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만 安住한 오토바이업체, 內需 30만→9만대로 줄자 문 닫을판

입력 2013.06.15 03:06

'종이 호랑이' 대림車
잘 나갈때 세계시장 진출 소홀···작년 겨우 8000여대 수출···국내 점유율은 51%로 추락
세계를 주름잡는 혼다
작년 全세계 1550만대 판매···한국엔 저가전략으로 공략···최근엔 배달 오토바이도 진출

"이대로 가면 죽습니다."

국내 1위 오토바이 업체 대림자동차의 유기준 사장은 기자와 통화하며 이렇게 말했다. 대림자동차는 30년이 넘도록 내수 시장 1위 자리를 내줘 본 적이 없는 오토바이 시장의 절대 강자다. 작년에도 내수 시장 점유율 51%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유 사장의 말은 엄살인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고 있고, 시장점유율도 여전히 높긴 하지만 계속 추락한다는 데 있다. 대림은 1997년 연간 30만대에 이르던 내수 시장에서 20만대를 팔았다. 그러나 작년엔 8만7000대로 쪼그라든 시장에서 4만4000대를 파는 데 그쳤다. 점유율 1위는 유지하고 있지만, 판매 규모는 4분의 1 이하로 줄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수입 오토바이가 급성장하면서 대림의 시장점유율은 3년 새 65%에서 51%로 추락했다.

유 사장은 한국GM 연구개발 부문 사장 출신인데, 작년 12월 대림자동차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영입됐다. 그는 "그동안 제품도 없었고, 경쟁력도 없었다"면서 "그동안 뒤졌던 것들을 바로잡아 시장을 회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혼다가 대림의 마지막 보루이던 배달용 오토바이 시장에까지 진출하면서 목을 조이고 나섰다. 국내 배달용 오토바이 시장은 지난해 2만4000대에 달했고, 대림 판매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런데 혼다가 바로 이 시장에서 정면 대결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 내수 오토바이(스쿠터 포함) 시장에서 수입 브랜드 비율은 32%에 달했다. 2009년 13%이던 것이 3년 새 급상승한 것이다. 더 싸고 더 좋은 수입 제품이 밀려들어 오면서 수입 브랜드 점유율이 40~50%를 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토바이 내수시장 추이, 판매량 그래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실패 원인 1: 내수에 안주해 세계시장을 놓치다

한국에는 대림자동차와 S&T모터스(구 효성기계공업)라는 양대 오토바이 회사가 있지만, 그 어느 쪽도 글로벌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자동차 업계와는 대조적이다.

한국의 1등 자동차 회사인 현대·기아차는 작년에 714만대를 만들어 이 가운데 85%를 해외에 팔았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9%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1등 오토바이 회사인 대림자동차는 작년에 5만2000대를 만들어 겨우 8000대를 해외에 팔았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0.1%에 불과하다. S&T도 1만대를 해외에 파는 데 그쳤다.

그러나 전 세계 오토바이 1위 업체인 일본 혼다는 작년에 1550만대를 팔았고, 야마하·스즈키는 각각 609만대, 231만대를 팔았다. 만일 대림이나 S&T가 세계시장을 공략해 현대·기아차처럼 점유율 9%를 차지했다면 450만대를 팔았을 것이다.

대림과 S&T는 왜 이륜차 업계의 현대자동차가 되지 못했을까? 박남태 전 이륜차협동조합 이사장은 "내수에 안주하다가 결국 내수까지 적에게 다 내주게 될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잘나가던 1980년대에 세계시장으로 나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연구 개발이나 해외 진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는 "리더십 부재, 전략 부재, 오래된 독과점 구조, 정부의 무관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내수 시장은 '온실'과 다름없었다고 회고한다. 수입 규제로 해외 경쟁자도 없었고, 물건은 만들면 팔릴 만큼 시장 상황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대림자동차는 기술 제휴처 혼다와 관계가 끝나던 1990년대 말까지도 독자 기술 개발에는 소홀한 채 내수에 안주하게 된다. 자동차 업계에선 현대자동차가 1974년 첫 고유 모델 포니 때부터 독자 개발에 온 힘을 쏟고, 1990년대 초부터 적극적인 해외 생산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간 것과 정반대였다.

