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착안 치간칫솔 시장 개척… 대기업 제치고 日시장 1위 올라

입력 2012.11.24 03:08

日 구강제품 전문기업 '덴탈프로'
7가지 사이즈의 치간칫솔 치약 없이 이 닦는 블랙 칫솔…
부단한 신제품 개발로 구강제품의 부가가치 높여
패션소품처럼 만든 칫솔은 일반 칫솔의 2배가격에 팔려
자본금 4억원 안 되는 中企 연매출은 400억원 육박

자료:제국(帝國)데이터뱅크,신뉴코칸소
지난달 일본 오사카 우메다(梅田)역 근처 대형 잡화점. 칫솔만 100종류 넘게 진열된 가운데 눈에 띄는 칫솔이 하나 있었다. 칫솔 모(毛)부터 몸체까지 전체가 새까만 제품이다. 온통 새하얀 칫솔 사이에서 까만 칫솔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특이한 것은 칫솔 색깔만이 아니다. 포장도 다른 제품에 비해 크게 돼 있어 비슷비슷한 칫솔 사이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자랑했다.

'덴탈프로 블랙 시리즈'는 2005년 등장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제품이다. '칫솔은 하얗다'는 선입견을 깨고 소비자들에게 '검은색 칫솔은 특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상식을 깬 이 제품을 만든 것은 올해 창업 85주년을 맞은 일본의 구강(口腔) 제품 전문 기업인 '덴탈프로'. 자본금 3000만엔(약 3억 9330만원)짜리 중소기업이지만, 연 매출은 30억엔(약 393억원)에 육박하는 강소기업이다. 특히 치간칫솔 시장에서는 라이온·가오·존슨앤드존슨 같은 일본 및 글로벌 대기업을 제치고 40%의 일본 시장 점유율로 1위이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100종이 넘는데, 이 가운데 구강 관련 제품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창업 후 85년 동안 구강 제품에만 집중하며 성장해온 덴탈프로의 비결을 WeeklyBIZ가 풀어냈다.

'틈새 뚫어 시장 파이를 키운다'

덴탈프로가 처음 소비자에게 이름을 알린 시기는 1978년. 이해 덴탈프로는 일본 최초로 연령별로 구분한 영·유아용 칫솔 '톰과 제리' 시리즈를 출시했다. 칫솔을 0~3세, 3~6세, 6~10세용으로 구분해 기획하고 각각 연령대에 맞은 형태로 칫솔 모와 손잡이 등을 디자인했다. 니시오 노리히코(西尾則彦) 전무는 "이 제품 전까지만 해도 덴탈프로는 주로 백화점·편의점의 PB(Private Brand) 상품을 만들어 납품해왔다"며 "중소기업이 브랜드를 만들려면 대기업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했다.

덴탈프로의 중핵(中核)으로 성장한 치간칫솔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낸 케이스이다. 이 회사가 치간칫솔 생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1994년까지만 해도 일본 치간칫솔 등 치간 세정 도구 시장은 16억엔(약 210억원) 규모에 그쳤다. 하지만 덴탈프로는 일본 사회의 고령화(高齡化)가 빠르게 진행돼 치간칫솔 시장도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확대의 걸림돌은 가격이었다. 당시 치간칫솔 제조 공정의 자동화율은 50%를 밑돌았다. 사람 손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제조비용 부담이 컸다. 덴탈프로는 전용 기기를 개발해 공정을 자동화함으로써 개당 가격을 150엔(약 1960원)에서 45엔(약 590원)으로 내렸다. 가격을 내리고 치과 의사들과 공동 마케팅을 벌인 결과, 일본의 치간 세정 도구 시장은 올해 140억엔(1835억원) 대로 커졌다.

