것과 달리 금방 잊어버리게 되죠. 제가 다녔던 곳은 실제 기업의 케이스를 중시했는데도, 실제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 예를 들어 물건을 판다든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상대방의 협력을 얻기 위해 설득해야 한다든지 하는 상황에선 도움이 안 되는 것이 많았어요."

―정말 도움된 게 하나도 없었나요.

"2년 동안 딱 한 번 '와우'를 외친 순간이 있었어요. 어떤 케이스에 대해 토론할 때였는데, 저는 '케이스에 나와 있는 얄팍한 정보만으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때 '그렇지만 지금 바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지요'라고 클래스메이트에게 일격을 당했죠. 지금 있는 정보만으로 결정해야 하는 회사 관리직 출신의 클래스메이트와, 자료가 갖춰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컨설턴트의 차이를 절감했습니다."

―비즈니스 스쿨에서 좋은 인맥을 쌓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동의할 수 없어요. 도망칠 곳 없이 일에서 부딪쳐 가며 만드는 인맥 이외에는 실제로 사업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경험했으니까요. 자신도 너무 바쁜데 자기 일에서 떨어져나와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인맥 오타쿠'처럼 여기저기 파티에 참석해 명함을 모으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식으로는 도움이 되는 인맥을 만들 수 없어요. 인맥을 만들기 위해 비즈니스 스쿨에 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신이 하는 일과 일에 대한 당신의 자세가 좋은 인맥을 만들 수 있을지를 결정한다'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인재 채용에 전력을 쏟는다

좋은 인재를 뽑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직원 채용은 직접 챙기고 있는데, 최고 인재를 뽑는 비결은?

"테크닉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책략을 배제하고 혼과 마음을 다해 구애(求愛)하듯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좋은 인재를 뽑은 뒤 경영자를 위해 열심히 일하게 하는 데 재주가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직원들이 저를 위해서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건 정말 관심 없어요. 저를 위해 일한다고 제가 무덤까지 편의를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서로 힘든 일이죠(웃음). 누구를 위해서 일하는 것보다 스스로 스테이지를 빛내는 사람이 훨씬 중요해요. 그러려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텐데, 그 부분은 제가 잘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비욘드 구글(Beyond Google·구글을 넘어)'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소셜 게임 플랫폼으로 세계 1위가 되고 싶어요. 스마트폰상의 소셜 게임으로는 디엔에이가 글로벌 넘버원이라는 말을 듣고 싶은 거죠. 그다음 목표는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측면에서도 구글을 넘어서는 회사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지난 2년간은 남편과 함께하느라 회사 일을 좀 쉬었지만, 지금부터는 CEO, COO와 함께 셋이서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소셜 게임과 완전히 다른 큰 사업 모델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네요. 항상 하는 것이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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