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너지기구 수석 이코노미스트 파티 비롤 박사

입력 2012.10.13 03:11

"세계 원유생산 증가분의 45% 차지… 이라크가 국제유가 변수"

산유국 이라크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
2035년 830만배럴
석유개발 차질 생기면
유가 급등 불보듯

신재생에너지 전망은

유아기에서 청년기 된
태양광 산업
각국의 보조금 삭감은
경쟁력 좋아졌다는 의미

원자력 발전의 미래

세계 원자력 발전 비중
2035년 17%로 증가
여론의 지지 받으려면
안전문제 확실히 챙겨야

미국 경제전문지인 포브스(Forbes)는 2009년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파티 비롤(Birol) 박사를 '세계 에너지를 움직이는 파워맨 7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그와 함께 선정된 파워맨은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원자바오 중국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쟁쟁한 석유 대국의 국가 원수들이었다.

터키 출신의 경제학자인 비롤 박사가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그가 세계 에너지 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IEA의 연례 '세계 에너지 전망(World Energy Outlook)' 등 각종 보고서를 총괄하며 이를 내놓을 때마다 세계 각국 정부와 에너지 기업들에 엄청난 파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롤 박사는 작년 6월 '우리는 가스 황금시대에 들어섰나(Are we entering golden age of gas?)'란 보고서를 통해 지하 암반에서 뽑아낸 셰일가스가 뉴(New) 에너지 혁명을 일으키고 있음을 선언했다.

그가 이끄는 IEA 연구팀은 이달 9일(현지시각) '이라크 특별보고서'를 발표해 또 한 번 세계 에너지 업계를 뒤흔들었다. 이 보고서는 "2035년까지 이라크가 세계 원유생산 증가분 중 절반을 차지한다"고 했다. 이라크 석유개발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석유가격 급등이 불가피하며 세계 경제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얘기다.

Weekly BIZ는 비롤 박사와 3차례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라크 등의 석유 문제를 포함해 가스·신재생·원자력 등 에너지 현안을 들었다.

IEA의 파티 비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원자력 발전을 줄이면 석유·석탄 같은 화석연료의 사용이 늘고, 에너지 비용이 증가하게 돼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 대응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 IEA 제공
그는 공급과잉으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태양광·풍력 산업에 대해 "현재의 구조조정을 거쳐 살아남는 기업은 기술발전을 바탕으로 정부 보조금 없이도 경쟁력을 갖는 단계로 진입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독일·일본 등의 원자력 발전 축소 또는 폐기 움직임에 대해서는 "원자력 발전을 폐기할 경우 화석연료에 의존하게 되고 기후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더 힘들어진다"며 "원자력 발전은 앞으로 중국 등을 중심으로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1. 일본과 독일은 원자력 발전소 추가 건설 중단은 물론 2030년 말까지 기존 핵발전소 운영도 모두 멈추기로 했다. 원자력 발전이 OECD 국가에서 축소될 경우, 세계 에너지 산업에 어떤 영향을 주나?

"에너지 정책은 나라마다 독특한 수요와 공급구조에 입각해서 에너지 보안, 비용 및 환경 측면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우리 분석에 따르면 원자력 발전이 줄어들면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 원자력 발전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중 하나다. 원자력 발전을 줄이면 신재생에너지에 좋은 일일지 모르지만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의 점유율을 함께 증가시킨다. 에너지 안보를 약화시키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그렇게 되면 탄소배출을 늘려 기후 변화 방지에 역행한다. 한국·벨기에·프랑스·일본 등 제한된 에너지 자원을 가진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원자력에 많이 의존해온 이유다. 특히 중국·인도와 같은 거대한 국가가 원자력의 도움 없이 급격히 늘고 있는 전기수요를 충족시킬지는 미지수다."

