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의 사장이 공동경영… 다양한 시각이 '완벽한 소리' 만들어"

입력 2013.01.12 03:13

세계1위 헤드폰 기업 獨 젠하이저 …'창업자 3세' 다이엘 젠하이저 사장
CEO 없는 비상장회사_창업자 3세 포함된 사장단
모든 의견 놓고 격렬한 토론 느리지만 튼튼한 결론 도달
사람이 자산_금융위기 때 감원 않고 버텨
사람에게 투자한 셈… 5년 뒤 이익 25% 늘어나
8억달러 고급헤드폰 시장 1위_우리 고객은 싸구려 원치않아
獨·아일랜드에 제조 기반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

공연장용 마이크, 프리미엄 헤드폰, 음향 녹음 스튜디오용 헤드폰 등 전문 장비 시장에서 세계 1위인 독일의 젠하이저(Sennheiser)사는 불황에 강하다. 2009년 3억8990만유로(약 5525억원)이던 매출이 2011년에 5억3140만유로(약 7531억원)로 최근 3년간 매년 10~20% 성장했다. 글로벌 불경기의 진원지인 유럽에서도 매출을 늘렸다.

젠하이저에는 어떤 명칭으로든 회사를 총괄하는 1인자인 CEO가 없다. 자기 분야를 담당하는 부문별 사장(president)만 7명이 있으며 이들의 합의로 운영한다. 이 회사는 창업자 가족 중심으로 10명 미만이 주식을 분점한 비상장 기업이다. 2008년 창업자의 아들이 은퇴하면서 3대 경영째 이런 조직을 만들었다. 7명의 사장 가운데 전략 및 회계 담당인 다니엘 젠하이저(36)와 공급망 담당인 안드레아스 젠하이저(35)가 창업자의 3세이다.

Weekly BIZ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젠하이저 아시아·태평양 지역 진출 20주년 기념행사에서 다니엘 젠하이저 사장을 만났다. 금발 머리를 길게 기른 모델 같은 모습을 한 그는 동양문화에 익숙한 듯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넸다.

세계 1등 헤드폰 전문 기업인 독일 젠하이저의 다니엘 젠하이저 전략ㆍ재무 담당 사장은 "총매출액의 7%를 매년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감원을 하지 않았다" 며 "덕분에 최근 5년 동안 임직원 수는 그대로인데 이익은 25%나 늘었다"고 했다. / 싱가포르=이인묵 기자
"'격렬한 긴 토론, 빠른 실행'으로 돌파한다"

―CEO 없이 여러 명의 사장이 어떻게 협업하는가?

"가끔 우리도 되묻곤 한다. '이 복잡한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결국 우리의 성공 요인은 다양성이다. 모든 사장이 각자 맡은 유통·공급·재무·판매·마케팅 등의 관점에서 일하고, 모든 의견을 회의실 탁자에 올려놓고 토론한다. 전 세계 지사에서 나오는 의견도 모두 사장단 회의로 가져온다. 이 방식은 거의 매일 격렬한 토론을 낳는다. 고성이 오가는 일도 있고, 진행도 빠르지 않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매우 튼튼한 결론을 낳는다. 실행도 매우 빠르다. 온갖 종류의 반론을 겪은 데다, 회사의 의견을 모두 모았기 때문이다."

―당신이 맡은 전략과 재무는 입장이 상반될 때가 많은데 어떻게 가능한가?

"내 안에서 하루에도 수백 번씩 마음이 둘로 갈라져 토론을 벌인다. 하지만 두 업무가 협업 관계라고 보면, 정말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다른 기업에서 전략 부문이 미래 제품 투자를 하려면 재무부서와 협상을 해야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최근 'D900'이라는 고음질 마이크를 발표했는데, 내가 재무 부문만 담당했다면 불황기에 이런 제품 개발에 투자를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략을 맡고있는 입장에선 더 나은 결정이란 걸 알았다."

―CEO 없이 운영하면 책임 문제가 불거지고, 부문별 보신주의 등도 생길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우리는 비즈니스에 실패하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 누가 잘못했느냐 하는 것들을 따지지 않는다. 우리 경영진은 각자 맡은 부분에서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고, 이 중 주주들은 주주로서 지분만큼 나눠서 재정적으로 손해를 감수한다. 우리가 정말 신경 쓰는 것은 당장의 이익·손해가 아니다. '회사의 미래'에만 집중한다."

"1년에 세번 가족끼리 경영 문제 토론"

―언제, 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나?