그러다 2003년 오토바이 수입 규제가 사라지자, 중저가품은 중국·대만산, 고가품은 일본·유럽산이 밀고 들어오게 된다. 내수를 나눠 갖던 대림과 S&T 두 업체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규모의 경제와 기술력 둘 다 갖춰 놓지 못했기 때문에 저가품과 고가품 양쪽에서 대응이 어려워졌고, 당연히 판매가 줄어들었다. 판매가 줄어드니 더욱더 연구 개발에 재투자를 못 하게 됐고, 수입차를 압도할 만한 신제품을 새로 내놓지 못하게 됐다.

실패 원인 2: 급증하는 레저용 시장에 대처 못하다

국내 업체들은 레저용 오토바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대두도 내다보지 못했다.

대림자동차는 외환 위기 이후에 오토바이 시장이 오히려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자들의 소득이 줄어들면서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이 늘어나고, 퇴직자들의 자영업 진출이 늘어나면서 상용·배달용 오토바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시장은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한국 오토바이 시장은 1997년 30만에서 1998년 14만대로 순식간에 절반 이하로 줄어버렸고,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는 이마저 줄어 9만대 수준에 불과한 상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수요가 급증한 시장이 있었는데, 바로 레저용 고가(高價) 오토바이 시장이었다. 그리고 커진 시장의 열매는 고스란히 BMW나 할리데이비슨 등 구미 업체들 몫이 됐다. BMW는 2009년 485대에서 작년 1107대로 3년 만에 128% 성장했다. 할리데이비슨도 2009년 795대에서 1072대로 35% 성장했다. 이 두 회사 제품은 대당 평균 단가가 1500만~2000만원에 달할 만큼 고가이지만, 국내 고소득 계층의 확대와 레저 붐을 타고 판매가 계속 늘고 있다.

그러나 대림자동차는 내수 판매의 절반이 배달용 오토바이일 만큼 제품군이 상용에 집중돼 있었고, 자체 개발한 엔진도 125cc급 소형에 불과했다. 따라서 500cc나 1000cc급 중대형 엔진이 기본인 고급 레저용 오토바이 시장은 아예 손도 댈 수 없었다.

고급 레저용 오토바이의 내수 판매 규모는 아직 4000대 수준으로 전체 시장의 5%에 불과하지만, 소형 스쿠터에 비해 가격이 10배나 되기 때문에 판매 금액으로 환산해 보면 이미 전체 시장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셈이다. 이런 큰 시장을 국내 업체들이 거의 손을 못 대고 있다는 얘기다.

S&T는 국내 최초로 700cc급 엔진을 개발하는 등 대림보다 레저용 시장 대응이 기민했지만, 브랜드의 힘이나 규모의 경제 면에서 해외 업체를 당해내기가 어려웠다.

실패 원인 3: 혼다의 저가 시장 공략에 대응 못하다

혼다가 고가 전략 대신 중저가 대량 판매 전략을 선회하면서 대림과 S&T에 큰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 2008년 한국 시장에 3600대를 팔았던 혼다는 2009년 1900대 수준으로 판매가 추락한다. 일본산을 위주로 한 혼다의 고급 제품들이 BMW나 할리데이비슨에 밀려 판매가 줄자 동남아·태국산 대표 모델을 한국에 출시해 대림이나 S&T 제품과 격돌한다는 구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전략에 맞춰 2010년 한국에 선보인 혼다의 PCX는 국내 업체의 텃밭인 125cc급 스쿠터이면서도 작년에 2000대가 팔릴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혼다는 여세를 몰아 올 7월에 배달용 오토바이 수퍼커브 110cc 모델을 들여온다고 발표했다. 200만원대 초반으로, 국내 모델과 가격 차는 20만~30만원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혼다는 수퍼커브를 연간 5000~6000대 가량 판매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가 실현된다면 단숨에 국내 배달용 오토바이 시장의 4분의 1을 잠식하게 된다.

나윤석 자동차 칼럼니스트는 "야마하 등 다른 일본 업체의 중국·동남아산 모델도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수십만 대에서 백만 대 규모의 생산 체제를 갖춘 대만 업체 제품까지 시장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면서 "국내 업체들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앞으로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 세계 오토바이 시장은 현재 연간 5000만대, 70조원 규모로 추산되며, 신흥국을 중심으로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 매력적인 제조업에서 한국이 이대로 도태된다면 국가 경제에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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