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낙관론자 제레미 시겔 美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입력 2012.11.03 03:02

글로벌 저성장론은 허풍 내년 봄엔 기지개 켠다
"4~5년 지나면 글로벌 불황 완전해소··· 황금기업이 성장의 열쇠"
美 증시 저평가… 주택시장도 살아나는 중
감세 정책 연장으로 재정절벽도 피해갈 것
세계인구 80% 신흥국에 글로벌 부흥 달려
신흥국이 선진국 먹여살리게 돼
선진국 인구 줄지만 개도국은 반대
中부동산엔 거품···추락·회복 거쳐
세계 경제 확실한 성장 궤도 올라
'황금기업'이 많아져야 경제 성장
기업가 정신이 혁신보다 더 중요
유행 좇지 않는 브랜드 키우고
강점 분야 중심으로 다각화해야

제레미 시겔 교수는 점잖게 얘기하는 학자라기 보다는 두 손을 휘저으며 자기 주장을 펴는 열변가(熱辯家)였다. 호탕한 성격만큼 세계경제를 보는 그의 시각에는 희망적 요소가 많았다. 그는“‘뉴노멀’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 것이라는 내 주장의 핵심 논거는 신흥국 경제의 1인당 생산성이 부단히 성장할 것이라는 사실”이라며“인도·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같은 신흥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젊음이 넘쳐 세계경제의 힘찬 추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필라델피아=이신영 기자
"저성장과 고(高)실업이 정상 상태라는 뜻의 뉴노멀(New Normal)을 믿지 마라! 1990년대 말 IT(정보기술) 거품 때에도 이 표현이 한창 유행했지만 갑자기 쑥 사라지지 않았나? 뉴노멀은 절대 오래가지 않는다. 세계경제는 곧 기지개를 켠다."

글로벌 경기 대침체(Great Recession)의 장기화 조짐이 짙어가는 요즘 180도 역(逆)발상적인 시각에서 낙관론을 설파하는 경제 석학(碩學)이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Wharton) 경영대학원의 제레미 시겔(Siegel·67) 교수이다.

"지금부터 5~6개월 후인 내년 봄부터 세계경제는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입니다. 일단 미국 주택시장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어요. 미국 다우지수가 내년에 1만7000선을 돌파할 가능성이 70%나 돼요. 재정 절벽은? 노(No)! 미국 정치인들이 기존 감세(減稅)정책을 최대 12개월 연장할 것이고, 재정 적자 문제는 의회에서 잘 해결될 것입니다."

그는 가치 투자의 대가(大家)인 워런 버핏(Buffett)이 "투자를 배우려면 시겔 교수를 찾아가라"고 공개적으로 칭송할 만큼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전문가이다. 210년 전인 1802년부터 지금까지 주식시장의 장기 추세를 정밀하게 분석·관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낙관론적 경제 분석이 트레이드 마크이다.

시겔 교수가 1994년에 낸 '주식 투자 바이블'(Stocks for the long run)과 미국 S&P500지수 대형 기업들의 강·약점과 투자 가치를 집중 분석한 '투자의 미래'(Future for investors·2005년)라는 두 권의 책은 지금까지 50만부나 팔렸다.

최근 20여년간 미국 월가(街)를 대표하는 경제전문가인 그는 2004년 미국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Forbes) 커버스토리(4월 19일자)를 장식했고 CNN·CNBC의 단골 경제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시겔 교수는 왜 뚱딴지처럼 "세계경제의 저성장은 '근거 없는 허풍(虛風)'일 뿐이다"고 외치고 있는 걸까? 근거는 두 가지이다.

먼저 미국·유럽 등 세계 주식시장이 대공황 이후 가장 저(低)평가 돼 있어 앞으로는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과학적 분석에서다.

"뉴욕증시 S&P500지수의 최근 50년간 평균 PER(주가수익비율·주식을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는 15배인데, 올해와 내년 이익 전망치 기준으로 14.3배와 13.6배에 불과하다. 현재 제로(zero) 금리가 경기 회복과 함께 상승하면서 PER의 역사적 평균인 15배로만 회복되면 S&P지수는 1591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증시 상승은 경기 호조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분석은 올 9월 미국 실업률이 40개월 만에 7%대로 떨어진 것이 소비 증대나 기업 투자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증시 활황에 힘입었기 때문이라는 많은 전문가의 진단과 맥이 닿는다.

