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 기업 모니터그룹 스티븐 제닝스 CEO가 말하는 '저성장 시대의 생존 비법'

입력 2012.07.07 03:04

저성장 시대… 돈 쥐고 있는 건 바보짓
기업들, 황금시대의 규칙 깨고 혁신적인 분야에 과감히 쏟아부어라
"저성장 지속되는 뉴 노멀 시대에 적응하라… 위기 때 움츠리는 기업은 응징을 당할 것"

인플레이션 없이 고(高)성장을 이어가던 세계 경제의 황금기는 종말을 고한 걸까?

세계 경제는 IT(정보기술) 발달과 세계화라는 양대(兩大) 동력에 힘입어 최근 20여년 동안 급팽창했다. 1991년 23조달러이던 글로벌 총생산(global output) 규모는 매년 평균 3% 넘게 증가해 지난해 70조달러(약 8경원)로 두 배 넘게 증가했다(국제통화기금·IMF 집계). 최근 20년간 세계 경제 성장 규모가 직전 100년 동안을 능가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세계 경제의 장기 고성장은 중국·인도 같은 신흥국의 성장 드라이브에 힘입은 바 크다.

중국 등이 저렴한 노동력으로 값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해 세계 각국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완화됐고, 이것이 세계적인 저(低)금리 기조로 이어져 기업은 투자를, 가계는 소비를 각각 늘려 경제 선순환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무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은 2008년부터 깨져 신기루임이 확인됐다. 미국발(發)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만 해도 일시 침체에 그칠 것이라며 희망적 관측이 많았지만, 남유럽 재정 위기가 유로존 위기로 확산되고 세계 경제 전체를 뒤흔들면서 이제는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비관론이 득세하는 형국이다.

물론 "세계 경제에 낙관론이 되돌아왔다"며 올해 세계 경제 성장 전망치를 3.3%에서 3.5%로 올 4월 상향 조정한 IMF처럼 낙관적 전망이 종적을 완전히 감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현재 같은 위기 국면은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가?

세계적인 경영전략 컨설팅 기업인 미국 모니터(Monitor)그룹의 스티븐 제닝스(Stephen Jennings·51) 최고경영자(CEO)의 대답은 이렇다. "앞으로 최소 10년은 장기 저성장(低成長)이 전 세계를 짓누를 것입니다."

국가 발전과 기업 성장 전략 분야의 전문가인 그가 이렇게 보는 이유는 간명하다. 2008년 이후 재정 수단을 동원한 각국의 대대적인 경기 부양 노력으로 회복 조짐을 보이던 세계 경제가 지역별로 확연한 연쇄 둔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지난 1년 동안 성장이 멈췄고 미국은 올 2분기에 성장이 정지됐습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중국·인도·브라질의 성장세도 점차 둔화되고 있습니다. 모든 지역에서 동시에 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춘다면 전 세계가 일본식(式)의 '잃어버린 10년'에 시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의 진단은 "유럽 재정 위기 확산, 미국 경제의 더블 딥(double dip), 중국 경제 경착륙(硬着陸) 등으로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다"(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경고와 상통한다. 세계 경제가 10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 불황과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면 이는 1930년대 대공황(大恐慌) 이후 80년여 만의 초유의 사태이다.

이런 저성장 시대에 기업과 정부,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업의 성장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인가? 제닝스 CEO는 "해법이 있다"고 했다.

전 세계 대부분의 기업이 위기 대비 차원에서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이를 풀어 혁신적인 분야에 과감하게 쏟아부어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이전까지 세계 경제가 욱일승천하듯 뻗어가던 황금시대(golden age)의 성공 규칙에 빠져 있던 정부와 개인도 체질과 사고방식을 혁신과 도전, 개방 쪽으로 바꿔야 한다고 그는 주문한다.

"지금은 선구자적 비전이 필요한 때입니다. 과거를 고수하고 내부를 지향하는 개인이나 기업, 정부는 모두 응징 당할 것입니다."

Weekly BIZ가 본격화하는 글로벌 저성장 시대를 맞아 제닝스 CEO로부터 생존과 번영의 책략(策略)을 들어 보았다.

