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긴장감 주면 사고 나서 후회… 소비자를 맘 편하게 놔둬라

    •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입력 2011.09.24 03:01

긴장감 보통일 때가 오히려 업무 수행 최고
주의력 너무 넓고 좁아도 업무 능력 떨어지게 마련
면접같은 중요한 시험과 비싼 명품 구입할 때 의사결정 힘든 경우 많아
"모시 고르다 베 고른다" 우리 옛 속담 명심해야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한국 여성 골퍼들의 LPGA 통산 100승이 문턱에서 계속 좌절되고 있다. 몇번의 기회 중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한 달 전 8월 22일에 있었던 최나연 선수의 경기다.

최나연이 최종 라운드를 시작할 때 2위이던 페테르센과는 9타라는 여유 있는 차이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나연이 버디 3개와 보기 5개로 2타를 잃는 사이 페테르센은 이글 1개와 버디 5개로 무려 7타를 줄여 동점이 되었다. 이어진 연장전에서 최나연의 두 번째 샷이 물에 빠져 더블보기가 되는 바람에 파를 한 페테르센이 우승컵을 차지하고 말았다.

경기 후 최나연은 긴장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지만 지대한 관심이 자신한테 향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아무래도 LPGA 통산 100승을 달성해야 한다는 심적 부담이 컸던 모양이다.

최나연 선수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선수들이 평범한 실수 하나로 수십만달러의 상금과 영예를 놓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선수들이 왜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런 실수를 하는 걸까.

사람들이 정보를 접하고 주의(attention)를 기울이게 되면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도록 일깨워지는데, 이를 환기(arousal)라 한다. 요컨대 마음속에 생기는 긴장감이 곧 환기이며, 결정의 중요성이 높아질수록 긴장감의 수준도 높아진다.

주의와 긴장감은 업무수행 능력(performance)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픽〉에서 보듯이 긴장감의 수준이 낮을 때는 주의가 산만해 쓸데없는 정보에도 신경을 쓰므로 업무 수행능력이 낮다. 그러나 긴장 수준이 적절히 높아지면 중요한 정보에만 주의가 집중되므로 업무 수행능력이 좋아지게 된다. 하지만 긴장 수준이 너무 높아지면 주의가 집중되다 못해 협소해져서 중요 정보마저 이용하지 못하므로 오히려 업무 수행을 올바르게 하지 못한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한 것이 요크스-다드슨(Yerkes & Dodson)의 법칙이다.

일러스트=정인성기자 1008is@chosun.com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날씨가 늘 온화해 스쿠버 다이빙이 매우 인기가 있다. 산소통을 메고 잠수하면 호흡은 답답하겠지만, 태평양 바다 속에서 수영을 하는 즐거움은 그런 답답함을 훨씬 능가하는 일이리라. 그런데 물속이 너무 고요하므로 불현듯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하고, 못 보던 동물을 접하게 돼 심하게 놀라기도 한다. 그래서 공포심(panic)이 생길 경우 무게추를 벗어버리고 차분히 떠오를 수 있도록 수없이 연습한다. 다이버들은 대부분 20m 이내로 잠수하므로, 침착하게 행동하면 어렵지 않게 물 위로 떠오를 수 있다.

그런데 철저한 훈련을 받아 엄격한 면허시험을 통과한 다이버들이 캘리포니아에서만도 해마다 20~30명씩 익사체로 발견된다. 이상한 것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마우스피스를 잡아 빼고 질식해 죽는다는 점이다. 가만히 떠오르기만 하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왜 마우스피스를 물지 않은 채 질식해 죽었을까?

요크스 교수와 다드슨 교수의 공동 연구에 의하면 물속에서 공포심을 느끼게 될 때 긴장감의 수준이 지나치게 높아져 당황한 나머지 무게추를 풀고 떠오르게 하는 단순한 일조차 수행하지 못하고 그저 허둥대다 죽고 만다고 한다. 다이버들은 물속에 갇힌 느낌이 들면서 숨이 막힌다고 생각돼 답답한 마우스피스를 뽑아 버리고 물을 먹고는 사고를 당하는 것이다.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밀어 넣기만 해도 되는 노 마크 찬스에서 실축하는 것을 드물지 않게 보곤 한다. 그래서 코치는 선수들에게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연습 때는 긴장의 수준이 낮아 연습 능률이 잘 안 오르므로 실전에 임하는 마음을 갖게 함으로써 긴장감을 높이려는 것이다. 반면, 실전 때는 긴장의 수준이 너무 높아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연습할 때와 같이 긴장의 수준을 낮추고 마음을 편히 갖도록 만들어 오히려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요크스-다드슨의 법칙에 의하면 면접시험 때 입을 옷이나 비싼 제품을 구매할 때처럼 중요한 구매일수록 의사 결정시의 긴장감 때문에 오히려 선택을 잘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시 고르다 베 고른다'는 우리 속담도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정보와 생각이 너무 많으면 하찮은 정보에 집착해 잘못 판단하기 쉽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좋은 것을 고르려고 과도하게 신경을 쓸수록 도리어 좋지 못한 것을 고르고 후회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소비자에게 정보를 하나라도 더 많이 주는 것보다는 만족스러운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긴장수준이 적절한 시점에 정보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소비자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유능한 판매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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