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간 CEO 단 두번 교체… 美 초우량 기업 '에머슨'의 CEO 데이비드 파

입력 2012.01.21 03:10

"사장 바꾼다고 회사 달라지나"
"리더가 자주 바뀌면 장기전략 실행 못해… 기업의 본질적 변화는 연속성 위에서만 가능"
"돈 안될 것 같은 사업은 단칼에 매각… 人事는 한 번 하면 5~10년은 지켜봐"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2010년 글로벌 기업들의 CEO 재임기간은 평균 6년 반 정도였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년 반쯤 줄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기업들이 잦은 CEO 교체를 통해 변화를 추구한 결과다.

예외도 있다. 미국 기업 에머슨(Emerson)에서는 최근 60년 동안 CEO가 단 세 명이었다. 벅 퍼슨스(Buck Persons)는 20년(1953~1973년), 척 나이트(Chuck Knight)는 27년(1973~2000년) 동안 CEO로 일했다. 현재 CEO인 데이비드 파(David Farr·55)는 12년째 재임 중이다. 상장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의 재임기간이 이렇게 긴 것은 드물다. 게다가 이들은 모두 에머슨 내부에서 발탁됐다. 미국 CEO의 40%가 외부 충원인 것과 비교하면 역시 이례적이다.

이처럼 조직의 안정성을 중시한다고 해서 에머슨이 변화에 뒤처진 것은 아니다. 공장 2곳, 직원 4000명의 팬(fan) 제조회사였던 에머슨의 사업영역은 부품제조에서 산업자동화와 생산공정 프로그램 개발로, 다시 해양시추와 재생에너지 솔루션과 같은 첨단산업으로 뻗어나갔다.

에머슨은 150개 나라에 진출해 240억 달러의 연매출을 거두는 글로벌 기업이다. 전체 매출의 60%가 해외에서 나온다. 1956년부터 2011년까지 55년 연속 주주배당금 증가를 기록했고, 리먼 쇼크 후에도 매출은 2009년부터 3년 연속 201억, 210억, 240억 달러로 증가했다.

Weekly BIZ가 데이비드 파 CEO를 서울에서 만났다. 파 CEO는 "CEO를 자주 바꿔야 변화가 가능하다고들 생각하지만, 기업의 본질적인 변화는 연속성(continuity)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업은 장기전략이 있어야만 변화할 수 있다. CEO가 자꾸 바뀌고 사내정치가 조직을 흔들면 장기전략을 세우고 실행할 수 없다. 우리는 철저히 장기전략에 따라 내부 인재를 CEO로 뽑고 이사회부터 현장 직원까지 CEO에게 힘을 실어준다. 에머슨처럼 기술변화에 민감한 기업이 50년 넘게 성장과 변신을 계속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파 CEO는 2000년, 44세의 나이에 CEO에 올랐다. 그의 취임은 에머슨의 '승계시스템'에 따라 예정돼 있었다. 젊은 CEO 취임에 따른 동요는 없었다.

에머슨의 CEO 승계시스템은 최소 20년간 진행된다. 최고경영진이 후보자를 발굴해 리더십 교육을 시키며 경쟁을 통해 성과를 높이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차기 CEO 재목이 뽑힌다. 에머슨 최고경영진은 '당장 CEO가 죽거나 사고를 당한다면' '5년, 10년 뒤 새로운 리더를 뽑는다면' 등 여러 경우를 가정해 각각에 맞는 후계 구도를 그린다. 사내정치, 줄서기가 발붙일 여지는 별로 없다.

에머슨에서 차기 CEO가 되기 위한 제1 조건은 '더 큰 성장을 위해 기업을 변신시킬 능력이 있는가'이다. 1990년대 에머슨은 아시아 출신 경쟁사들의 저가공세에 맹렬히 추격당했고, 해외 매출도 전체의 10% 수준이었다. 에머슨은 '해외 시장 확대'라는 장기전략을 세우고 아시아 전문가인 파를 택했고, 그 후 10년간 파 CEO는 신흥국을 중심으로 해외 매출을 전체의 60%까지 끌어올렸다.