다른 하나는 중국·인도 등 신흥국의 폭발적인 생산력 증대이다. "인도와 중국 등 세계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신흥국에는 고령화의 위험이 거의 안 보입니다. 2050년까지 중국과 인도가 미국 경제성장률보다 매년 3~4%포인트씩만 높게 성장해도 이들의 경제 규모가 현재 미국 경제보다 두 배나 더 켜져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런 성장에 힘입어 선진국들의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물론 시겔 교수도 중요한 전제 조건을 단다. '뉴 노멀 시대'의 종말과 글로벌 경제의 부흥(復興)은 가만히 있으면 절대 이뤄지지 않으며, 글로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Weekly BIZ가 지난달 중순 와튼 경영대학원 시겔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 그는 "두 가지 조치가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진국들이 신흥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협력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최근 고개를 들고 있는 보호무역주의를 슬기롭게 억제하고 신흥국의 이민 물결도 적극 수용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기업들은 1~2년 단기 생존이 아니라 100년 지속 성장을 목표로 체질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합니다."

비관론이 득세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경제주체는 요즘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그러나 시겔 교수는 "검은 구름 뒤쪽에 있는 한 줄기 밝은 햇빛을 보라. 해법은 분명히 있다"고 했다.


세계 1위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 연구실에서 Weekly BIZ와 처음 대면한 시겔 교수는 "과도한 낙관론을 펴는 것 같다"는 기자의 도발성 질문에 대해 자신의 책상 앞에 있는 블룸버그 단말기를 10차례 이상 두드리며 통계를 찾아 인쇄한 '반박 자료'를 내미는 치밀한 면모를 보였다.

그의 글로벌 경기 침체 원인 진단부터 색달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발발이 4년이 됐는데도 불황탈출을 못하는 이유는 최근 3~4년간 매월 주택공급량이 최근 50여년 평균 공급량(약 150만 가구)의 30~40% 수준에 그친 탓이 크다. 그러나 최근 미국 증시와 주택시장이 살아나고 있고 실업률도 떨어졌다. 미국 경제는 내년 봄부터 불황에서 천천히 탈출할 것이고 세계 경제도 차츰 회복될 것이다."

◇"글로벌 불황 4~5년 내 완전히 해소"

―아무래도 대다수 경제학자들과 비교해 너무 낙관적인 것 같다.

"물론 지금 글로벌 불황이 완전히 해소되려면 빨라도 2015~2016년은 돼야 한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 부동산 거품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게 되면 중국의 경제성장은 급속도로 둔화해 연간 4~5% 성장을 1~2년은 할 것이다. 통상 한 나라의 경제는 엄청난 거품을 겪으며 성장한다. 마이너스 성장을 겪지 못한 경제에서는 거의 필연적인 코스이다. 글로벌 경제가 앞으로 확실한 성장 궤도에 올라서는 것은 중국이 추락과 회복을 다 거친 다음일 것이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을 탈출할 것으로 판단하는 과학적 근거가 더 있나?

"주식시장이 기업과 개인의 '자금줄'이자 투자처로 기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확신에서다. 장기적으로 주식은 채권보다 수익률이 언제나 좋았다. 이자 지급과 배당이 안 되는 금이나 은보다 훨씬 유리하다. 1802년부터 올 6월까지 미국 주식의 수익률을 조사해 본 결과, 연평균 6.6%였다. 이는 10년마다 2배씩 자산가치가 높아진 셈이다. 또 주식수익률의 3%를 통상 배당금에 재투자한다고 할 때, 주가 상승에 따른 수익률은 1802년부터 현재까지 평균 GDP성장률(3.5%)과 비슷해진다."

