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저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美와튼스쿨 교수

입력 2012.02.18 03:02

[Weekly BIZ] [Cover story]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저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美와튼스쿨 교수
협상력은 논리보다 공감에서 나온다
상대가 있는 모든 일상생활이 협상… 비행기 연착해 짜증내는 200여 승객 중
단 1명만 600달러짜리 무료항공권 받아… 승무원에 "고생 많다" 한마디 했기 때문

비행기가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 때문에 예정보다 4시간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200여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며 승무원과 기장을 향해 짜증을 냈다. '당신들 때문에 스케줄이 엉망이 됐다'는 식이었다. 며칠 뒤 이날 승객 중 단 한 명만 항공사로부터 600달러짜리 무료 항공권을 받았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비결은 말 한마디였다. 항공권을 받은 승객은 승무원을 오히려 위로했다. "날씨도 안 좋은데 연장근무를 해서 얼마나 고생이 많습니까." 이 한마디가 승무원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승객은 공짜 티켓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시대 최고 협상 달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튜어트 다이아몬드(Diamond) 와튼스쿨(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주관하는 '협상' 강의에 등장하는 얘기다. 와튼스쿨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선정한 경영대학원(MBA) 순위평가에서 지난해까지 최근 11년간 단 한 번을 제외하고 열 번이나 1등을 차지했다.

다이아몬드 교수 강의는 이 학교에서 10여년간 최고 인기강좌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는 와튼스쿨의 아이콘(icon)으로 불린다.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5000포인트를 받고 수강신청을 경매 방식으로 사고파는데, 이 강좌 수업권을 따내기 위해 1만포인트 넘게 걸어야 한다. 대부분의 다른 수업은 500포인트 미만이면 가볍게 들을 수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핵심 메시지는 "협상은 힘과 논리가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역발상이다. 수학과 재무 지식으로 무장한 경영대학원에 그가 휴머니즘과 감성의 열기를 불어넣자, 미래의 최고경영자(CEO)와 기업들이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협상의 대가’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 교수가 두 남자가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보며 ‘바로 이거야’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힘과 논리 대신 감성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WeeklyBIZ는 지난 15일 다이아몬드 교수를 서울에서 만나 2시간 가까이 집중 인터뷰했다. 그는 한눈에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둥근 안경테 너머 두 눈동자엔 매서운 빛이 번쩍였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힘·협박·파업·비난 등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면 들인 노력에 비해 얻어낼 수 있는 파이가 작아진다"고 했다. 대신 "상대방의 생각과 감성을 이해하고 존중할수록 얻는 대가가 더 커진다"고 강조했다. 상대방을 협박하고 힘으로 맞서야만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얻는다는 고전적인 협상법과는 180도 다른 접근법이다.

이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쓰인 군사전략서인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상(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謀攻(모공)'편)'이란 구절과 맥락이 닿는다. 2500여 년 전 중국 병법서에 등장한 예지(叡智)가 21세기 세계 최고 자본주의 인재양성기관에서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힘과 논리로 협상을 진행하면 상대방을 화나게 하고 보복을 부르며 테러리스트만 득세한다"고 했다.

그의 이른바 '감성(感性) 협상론'은 요즘 글로벌 기업에서 선풍적인 인기이다. IT기업인 구글은 전 세계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감성 협상 교육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JP모간·IBM·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해 세계 100대 기업 중 절반이 그에게 컨설팅을 받았다. 실제 그의 스케줄은 분 단위로 꽉 짜여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공개한 올 2월 일정표는 서울, 영국 런던, 미국 시카고·필라델피아·프린스턴 등지에서 열리는 워크숍과 강연 등으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협상 상대방의 입장이 돼 머릿속을 읽고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을 파고들라
거짓말은 금물… 가면은 언젠가 벗겨진다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교수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와튼스쿨 강의실에서 ‘협상’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수업은 비싼 가격만큼 강좌 이수 요건이 엄격하다. 그의 제자들에 따르면 매주 숙제를 하지 않거나, 수업에 단 한 차례라도 결석할 경우 수업 전체가 낙제점(fail)을 받는다고 한다. / 사진작가 제니퍼 고트
'협상의 최고 달인'으로 불리는 스튜어트 다이아몬드(Diamond) 교수가 말하는 '감성 협상론'의 정수(精髓)는 '더 많이 얻어내는 것(getting more)'이다. 상대방에게서 많이 받아내려면, 그만큼 상대방을 더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이 성공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호감이나 신뢰처럼 사람 관계에서 비롯된 경우가 전체의 55%에 이르며 전문 지식은 8%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대다수 사람이 논리가 아닌 감성(emotion)에 의존한다는 증거"라고 했다. 그에게 상대방 마음을 얻는 방법부터 물었다.