데이비드 파(Farr)가 에머슨의 CEO가 됐을 때, 함께 CEO 최종 후보군에 속했던 나머지 3명의 간부 중 이직이나 퇴사를 결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은 핵심 임원으로 남아 신임 CEO의 적응을 도왔다. CEO 교체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고 조직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파 CEO는 "미국 기업문화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다른 기업에선 새로운 CEO가 오면 그와 맞지 않은 인사들은 제 발로 걸어나가거나 밀려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전임 CEO가 20년 이상 이끈 기업을 넘겨받은 신임 CEO에게 가장 큰 과제는 조직 장악이다. CEO 자리를 놓고 함께 경쟁한 임원진부터 일선 직원까지 신임 CEO를 전임 CEO와 비교하며 능력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신임 CEO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

게다가 파 CEO의 전임자인 척 나이트는 37세의 나이에 에머슨의 경영을 맡아 연매출을 8억달러에서 150억달러로 키워놓은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부하들이 실수를 저지르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호통을 치다가도 돌아서선 포옹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카리스마 강한 리더이기도 했다.

신임 CEO 파는 취임과 동시에 "에머슨은 이제 미국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을 누비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조직을 끌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30~40대 엘리트 직원 14명으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파 CEO 자신도 1년에 3~4개월씩 세계 각국을 직접 돌며 시장의 흐름을 꼼꼼히 챙겼다.

"성과 없는 CEO는 절대 오래 못 간다. CEO는 25년 앞을 내다보면서 '앞으로 기업은 어떻게 성장해 있을까'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그런 후 필요한 단계를 밟아 실행에 옮겨야 한다.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싶다면 각 지역 장(長)들에게 업무를 떠맡기고 있으면 안 된다. CEO가 직접 뛰며 시장의 움직임을 누구보다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직원들도 CEO의 비전과 전략에 기꺼이 동참한다."

실제로 파 CEO 취임 이후 에머슨의 해외매출은 계속 성장했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매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10% 수준에서 10년 만에 60% 수준까지 확대됐다.

데이비드 파 CEO는 12년째 에머슨을 이끌고 있다. 그는 “CEO를 자주 바꿔야 변화가 가능하다고들 생각하지만, 기업의 본질적인 변화는 연속성(continuity)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한 사업만 붙들고 있다간 죽는다

에머슨은 1890년에 설립된 회사다. 2차 세계대전이 비약적 성장의 계기가 됐다. 미국 육군·공군의 군수품 공급업체로 선정된 것이다. 에머슨의 금속가공 기술은 1000만 개가 넘는 황동탄피 제조에 투입됐다. 오래 지속될 듯 보였던 번영은 종전(終戰)과 함께 막을 내렸다. 전쟁이 끝나고 에머슨은 민간시장으로 돌아왔지만 시장과 고객의 니즈는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찾지 못한 에머슨은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1953년, 에머슨의 CEO로 새로 취임한 벅 퍼슨스는 "절대 다른 이에게 기대지 말라. 우리 운명은 우리가 개척한다"고 선언했다. 군수사업 하나에만 기댔다가 낭패를 봤던 일을 계기로 에머슨은 다양한 분야의 기업 36곳을 인수·합병하는 방법을 택했다. 위험을 분산하며 시장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후 이와 같은 인수·합병은 에머슨의 사업확장의 기본 전략이 됐다.

그렇다고 한 번 사들인 기업을 계속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파 CEO는 "에머슨에서 CEO들은 후계자에게 '시장이 쇠락할 기미가 보이면 미련없이 버리라'는 경영 원칙을 물려줬다"고 했다.

"발 빠르게 매각과 인수 작업을 처리하려면 장기전략이 핵심이다. 시장의 흐름을 길게 보며 변화를 읽어야 한다. 튼튼한 재정을 바탕으로 풍부한 현금을 활용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사업에 계속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에머슨의 인수·합병 전략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파 CEO는 "풍력산업 분야의 기업을 1억5000만달러에 사들였는데 현재 그 기업의 가치는 2000만달러가 떨어졌다. 우리가 너무 앞서 간 탓이었다"고 말했다.