―그렇다면 정부와 기업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뉴노멀(New Normal)'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란 환상과 공포에서 깨어나야 한다. 선진국의 인구와 일자리는 줄지만, 개발도상국은 그 반대다. 미국 인구의 4배인 중국은 내 전망에 따르면 2016년에 세계 최대 국내총생산(GDP)국이 된다. 개발도상국의 노동 품질이 좋아지고 생산력 수준이 증대되면, 전반적인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1인당 생산성도 늘어나게 된다.미국 등의 베이비붐 세대가 축적한 자산을 앞으로 신흥국가와 신흥시장이 사들일 것이다. 이에 따라 신흥국들이 선진국을 먹여 살리게 된다. 향후 20~25년 뒤엔 세계에서 가장 큰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나타날 것인데 기업과 정부는 이런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

◇"기술 혁신에 집착하지 말고 기업가 정신부터 키워라"

시겔 교수는 구체적으로 기업들이 '황금 기업(golden company)'을 목표로 체질을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고 했다. '황금 기업'이란 그가 S&P500지수 500대 기업의 1957년부터 46년간의 실적을 분석, 투자자에게 최고의 수익률(연간 13~19%)을 안겨준 상위 20대 생존 기업들로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는 '장기 성장형' 기업을 일컫는다. 황금기업의 공통분모로 그는 ▲100년 가까이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1~2개의 '롱런(long run) 제품'을 갖고 있으며 ▲유행을 좇지 않은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고 ▲본래 특화된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건강한 사업 다각화 성공 등 세 가지를 꼽았다.

―'황금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는?

"매년 1~2억달러의 매출을 거두는 사탕회사 투시(Toosie)의 경우, 100년 동안 똑같은 제품으로 잘나간다. 하루에 6000만개가 넘는 투시사탕을 생산하는데, 회사 창립 후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세계 최대 껌 제조사인 리글리(Wrigley)와 미국 1위 캔디 제조사인 허시(Hershey)도 마찬가지다. 특히 허시는 약 70년간 광고를 안 하고도 성공했다. 세계 시장점유율 1등인 케첩회사 하인즈(Heinz)는 세계 최초로 토마토와 당분을 넣은 케첩을 만들었고, 지금 연간 미국 인구의 2배인 6억5000만명에게 케첩을 판매한다."

―'황금 기업'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기업가 정신이 최우선적인 과제이자 핵심 자질이다. 기술 혁신만을 중시하며 집착하면 성장은 빠르더라도 장기적인 이익은 기대를 밑돌 것이다. 기술의 과잉 공급으로 가격을 계속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76년에는 100만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데 56만달러가 필요했으나 지금은 1달러도 들지 않는다. 창조성만 앞세우는 기업은 스스로를 먼저 파괴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기술혁신의 대명사로 요즘 가장 잘나가는 애플도 위험하다는 얘기인가?

"애플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최근 8~15배이다. 과거 스티브 잡스 시절보다 나빠졌다. 그 얘기는 팀 쿡이 CEO를 맡은 후 '기술적 혁신' 속도가 늦어졌다는 방증이다. 왜냐하면 기술적 혁신이 가장 빠르게 일어날 때, PER이 부풀려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PER이 높다. 남들은 최근 아이폰5를 출시한 애플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보지만, 나는 애플이 기술적 혁신보다 경영의 내실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라고 판단한다."

"美 독점금지법 만든 뒤 급성장… 한국도 공정 경쟁 질서 세워야"

"기업가(entrepreneur)다운 소신과 철학, 아이디어가 없다면 증권시장에 상장(上場·IPO)하지 않는 게 더 좋습니다. 준비 없이 상장했다가는 기업 핵심 역량을 갉아먹게 됩니다."

시겔 교수는 "2000년대 초반 미국 IT버블 때 망한 IT기업 경영진이 총 142억달러의 주식을 사전 매도(賣渡)해 도망치는 바람에 미국 산업계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는 기업가 정신이 전혀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한국에는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성공한 기업들이 많은데 실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력보다는 평판 덕분에 실적을 유지하는 경우가 상당수 입니다. 그런 관행을 없애야 합니다. "

한국 차기 정부의 경제 정책과 관련해 조언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기업들이 건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100여년 전, 미국 정부는 독점금지법(Anti-trust act)을 만들어 석유업계의 90% 이상을 독점하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석유트러스트'를 34개 회사로 쪼갰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엑손모빌, 셰브론 같은 굴지의 석유 기업이 생겨났고 미국 에너지 산업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어요. 공정한 기회의 분배가 지속 가능한 경쟁과 성장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임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제레미 시겔(Jeremy Siegel) 교수는

출생:1945년 미국 시카고

학력:컬럼비아대 학사, MIT대 박사

경력:1972~76년 시카고대 부교수
       1976년~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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