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노벨 경제학상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 교수

    • 0

    입력 2012.03.31 03:44

      당신의 상식은 틀렸다
      수십만명 행동실험 결과 엉뚱한 결정하는 경향 커, 암보다 테러·지진 등… 확률 낮은 위험 과대평가 "주관적 자신감은 감정일 뿐… 빠른 사고는 '내가 보는 게 세상(WYSTI·what you see is all there is)의 전부'라는 함정에 빠져"

      "저는 고정관념에 기초한 인간의 두루뭉술한 사고와 편향성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인간이 모두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합리성'이라는 개념은 매우 비현실적입니다. 저는 '합리성'이란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싶을 뿐입니다."

      2002년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경제학상 시상식. 이스라엘 출신의 한 심리학자가 밝힌 이 수상 소감은 주류 경제학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학창 시절에 단 한 번도 경제학 수업을 듣지 않은 심리학자가 사상 처음 주류경제학자들의 '텃밭'인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데다가, 아예 '인간은 합리적 선택을 하는 존재'라는 주류경제학의 기본 토대 자체가 잘못됐다고 '폭탄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대니얼 카너먼(Kahneman·78)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지금까지 역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총 69명) 가운데 비(非)경제학자는 4명인데 그중 한명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인다. 인간이 판단·결정을 할 때 얼마나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경제활동을 하는지를 들여다보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창시자이자, 대부(代父)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50년 동안 수십만명의 인원을 실험에 동원해 50여개의 이론을 정립했다.

      현대 자본주의의 동맥(動脈)인 주류 경제학은 '인간은 이성적인 노력으로 최대한 똑똑한 결정을 내린다'는 대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카너먼 교수의 결론은 완전히 다르다. 이성이 판단을 지배하기는커녕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상식 밖의 결정을 하는 성향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주관에 휘둘려 충동적이며, 집단적으로 똑같이 행동해 자기 과신(過信)과 편향에 빠집니다. 때로는 자신이 보는 대로, 때로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결정하는 존재입니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그가 정립한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영향으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세계적인 행동경제학 열풍을 낳았다. "카너먼 교수 이전에는 행동경제학이란 장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행동경제학'이란 학문의 첫 페이지를 연 대가(大家)이다."(이준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카너먼 교수를 포함한 행동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동원해 주식시장의 거품, 기업의 독단적인 결정, 돈에 눈먼 금융회사의 행태 등을 집중 공격했다. 이들은 합리성으로 포장된 인간의 이면(裏面)에 숨겨진 비합리성의 허물을 벗겨 내면서 '개인은 물론 집단도 비상식적인 판단·결정으로 몰락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정관념에 빠져 뭐든지 잘될 거라는 낙관주의와 과도한 자신감에 빠져 있으며 이런 비합리성이 자본주의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기업의 의사결정, 소비자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세계 경제에는 2000년대 초 IT 버블이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같은 거품(bubble)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입니다."

      이달 25일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 사는 카너먼 교수를 Weekly BIZ가 국내 언론 최초로 직접 찾아가 만났다. 그의 50년 연구성과를 농축한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이 지난해 10월말 미국에서 출간된 지 딱 5개월 된 날이었다. 80세를 앞둔 고령인데도 카너먼 교수는 시종 활력이 넘쳤다.대니얼 카너먼(Kahneman)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의 핵심 논지는 '뇌에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빠른 사고'(fast thinking)와 '느린 사고'(slow thinking)이다. 빠른 사고는 감성적이며 직관적으로 즉각 작용하지만, 느린 사고는 천천히 논리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다. 대부분 사람은 빠른 사고를 하면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보자. "야구방망이와 야구공을 합쳐 1달러 10센트다. 방망이는 공보다 1달러 더 비싸다. 공의 가격은 얼마인가?"

      카너먼 교수는 "대부분 사람은 곧장 10센트라고 답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오답(誤答)이다. 공이 10센트이고 방망이가 1달러 더 비싸다면 방망이는 1달러 10센트로 방망이와 공을 합쳐 1달러 20센트가 된다. 결국 공은 5센트가 돼야 방망이(1달러 5센트)를 합쳐 1달러 10센트가 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과학전시관을 찾은 방문객들에게 물었다. "기름 유출에 피해를 본 새들을 구하기 위해 5달러를 기부하시겠습니까?" 이 질문에 방문객들은 평균 20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질문에서 기부금액을 5달러에서 400달러로 높여 보니 사정이 달라졌다. 평균 143달러로 기부금이 확 높아진 것이다. 질문에 제시한 기부금액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는 강조한다. "빠른 사고는 결국 '당신이 보는 게 세상의 전부(WYSTI·what you see is all there is)'란 함정에 빠지게 된다. 빠르고 사려 깊지 못한 의사결정은 과신(過信)과 낙관주의로 이어진다. 논리적이고 느린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을 알지만, 그걸 하지 않는다. 이득보다 손실의 불만족을 두려워하게 되고, 편향적인 판단을 일삼는다."

