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으로 죽었다… 인터넷으로 부활

입력 2013.04.27 03:04

[Cover Story] 브리태니커는 어떻게 살아남았나

244년 전통의 백과사전… 과감하게 출간 중단 선언
온라인 교재 시장 개척… 美 초·중·고 40%에 공급

1978년 백과사전 중 최초로 디지털 작업… CD롬 백과사전, MS보다 4년 앞서 제작
위키피디아보다 무려 7년 전에… 세계 최초 온라인 백과사전 만들어
검색 포털도 1997년 구글 이전 개설

회사 중앙부처 아닌 주변부서 이뤄져
백과사전이 날개 돋친 듯 팔릴 땐… 누구도 그런 새로운 실험 주목 안 해
첨단 기술 갖고도 진정한 혁신 못해… 결국 뉴미디어 쓰나미에 밀려났었다

新版 만들다
맞춤형 온라인 교재 新시장 개척
백과사전도 온라인으로 구독료 받아

絶版 시켜라
'팩트' 없는 '루머'의 바다에
떠있는 든든한 섬이 돼라… 유료화 관건은 고품질 상품

커버스토리 브리태니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전집을 서가에 꽂아 놓고 지식욕을 과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총 32권짜리 백과사전 양장본은 참고 문헌의 경전과도 같았다.

그러나 1990년대 PC와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백과사전은 퇴물이 됐다. 무료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의 등장은 백과사전의 몰락을 재촉했다. 브리태니커 양장본 세트는 1990년 전 세계에서 12만질이 팔린 것을 정점으로, 1996년 4만질, 2010년 8000질로 판매가 곤두박질쳤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200만원 가까이에 팔리던 브리태니커 양장본 전집은 요즘 인터넷에서 택배비 포함 5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미국 브리태니커 본사는 급기야 지난해 3월 244년 전통의 백과사전 출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세인들은 '한 시대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그 후 1년, 미국 시카고의 인사이클로피디아 브리태니커 본사를 찾아갔다. 브리태니커는 죽지 않았다. 건재했다. 작년 매출이 오히려 전년 대비 18% 늘었다. 브리태니커는 초중고 대상의 온라인 교재(敎材)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흑자를 내고 있었다. 백과사전은 온라인으로 전환해 구독료를 받는다. 이 회사는 매출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2011년 매출이 2억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 30여년간 브리태니커의 경험은 전통 산업이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도전을 맞아 어떻게 싸우고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드라마의 하나일 것이다. 이 회사의 호르헤 카우스(Cauz·48) 사장(CEO)은 1시간 30분 동안 봇물 터진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는 컨설팅 회사인 AT커니에서 미디어 담당 컨설턴트로 근무하다가 1996년 브리태니커를 인수한 스위스인 사업가에게 재무책임자(CFO)로 영입됐고 2003년 CEO가 됐다.

―지난해 백과사전 절판 발표 때 사람들은 브리태니커가 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더 잘나가고 있는 건가.

"오프라인 백과사전 출판 중단은 1996년 내가 브리태니커에 처음 왔을 때 이미 논의되고 있었다. 사실 1990년대 초반 브리태니커 스스로가 백과사전을 CD롬에 담아 공급하기 시작할 때부터 종이판 절판은 예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말 우린 교육 사업으로 전환했다. 2000년대 중반 교재 판매 등 교육 분야 매출이 백과사전 판매 매출을 추월했다. 지금은 전체 매출의 85%가 교육 사업에서 나온다. 유료 온라인 백과사전 구독료도 꾸준히 늘어 매출의 15%를 차지한다. 오프라인 사전 판매 매출은 이미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기에 출판 중단은 사업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탈(脫)출판'을 준비해 왔다는 얘긴가.

