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점유율 80%… 네모토특수화학

입력 2012.11.03 03:01

야광도료 밝기·수명 10배로… 9·11 후 펜타곤 비상 표지판도 교체

글로벌 1위 야광도료 업체
"기술에 대한 집착만이 대기업에 맞서는 무기"
15년간 연구원들 독려 야광도료 루미노바 개발

2001년 9·11 테러 때 뉴욕 세계무역센터는 물론 워싱턴DC 미국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도 사상자가 났다.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덜레스 공항에서 비행기를 납치해 펜타곤으로 돌진하는 바람에 탑승객과 펜타곤 직원 등 184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 국방부는 사건 조사를 벌여 대피 시스템만 잘 갖췄더라면 사망자 숫자가 훨씬 줄었을 것이라고 결론 냈다. 전기가 끊긴 어둠 속에 갇힌 사람들을 안내할 표지판이 너무 어두웠다.

펜타곤은 이후 내부 비상 안내 표지를 모두 일본 네모토(根本)특수화학의 야광 도료(塗料)인 '루미노바(LumiNova)'를 바른 것으로 교체했다. 네모토의 특허인 루미노바는 기존 형광 물질보다 10배 이상 밝고 지속 시간도 10배 이상 길다. 네모토의 '루미노바'는 펜타곤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지하철 및 공항의 비상 표지판, 명품(名品) 손목시계의 문자판, 자동차 트렁크 안쪽 비상 손잡이 등 야광(夜光)이나 형광(螢光)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쓰이는 글로벌 1등 제품이다.

지난달 초 도쿄 스기나미구 네모토특수화학 본사에서 네모토 이쿠요시(根本郁芳₩80) 회장이 특허 야광도료인‘루미노바’를 사용한 비상구 안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이인묵 기자
네모토화학의 세계 야광 도료 시장 점유율은 약 80%. 손목시계 문자판은 100%다. 지난해 200여명(중국 등 해외공장 생산직원 800여명 별도)의 본사 직원이 100억엔(약 1370억원·계열사 합계)의 매출을 올렸다. 1941년 창업 후 야광 기술 한우물만 파온 저력 덕분이다.

지난달 초 도쿄 스기나미구 주택가에 있는 네모토화학 본사에서 네모토 이쿠요시(根本郁芳·80) 회장을 만났다. 그는 "중소기업이란 처지를 깨닫고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에 전념했다"고 했다. 비상장회사인 네모토화학의 자본금은 9900만엔(약 13억6000만원). 이 한계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다 보니 형광 물질 부문에서 세계 최고가 됐다는 것이다. "작은 기업이 강한 힘을 가지려면 '온리 원(only one)' 기술을 가져야 한다. 남들이 못 하는 것을 해야 한다. 기술에 대한 집착만이 대기업과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무기이다."

"15년 인내 끝에 연구개발 성과"

네모토화학은 창업 후 30년 넘게 외국에서 사온 야광 재료를 가공해 시계 문자판이나 공장 기계에 칠해 납품했다. 1970년대 일본 정밀기계업의 최전성기가 열려 회사를 유지할 정도는 충분했다. 그러다 1978년 당시 돈으로 수백만엔에 달하는 자금을 빌려 자체 연구 센터를 세웠다. 대기업에서 주는 일만 해서는 회사의 운명이 영원히 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각성에서다. 네모토 회장은 "그때까지 해온 일은 창업자(네모토 겐조(根本謙三)·네모토 회장의 장인)의 사업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기술만이 살 길'이라고 결단했다"고 했다.

그러나 난산(難産)이었다. 연구개발비는 계속 늘었다. 일본 기업 평균(매출 대비 6%)을 넘어 8%에 도달했다. 중소기업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네모토 회장은 그러나 "첨단 기술은 '다 먹기 아니면 다 잃기(all or nothing)'"라며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를 시도하지 않으면 회사는 발전할 수 없다"며 연구원들을 독려했다.

'대박'은 15년이 경과한 1993년에 터졌다. 기존 야광 도료보다 10배 밝고, 10배 오래가는 '루미노바' 개발에 성공한 것. 네모토 회장은 "드디어 우리도 세계에서 유일한 기술을 갖게 됐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했다. 지금도 일본 내 직원의 15%가 연구인력이다.

루미노바를 가장 먼저 알아본 곳은 롤렉스·오메가 등 스위스 명품시계 업체. 이들은 제조 공장을 스위스로 유치하면서까지 루미노바를 썼다. 이후 루미노바는 화폐 위조 방지용 도료·비상 안내판·전광판 재료 등 형광 물질이 필요한 곳곳으로 퍼져 세계 제패 품목이 됐다. 1990년대 초반 10억엔(약 140억원) 남짓하던 매출은 2000년에 30억엔(약 420억원)으로 급증했다.

네모토특수화학의 야광 도료‘루미노바’를 칠한 제품이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다. / 이인묵 기자

"가장 잘하는 분야를 주축으로 1등 확장"

2000년대 들어 네모토는 다시 변신에 나섰다. "루미노바 매출은 매년 늘고 있었지만 야광 도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네모토 회장은 "단 우리가 잘하는 기술을 확장해 또다시 1등이 될 수 있는 곳에 집중했다"고 했다.

특히 건강·안전·보안을 유망 분야로 정하고 초점을 맞췄다. 독보적인 야광·형광 관련 기술을 주축으로 한 다음 방사성 물질 관련 기술에 주력했다. 예전 방식의 야광 도료에는 방사성 물질인 라듐이 미량(微量) 들어 있어 네모토는 방사성 물질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

네모토화학은 현재 가스 검출기·식품 유해 성분 검출장비·전자 부품 재료 등을 사업화했다. 가스 검출기는 라듐을 이용해 극미량의 연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병원의 진단용으로 사용하는 방사성 동위원소 성분, LCD·PDP TV용 발광소재도 만든다. 네모토 센서엔지니어링·네모토 사이언스·네모토 프리시젼 등 자(子)회사가 이를 맡고 있다.

네모토 회장에게 '가장 힘든 애로사항'을 묻자, "좋은 사람을 뽑는 일"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세계적으로도 단단한 기업이지만 작은 회사로서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 그가 제시한 돌파구는 정론(正論)이었다.

"아무리 오라고 소리 높여봐야 탁월한 인재는 중소기업에 절대 오지 않는다.그렇다면 해법은 우리가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 방법도 간단하다. 우리 회사에 입사한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 나가기 싫은 회사로 만들면 인재는 자연스레 자라난다. 회사에서 안 쫓겨나려면 스스로 성장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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