일본 오사카의 덴탈프로 칫솔 생산 공장에서 제품 검수담당 직원이 칫솔모의 식모(植毛)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오사카=이인묵 기자
'사이즈 안 맞으면 쓰던 제품도 모두 바꿔준다'

덴탈프로는 모두 7가지 사이즈의 치간칫솔을 만든다. 가장 가느다란 것은 가운데 심 부분이 0.5㎜ 두께 샤프펜슬 입구에 들어갈 정도다. 이처럼 사이즈가 다양해진 것은 소비자 의견에 귀를 기울인 덕분이다. 1994년 치간칫솔을 출시했을 때만 해도 덴탈프로는 한 사이즈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반품(返品)이 많았다. 특히 최초 구매자일수록 반품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소비자 조사를 해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사람마다 잇몸 상태가 다르기에 한 사이즈만으로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덴탈프로는 이를 두 가지 방도로 해결했다. 첫째는 사이즈 다양화. 소비자의 상황에 맞춰 다양한 두께를 내놓았다. 잇몸이 민감한 소비자를 위해 실리콘으로 만든 치간 칫솔도 만들었다. 둘째는 무료 사이즈 교환. 치간칫솔을 처음 쓰는 사람이 자기 사이즈를 알 수가 없으니, 쓰던 제품이라도 무료로 바꿔주기로 한 것이다. 처음 쓰는 고객을 대상으로 하며 최소 4만 세대(가족 제품 기준) 이상이 교환해 갔다. 니시오 전무는 "무료로 사이즈를 바꿔주면서 사은품 칫솔까지 함께 보내니 고객 충성도가 확실히 높아졌다"며 "이들이 불경기에도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힘"이라고 했다.

'포기 없는 역발상으로 승부한다'

덴탈프로가 검은색 칫솔을 처음 개발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당시 덴탈프로는 대학 연구실과 공동으로 치약 없이도 이를 닦을 수 있는 성분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 성분을 칫솔 모에 코팅하자 칫솔 모 색깔이 오물에 오염된 것처럼 누렇게 변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예 칫솔 모를 검은색으로 물들여 버린 '블랙'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검은색 칫솔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최초로 시판한 제품은 '치약 없이도 이를 닦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흰 손잡이에 검은 칫솔 모가 달린 모습은 마치 구둣솔 같아 보였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중반에 두 차례 더 상품화를 시도했지만 팔리지 않았다. 반전의 기회는 2005년 도쿄(東京)의 대형 유통업체와 공동 기획을 하면서 찾아왔다. 이 업체는 덴탈프로에 딱 두 가지를 요구했다. 칫솔 전체를 검은색으로 만들어 줄 것과 포장의 폭을 크게 해달라는 것. 이 두 가지를 바꿨을 뿐인데 제품은 거짓말처럼 팔리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전역에 불어온 '블랙 인기'도 한몫했다. 니시오 전무는 "우리가 1~2번 시도해 보고 포기했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었을 것"이라며 "꾸준히 시대에 맞춰가며 지속적으로 새로운 제품 시도를 한 것이 성공의 문을 열었다"고 했다.

'새 부가가치를 거듭 창출한다'

덴탈프로가 이달 초 출시한 고양이 발 모양의 손잡이 칫솔./덴탈프로 제공
사노 아키라(佐野晃) 덴탈프로 회장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칫솔은 건강에 필수적인 물건인데 너무 싸다. 싼 것은 100엔(약 1311원)에도 사는데, 한 번 이를 닦는데 1엔(13원)도 안 되는 꼴 아니냐"고. 불평이나 투정으로 들릴 법한 얘기이지만, 덴탈프로는 실제로 부단한 신제품 기획으로 칫솔의 가치와 가격을 높여왔다.

이달 초 덴탈프로는 일본 전국의 편의점과 소매점에 '고양이 발' 모양을 한 손잡이가 달린 칫솔을 출시했다. 손잡이에는 말랑말랑한 젤리가 달려서 고양이 발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포장은 여성 잡지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색깔로 마무리했다. 여성들이 핸드백에 넣어 다닐 수 있는 패션 소품처럼 만든 것이다. 이 칫솔의 판매가는 300엔(약 3930원)대. 일본에서 흔히 팔리는 일반 칫솔과 비교해 두배 정도 비싸다. 칫솔에 패션 액세서리와 같은 기능을 더해 부가가치를 높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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