"그렇다. 물론 더 빨리 대응해야 했다. 1990년대까지 우리는 외판원 2000명이 전국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자녀들이 학생이죠? 아이들에게 백과사전을 사주세요. 공부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하고 주문처럼 외고 다녔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CD롬 백과사전이 이미 보급된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사실 인터넷보다 CD롬 백과사전이 우리에게 결정적 타격이었다. 오프라인 백과사전에 더는 미래가 없음을 깨달은 1990년대 중반, 판매 인력을 줄이고 IT 기술자를 충원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본사 건물에도 외판원이 수백명 근무했으나, 지금은 없다. 현재 본사에 근무하는 400명 중 250명은 IT 기술자다."

―왜 교육 사업에 진출했고, 어떤 전략을 폈나.

"참고서 시장은 방대한 규모에 비해 소수 업체가 과점(寡占)하고 있다. 미국에선 맥그로힐·피어슨·허프튼미핀사(社)가 시장의 80%를 점유해 왔다. 한국·일본의 사정도 비슷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교과서보다 아이패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훨씬 많다. 학생 입장에서 책으로 수학을 배우는 것과 아이패드로 배우는 것이 같을 줄 아는가. 그런데 전통 참고서 업체들은 여전히 책에만 매달리고 변화에 대응이 늦다. 브리태니커는 디지털 미디어에 일찌감치 적응해 왔고, 디지털 미디어와 비교해 종이 책의 단점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점을 파고들었다. 우리가 개발한 초·중·고 온라인 보조 교재 '브리태니커 스쿨' 세트는 커리큘럼 개인화 기능으로 학생마다 맞춤형 학습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우리 온라인 수학 교재 '스마트 매스'에 로그인해 수학 문제를 푼다. 이 학생의 오답률이 일정 비중을 넘으면 사이트가 자동으로 난이도를 조절해 기초 개념 풀이 문제를 내준다. 문제를 다 맞힐 경우 다음 연습 문제 세트는 난도를 한 단계 올린다."

브리태니커의 수익 구조
결국 브리태니커는 자신을 찌른 바로 그 '인터넷'이란 칼로 다른 전장(戰場)으로 진출해 과거의 브리태니커처럼 타성에 젖어 있던 다른 공룡들을 공격한 셈이다. 카우스 사장은 "미국 전체 초·중·고등학교의 40%에 브리태니커 교재가 보급돼 있다. 한 학군 전체 또는 한 주(州) 교육청과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매출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희생은 컸다. 방문 판매 등 세일즈 부서를 크게 줄이면서 4000명이 넘었던 인력이 1200명으로 줄었다. 현재 매출은 오프라인 사전의 전성기였던 1990년(6억5000만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요즘 기업들은 모두 서비스 혁신, 제품 혁신을 외쳐 댄다. 하지만 진정 혁신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브리태니커는 혁신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브리태니커는 새로운 시장을 공략해 간신히 살아남는 데는 성공했지만, 현재 매출 수준은 전성기 때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브리태니커에도 기회는 있었다. 1978년 백과사전 중 가장 먼저 디지털 작업에 착수했고, 1989년 마이크로소프트보다 4년 앞서 CD롬 백과사전을 제작했으며, 위키피디아보다 7년 앞서 세계 최초의 온라인 백과사전을 만들었다. 1997년엔 구글과 비슷한 지식 검색 포털 '이블래스트(E-Blast)'를 개설하기도 했다. 기회만 잘 살렸다면 지금 브리태니커가 '구글 + 위키피디아'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에 대해 호르헤 카우스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다. 우린 여러 번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다. 그는 아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런 실험은 대부분 회사의 중앙 부처가 아닌 주변부에서 이뤄졌다. 백과사전이 날개 돋친 듯 팔릴 당시엔 누구도 그런 새로운 실험에 주목하지 않았다. 백과사전을 CD롬으로 만들고도 종이 백과사전 전집을 구매하지 않는 한 CD롬을 따로 구입할 수 없게 하기도 했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려고 헛수고한 것이다. 최첨단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결국 뉴미디어라는 쓰나미가 덮쳐왔고 우린 밀려났다. 하지만 덕분에 얻은 교훈이 있다.