      직관적인 사고의 위험성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을
      성급히 사실이라 믿어버리는 경향 커
      자신을 부정하는 걸 본능적으로 거부

      카너먼 교수는 뉴욕 맨해튼 중심부에 있는 타임스퀘어에서 3㎞쯤 떨어진 한 고급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132㎡(약 40평)쯤 규모로 전 프린스턴대 교수인 부인과 함께 카너먼 교수가 20년간 지내온 곳이다. 거실 벽면 곳곳에 유화(油畵)가 걸려 있는 소파에 카너먼 교수와 마주 앉았다. 기자가 질문을 하기 무섭게 그는 속사포처럼 대답했지만,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닌 질문엔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뗐다.

      ―'빠른 사고'를 강조했는데 인간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인가.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을 성급히 '사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크다. 스스로 비판적이기가 너무 어렵다. 직관을 거부하고, 자신을 부정하는 일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잘못된 의사결정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에도 방치하는 경향이 높다."

      ―왜 인간은 '빠른 사고'에 익숙해졌는가.

      "사람의 자아에는 기억 자아(remembering self)와 경험 자아(experiencing self)가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과거의 경험을 다양한 각도로 분석해서 판단하지 않고, 기억 자아에만 의존해 내가 하고 싶은 기억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상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 자아를 고려해 종합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은 없을까.

      "느리고 빠른 두 가지 사고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데 혼자서는 통제력이 떨어져 어렵다. 개인보다 조직이 오류를 잘 피할 수 있다. 조직은 개인보다 천천히 생각하고, 질서 정연한 절차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더 정교하게 개인을 훈련시킬 수 있고, 서로의 잘못을 봐줄 수 있다."

      글로벌 경제의 거품위기가 터질 때마다, 파이낸셜타임스(FT)·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카너먼 교수에게 달려갔다. 기존의 경제적 이론과 판단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현상에 대한 분석적 설명을 듣기 위해서다. 카너먼 교수는 이날 지난 10년간의 경제위기와 기업과 소비자의 의사결정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았다.

      ―지속적인 '버블' 현상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결과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당연하다. 과도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투자한 돈 이상을 거둬들이게 될 거라고 맹신했다. 이른바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다. 내가 소유하면, 다른 사람이 소유할 때보다 더 큰 가치가 있고, 섣불리 되팔기 싫다는 그릇된 믿음에서다. 가령, 20달러짜리 시계도 내 소유이면 40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누가 30달러에 사겠다고 하면 '말도 안 된다'며 거절하는 것이다. 이런 과도한 자신감이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힘이다. 사실 나에게 그동안 경제적 측면에서 버블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뭔가 변하지 않는다면 이런 위기는 계속 찾아올 것이다."

      ―그럼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팔순(八旬)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외관상 정정했다. 매일 러닝머신을 이용해 운동하며 건강을 유지한다는 그는“대기업 컨설팅을 하면서 내 인생의 마지막 연구가 될 인간의 행복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정부 수립 후 이스라엘 국적자로 5번째 노벨 수상자인 그는“자녀의 사소한 아이디어도 존중(respect)해주는 이스라엘의 교육환경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원동력”이라고 했다. 카너먼 교수는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비합리적인 선택과 결정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되므로 평소 스스로 깨달으려는 노력을 기울여 고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 뉴욕=이신영 기자

      "편향적인 CEO들의 의사결정이다. 사람들은 자기 어깨너머로 자신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싫어한다. 실패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 CEO들은 자신을 스스로 태풍을 헤쳐나가는 선박의 선장(captain)이라고 생각한다. '나한테 맡겨라. 내가 해결해주겠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CEO들은 의사결정이 도박(gambling)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장의 역할은 제한적이며, 배가 침몰할 수 있다."

      ―기업이 의사결정을 잘하려면 뭐가 달라져야 하나?

      "기업은 단순히 상품만을 만드는 조직이 아니라, 의사결정을 생산하는 공장(decision making factory)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TV를 만드는 회사는 부품관리를 하는데, 왜 그 TV 회사는 의사결정의 품질 관리는 안 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의사결정을 돌아보는 시스템적인 구조를 만들고, 전체적인 경험을 토대로 되돌아봐야 한다."

      ―의사결정상의 문제를 드러낸 대표적인 기업을 꼽는다면?

