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 'F1', 왜 빨리 닳는 타이어를 의무화했나

입력 2013.04.06 03:00

전세계 TV 시청자 6억명… 스폰서 줄어들자 흥행 전략 새로 짜
무른 타이어로 흥행유도 역발상
50바퀴 총 300㎞ 달리는 동안 최소 두 번 이상 타이어 교체
그 자체로 화려한 퍼포먼스
한 번 섰다 재출발하는 과정서 순위 뒤집히는 경우 많아
우등생 계속 1등 힘들게 해
접지력 감소 장치와 운동에너지 재사용 시스템 한꺼번에 사용 가능하도록
새 제도 도입… 경쟁 유발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 'F1(Formular1)'은 올해 경기부터 경주에 참가하는 모든 팀이 '더 빨리 닳는 타이어'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빨리 닳지 않는 타이어'가 아니고 말이다.

F1이 타이어 규정을 바꾼 것은 흥행 때문이다. 타이어가 빨리 닳으면 경기 중에 타이어를 교체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관객의 흥미가 배가된다.

F1에 타이어를 단독 공급하는 회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피렐리(Pirelli)사다. 피렐리의 폴 헴베리 모터스포츠 디렉터는 "F1의 요청을 받아들여 올해부터 F1에 사용되는 타이어의 지면과 닿는 부분을 더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코너를 더 빨리 돌아도 견딜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대신 일정한 거리를 달리면 바닥이 심하게 닳기 때문에 처음 냈던 성능이 급격히 떨어진다. 이 때문에 약 50바퀴 총 300㎞를 달리는 동안에 최소 두 번 이상은 반드시 타이어 교체를 위해 '피트스톱(Pit Stop)'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피트스톱이란 경주차가 정해진 장소(Pit)로 들어와 멈추는 것을 말한다. 이때 20여명의 정비 요원이 한꺼번에 차에 달려들어 타이어를 바꾸고 연료를 보충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피트스톱 그 자체가 관객에게 화려한 퍼포먼스로 비치는 데다 한 번 섰다 재출발하는 과정에서 순위가 뒤집히는 경우가 많아져 보는 재미가 커진다.

피렐리사는 작년에 자사의 기술력을 집결해 내구성이 뛰어난 타이어를 공급했다가 그런 전략이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결과 전년보다 1번의 경기당 전체 참가팀의 피트스톱 횟수가 평균 56회에서 50회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보는 재미가 줄었다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최근 모터스포츠 업계에서는 F1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F1의 전 세계 시청자는 5억~6억명으로 추정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가 이어지면서 스폰서가 줄어들고 있다. 2010년까지 BMW·혼다·도요타 등 굵직한 자동차 회사들이 F1에서 철수했고, 현재 11개 팀 가운데 대형 자동차 업체는 르노·벤츠·페라리 3개 팀밖에 안 된다. 이 가운데 또 철수하는 팀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유럽의 F1 전문 저널리스트 로저 베노이트는 "현재 F1 각 팀의 재정 상태가 바닥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F1을 좀 더 재미있는 볼거리로 만들어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됐고, 그 고민의 결과 나온 것이 이번 타이어 전략인 것이다.

◇우등생이 계속 1등 하기 어렵게 만들어

F1의 흥행 부진에 일조한 것은 잘하는 몇몇 팀이 우승을 독식한다는 것이었다. F1 시청자들은 F1 경기가 몇몇 엘리트들이 서로 재주를 뽐내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우등생도 자칫하면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고, 꼴찌만 하던 열등생도 얼마든지 톱으로 올라설 수 있는 상황, 어느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 환경이야말로 F1 시청자들이 늘 겪는 일상이고, 점점 더 치열해지는 글로벌 환경 속에서 각축하는 기업들의 일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감정 이입이 가능하다. F1 운영회사인 FOA가 우등생이 계속 1등 할 수 있는 구조를 깨뜨려 보자는 발상을 하게 된 이유다.

F1에 참가하는 11개의 레이싱팀에겐 변화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해 왔던 팀들에게는 재앙일 수밖에 없다. 작년 F1 전체 시즌 우승 드라이버였던 세바스티안 페텔은 "바뀐 타이어 전략에 충분히 대비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털어놓았다.

'우등생'이 고민할 것은 바뀐 타이어 전략뿐이 아니다. 작년부터 '접지력 감소 장치(Drag Reduction System·DRS)'와 '운동 에너지 재사용 시스템(Kinetic Energy Recovery System·KERS)'라는 두 가지 장치를 한꺼번에 사용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우등생이 1등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접지력 감소 장치란 경주용차 뒤쪽에 달린 날개의 각도를 조절해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이는 장치이다. 뒷날개는 앞쪽에서 강한 공기 저항을 받으면 차량을 바닥으로 누르는 힘을 발휘한다. 접지력이 높아져 코너에서도 더 빨리 돌 수 있게 된다. 이때 직선 주로에서는 바퀴의 회전 저항을 높여 속도가 떨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때 접지력 감소 장치를 이용하면 이 같은 저항을 줄여 순간적으로 시속 10~12㎞의 속도를 더 낼 수 있다. 그러나 특정 구간에서만, 그것도 앞서가는 차량과의 격차가 1초 이내에 있어야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어 두 대가 접전을 벌일 때만 유용한 기능이다.

운동 에너지 재생 시스템이란 하이브리드카의 원리와 비슷하다. 제동 과정에서 발생한 열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배터리에 저장해 놓았다가 모터를 돌리는 데 사용해 순간적인 출력 향상에 이용한다. 이 장치를 사용할 경우 750마력 수준인 경주차의 최고 출력이 최대 80마력 정도 더 올라간다.

이 두 가지 장치를 동시에 사용할 경우 앞차를 추월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두 경주용 차가 일직선으로 달릴 경우 앞차의 공기저항이 훨씬 크기 마련이다. 따라서 앞차가 공기저항을 받고 있는 사이에 뒷차가 두 장치를 동시에 사용해 갑자기 치고 나갈 경우 앞차가 막아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 관객 입장에서는 물론 더욱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볼 수 있다.

◇압도하거나 빨리 적응하거나

달라진 상황에서 F1 참여팀들에 가장 좋은 전략은 물론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압도해 접전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드라이버의 기량, 피트스톱 전략, 피트스톱 요원들의 타이어 교체 스피드, 경주용차의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면 고통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문제는 얼마나 바뀐 환경에 빨리 대처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 된다. F1 공식 후원사 중 한 곳인 스위스 금융그룹 UBS는 작년 말 낸 F1 전략 보고서에서 'F1은 인생과 마찬가지다. F1의 승부는 모든 변수를 분석한 뒤에 최종적으로 내리는 판단의 속도가 좌우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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