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년 내다본 일관된 車기술 전략… 세계 1위 도요타도 떨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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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3.03.23 03:07

      폴크스바겐의 성공 비결 '레고 블록형 자동차 설계'
      기술노하우·기업문화 집합체… 따라하기도 쉽지 않아
      차를 4가지 분야로 나누고 하위 30개 부품군 만들어
      정해진 콘셉트에 따라 다양하게 조합하면 수천개 다른 차량 제작 가능
      무게 크게 줄면서 연비는 물론 성능 크게 개선

      일본의 자동차 평론가 도쿠다이지 아리쓰네(74)는 1976년 일본에 처음 수입된 폴크스바겐의 해치백 골프를 몰아본 소회를 이렇게 적고 있다.

      '마치 별세계에서 온 차를 몰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일본은 전륜(前輪)구동 소형차는 누구와 붙어도 자신이 있다는 자만심이 가득할 때였다. 하지만 골프는 일본 차와 차원이 달랐다. 충격이었다.'

      40년 전부터 일본을 놀라게 할 만큼 기술을 뽐냈던 폴크스바겐.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고비용 구조를 극복하지 못해 크게 고전했다. 그러나 글로벌 판매 1위 도요타가 요즘 가장 두려워하는 상대는 여전히 폴크스바겐이다.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기술과 제품 전략을 세워 실행해 나가는 능력은 도요타에 맞설 만하고, 브랜드 마케팅 전략은 도요타보다 한두 수 위라는 게 일본 내 평가다.

      ◇10년·20년을 내다본 기술 전략

      폴크스바겐은 자동차의 최고 전문가들이 10~20년 앞을 내다보고 올바른 기술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을 일관되게 밀어붙일 때 나오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다. 최근 글로벌 자동차업계 최대 화두인 '레고 블록형 설계'를 선도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레고 블록형 설계란 다양한 자동차의 설계를 규격화하고 공용화하는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자동차를 차체,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등), 내·외장, 전자 장치의 4가지 분야로 나누고, 그 하위 개념으로 30개 부품군(tool kit)을 만들었다. 즉 30개 부품군을 레고 블록 쌓듯 조립하여 새로운 차를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단 레고 블록만 만들어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온갖 형태를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일본의 레고 블록형 설계 컨설턴트인 히노 사토시(日野三十四)씨는 "레고 블록형 설계는 한글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은 자음·모음 24개를 붙여 수천 발음을 만들어내지 않느냐"면서 "자동차 부품군 수십 개를 정해진 콘셉트에 따라 다양하게 조합해 특성이 다른 새로운 차량을 수천 개 만들어 낸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기존에도 설계의 공용화 시도는 있었다. '플랫폼(Platform·차의 기본 뼈대와 엔진·변속기 등) 공용화'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차의 기본 뼈대는 공용화한다고 해도 각종 부품이니 세부 설계는 차량마다 달리 적용해야 했다. 이런 변경은 모두 시간과 비용을 동반한다. 그러나 레고 블록형 설계를 적용하면 자동차의 각종 부품을 조립하는 방식 자체가 하나로 바뀌기 때문에 새 차를 개발할 때마다 바꿔야 할 부분이 아주 적어진다.

      작년 가을에 처음 등장한 준중형 해치백 골프 7세대 모델이 바로 레고 블록형 설계를 통해 탄생했다. 예전보다 개발비·부품비가 줄었고, 특히 자동차 무게가 구형보다 100kg이나 줄었다. 무게가 줄어들면 연비는 물론 성능까지 차량의 모든 상품성이 좋아진다. 1kg 줄이는 것도 어려운데 100kg을 줄였다는 것은 레고 블록형 설계라는 기술 혁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같은 설계 방식은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게 결코 아니다. 폴크스바겐이 10여년 전부터 차근차근 추진해 온 기술 노하우와 기업 문화의 집약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폴크스바겐의 엔진은 차량 크기에 상관없이 기본구조가 거의 같다. 때문에 레고 블록처럼 각각의 조합을 짜 맞추는 것이 가능해진다. 만약 어떤 회사가 보유한 엔진, 변속기, 레이아웃(부품배치)이 전부 제각각이라면 이 회사는 폴크스바겐의 전략을 따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일본 업체가 이 전략을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는 점에서도 증명된다. 도요타는 2011년에 '뉴 글로벌 아키텍처(NGA)'전략을 발표했는데, 주요 내용은 폴크스바겐과 비슷한 방식으로 엔진·차체 부분 등을 일체화해 개발하고, 이 부분들을 조합해 차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지난 7일 발표한 조직 개편에서 NGA 부문을 별도의 개발 부문으로 독립시켜 위상을 높였다. 그만큼 향후 기술 개발에서 중요하다는 뜻이다. 닛산도 앞으로 폴크스바겐 설계 방식과 유사한 CMF(Common Module Family)라는 방식으로 신차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