      "필름업계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코닥(KODAK)이다. 코닥은 수익률이 가장 좋을 때 혁신을 못했다. 코닥이 파산으로 몰리게 될 가능성은 매우 명백했다. 빨리 유동성을 공급했어야 했다. 문제는 손실을 회피하느라 불확실한 결정을 내렸다는 데 있다. 회사 이미지가 상하게 될까 봐 '아직 배가 침몰하진 않았다'는 임시방편적인 결론을 계속 내린 것이다. 재빠르게 팔 건 팔고, 주주들을 설득하고…. 그런 의사결정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브리티시 페트롤리움(BP)도 2010년 4월 멕시코만 대형 기름유출 문제를 냈으나 다른 회사 탓이라고 계속 변명하다가 한 달이 지나서야 사과했다.

      "BP의 전 CEO인 토니 헤이워드(Hayward)는 자신의 의사결정을 도울 유능한 코치(측근)가 회사에 있었다. 만약 CEO와 코치가 관계가 좋았다면 의사결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헤이워드는 코치의 말을 듣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일본은 쓰나미 문제로 원전의 방사능 유출 문제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쓰나미가 올 것을 알고도 안전문제에 소홀했다고 지적한다.

      "물론 쓰나미로부터 안전을 지키려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쓰나미에 대비하는 계획을 최초에 세웠어야 했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의사결정의 틀이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실패에 대한 결정이 최초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발생 가능한 오류를 포함해 계획을 세워야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은 '과도한 자신감'을 기업의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한국도 저축은행 여러 곳이 과신에 빠져 부동산업자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빌려줬다가 거품이 꺼지자 유동성 위기로 영업정지됐다.

      "금융회사는 '뭐든지 하면 된다'는 낙관주의로 무리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쏜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짓을 중단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로열티(loyalty)를 강요하지만, 결과적으로 전후 사정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꼴이다. 금융회사는 소비재를 파는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소비자로부터의) 피드백이 그만큼 적어 피부로 체감을 잘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는 어떻게 경제활동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대해, 카너먼 교수는 "적정가격이 존재하지 않은 주식시장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주식 매수(買收)자는 주식이 더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지만, 매도(賣渡)자는 같은 주식을 두고 주가가 너무 높아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적정가격이 없는 주식시장을 재산을 몽땅 날릴 수도 있는 대표적인 '비합리적 공간'으로 뽑는다.

      ―주식거래를 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은 무엇인가?

      "주식의 수익률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가 왜 주식을 샀는지 끊임없는 관리가 필요하다. 내가 사고자 계획을 짰던 주식을 왜 사야 하는지, 내가 왜 안 사는지 이유도 만들어야 한다. 너무 자주 주식거래를 하면 안 된다. 주관적인 자신감은 감정일 뿐이다. 시장 평균을 웃도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으면 안 된다. 일반적으로 3개의 뮤추얼펀드(mutual fund)가 있다면 2곳은 특정 해에 전체 시장 평균보다 투자 수익률이 낮다. 펀드 성과나 수익과 해당 관리 직원의 능력과의 관련성은 1% 수준밖에 안 된다."

      필름의 제왕 코닥의 몰락
      수익률 가장 좋을 때 혁신 못해
      회사 이미지가 상하게 될까 봐
      임시방편적인 결론만 계속 내려

      주식 거래를 할 때 유의점
      시장평균 웃도는 수익 낼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주의 때문에 무리수 둬
      내가 왜 샀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애플의 주가가 주당 600달러대까지 올라갔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애플 주식을 사지 않으면 바보로 평가받는다. 주변 사람들이 애플 주식을 갖는 게 굉장히 현명해 보이니까 사는 것이다. 얼마에 팔지, 얼마를 유지할지는 모른다. 과장된 것으로 본다. 어느 순간엔 내려가지 않겠느냐?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카너먼 교수는 "사실 나는 수년 전 재무관리사로부터 '해고'를 당했다"고 했다. 공격적인 투자를 원하는 재무관리사와, 물가상승률보다 조금 나은 수익을 추구하던 그와 마찰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굉장히 보수적이라서 주식투자를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교수님은 "창업하는 사람은 처음에 반드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당수가 망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경제활동은 낙관주의에 따라 움직인다. 그들에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라'고 얘기해줄 수 없다. 다만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창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물론 내 친구가 창업한다면 말릴 것이다(웃음)."

      ―당신의 사상을 평가한다면?

      "행동경제학은 시장이 완벽하고, 기업은 합리적이며 소비자를 보호해준다는 기존의 주류경제학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앞으로 더 성장할 것이다. 이 학문에 많은 사람이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