비즈니스에는 어느 순간 실험을 그만두고 진짜 시장에 나가 완전히 전념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교육 사업이 바로 그렇다. 이제 우린 더 이상 실험하지 않는다. 더 이상 주의가 흐트러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종이 백과사전 출판이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뜨린다고 판단했을 때 절판을 결정한 것이다."

◇'구글+위키피디아'가 될 수도 있었던 브리태니커, 여러 번 기회를 놓치다

―오프라인 백과사전 절판 발표 후 1년이 지났다. 1년간 무엇이 달라졌나.

"대부분 예상했던 대로였다. 백과사전 절판 발표는 고객들에게 브리태니커가 과거와 두 가지 점에서 달라졌다는 점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첫째, 브리태니커는 더 이상 사전 회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우리의 초점은 교육과 학습이다. 둘째, 브리태니커는 디지털 회사라는 점이다."

―백과사전은 브리태니커 브랜드의 상징이다. 회사의 핵심 상품을 없앤다는 건 존재 가치에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는데.

"아니다. 백과사전, 혹은 종이책 전집이 브리태니커의 핵심이 아니다. 우리 브랜드의 핵심은 '전문가들이 사실에 근거해 기술하고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는 콘텐츠'이다. 브리태니커는 종이로 인쇄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향하는 가치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브리태니커에 몸담은 17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결정은 무엇이었나.

"표적 고객을 성인에서 학생·어린이 층으로 전환한 결정이다. 온라인 교육 업체로 체질을 바꾸면서, 백과사전에 담은 방대한 양의 성인용 콘텐츠를 학생들 눈높이에 맞게 낮춰주는 작업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백과사전 시절 '수동적 제공자'에서 이제 '적극적 관찰자'로 태도를 바꾸는 것도 힘들었다. 예전엔 책을 찍어내 팔기만 하면 끝났는데 이젠 끝없이 고객을 관찰하고 소통해야 한다."

브리태니커 판매량과 위키피디아 방문자 수
◇"뉴미디어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았다"

―1996년 브리태니커에 스카우트됐다. MBA 출신 재무 전문가로 출판계 경험이 없었는데, 200년 넘은 출판사의 존망을 책임지게 됐을 때 막막하지 않았나.

"컨설턴트 시절 미디어 업계를 주로 맡아왔기 때문에 처음엔 자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웬걸, 브리태니커가 직면한 도전은 상상 이상이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뉴미디어 기술의 '풀 파워(full power)'를 온몸으로 얻어맞은 최초의 매체였다.

마음을 비우고 진실과 마주했다. 우리는 종이책을 파는 게 아니라 지식을 파는 매체라는 것을 떠올렸다. 마치 신문사가 단지 신문을 파는 게 아니라 진실하고, 강력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팔 듯이 말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소비자는 그 지식과 정보를 갈구하는 것이지, 종이 자체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새삼 깨달은 순간 다시 미래가 보였다. 더구나 젊은 세대는 책보다 모바일 기기를 선호한다. 바로 거기가 우리 승부처였다."

―왜 교육 사업을 선택했나. 어떤 기회를 포착했나.

"첫째, 교육 업계에선 브리태니커라는 브랜드의 가치가 인정받고 있었다.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양질의 콘텐츠와 그렇지 않은 콘텐츠 사이의 차이를 알아본다. 둘째, 온라인과 디지털로 탈바꿈한다는 우리 목표에 걸맞은 시장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교재·참고서 시장은 온라인으로 진화 속도가 매우 더딘 편이어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다.