―상대방을 어떻게 연구해야 하는가?

"협상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보다 상대방 입장이 돼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봐야 한다는 것이다. 협상은 그들의 생각과 감성·니즈(needs·원하는 것들)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상대방이 예전에 했던 말도 찾아내 곱씹어야 상대방이 지금 원하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볼 때는 별 의미 없는 것인데, 상대방이 이를 절실히 원한다면 비용 부담 없이 들어줄 수 있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실제 그런 사례가 있나?

"내 학생 중 한 명은 구글의 한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서와 거래하는 협력업체가 제품 가격을 올리겠다고 했다. 이 학생은 협력업체에 이렇게 제안했다. '당신 같은 협력업체 직원은 우리 부서말고 다른 부서를 접촉하기 힘들지 않은가?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면, 다른 부서에 친절하게 소개를 해주고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결과는 제품 가격 동결로 돌아왔다."

그는 다른 사례도 들려줬다. "한 IT 사업가가 수백만달러 매출을 올릴 수 있는 기업을 고객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 고객은 '노(No)'라고 이미 말했다. 이 사업가는 해당 고객을 심층 연구한 끝에 해당 고객의 딸이 컴퓨터를 싫어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음을 알았다. IT 사업가는 상대 고객의 집을 찾아 딸에게 컴퓨터를 가르쳤고 결국 고객과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IT 사업가가 그 고객에게 굉장히 가치 있는 사람이 된 덕분이다."

―당신 주장대로 성공적인 협상을 해 많은 것을 얻어낸 역사적 인물이 있나?

"마하트마 간디(Gandhi)와 마틴 루서 킹(King)이다. 인도가 영국 치하에 있던 시절, 간디는 한 번도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그는 간단하게 "당신들은 문명화된 영국인들이고 정말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차별하고 있다. 어찌 된 일입니까?"란 말을 반복했다. 2차세계대전 후 결국 영국은 인도를 떠났다. 흑인 민권운동을 벌였던 루서 킹은 '미국 헌법은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대우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밝히고 있는데, 실상 그렇지 않아서 참 혼란스럽다' 하는 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했다. 이들은 상대방의 표준(standard)을 꿰뚫고 이용했다. 상대방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규칙을 파악하고 이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것이다."

―'양자택일(all or nothing)'식 힘의 대결 협상은 어떤가?

"엄청난 비극이며 갈등만 조장할 뿐이다. 창의성도, 협력도 모두 없다. 힘으로 싸우다보면 상대방인 기업, 정부, 심지어 가족까지 테러리스트로 만든다. 양자택일식 대결은 상대방을 화나게할 뿐이다. 협력 관계에서 일하면 갈등 관계일 때보다 4배나 더 효율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일부 협상가는 처음에 강하게 밀어붙여야 상대가 양보할 여지가 생긴다고 말한다. 처음에 극단적인 요구를 하면 상대방은 우선 '노(No)'라고 얘기할 테니 그때 한발 물러서는 척하면서 원하는 요구를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술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을 낮춘다. 역사적으로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의 보복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게 옳은 방법은 아니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知彼知己·상대방과 나 자신을 알아야 승리할 수 있다)'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여러 사람이 그런 측면을 지적했지만, 나는 '손자병법'을 읽은 적이 없다. 내 협상법은 스스로 터득한 이치다. 나는 언론계(그는 뉴욕타임스 등에서 일했다)를 거쳐 대형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 등 유명 기업에서 협상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지난 20여년간 협상 강연을 하며 미국, 아시아, 유럽 등 40여개국 정부와 IBM 등 기업 관계자 3만여명을 만났는데, 이 과정에서 나만의 협상론을 완성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협상론의 전문가이면서도 탁월한 실천적인 협상가다.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의 제자들이 공개한 일화이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2001년 1월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 수소문 끝에 그가 찾은 사람은 심장 수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웨인 아이솜(Isom) 박사였다. 이미 그는 몇 달 동안 수술 일정이 꽉 차 있어 빈 일정이 없었다. 병상에 누워있던 다이아몬드 교수는 아이솜 박사에 대한 정밀 조사에 착수했다. 아이솜 박사는 당시 소동맥의 콜레스테롤 축적을 집중 연구하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받아야할 수술 부위와 일치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메일을 아이솜 박사에게 보냈다. '만약 내 수술을 당신이 맡는다면 당신의 연구에 결정적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뜻밖에도 아이솜 박사는 휴가 중 짬을 내 다이아몬드 교수를 직접 수술했다." 다이아몬드 교수가 적확하고 예리하게 아이솜 박사의 의중을 파악한 덕분에 거둔 협상의 대승리였다."

