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광고제 주역 테리 새비지 회장

입력 2011.12.17 03:00

루마니아 '국민 초콜릿 바' 왜 성조기로 포장했을까?
"목소리 커진 소비자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게 21세기 광고 전략"

"소비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하는(want to voice) 시대다. 일방적 메시지를 거부하고, 스스로 발언하고 감정을 표출한다.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와 장(場)을 마련하라. 재미와 편리함을 더한다면 소비자는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칸 라이언스 국제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이하 칸 크리에이티비티)의 테리 새비지(Savage·61) 회장은 최근 광고업계의 키워드를 '소비자 끌어들이기(consumer engagement)'라고 표현했다. 참여 의지로 똘똘 뭉친 소비자들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실적과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새비지 회장은 광고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마당발이자 업계 변화를 일선에서 주시하고 있는 광고 전문가다. 칸 크리에이티비티는 1953년 처음 열린 세계 광고업계 최대 행사인 '칸 국제 광고제'가 올해부터 새로 내건 이름이다. 지난달 23일 Weekly BIZ가 한국을 방문한 새비지 회장을 만났다.

루마니아人 애국심 자극
성조기 포장 논란 일자 페이스북 친구 3배 증가
MS의 '빙 프로젝트'도 인터넷과 출판의 결합

"루마니아의 '국민 초콜릿바'인 롬(ROM)이라는 제품이 있다. 이름을 '루마니아(Romania)'에서 빌려왔고, 포장지도 루마니아 국기 디자인을 본떴다. 하지만 올해 초 포장지를 미국 성조기로 바꾸는 파격을 선택했다. 왜일까? 이 초콜릿바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초콜릿바 포장지에 성조기를 입힌 루마니아 제과업체 칸디아 둘체(Kandia Dulce)의 설명은 이랬다. "미국을 좋아하지 않느냐. 그래서 포장지를 성조기로 교체했다." 동구권 붕괴 이후 자본주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롬은 스니커즈(Snickers) 같은 미국 초콜릿바에 국내 시장을 빼앗겼다. 젊은이들의 입맛도 변하고 있었다.

롬의 변신에 소비자들은 격앙됐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롬의 웹사이트와 페이스북을 찾아와 항의글을 남겼다. 일부는 플래시몹(flash mob·불특정 다수가 한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여 이벤트를 벌이는 것) 시위를 통해 항의하기도 했다. 언론은 이런 논란을 집중 보도했다. 모두 애국심의 발로였다.

"성조기 포장지가 등장하고 1주일 뒤 사측은 이렇게 발표했다. '사실 장난이었다. 루마니아 국민이 미국보다 조국을 더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는 다시 이전 포장지로 돌아갔다. 한정판이 된 성조기 포장지는 수집가들의 애장품이 됐다. 매국(賣國), 배신, 친미(親美) 논란을 불러일으킨 파격과, 자극받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 광고 전략의 전부였다."

성조기 포장지가 일으킨 논란으로 롬의 페이스북 친구 수는 300% 증가했다. 30만유로의 미디어 노출 효과도 거뒀다. '아메리칸 롬' 프로젝트를 계기로 롬은 루마니아 초콜릿바 시장점유율 1위를 탈환했다.

"광고주에게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파격적인 프로젝트였다. 오히려 매출이 줄고 오랜 기간 쌓은 브랜드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롬은 국가와 민족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소비자들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자극을 주었고, 준비된 후속조치를 통해 롬에 긍정적 여론이 형성되도록 유도했다. 단순히 '롬=루마니아 초콜릿바'라는 정보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 무언가 느끼게 만들고 그 느낌을 공유하며 토론하게 만들었다."

아메리칸 롬 프로젝트는 올해 6월 열린 칸 크리에이티비티에서 소비자 반응 유발과 관계 형성을 심사하는 다이렉트(Direct) 부문과, 제품 판매 증진을 위한 프로모션을 심사하는 프로모 앤드 액티베이션(Promo & Activation) 부문에서 대상인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지난달 23일 방한한 칸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의 테리 새비지 회장은“소비자들의 참여 욕구를 원하는 방식으로 끌어내는 크리에이티비티 역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크리에이티비티는?
소비자 끌어들이기 위한 통찰력과 아이디어
광고·마케팅·홍보·PR 모든 부분에서 필수적


소비자를 스스로 움직이게 하라

칸 크리에이티비티는 1953년 프랑스 칸에서 열린 극장용 광고 중심의 국제 광고제로 출발했다. TV가 보급되고 새로운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광고·홍보·디자인·마케팅·미디어 등 다른 분야까지 아우르는 페스티벌로 발전했다. 매년 6월 전 세계 90여 개국에서 2만점 이상의 광고가 출품된다. 분야별 전문가 1만여명이 모여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최신 경향을 공유하고, 13개 부문별 수상작을 선정·발표한다.

"오늘날 비즈니스 세계에서 커뮤니케이션은 광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광고와 마케팅, 홍보, PR 등의 활동을 구분하는 것이 이제 무의미하다. 이들 분야에서 공통으로 필요한 요소가 바로 '크리에이티비티'라고 판단했다." 새비지 회장은 올해 행사 이름을 '칸 크리에이티비티'로 변경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크리에이티비티는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의미한다. 새로운 개념은 아니지만, 현재 커뮤니케이션과 광고 분야에서 요구되는 역량을 집약한 말이라고 보면 된다. 소비자의 파워는 점점 커져 왔지만 SNS 같은 새로운 소통 수단이 등장하면서 소비자들의 힘과 참여 욕구가 지금처럼 강력했던 적은 없었다. 과거처럼 기업과 광고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푸시(push)하기만 하면 오히려 저항을 받을 수도 있다."

