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 기업'들이여… 재미를 팔아보세요

    • 홍성태 교수

입력 2011.07.23 03:27

홍성태 교수의 마케팅 레슨
직접 써보면 즐거운 상품
포장지도 자랑하는 상품
이것이 재미 마케팅이다

홍성태 교수
한류(韓流)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오락에 대한 감성이 특별히 발달한 모양이다. 재미와 즐거움이 인간됨을 추구하는 궁극적이고 중요한 요소라고 보는 헤도니즘(hedonism)이 근래에 들어 마케팅의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의 감성적 강점을 차별화하기 위해 헤도니즘을 어떻게 활용할지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미를 제대로 사업화한 곳이 사막 한가운데 레저도시를 만든 라스베이거스마카오다. 마카오는 1999년 포르투갈로부터 중국에 반환된 이후 라스베이거스의 큰손들이 들어오면서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인구 50만명에 불과한 도시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무려 5만1000달러를 넘고 있다. 변변한 제조업체 하나 없지만, 즐거움을 창출하는 마케팅에 집중한 덕분이다.

사람을 즐겁게 만들면 그들은 기꺼이 비싼 대가를 지불하려 한다. 즐거움 산업은 영국을 먹여 살리는 젖줄이다. 007에서 비틀스, 반지의 제왕, 해리포터에 이르기까지그리고 오페라의 유령과 텔레토비 등 창의력이 즐거움을 만들고, 즐거움은 돈을 벌게 해준다.

젊은이들의 우상인 아이돌(idol)을 만드는 것도 즐거움을 창출하는 마케팅의 한 방편이다. 아이돌은 상상 속에서 즐기던 '나의 환영(幻影)'이 구체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심리학자 칙센미하이(Csikszentmihalyi)는 주변 환경이 의식되지 않을 정도로 몰입되는 순간을 '플로우(flow·물 흐르듯 빠져 들어감)'라고 표현한다. 인간은 플로우의 순간에 에너지를 자발적으로 전력투구하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마케팅에서는 고도의 쾌락을 창출하기 위해 플로우 상태를 실현하고자 애를 쓴다.

재미 마케팅을 성공시키려면 첫째로 자기만족을 유도해야 한다. 할리 데이비슨(Harley Davidson)은 자기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을 극대화한 제품이어서 가족들이 위험하다고 말리면 숨겨서라도 타는 모터사이클이다. 뜯어서 먹기 아까울 정도로 정성스럽게 포장한 일본의 고급 과자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과자의 포장을 한장 한장 벗겨 내는 사람의 즐거움을 어디에 비길 수 있을까.

재미 마케팅의 또 다른 성공조건은 직접체험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닌텐도는 동작 인식 기반의 컨트롤러를 구현해 누구라도 손쉽게 작동할 수 있는 게임기 위(Wii)를 내놓았다. 컴퓨터 게임은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직접 해보는 재미에 빠지게 된다. 닌텐도는 마케팅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기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고객에게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면, 이 또한 즐거움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의 라인 중에 A.POC(A Piece Of Cloth)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이 제품을 구매하면 쇼핑백에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은박지로 된 포장지에 둘둘 말아서 괴나리봇짐처럼 어깨에 사선으로 두르게 한다. 그래서 A.POC을 구매한 고객은 얼른 집에 가지 않고 괜히 시내를 쏘다닌다.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자기 스스로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즐거움을 부정적인 감정과 결합시켜도 상품화가 가능하다. 슬픈 영화나 슬픈 노래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슬픈 감정도 즐기기 때문에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자아낼 수 있고 여기에 제법 큰 시장기회가 생긴다.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다른 여러 감정요소와 연결하면,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동시킬 수 있다. WWE(미국 프로레슬링 단체)는 즐거움과 노여움과 미움을 접합함으로써 관심에서 멀어진 프로레슬링을 새롭게 부활시켰다.

재미 자체를 마케팅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어떤 제품이든 재미 요소를 제대로 첨가한다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재미 요소를 가미해서는 안 된다.

코닥은 수중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포츠'라는 카메라를 출시한 바 있다. 색상도 다양하고 디자인도 나름 경쾌하였으나 시장에서 별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열광할 만한 재미 요소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로모(Lomo)라는 러시아제 카메라는 노출량이나 초점 조정 등이 의도한 대로 잘되지 않는 투박한 카메라이다. 그런데 로모 사용자들은 공동의 웹사이트를 만들어 의도하지 않은 순간들이 찍힌 사진들을 서로 나누며 즐긴다.

우리의 인생도 의도대로만 되지는 않지만 그 가운데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면에서 로모로 찍은 세상과 마찬가지라는 게 그들의 마케팅 철학인 것이다. 로모가 트렌디한 젊은이들에게 필수품이 되어 가고 있음은 당연하다.

모범생임을 나타내는 '범생'이란 은어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이다. '범생'적 가치만을 추구해 온 기업이라면 재미 요소가 차지하는 역할에 눈을 돌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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