양자택일식 힘의 대결
처음에 강하게 밀어붙인 후 한발 물러서는 척하는 협상은 신뢰 무너뜨려 결국 역효과

내가 심장발작 일으켰을 때
스케줄 꽉 찬 심장 전문가의 의학적 관심 분야 파악후
"내 수술이 연구에 도움" 제안… 휴가 중임에도 달려와 집도

회사 생활도 협상이 중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면 고용주에 대한 정보 알아야
은퇴 앞둔 고참을 찾아가라…  그가 많은 것을 알려준다

―본인이 직접 협상에 참여했던 것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경험이 있다면?

"1990년 볼리비아 정부 요청으로 남미 정글에서 코카인의 원료인 코카나무를 재배하던 농민 3000명을 설득했던 일이다. 당시 코카 재배를 포기하고 바나나를 대신 심어 아르헨티나로 수출하도록 유도하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그때 양복을 입고 현장으로 달려가 농민들에게 말했다. '코카를 재배하는 이유는 당신들의 가족을 위해서 아닌가. 코카 대신 바나나를 심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농부들은 문맹자였지만 무엇이 중요한지는 잘 판단하더라."

―개인적으로 협상에 실패한 적은 없었나?

"물론 있었다. 2003년에 남아공 출신들이 다이아몬드 회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나에게 최고경영자(CEO)직을 제의했다. 내가 지분을 50% 이상 소유하면 최소 4억5000만달러의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들과 관계가 깨졌다. 내가 제3세계 사람들과 공감하지 못한 탓이었다. 상대방과 정서 교감을 하지 않고 딜(deal) 성사에만 신경 쓰면 실패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2000년대 들어 국제사회에서 최악의 협상을 꼽는다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지난해 여름에 있었던 미국의 국가 부채 협상이다.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바람에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란 결과를 낳았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작년 5월 연방정부 부채가 법정 한도(14조2940억달러)를 넘어서자 국가 부채 상한을 증액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했다. 그해 7월까지 양당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그 결과 미국의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나오는 등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결국 디폴트 시한을 이틀 남겨두고 여야가 국가 부채 증액 협상안을 극적으로 타결했지만 그 후유증은 크고 깊었다.

―왜 요즘 '감성 협상론'이 인기라고 생각하나?

"실제로 나의 협상 강좌는 와튼스쿨에서 15년간 가장 인기 있는 강좌이다.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연봉이 평균 20~30% 정도 높다. 또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고 승진도 빠르다. 일례로 한 회사에서 18번이나 입사 거절을 당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는 내 협상법을 적용했더니 단번에 그 회사에 취직됐다고 전해왔다. 원리는 간단하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쓸 때 지원 회사에 적합한 '맞춤형 이력서'를 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역할 전환 연습'을 해야한다. 면접관 역할을 해보면 각 기업 면접에서 나올 질문 대부분을 예측할 수 있다.

보통 학생들은 직장을 찾을 때 "나는 이렇게 대우받고 싶다"는 말을 회사 측에 꺼내지만,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인재를 찾고 계십니까?"라는 말을 회사 측에 먼저 건네라고 얘기한다. 상대방(회사) 입장을 먼저 잘 아는 게 승리의 지름길이라는 이유에서다."

―세계 각국 공통으로 청년 실업과 취업난이 심각하다. 감성 협상론을 응용해 입사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첫째, 회사의 니즈를 파악하고, 둘째 과거에 회사가 어떤 기준으로 직원을 채용했는지를 알아봐야 한다. 셋째, 내 이력서 내용이 회사의 니즈에 부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인상과 태도를 보여야 한다. 기업인들은 '지금은 낮은 연봉으로 시작하지만 내가 잘하면 더 보상받고 싶다'고 입사 지원자가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회사 생활을 할 때도 계속 협상을 해야 하나?

"그렇다. 입사한 다음 고용주와 직장인 간의 관계도 협상이다. 직장인은 고용주에게 무엇보다 가치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고용주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아야 한다. 이 정보를 알기 위해 회사에 오래 근무하며 은퇴를 앞둔 사람을 찾아가 만나보는 게 좋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지만, 사실 그는 사내 정보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면 훨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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