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전쟁 시대… 글로벌 1위 특허기업 설립자 에드워드 정 인터뷰

입력 2012.10.13 03:11

상품 제조에서 특허로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디자인·아이디어로 무장한 애플
中·대만·한국 등에 제조 맡기고 특허 소송·매집에 돈 더 많이 써
삼성전자 등 제조 위주 경쟁사에 무차별적 소송… 세계시장 장악
美정부도 '특허 전쟁' 전방위 지원… 작년 지식재산권으로 134조 벌어

미국 IBM은 2004년 말 중국의 신흥 제조기업인 레노버(聯想)에 17억5000만달러(약 1조9500억원)를 받고 PC사업 부문을 매각했다. 미국 산업계와 미디어에는 '미국의 심장이 팔렸다' '중국이 미국을 점령해 오고 있다'는 식의 탄식과 경계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샘 팔미사노 당시 IBM 회장의 결정은 옳았다. PC·디스플레이·가전(家電) 같은 분야의 제조 경쟁에서 미국은 더 이상 중국의 상대가 못 됐던 탓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하이테크 산업을 포기했는가? 대답은 "노(No)"이다. 상품 제조에서 밀려난 대신 지식(知識)과 아이디어, 구체적으로 '특허(特許·Patent)'로 고(高)부가 이익을 창출하는 생태계 조성으로 '게임의 법칙(rule of the game)'만 바꿨을 뿐이다.

세계 1위 IT 기업인 애플이 이를 상징한다. 애플은 자사 제품을 스스로 제조하지 않는다. 대신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판다. 중국·대만·한국·일본에서 값싸고 질 좋은 제조력을 최대한 활용해 제품을 만든 다음, 자사의 '혁신'에 엄청난 '프리미엄'을 붙여 판다. 그래서 현존하는 전 세계 대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영업이익률(올 2분기 현재 33%)을 내고 있다.

아이폰5의 판매가격(649달러) 가운데 제조원가는 30% 정도(약 207달러)에 불과하다. 애플은 지난해 연구개발(R&D) 비용보다 특허 소송과 매집에 더 많은 돈을 썼다. 삼성전자·HTC처럼 제조 위주 경쟁 기업에 무차별적으로 소송을 낸다. '아이디어'와 '특허'로 글로벌 제조 생태계의 꼭지에 군림한다는 목표이다.

"최근 2년간 세계 스마트폰 업계에서 특허 소송과 매집에 투입된 자금만 200억달러(약 22조3000억원)가 됩니다. 이는 전 세계 수십개 스마트폰 제조기업(애플 제외)이 벌어들인 전체 이익보다 더 많습니다."(심영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뉴 하이테크 전략의 다른 축(軸)은 640여개의 미국 '특허 전문기업(Patent Troll·이하 '특허 괴물')'이다. '특허 괴물'은 특허를 미리 확보한 다음 시장이 커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른 업체가 이 특허로 제품을 만들어 돈을 벌면 특허침해 소송을 내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낸다. 특허는 소급 적용되기 때문에 침해가 입증되면, 제조사는 몇 년치 판매액 누적 합계에서 일정 금액을 떼 특허 괴물에 줘야 한다. 수천억원은 기본이다. 일례로 미국 내 '특허 괴물' 랭킹 4위(보유 특허수 기준)인 인터디지털은 최근 6년 동안 삼성전자·LG전자 등으로부터 3000억~4000억원씩을 걷어갔다.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미국 기업들의 압승을 위해 미국 정부도 전방위로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지난해 특허료·저작권 같은 지식재산권(IP·Intellectual Property) 분야에서만 1206억달러(약 134조원·세계은행 집계)를 벌었다. 10년 전(518억달러)과 견줘보면 100% 넘게 늘었다. 2~5위인 일본·프랑스·독일·영국 4개국의 수익을 모두 합쳐도 미국의 절반 남짓하다. 이는 미국이 제조업이 아닌 지식·아이디어 각축 무대에서 글로벌 패자(覇者)로 거듭났음을 보여준다. 이미 세계 지식 재산권 시장의 절반은 미국 몫이며, 특허 분야에서 미국은 압도적인 세계 1위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특허 전쟁'에서 한국 기업들은 1차 사냥감이 되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와 코오롱은 올 들어 애플과 듀폰의 특허 침해 소송에서 패해 각각 1조원이 넘는 배상금을 물어야 할 처지다.

특허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기업들의 생존술은 무엇인가? Weekly BIZ는 그 해법을 찾기 위해 특허 전문기업 가운데 글로벌 랭킹 1위인'인텔렉추얼 벤처스'(약칭 IV)의 공동 설립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에드워드 정(Jung·사진)을 이달 10일 서울에서 단독 인터뷰했다. IV는 50억달러(약 5조5700억원)의 펀드를 모아 탄생한 기업으로 지금 보유하고 있는 특허권만 4만건이 넘는다.

그래픽=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제조업은 앞으로도 존재하겠지만 아주 낮은 이윤만 낼 것"

'특허 괴물' 비난에 대한 반문 - 대학도 제품 하나 안만들고
라이선스만으로 돈 버는데 '대학 괴물'이라고 부르나?

