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균등<inequality> 늪에 빠진 미국… 엄청난 대가 치를 것

    •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입력 2012.06.09 03:04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메리칸 드림은 환상
소득 상위 1%가 소득증가분 93% 가져가… 부의 집중 심화

성장 엔진 훼손
부유층 영향력 행사… 세금·정부 지출 줄여… 교육·기술 저투자 초래

미국은 스스로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나라들도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본다. 물론 미국에서 오직 자신의 힘으로 최상위 계층에 오른 인물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부모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자식의 성공 가능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통계를 살펴보면, 우리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요즘 나오는 각종 통계는 '아메리칸 드림'이 환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미국은 기회균등(equality of opportunity)의 정도가 유럽보다 낮다. 심지어 미국은 기회 균등성 데이터가 있는 어떤 선진국보다 불균등성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인 2009~2010년 미국에서 소득 수준이 상위 1%에 속하는 계층은 전체 소득 증가분의 93%를 가져갔다. 부·건강·기대수명 등 다른 불균등 지수들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 상위 계층으로 소득과 부가 집중되고, 중산층은 축소되며 하위 계층은 증가하는 현상은 명백한 추세가 되고 있다.

일러스트= 김현국 기자 kal9080@chosun.com

초고소득층이 사회에 엄청나게 기여한 대가로 높은 소득을 받는다면 이해할 여지가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 현실은 어떤가? 세계경제와 그들의 회사를 파멸 직전으로 밀어 넣은 은행가들조차 천문학적 성과급을 받았다. 초고소득층의 행위는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의 부적절성을 보여준다. 어떤 CEO는 독점적 권력을 행사해 부를 획득했고, 일부는 기업 이익의 상당 부분을 직접 챙기기 위해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악용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정부에 비싼 가격으로 의약품을 팔아넘기거나 정부로부터 광물 채굴권을 헐값에 넘겨받는 등 정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아내기 위해 정치적 유착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금융업 종사자는 약탈적 대출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털어갔다. 이런 사람들은 빈곤층을 직접적 희생양으로 삼아 재산을 불렸다.

'고소득층을 더욱 부자로 만들면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본다'는 '낙수 경제'(trickle-down economics)의 효과가 티끌만큼이라도 있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인 대부분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소득 측면에서 1997년보다 가난해졌다. 성장의 이익이 모두 초고소득층에 돌아간 것이다.

미국의 불균등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중산층과 빈곤층이 불평할 근거가 별로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중산층과 빈곤층이 가져가는 파이의 비중은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이 맞지만, 부유층과 초부유층의 공헌 덕분에 파이 자체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옳지 않다. 미국은 부유층·중산층·빈곤층의 소득이 함께 증가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 동안의 성장률이, 각 계층의 소득이 다르게 움직인 1980년 이후보다 훨씬 높다.

불균등의 원천을 이해한다면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지대 추구는 경제를 왜곡한다. 물론 시장의 힘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시장은 정치에 의해 좌우된다. 선거 자금 모금 캠페인이나 정부와 기업을 오가는 회전문 인사가 횡행하는 상황에선, 정치는 결국 돈에 의해 좌우된다. 예를 들어, 파생상품에 대한 책임은 면책해 주는 반면 학자금 대출 탕감을 허용하지 않는 파산법은 은행가(家)를 더욱 부자로 만들고 빈곤층은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돈이 민주주의를 압도하는 국가에서 이런 법률은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불균등 증가가 반드시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과 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잘하고 있는 시장경제 국가가 적지 않다. 게다가 어떤 국가는 불균등성까지 줄이고 있다.

불균등 개선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미국은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다. 불균등은 성장률 저하와 효율성 저해로 이어진다. 기회의 부족은 가장 소중한 자산인 인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빈곤층은 물론 중산층에 속하는 많은 사람이 그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 서비스의 확대를 원하지 않으며 강한 정부가 소득을 재분배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부유층은 세금을 낮추고 정부 지출을 줄이려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사회기반시설, 교육, 기술에 대한 저투자를 초래해 성장 엔진의 훼손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대불황(the Great Recession)은 기본적인 사회적 지출 감축과 높은 실업에 따른 임금 하락 압박을 초래해 불균등성을 높이고 있다. 국제연합(UN)과 국제통화기금(IMF)도 불균등성이 경제적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불균등성이 국가의 가치와 정체성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모든 사람에게 정의로운 국가가 아니라, 부유층만 정의의 혜택을 누리는 국가가 됐다. 이는 2000년대 중반 부동산 시장 붕괴 이후 주택 압류 위기 때 명백하게 드러났다. 미국은 이제 기회의 땅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불균등이 지속돼선 안 되며, 지금이라도 '아메리칸 드림' 회복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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