Weekly BIZ는 지난달 중순 보스턴과 케임브리지를 흘러가는 찰스강 운하가 내려다보이는 모니터그룹 본사에서 스티븐 제닝스(Jennings·51) 최고경영자(CEO)와 마주 앉았다. 모니터는 '경쟁 전략'으로 유명한 마이클 포터(Porter)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1983년 동료 교수 등 5명과 의기투합해 세웠다. 하버드대와 MIT대 등이 있는 케임브리지에 자리 잡은 이 회사는 국가와 기업의 성장 전략과 혁신전략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제닝스 CEO는 25년 경력의 베테랑 컨설턴트답게 '첫째, 둘째, 셋째' 식으로 요점을 정리해 간결하게 속사포 스타일로 말했다. 1시간 넘은 인터뷰 내내 그가 강조한 화두는 현재의 위기는 우리가 예전에 경험한 위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국가와 기업은 이런 대격변을 맞아 근본적으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으로 압축됐다.

"실무 관료 권한 강화하고 인센티브 줘야… 기업들은 아프리카를 주목하라"

그는 "앞으로 글로벌 저성장 흐름이 국내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을, 세계적으로는 보호주의와 고립주의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일자리 창출이 모든 나라의 핵심 어젠다(의제)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창출하라'고 국가나 기업에 엄청난 압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기능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세계 각국에서 '정부 역할론'이 중요 이슈가 되고 있다. 잇따른 금융위기, 재정 위기 등이 '강한 정부의 부활과 규제 강화'를 촉발하고 있다. 중국의 눈부신 발전도 사실 정부의 적극 개입 덕분에 가능했다. 불과 10년 전에 '정부의 부활'이 중요 이슈가 될지 누가 상상했겠나."

―정부의 역할과 기능은 어떤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나?

"먼저 '국가 경제개발 계획'은 '국가 혁신 창출 전략'으로 수정해야 한다. 또 정부와 민간 부문의 긴밀한 협력과 협의가 중요하다. 정부와 민간에서 동기 부여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적절한 이슈를 선택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기업이 국가적인 성장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고 옳은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역할을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실무 관료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이들에게 파격적인 인센티브 지급을 검토해야 한다."

―얼마 전 한국은행 총재는 '케인시언 포퓰리즘(Keynesian Populism)'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정부가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는 것이 도움이 될지 회의적이다"고 주장했다.

"정부 역할의 강화는 현재 유로존에서 진행되는 논쟁의 핵심이기도 하다. 균형 재정을 위한 긴축이냐, 성장을 위한 부양이냐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정부 역할에 대한 논쟁과 연결된다. 이 문제는 올 연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중요 이슈가 될 것이다. 결국 성장과 긴축 사이에서 절충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핵심은 과연 최적 절충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은 작년 말 현재 사상 최대 수준인 1조7240억달러(약 2000조원)에 달할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보수적 경영을 하고 있는데.

"기업이 위기 때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채용과 투자를 줄이거나 늦추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다. 기업의 현금 보유액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기업이라면 지금 성장의 기회를 찾아야 한다. 당장 생존을 위해 현금을 움켜쥐고 있는 것은 매우 어리석다. 무엇보다 곧 다가올 아프리카 시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미 우리 고객 중 많은 기업이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닝스 CEO는 "무엇보다 1군(群) 기업은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기회를 포착했을 때 상대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기 좋다"며 "그렇기 때문에 1군 기업은 위기 때 차별화 전략에 주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과거에 쌓아 올린 성공 방정식에 함몰돼 성장 기회를 날려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기업 입장에선 대대적인 투자가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위기 때는 혁신적이고 대담한 기업은 더욱 강해지고, 보수적이고 내부 지향적 기업은 응징을 당할 것이다. 많은 기업이 사상 최고 실적을 올리면서도 성장 기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기업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주주 이익 극대화인데, 현금을 쌓아놓고 있는 것은 주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뉴 노멀 시대'는 고위 관료와 기업인들에게 흥미로운 도전될 것"

제닝스 CEO는 "나는 기본적으로 낙관적인 편이지만 세계 경제가 언제쯤 회복될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 모두 저(低)성장이 지속되는 '뉴 노멀(New normal) 시대'에 적응해야 합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 고위 관료나 기업 임원에게 흥미로운 도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경제가 고속 성장하는 시기에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현재의 기성세대는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 "젊은 세대의 에너지를 포용하지 못하면 기업의 성장이 불가능할 것"이라고도 했다.