소국도 발명 대국 될 수 있다 - 150년간 혁신적인 발명 대부분
미국이 만들어 최강국 된 것 소국도 시스템만 잘 갖추면 돼

아이폰 디자인 특허의 가치는? - 명품 옷은 디자인이 가치 좌우
폰 디자인 바뀌면 가치 바뀌나 앱·음악 콘텐츠가 애플의 가치

지금은 제조업으로 더 이상 큰돈을 못 버는 시대인가? 산업혁명 후 유럽·미국이 장악했던 제조업을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이 빼앗아 오고 있는데 그 과실(果實)을 향유할 수는 없는 걸까?

세계 최대 특허 전문기업(일명 '특허 괴물')인 인텔렉추얼벤처스(IV)의 공동 창업자인 에드워드 정(Jung)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이 물음에 대해 "제조업은 앞으로 존재하겠지만 아주 낮은 이윤만 낼 것"이라고 했다. "중국 폭스콘은 아이폰을 제조한다. 그러나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최저가 입찰 논리에 따라 낮은 마진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가 2000년 세운 IV는 출범 12년 만에 전 세계 모든 하이테크 제조 기업들이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손님이 됐다. 언제라도 IV가 자사 법무팀에 "우리 특허를 사용하고 있으니 로열티 협상을 하자"는 서한을 보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미 삼성전자·LG전자·팬택이 그 서한을 받았고 쉬쉬하며 소송 없이 타협했다. 지급한 특허료 액수는 비밀이다.

에드워드 정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 장소에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말총머리(포니 테일)와 캐주얼 정장, 허리띠 없는 바지 차림으로 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낸 발명가 5인' 중 한 명인 그는 개인적으로 400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1000건을 출원 중이다.

"지금은 아이디어 경쟁 시대…혁신 제품 내놓는 제조 기업만 돈 번다"

―실례되는 질문부터 하겠다. IV는 '특허 괴물'인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뭐라고 부를지 우리가 정할 순 없다. 하지만 '대학 괴물(University Troll)'이란 말은 어떻게 생각하나. 대학도 제품도 안 만들고 라이선스만으로 돈을 버는데, 그들도 괴물인가? IV는 설립 후 첫 8년간 한 건의 소송도 안 걸었다. 지난 12년간 다른 회사에 특허 소송을 낸 것은 10건 미만이다. 협상이 불가능할 때만 소송한다. 예컨대 아파트 세입자가 돈을 안 냈을 때 우린 잘 협의해 해결하려는 집주인이다."

―왜 소송을 꺼리나. 특허 전문기업엔 소송이 가장 강력한 무기 아닌가.

"일부 특허 전문기업들은 지금 소유한 소수의 특허를 이용해 최대한 효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기업에 소송을 거는 등 극단적인 도박을 한다. 보유한 특허로 최대한 돈을 뽑아 내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르다. 세계 최고의 발명가 4000여명과 함께 일하며 특허를 더 늘리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래에 더 멋진 것을 발명할 것이다. 기업들과는 오랫동안 지속될 좋은 관계를 원한다."

―한국·중국·일본 등은 주로 제조업으로 돈을 버는데, 특허와 발명의 몫이 커지면 제조 수익은 적어진다.

"중국 레노버(聯想)는 노트북PC를 만들어 팔지만 남는 이익은 별로 없다. 미국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더 큰 몫을 챙긴다. 아이디어와 혁신을 가진 기업이 단순 제조사보다 5~10배 많은 이익을 얻는다. 제조업으로 돈을 벌려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배터리 효율을 2배 높인 혁신 제품을 만들면 된다. (누가 잘 만드느냐는 제조 경쟁이 아니라) 이제는 아이디어 대(對) 아이디어의 경쟁이다. 중국 폭스콘 같은 대형 위탁제조업체(ODM)들은 IV와 좋은 관계 맺기를 굉장히 원한다. 그들은 세계 최고의 조립업체니까, 여기에 IV를 통해 아이디어와 혁신을 갖춰 더욱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다."

"작은 나라도 시스템만 잘 갖추면 발명 대국(大國)이 될 기회 있다"

―아시아 국가들과의 제조 경쟁에서 패배한 미국이 특허를 무기로 하이테크 시장 장악을 노린다는 의견이 있다.

"미국 정부의 의도는 모르겠다. 하지만 특허는 미국보다 작은 국가들에 더 도움이 된다. 역사적으로 지난 150년 동안 전 세계의 산업을 뒤흔든 혁신적인 발명은 대부분 미국에서 나왔다. 1840년대 미국은 세계 GDP 중 2% 미만을 차지해 지금의 한국 수준이었다. 이후 미국은 전구(電球)·자동차·플라스틱·우주항공기술·TV·레이저 등 혁신적인 발명품을 내놨고 최강국이 됐다. 하지만 앞으로 50~100년은 그렇게 안 될 것이다. 미국이 혁신 발명품을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 소국도 정책이나 시스템만 갖추면 강한 발명 대국이 될 기회가 있다."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특허 소송을 어떻게 바라보나.

