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찔러서 옳은 길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는 환상일 뿐

    • 라구람 라잔·시카고대 석좌교수

입력 2012.04.28 03:02

라구람 라잔·시카고대 석좌교수
정부의 개입주의(paternalism)에 대한 논쟁이 거세다. 최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의료보험 강제가입 개혁안이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정부는 모든 인간을 보험에 강제적으로 가입시킬 권한이 없다'는 주장을 편다. 정부가 강압적 권위를 내세워 자신들이 세운 원칙이 '보편적인 상식'인 것처럼 강요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금융관련 정책도 이런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미국의 주택저당증권(MBS)을 선(先)순위로 발행하면 금융회사 입장에서 리스크가 낮고, 소비자에게 높은 금리가 제공되기 때문에 정부는 '적극 이용해도 괜찮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상품은 정부의 생각과 다르게 회수율이 낮아 위험도가 높은 상품으로 판명났고, 정부의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 정부는 뭐든지 조화롭게 만들 수 있는 조정력(coordinating power)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주거수준이 낮고 빈곤층이 많은 시카고 다운타운 지역을 운전하고 있노라면, 정부가 투자해 짓고 있는 부유층 전용 초고층 주택 건설 현장을 지나가게 된다. '부유층과 빈곤층을 통합하자'며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정책의 한 단면이다. 하지만 '가난, 실업, 범죄를 없앨 수 있는 해법이 이런 초고층 주택 건축인가'라는 의문점이 든다.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지역에 초고층 주택을 지어봐야 소용이 없다. 일부 가구만이 안정적으로 가족을 꾸리고 있는 곳에 이런 주택정책을 펼치는 것은 후손들을 위한 선택이 아니다.

물론 정부의 적절한 개입은 필요하다. 연금제도와 연금상품 같은 은퇴정책이 그렇다. 고령층은 퇴직금을 갖고 장난칠 수 없게 됐고, 저축을 강요받는다. 하지만 최소한 은퇴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 개입은 순기능이 더 많아 보인다. 의료보험 개혁안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대부터 고령층까지 모두 의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면 평생 건강을 보증받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이러한 개입주의를 보완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란 개념을 경제정책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기존의 정부 개입주의가 선택의 자유를 배제한 개념이었다면,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반대로 선택의 자유를 과감하게 반영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베스트셀러인 '넛지(nudge·옆구리 찌르기)'를 쓴 시카고대의 동료 교수인 리처드 탤러(Richard Thaler)와 오바마 대통령실 정보규제국 실장인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이 활발하게 주창하면서 유명해졌다. "정부 개입주의에 대한 불편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인간의 행동을 재빠르게 간파하고 이들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 좋은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금융상품을 예로 들어보자. 어떤 퇴직자가 은퇴자금을 어느 금융상품에 투자할지 고민한다고 치자.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자유'와 '개입'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정부의 개입은 '금융회사 직원은 소비자에게 기본형 상품을 추천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가령 주식(60%), 채권(30%), 머니마켓 펀드(10%) 같은 식으로 소비자에게 권해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거꾸로 '자유'를 실천할 때 생긴다. 금융회사 직원이 직접 기본형 상품을 선택해 권유할 수 있는 자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대부분 권유받은 기본형 상품을 해지하지 않기 때문에, 직원의 자유주의적 선택은 사실상 '강요'로 변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착각에 불과하다. 여전히 인간이 심사숙고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옆구리를 쿡쿡 찔린다는 사실조차 모르기 때문에 큰 불행을 마주하게 된다. 또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를 구현하는 정부와 금융회사는 투자자들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식에 투자하라'는 기본형 상품을 내놓기 십상인데, 이럴 경우 은퇴자금은 획일화된 금융상품에 쏠려 리스크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사실 이미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은 투자자들이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기본형 상품들을 내놓고 있다. 탤러와 선스타인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자유주의적 개입주의가 구현된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환상일 뿐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정부는 퇴직금을 굴릴 금융상품 선택을 권유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보편적 상식을 바탕으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해주면 그만이다. 정부가 적절히 개입하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자유주의적 개입주의'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불필요한 강요를 낳아 획일화를 조장할수 있다는 점을 미 정부는 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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