새비지 회장은 인터뷰 전 743명의 팔로어를 가진 자신의 트위터에 '서울에 있는 호텔에서 맛있는 피자를 먹었다'는 글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누가 나보고 피자 먹은 얘기를 해달라고 요구했나? 아니다. 그냥 내가 올리고 싶어서 트위터에 접속한 것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트윗하고 있다. 블로그를 만들어 글을 올리고, 소셜 네트워크에 동참한다. 유튜브(youtube)에 1분당 몇 개의 동영상이 업로드(upload) 되는지 아는가? 누가 동영상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나? 사람들은 스스로 올리고 즐거워한다. 광고주들은 다소 무기력하게 느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기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과 방식으로만 광고를 만들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비자를 원하는 방식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크리에이티비티 역량이 중요해지고 있다."

루마니아 초콜릿바 롬(ROM)의 옥외광고판.‘ 새로운 롬을 먹어보세요. 애국심이 당신을 먹여 살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 ‘빙(Bing)과 함께 제이지(Jay-Z) 해독하기’프로젝트에서 Jay-Z 자서전의 한 페이지 일부가 그려져 있는 차량 광고물 모습. / 칸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한국사무소 제공

옥외광고와 SNS의 결합

2009년 마이크로소프트(MS)는 검색사이트 빙(Bing)을 오픈했다. '검색의 제왕' 구글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출범 직후 미국 검색시장에서는 야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예상대로 '구글링(googling)'의 벽은 높았다. 전 세계 검색사이트 순위 1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MS는 빙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해 미국 최고의 힙합 가수로 꼽히는 제이지(Jay-Z)와 손잡았다. MS는 "빙의 검색기능이 구글보다 훌륭하다"고 선전하지 않았다. 대신 한 달 후 출간될 Jay-Z의 자서전을 활용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빙과 함께 제이지 해독하기(Decode Jay-Z with Bing)'.

MS는 300여쪽에 이르는 Jay-Z의 자서전의 개별 페이지로 만든 광고물을 미국 뉴욕시를 중심으로 로스앤젤레스, 영국 런던 등에 설치했다. 평범한 광고판과 포스터는 물론, 건물 외벽과 내벽, 외투 안쪽 면, 수영장 바닥, 식당의 접시, 당구대 윗면 등이 활용됐다. 자서전에 담긴 Jay-Z의 인생과 관련된 장소와 물건들이었다. 예를 들어, Jay-Z가 태어난 뉴욕의 브루클린 지역에는 출생 관련 내용이 적힌 페이지가 걸리는 식이다. 하나의 '광고물'에는 반드시 자서전의 한 페이지만 공개했다.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전략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Jay-Z의 자서전 내용을 발견한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위치 정보와 함께 빙이 마련한 웹사이트에 올렸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무슨 내용의 페이지를 발견했는지 서로 공유했다. 빙의 사이트가 Jay-Z의 자서전을 주제로 한 놀이터가 된 것이다.

"빙의 프로젝트는 지난 6월 칸 크리에이티비티에서 이전에 볼 수 없던 가장 획기적인 기법을 사용한 광고에 주는 티테이니엄(Titanium) 부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 있는 Jay-Z의 팬들을 중심으로 화제를 일으켰다. 옥외광고 같은 전통적인 광고 수단뿐만 아니라, 검색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3차원 입체 지도 등 최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광고였다. 호기심을 유발해 소비자를 끌어들이면서도 한 쪽씩 취합해 가는 재미를 제공했다. 빙 사이트에서 단서를 제공하면, 아직 찾지 못한 페이지를 찾기 위해 소비자들은 스스로 움직였다."

새비지 회장은 "인터넷과 출판의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 성공 가능성까지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이 프로젝트로 빙의 평균 방문자 수는 11% 이상 증가했다. 전 세계 검색사이트 10위권 안에 이름을 올렸고, 프로젝트 웹사이트 방문자들은 평균 11분을 머물며 Jay-Z의 자서전이 조합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효과는 약 11억달러의 매출과 맞먹는 것으로 추산됐다. Jay-Z의 자서전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19주 연속 머물렀다.

트렌드는 빨리 변한다
칸 광고제, 모바일에 주목
다양한 수단을 통해 크리에이티비티 창출 광고업계 변화속도 빨라

트렌드는 1년 단위로 움직이지 않는다

칸 크리에이티비티는 내년 6월 페스티벌부터 '모바일 부문'을 신설하기로 했다. 웹사이트·배너·이메일 등을 활용한 광고를 심사하던 사이버(Cyber) 부문에서 모바일을 떼어내기로 한 것이다.

―모바일 광고의 잠재력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모바일과 SNS는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제할 수 없는 수단이 되었고, 점점 그 활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어디를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파급력과 성장세는 다를 수 있다. PC와 인터넷이 보급된 서구사회에선 모바일로 인한 변화를 드라마틱(dramatic)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인터넷이 잘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모바일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주목받으며 확실하게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수년간 모바일을 주목해 왔지만 그 자체로는 크리에이티비티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게임 앱, 동영상, QR코드 등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크리에이티비티를 창출하고 있다.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지만 어느새 성인기에 접어들었다."

―모바일을 잘 활용한 광고로 한국의 출품작을 꼽았는데.

"홈플러스의 지하철 가상 매장 광고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제품 사진과 가격표를 제시하고 상품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주문 배달이 가능한 방식이다. 평범해 보이는 지하철 광고에 모바일을 접목한 것이다. 눈만 뜨면 스마트폰을 손에 쥐는 현대인의 습성과 마트에 갈 시간조차 없이 바쁜 직장인의 고충을 고려한 작품이다."

새비지 회장은 "기술 발전이 광고업계의 변화를 주도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며 "페스티벌은 연 1회 열리지만 트렌드는 연(年) 단위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항상 트렌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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