"실패가 두렵다고 멈추면 안 된다. 절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다면, 아무 결정도 안 내리면 된다. 그러면 성공도 없다. 성공을 원하는 CEO라면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극단까지 밀고 가야 한다."

리더로서의 역할
성과없는 CEO는 오래 못가… 25년 앞을 내다보며 성장 추구
내 업무의 45%는 전략 수립… 인재 발굴이 35% 차지

작은 이상신호에도 즉각 반응
닷컴버블 붕괴 때 위험 감지… 2·5·10년 단위로 플랜 세워
신흥국으로 시장 다각화… 리먼사태 이후에도 매출 증가

인재 뽑는 4가지 기준
일에 대한 헌신과 열정, 멀티태스킹 능력 갖추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다음단계 도전할 준비됐나 살펴

승패는 스피드에 달렸다

에머슨은 100년 이상(에머슨은 1890년 팬 제조업체로 시작됐다) 보유하고 있던 모터 사업부문을 최근 일본전산(Nidec)에 매각했다. 시장 조사부터 매각 계약까지 걸린 시간은 9개월. 창업 혼이 서린 100년 역사의 사업부문을 1년도 안 돼 팔아버린 것이다. 아시아 경쟁자들의 저가공세에 모터산업이 더 이상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세계 150개 국가에 임직원 13만명을 가진 글로벌 대기업이 이처럼 신속한 의사결정과 사업실행을 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파 CEO는 "나는 업무 시간의 40%를 정보를 모으고 전략을 세우는 데 쓴다. 의사결정이 빠른 건 평소에 시장조사를 하고 전략을 세우기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CEO가 된 후 나는 15억달러에 달하는 매각을 주도했다. 각 사업부문이 얼마나 이익을 내는지 관찰하고 기업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업은 빨리 털어버렸다. 군살을 빼고 근육은 키웠다. 이 거대 기업의 체력을 더욱 단련시키기 위해서다. 가지고 있던 기업을 팔 때도 원칙이 있다. 우리는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입찰자가 아니라 가장 실력 있는 기업을 택한다. 모터사업만 해도 우리를 100년 이상 먹여 살린 자식 같은 사업이었기에 그 사업을 제일 잘 이끌 것 같은 일본전산에 팔았다. 나는 매각 전 일본전산의 창업자, 회장, CEO를 만나고 그 기업에 대해 공부했다. 매각 후 우리는 우리 부지 안에 시설을 임대해줬고 지금도 그 안에서 제조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매각을 통해 손에 들어온 돈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쓰였다. 파 CEO는 중국의 네트워크 전력 공급업체인 아반시스(Avansys), 모토로라의 임베디드(embeded·내장형) 커뮤니케이션 컴퓨팅 사업부문, 의료용 POC(point-of-care·진단검사) 카트 업체인 라이온빌 시스템(Lionville systems) 등을 인수하고 인도에 '에머슨 네트워크 전력 인디아'를 설립했다. 신흥국을 기반으로 차세대 사업으로 진출무대를 넓힌 것이다.

흐름을 앞질러라

파가 CEO로 취임한 다음 해인 2001년, 닷컴버블의 붕괴로 미국 주식시장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에머슨의 영업이익에도 이상신호가 켜졌다. 고객사들로부터의 장비 주문이 뜸해지고, 특히 텔레커뮤니케이션 장비 부문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졌다.

"전체로 보면 에머슨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심하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이상신호에도 재빨리 움직였다. 즉각 비상사태로 돌입해 2년·5년·10년 단위의 플랜을 짜기 시작했고, 이제는 사업 다각화가 아니라 시장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인도·러시아와 동유럽 시장이 빠르게 열리고 있었다. 인수·합병보다는 기업 전체의 체질을 바꿔야 했다."

