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노키아 '선발자의 불이익' 당한 셈… 스마트폰 가장 먼저 만들고도 아이폰 좋은 일만 시켜줘

    • 조 신·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정보통신산업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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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2.05.19 03:03

      초기엔 와이파이 등 여건 부족… 10년간 고생만 하고 재미 못봐
      IT기술은 빠른게 능사 아니야

      조 신·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 정보통신산업MD

      노키아의 위기에 대해 많은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즉, 저가 휴대폰을 파는 데 급급해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했고, 뒤늦게 대응하면서도 허둥지둥 실수를 연발하다가 이제는 투기등급까지 신용이 하락하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노키아는 명색이 20여년 동안 휴대폰 시장을 이끌어 온 강자였다. 그런 노키아가 스마트폰에 대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다가 당했을까? 노키아는 누구보다도 먼저 스마트폰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는 스마트폰이 활성화될 여건이 갖춰지지 못했다. 말하자면 노키아는 '선발자의 불이익(First Mover's Disadvantage)'을 당한 셈이다.

      노키아는 궁극적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올 것을 예견했고 1996년부터 꾸준히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어떤 이들은 그건 오늘날의 스마트폰과는 다른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 출시된 노키아 스마트폰들은 성능이나 기능 면에서 지금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적어도 스마트폰 자체의 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오늘날만큼 스마트폰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판매량은 어떤가? 노키아는 2004년 1200만대, 2005년 2850만대, 2006년 3900만대를 판매했다. 당시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은 50%를 상회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아이폰이 2007년 6월 출시된 이래 2008년 1162만대, 2009년 2073만대, 2010년 3998만대 판매된 것과 비교하면 노키아의 '2004~06년' 판매실적은 놀라운 것이다.

      문제는 스마트폰에 걸맞은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당시엔 앱스토어나 모바일용 웹사이트가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PC용 웹사이트를 보는 것은 너무 불편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모바일 환경에 적합한 SNS도 없었다. 비용과 편리성 면에서 스마트폰에 필수 기능인 와이파이가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였다.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곧 온다고 하면서 10년이 지났고, 이 10년간 노키아는 계속 시장을 이끌어갔다.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것이 기술적인 가능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지만, 주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선발자가 겪는 어려움의 전형적인 예이다. 한 기업이 혼자서 생태계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선발자는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면 자원은 분산되고 전략도 색깔이 애매해진다. 그러니 새로운 길을 닦느라 힘은 많이 드는데 얻는 것은 없고, 뒤따라오는 경쟁자에게 길을 열어주기만 할 수도 있다.

      후발자는 선발자의 경험과 자산을 공유하면서 전략적인 요충지만을 골라 집중할 수 있어 도리어 유리할 수 있다. 애플의 예를 보자. 노키아의 주도적인 노력 덕에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할 때는 스마트폰 여건이 훨씬 좋아졌다. 대표적인 예가 앞에서 언급한 와이파이·모바일 웹사이트·SNS가 보편화되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애플은 앱스토어 구축과 터치스크린 등 UI 개선에 집중하여 선발자 대비 차별화 포인트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조직 관점에서 보면 혼자서 시장을 끌고 가는 선발자는 지쳐 추진동력을 잃을 수 있다. 더 나쁜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관성적으로 대응하는 경우이다. 물론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고 제품 개선도 해 나가지만 기존 틀을 깨지는 못한다. 조직 전체에 매너리즘과 냉소주의가 흐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설사 경쟁력 있는 후발자가 등장하더라도 선발자가 더 빨리 달아나면 될 텐데, 이게 어려운 이유가 조직 이슈 때문이다. 외부 환경이 바뀌었는데도 "그거 내가 다 경험한 거야"라는 답이 돌아온다. 경쟁자가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와도 "그거 내가 해 봤는데, 잘 안 돼"라고 무시하게 된다. 소위 '겪어 본 일, 해 본 일(Been There, Done That) 증후군'이다. 그러는 사이 후발자는 선발자를 제치고 앞으로 나선다.

      노키아의 스마트폰 사례는 선발자가 겪을 수 있는 불이익을 잘 보여준다. 특히 IT산업처럼 기술변화가 빠른 분야에서는 흔히 시장, 소비자, 정부 정책 등을 무시하고 기술에만 매몰돼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조건 먼저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모든 환경을 잘 고려해 경쟁자보다 반발자국만 앞서 가면 된다.

      조신 MD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경제학 박사)을 졸업했다. SK브로드밴드 사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