―젊은 세대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는데, 젊은 세대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내가 젊은 세대에 가장 조언하고 싶은 것은 글로벌 경험을 가능한 한 많이 쌓으라는 것이다.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더 전 세계적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다. 직장 생활 초기에 최대한 빨리 또 자주,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다른 문화를 접해보는 경험을 쌓는 것이 엄청나게 중요해질 것이다. 이런 국제 경험이 없으면 앞으로 20년 뒤엔 정부 기관의 수장(首長)이 되거나 민간 기업의 CEO가 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에선 젊은 세대들이 유약(柔弱)하고 힘든 일을 안 하려 한다는 지적이 많다.

"기성세대가 '젊은 친구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고 패기도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인가? 하지만 세계적으로 '밀레니엄 세대는 정치·경제·사회적 문제에 대해 이전 세대와 기대 수준이 확실히 다르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사회적 계약에 대한 정치 성향, 직장과 가정생활의 균형, 경제 성장과 환경 보호의 상충 등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예전 세대와 다르다. 기업들은 두 가지 입장 가운데 선택해야 한다. '그런 생각은 허용할 수 없다'고 이전 방식을 고수하거나, 그들의 에너지와 관심을 성장 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한 만큼 경영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 정부와 기업에 조언한다면?

"한국 역시 보다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보다 상당히 뒤떨어졌던 중국이 엄청난 속도로 맹추격하고 있다. 중국은 방대한 규모만으로 인접국인 한국에 공포 스러운 위협이다. 또 한국은 오픈 이노베이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혁신 창출 측면에서 상당히 배타적이다. 앞으로는 외부와 협업하지 않고 홀로 혁신을 창출하기 어렵다. 한때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일본이 배타적 태도를 취하면서 스스로 고립된 것을 보라."

―현재 위기에 잘 대응하고 있는 기업을 몇개 꼽는다면.

"GE·P&G·유니레버 등이 위기에 움츠러들지 않고 끊임없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위기 저변에 깔려 있는 변화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한국 기업 가운데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돋보인다. 일본 기업들이 저지른 보수적이고 내부 지향적 경영의 폐해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부터 줄곧 내부 지향적 태도를 보였다. 지금 일본 기업의 중간 관리자와 임원 대부분은 해외 경험이 많지 않고 외국어도 잘 못한다."

"유로존, 연금 축소·조기 퇴직·근로시간 연장 등 사회적 갈등 분출할 것"

―유로존 위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핵심은 위기의 연쇄적 전파다. 그리스 위기는 이미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번졌다. 위기 해소를 위해선 경제적 해법을 넘어 정치적 해법이 필요하다. 독일이 위기 극복 재원을 얼마나 부담할지, 남유럽 국가가 주권을 얼마나 포기할지가 열쇠이다. 프랑스 은행 문제는 지금까지 잘 다뤄지지 않았는데, 프랑스 은행도 스페인처럼 대마불사(大馬不死) 문제에 직면해 있다."

―프랑스 은행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얘기인가?

"세계 경제는 지난 25년 동안 엄청난 부채를 쌓아 올렸고, 이제는 부채 축소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 부채 축소는 성장 달성이나 채무 재조정 두 가지 방식으로 가능하다. 현재로선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고 연쇄적 채무 재조정 협상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 보면 위기가 여러 나라로 번지는 것이 불가피하다. 프랑스나 영국도 남유럽국에 이어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유로존 각국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을 펼칠 것이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듯하다가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롤러코스터 현상이 당분간 계속 반복될 것이다."

―부채를 재조정하려면 누군가 희생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위기 극복을 위해선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양책이 실시되지 않는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위기 해소는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정치 사이클은 위기 사이클보다 더 짧기 때문이다. 이런 사이클 불일치는 사회적 계약의 붕괴를 낳는다. 연금 축소, 조기 퇴직, 근로시간 연장 등 현재 유로존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의 대부분이 사회적 계약과 관련돼 있다. 성장 둔화와 부채 축소는 부(富)의 재분배를 유발하고 정치적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사회적 갈등 조절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스티븐 제닝스 CEO는
출생: 1961년 미국 버몬트주 버링턴
학력: 미국 다트머스대 학사,
영국 옥스퍼드대 석사
경력: 1988년 모니터그룹 입사,
모니터그룹 CEO(2006~현재)
전문 분야: 기업 전략, 주주 가치 제고 전략 등
기타: 반도체 장비업체 'LTXC' 이사회 멤버
(1997~현재), 소프트웨어 업체 '아스펜' 이사회의장(2000~현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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