사실 애초 백과사전의 뿌리가 교육에 있다. 1751년 계몽주의자 디드로가 백과사전을 처음 집필했을 때 목적이 민중의 교육이었다. 원래의 가치를 되찾아 간 셈이다. 브리태니커의 목표는 항상 '전문 지식의 정확한 전달'이다. 세상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캐주얼 러너(casual learner· 일상적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사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도 큰 시장이 있다고 본다. 전문 지식인들의 노동과 열정의 생산물을,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즐기도록 할 수 있을까?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린 더 많은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브리태니커와 지식 산업의 다음 기회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브리태니커의 최고경영자 호르헤 카우스
2003년 브리태니커의 최고경영자에 취임한 호르헤 카우스는 뉴미디어 시대 퇴물 취급받았던 회사를 온라인·디지털 기업으로 체질을 바꿔놓았다. 그는 “신문이나 책 등 인쇄 매체의 핵심은 종이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지식”이라며 “그 지식을 찾는 소비자 층은 여전히 두텁다”고 말했다. / 브리태니커 제공

◇"수요자들, 언젠가 고품질 콘텐츠로 돌아올 것"

―콘텐츠 유료화는 세계 언론사의 화두이기도 하다. 유료화 성공의 필수 조건은 무엇인가.

"우리도 아직 해답을 찾아가는 단계다. 온라인 백과사전 시장에서 우리의 점유율은 위키피디아에 비하면 10% 이하다. 이것을 단계적으로 15%, 20%로 키워가는 것이 목표다. 유료 콘텐츠 판매의 관건은 '어떻게 하면 독자가 내년에도 우리 콘텐츠를 구독하게 만들까'인 것 같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고품질 상품을 계속 제공해야 한다. 고품격 지식 브랜드를 추구하는 소비자층은 분명 존재한다. 교육 수준이 높고 교육과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런 경향을 보인다."

―신문업계도 당신이 겪은 고민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은 인터넷에서 보는 건 무조건 공짜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며, 대형 포털들이 일조한다.

"사정은 어디나 비슷하다. 처음 인터넷이 출현했을 때 '전문가들이 만든 고품질 콘텐츠'가 더 널리 보급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현실은 콘텐츠 제공자들이 오히려 예전보다 힘들어지고 있다. 권력의 집중이 기형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요즘 온라인 권력은 콘텐츠 제공자가 아닌 플랫폼 제공자에게 집중됐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각종 포털 사이트 말이다. 플랫폼 제공자는 전문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다. 주로 IT 기술이 뛰어난 괴짜(geek)들이고 콘텐츠에 대해선 무심하다. 플랫폼이 다양한 사용자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한, 그 내용이나 질에 대해선 크게 신경 안 쓴다. 전문가의 강력한 목소리가 점점 약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수요자들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뉴미디어 시대 초기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고 나면 수요자들도 여러 콘텐츠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특히 텍스트 콘텐츠의 경우 그 차이가 분명하다. 브리태니커 온라인 구독률이 매년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확한 지식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팩트'란 아주 중대한 문제다. 브리태니커는 팩트 없는 루머의 바다에 떠 있는 든든한 섬이다. 신문업계도 핵심은 우리와 같다고 본다."

―현재 브리태니커의 최대 위협은 뭔가, 역시 위키피디아인가.

"위키피디아는 기회다. 위키피디아 웹사이트 방문객들은 곧 우리의 시장이다. 지금 우리에게 최대 위협은 뛰어난 IT 교육 솔루션을 개발하는 작은 벤처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혁신가이며 잠재적 '게임 체인저'다. 또 다른 위협은 현대인들의 지식에 대한 몰이해다.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무는 집중력이 짧아진 세대를 상대하는 비법을 빨리 파악하는 것이다."

호르헤 카우스 사장은 한국의 미디어·출판 시장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인터뷰 중간중간 기자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한국의 신문 구독률은 얼마나 높은가?" "만화책 스캔본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만화 시장은 어떻게 됐나?" "일본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나란데 어떻게 신문·잡지·만화 등 올드 미디어가 여전히 건재한가?" 그는 눈을 반짝이며 조만간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아시아를 방문하겠다고 말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1768년 스코틀랜드에서 앤드루 벨 등이 초판 3권을 간행한 후 244년 동안 15차례 개정판을 펴냈다. 1920년 미국 시카고 기반의 시어스로벅사(社)가 소유권을 사들인 뒤 1941년 본사를 시카고로 이전했다. 1996년에 경영난으로 스위스인 사업가 자키 사프라에게 인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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