"1인 CEO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은퇴한 후 우리 형제대로 내려오면서 지금 같은 구조가 됐다. 이를 위해 2008년부터 1년 넘게 가족회의를 벌여 이를 문서화했다. 서로 권한과 책임, 행동 지침, 회사 비전을 담았다. 우리는 이를 책으로 만들어 젠하이저의 모든 임직원에게 공개했다. 임직원들은 젠하이저라는 이름과 함께하는 가족이고, 우리는 생각을 전달할 의무가 있다."

―가족이 함께 경영을 하면 갈등이 생길법한데?

"당연히 생긴다. 우리는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 있다. 감정적으로는 서로 친근한 가족이며, 피를 나눈 사이로서 연대감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서로 다른 분야를 맡은 사장으로서 프로페셔널한 관계도 있다. 주주로서의 관계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3번씩 모여 모든 주제를 올려놓고 토론을 벌인다."

―당신과 동생은 대주주이므로 다른 사장들보다 순위가 더 높을 듯하다.

"사장단 안에는 순위가 없고 모든 사장이 자기 분야에서 같은 권한을 갖고 발언권도 같다. 최종결정권자로서 주주회의가 있으나 대부분 우리 가족이다. 주주로서의 나의 역할이 경영진과 다른 점이라면, 주주로서 때론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젠하이저가 여행객용으로 개발한 무선 블루투스 스테레오 헤드폰 '트래블 시리즈' 제품(모델명MM550). 가격은 70만원대이다.
"최고급 제품으로 승부…스마트폰 보급이 새 시장 열어"

―'완벽한 소리'를 추구하는데, R&D 인원과 예산은?

"우리는 기술적인 연구개발에 총매출의 7% 정도를 쓴다. 하지만 이건 오로지 기술 연구에만 들어가는 것이고, 이 외에 음향과 관련된 사회학적, 정신학적 분석도 한다. 독일·스위스·미국 등에서 300명이 넘는 연구개발 전담 인력을 갖고 있다."

―지난 5년간 직원 숫자는 그대로인데 이익이 25%나 늘어난 비결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직원을 거의 줄이지 않고 사람에게 투자한 것이다. 당시 재무 측면에선 정리해고가 필요했지만 버텼다. 덕분에 경제가 좋아졌을 때 신입 직원을 뽑거나 시장을 이해하는 간부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2010~11년에 이익이 크게 늘었다."

―또 다른 성공 노하우가 있다면?

"고급화 전략이다. 우리는 부가가치가 큰 제품(premium value position)을 만든다. 우리는 설계와 제조 기반을 인건비가 싼 신흥국이 아니라 독일과 아일랜드에 두고 있다. 우리 고객은 싸구려 제품을 원하지 않고, 우리 엔지니어는 그냥 제품이 아닌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 한다. 하이엔드(high-end) 헤드폰 시장은 8억달러 정도로 추산되는데 우리는 거기서 1위를 지키고 있다."

―최근 헤드폰 시장의 기회와 위기는?

"스마트폰은 음악을 항상 듣는 시대를 열었다. '집에서 음악을 듣는 시장' 외에 '밖에서 음악을 듣는 시장'이 새로 생겼다. 변수는 제품의 수명주기가 짧아진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제품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는 회사는 제품의 시장 도달 시간(time to market)이 길어 문제가 된다. 제품에 투입한 비용을 충분히 뽑아내지 못했는데, 시장에서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제품 개발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한다. 하지만 여전히 '더 나은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는 점을 믿는다."

1945년 설립된 젠하이저社

음악 감상용 헤드폰 세계 처음으로 출시 세계에 16개 판매 법인

1945년 프리츠 젠하이저(Fritz Sennheiser) 박사가 세워 세계 최초로 음악 감상용 헤드폰을 출시했다.

예전 헤드폰은 음질이 조악해 통신용으로만 가능했으나 젠하이저는 기기 밖으로 소리가 빠져나가는 개방형 기법을 적용, 작은 사이즈에서도 넓은 공간감이 느껴지는 고품질 음향용(HiFi) 헤드폰을 만들었다.

현재 마이크·헤드폰·이어폰을 비롯한 무대 모니터링 시스템, 콘퍼런스 장비, 방송 녹음 시설, 항공기 통신용 헤드셋 등에서 세계 1위다. 1990년대 후반 들어 가정용 고급 오디오 시장 정체로 위기를 맞았으나 2000년대 후반부터 스마트폰과 MP3 플레이어 같은 휴대용 오디오 시장 확대로 다시 고속성장 중이다. 세계에 16개 판매 법인을 두고 22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계열사로 스튜디오 마이크 및 모니터링 전문 스피커 제작사 게오르그 노이만(Georg Neumann), 콜센터 솔루션 전문 개발사 젠하이저 커뮤니케이션즈가 있다.

놓치면 안되는 기사

팝업 닫기

WEEKLY BIZ 추천기사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