이후 2년 반 동안 데이비드 파 CEO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했다. 신흥국에 제조시설과 첨단기술 연구단지를 세웠고, 각 나라에 팔 장비들은 현지에서 만들어 파는 지역정책을 시작했다. 신상품·프로그램 개발도 신흥국 시장에 맞게 조정됐고, 여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열 개의 사업부문을 처분했다. 견실하게 연 10억달러 매출을 올려주던 사업들이었다.

그런 와중에 9·11테러가, 2007년에는 리먼쇼크가 터졌다. 미국 경제는 이후 긴 불황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에머슨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매출은 2009년 201억달러에서 2011년 240억달러로 뛰었다. 사업의 핵심을 신흥국으로 옮겨, 신흥시장의 성장세에 올라탔기 때문이었다.

"2001년의 이상신호는 사실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 강도도 세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파워 커브(power curve)의 변화라고 받아들였다. 재빨리 움직여 경쟁자들이 따라오기 전에 시장을 선점했다. 우리의 해외 매출은 10년 만에 전체의 10%에서 60%로 성장했다. 바꿔서 생각해보라. 2001년에 미리 움직이지 않았다면 우리가 얼마나 고전했을지 말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직원들의 저항은 없었나?

"장기전략에 맞지 않는 사업들을 버리면서 50개 공장, 2만여 명의 직원들이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부서와 팀을 신설하고, 보직을 바꾸고, 전략에 맞는 인재를 뽑았다. 나와 경영진은 개인 이메일을 공개하면서까지 폭넓은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했다. 지금 움직이지 못하면 쇠락과 공멸만이 기다릴 것이라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에머슨은 조직의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조직이고, 그런 역사 덕분에 직원들은 회사에 큰 신뢰를 갖고 있다. 위기의 순간에 직원들은 회사의 움직임에 동참했고 함께 인내해줬다."

안정 위에서만 변화가 가능하다

2003년 구조조정을 마친 뒤, 에머슨에서는 굵직한 인사가 거의 없었다. 한번 특정 직책·임무를 맡기면 평균 5~10년은 그대로 가는 것이 에머슨의 조직문화다. 때문에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일이 중요하다. 파 CEO는 자신의 시간 중 35%를 조직개발과 인재발굴에 쓴다고 했다. 발 빠르게 움직이려면 조직이 먼저 안정적으로 굴러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재를 높이 평가하나?

"네 가지 조건을 본다. ▲자기 일에 대한 헌신과 엄청난 열정, 매일매일 하는 일이 즐겁지 않다면 그만둬야 한다. 인생은 짧으니까. ▲한 번에 복합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능력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인가. 업무 분담과 협업이 잘 되는가. ▲현재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다음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업무를 담당할 만한 준비가 됐는가. 내가 나보다 뛰어난 이들을 제치고 CEO가 된 것은 네 번째 조건 덕이었다."

파 CEO의 아버지는 코닝사의 공장에서 일하던 기술자였다. 다섯 자녀를 대학교육시키느라 살림은 늘 빠듯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웨이크포레스트(Wake Forest)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후, 파 CEO는 주유소와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생활비를 보탰다.

"손재주가 좋아 건설 일에 재능을 보였지만, '배워야겠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웃음) 인생을 건설노동자로 끝내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좋은 직업을 구하려면 더 배워야 했다. 그래서 비즈니스스쿨에 들어갔고 1981년 에머슨에 입사했다. 그때까지 내 아내가 뒷바라지를 했다."

―언제 CEO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나?

"1983년 투자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당시 CEO 척 나이트와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투자자들을 만난 후 저녁 식사 자리에서 척과 나는 3시간 동안 기업의 성장 전략에 대해 토론을 벌였고, 우리는 그 전략을 5~6단계까지 진전시켰다. CEO가 3년차 직원인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열띤 토론을 벌인 것이다. 그게 에머슨의 문화였다. 그날 밤, 난 잠들기 전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있지, 나도 언젠가 CEO가 되고 싶어' 그리고 17년 후 그 꿈이 이뤄졌다. 가난한 공장 기술자 아들이 세계 최강의 글로벌 기업 CEO가 됐다. 이제 뭘 더 바라겠는가. 내 임무는 이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들어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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