2. 원자력 발전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원자력 발전에 대한 가장 안 좋은 시나리오(the low nuclear case)'에 따르면 2035년 원자력 발전량이 지금의 절반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예측이 아니라 가정일 뿐이다. 최근 IEA의 신(新)정책 시나리오에 따르면, 전 세계 발전량 중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15%에서 2035년 17%로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전체 에너지수요량 기준으로는 같은 기간 6%에서 7%로 증가할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지난해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 사태 후 국제적으로 원자력 안전 문제에 대한 여론의 압박이 높아지고 있다. 만약 정부가 원자력 발전을 유지하거나 더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여론의 지지를 받으려면 안전문제를 확실하게 챙겨야 한다. 여기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자력 안전에 대한 글로벌 차원의 지식 공유다. 실제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제 협력은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원자력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최종 결정은 전력수급적인 면에서 한국은 어떤 상황인지를 현실적으로 이해한 뒤 내려야 한다."

3. 독일·이탈리아를 포함한 세계 각국이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부보조금을 줄이고 있다. 관련 산업이 크게 위축되지 않을까?

"세계 각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보조금을 삭감하고 있다고 이해한다면 큰 그림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바람, 태양,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세계 전기생산의 20%에 달한다. 2035년이 되면 30% 이상이 될 것이다. 이런 성장의 상당 부분은 정부의 지원 덕분이며, 일정 부분은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그동안 각국에서 발전 차액(差額)지원제도(FIT)를 시행해 왔는데, 태양광 패널 원가(原價)가 예상보다 더 떨어지면서 태양광 투자자들은 과도하게 이익을 얻어왔다. 원가가 떨어진 이유는 기술 발전과 중국 등에서 패널 제조업 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태양광 산업이 유아기에서 청년기로 넘어감에 따라 정부가 지원금을 삭감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렇다고 태양광 산업에 불안감을 느끼면 곤란하다. 그럴 경우 태양광에 대한 투자 위축과 관련 금융비용만 늘어난다. 결론적으로 정부지원 삭감은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지원 철회를 뜻하지 않는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이 좋아졌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자료: IEA '이라크 에너지 전망'
4. 미국 등에서 셰일가스 개발 붐으로 신재생에너지가 주춤하는 것 같다. 어떤 관계가 있나?

"셰일가스 개발이 몰고 온 가스 붐은 신재생에너지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셰일가스 개발 붐으로 가스 가격이 급락했다. 가격 경쟁력에서 가스가 태양광을 크게 앞서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정부가 신재생 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려면 분명한 원칙을 갖고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5. 태양광과 풍력 산업은 언제 회복할 것인가?

"엄청난 성장을 거둔 후 태양광과 풍력산업은 구조조정과 통합과정을 겪고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가능케 하는 기술진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변화는 장기적으로 업황이 호전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구조조정과 통합과정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은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하는 중이다. 궁극적으로 구조조정은 관련 산업을 성숙하게 하고 탄탄하게 만들 것이다."

6. 올해 이라크 특별보고서를 내며 이라크 문제에 집중한 이유는?

"이라크는 앞으로 전 세계 원유공급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가 된다. 앞으로 늘어날 원유생산의 45%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라크의 일평균 생산은 300만배럴인데, 2035년에는 830만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는 러시아를 제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글로벌 양대 산유국이 된다. 하지만 이라크는 수년에 걸친 분쟁과 갈등으로 에너지산업을 재건해야 해 앞으로 변수가 많다. 우리가 이라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자료: IEA '2011 World Energy Outlook'
7. 세계 경기가 동시 침체 중인데도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가 넘는다.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전망하나?

"고(高)유가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며 특히 개발도상국에 큰 영향을 준다. 또 원유 대량 수입국들은 무역수지 적자를 겪게 되며 경제를 지탱하지 못할 지경으로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 지금 같은 고유가가 계속 진행되면 글로벌 경제를 더 침체로 몰아넣을 수 있다. 현재 가격은 소비자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다. 글로벌 경제회복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다."

파티 비롤(Fatih Birol) 박사

1995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IEA에 합류하기 전 오스트리아 빈의 OPEC 사무국에서 6년 동안 일했다. 1958년 터키 앙카라에서 태어나 국립 이스탄불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오스트리아 빈 공과대학에서 에너지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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