"최근 특허 분쟁의 문제는 그 결과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각국 정부는 특허 분쟁이 생겼을 때 당사자들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종종 예상치 않은 분쟁 결과가 나와서 몇몇 회사가 (의외의 결과를 노려) 도박판을 벌이려 하기 때문이다. 특허 소송에는 2가지 경우가 있다. 하나는 제조사 간 소송이다. 제조사 간 특허 소송은 특허 침해 배상금보다 시장에서 경쟁자 제거가 목적이다. 이들은 공정한 결론에는 관심이 없다. 다른 하나는 특허 전문기업과 제조사 간 소송이다. 돈만 받으면 된다. 요구하는 금액도 제조사가 받아들일 수준을 요구한다. 특허료를 낼 제조사가 망해서 없어지면 안되니까. 문제는 소규모 특허 전문회사에서 종종 생긴다. 이들은 규모가 작아 잃을 게 없다. 이들이 특허 소송으로 '도박'을 벌이게 된다."

―과도한 특허료 소송 탓에 제품 가격이 상승,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소비자가 진짜 그런 피해를 본 적이 있는지를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 특허 전쟁은 예전부터 있었다. 철도·전기·자동차·전화·컴퓨터·화학·제약 등 거의 모든 테크놀로지 시장에서 특허 전쟁이 벌어졌었다. 소비자가 피해를 봤다는 사례가 있었나."

―애플의 사례는 어떤가. 애플은 삼성전자가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며 1조원대의 소송을 벌였다. 디자인 특허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예를 들겠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나 에르메스가 옷이나 가방을 만들 때 그게 디자인이다. 이때 디자인 덕분에 다른 브랜드의 옷·가방보다 10배나 가치가 높아진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에서 디자인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더했는가. 10배? 그건 아닐 거다. 반대로 애플 디자인이 바뀌면,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나? 애플의 가치는 앱·음악 등 콘텐츠에 있다."

―당신 말대로면 IV는 '특허 괴물'이 아닌 제조사와 발명가를 위한 특허 회사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압박을 받으면 IV도 똑같은 괴물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우리도 많은 재정적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인텔·GE·HP·AT&T 같은 내로라하는 미국 대기업들이 IV에 자금을 댔다.) 이들은 당연히 단기간 이익 회수를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애초부터 돈을 돌려주는 데 20~25년이 걸린다고 얘기했다. IV는 지금처럼 특허를 만들어내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수십억 달러의 비용과 10년 가까운 시간을 투입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 특허가 아니다. 큰 변화를 만들려는 것이고 혁신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새 변화를 가져오려는 것이다."

에드워드 정 인텔렉추얼 벤처스(IV) 공동창업자는 “우리의 강점은‘우리가 뭘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고 ‘문제에 집중’ 하는 데 있다”며 “일반 기업은 자기 회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만 관심이 있지만, 우리는 문제에 맞춰 다양한 곳에서 기술을 찾아오기 때문에 다른 회사에 없는 유연성과 민첩성이 있다”고 말했다. / 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에드워드 정(Edward Jung)
출생 : 1965년 미국 뉴욕
경력 :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설계자(Chief architect), 2000년~현재 IV 최고기술책임자(CTO)
기타 : 하버드대 의대(메디컬스쿨) 자문위원, 프레드허치슨 암연구센터 자문위원
특허 보유수: 400건(등록)·1000여건(출원)


한국, 창의적 역량은 뛰어나
재벌 집중으로 한계… 지식 중심 생태계 꾸려야

"한국 발명가들은 전 세계 발명가 가운데 가장 창의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대기업에 인재가 몰려 이들의 아이디어가 꽃을 못 피우고 있어요. 이들이 창의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지식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국에 미래가 있습니다."

에드워드 정 CTO는 "이미 K팝·드라마 같은 미디어 산업이 글로벌 물꼬를 텄다. 한국에 창의적인 역량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다"며 "한국 기업의 역량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혁신에 수차례 근접한 바 있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 싸이월드와 다중접속역할게임(MMORPG)에서 NC소프트 등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글로벌 진출에 실패했고 특허도 얻지 못했다. '기술 리더십'을 '기술 자본'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취약점은 혁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세계 시장에 끌어내는 요소가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정 CTO는 인텔렉추얼 벤처스(IV)와 같은 '특허 전문 기업을 중심으로 한 지식 재산권 확보' 방식이 한국 경제에 유익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처럼 일부 대기업 중심으로 특허를 모으는 방식은 특허 괴물의 공격 대상이 되기 쉽고 아이디어의 다양성도 빈약하다"며 "우리(IV)는 8년 동안 25억달러를 들여 국제 혁신 특허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 적잖은 돈이지만 같은 기간 한국 정부와 기업이 들인 돈에 비하면 결코 많지 않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실제로 2010년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라는 IV와 유사한 전문 회사를 세웠다. 글로벌 특허 괴물의 위협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한국이 지식 경제 중심 생태계로 진일보하려면 대기업 일변도 경제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는 지금도 좋은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이 많아요. 하지만 대기업 하도급 체제로 묶여 있어 외국 기업이 이들의 기술을 쓰려 해도 연결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변신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의 기술이 전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국가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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