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1.05.21 03:06
라스베이거스의 혁명가, 마카오를 평정하고 인천 상륙작전
"나는 한 번도 내 자신을 도박산업 종사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developer(개발자)다
내 인생의 한 획을 한국에서 긋고 싶다
20억~30억달러 투자할 준비는 돼 있다
단 하나의 조건 외국인 전용은 싫다"
스티브 윈(Steve Wynn·69)은 '라스베이거스의 설계자'다. 1980~90년대 미라지·트레저아일랜드·벨라지오 같은 유명 카지노 호텔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런 그가 잘라 말했다. "우리 회사는 이제 중국 기업입니다."
윈은 2002년 중국 정부로부터 마카오 카지노 운영권을 따냈다. 2조원 넘는 돈을 쏟아부어 카지노 호텔인 '윈'(2006년)과 '앙코르'(2010년)를 열었다. 이 시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같은 이름의 호텔을 짓고 있었다. "윈이 아시아에 너무 크게 베팅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왔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가 마카오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라스베이거스의 3배에 육박한다. 올 1분기(1~3월) 마카오 매출은 작년보다 46%나 늘었다. 샤넬·루이뷔통·티파니·에르메스 같은 브랜드가 들어선 호텔 상가에서는 1㎡에서 한 해 5억원 가까운 매출이 난다. 매년 중국 본토에서 마카오를 찾는 2000만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최대 고객이다.

모든 기업이 중국과 아시아 시장에 뛰어들지만 성적까지 같지는 않다. 카지노 리조트 사업도 마찬가지다. 윈 마카오(윈 리조트의 마카오 자회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09%로 경쟁업체인 샌즈차이나(16%), SJM홀딩스(32%)에 비해 월등히 높다. 다른 기업들이 100억원을 투자해 16억원, 32억원의 순이익을 낼 때 윈마카오는 109억원의 순이익을 냈다는 뜻이다.
윈 회장은 아시아에서의 성공을 인정받아 최근 경제전문지 배런스(Barron's)가 발표하는 세계 최고의 CEO 3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Weekly BIZ는 15일 마카오 윈 호텔 2층에 있는 회장실에서 윈 회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아치형 창문 밖으로 호텔로 들고나는 손님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검은 터틀넥 스웨터에 갈색 바지, 스웨이드 구두 차림으로 방에 들어선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소파에 앉은 그는 기자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가깝고 친밀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선천성 색소성 망막염을 앓고 있다. 대롱을 통해 사물을 보듯 시야가 좁아지는 병이다.
"처음 마카오에 진출할 때 (카지노 업계의) 많은 사람이 '중국 사람은 원래부터 도박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바카라(도박의 일종)를 할 수 있는 장소만 만들어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마카오 사업은 그가 처음 중국에서 벌이는 사업이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을 떠올리며 "아주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중국인의 취향을 느끼기 위해 혼자서 홍콩 페닌슐라 호텔, 마카오 리스보아 카지노를 다니며 발로 조사했다. 골프친구인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중국학' 수업도 들었다고 했다. 첫 번째 시간 부시의 조언은 '겸손하라'였다고 한다.
세계 카지노업계의 거인·거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디펠로퍼(developer·개발자)"라고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찾아와 깜짝 놀라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를 존경합니다."
그는 지금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인천공항 인근 국제업무지구 예정지를 직접 보고 돌아갔다. 윈 회장은 "내게 한국에 투자할 기회를 준다면 당장이라도 20억~30억달러(약 2조2000억~3조3000억원)를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가 허용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한국 정부가 그간 내국인 카지노 추가 허용에 난색을 표해왔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의 바람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 그래도 윈 회장은 인터뷰 내내 강한 의지를 보였다. "라스베이거스·마카오에 이어 한국에서 또 제 인생의 한 획을 긋고 싶습니다."
"카지노를 낀 리조트는 엄청난 비즈니스를 일으켜"
"내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세상에!" 탄성을 지를 때 나는 보람을 느낀다
수십만원 호텔 숙박료 사람들은 안쓰죠… 카지노가 있으면 수백만원도 씁니다
복합 컨벤션 리조트는 수만 일자리를 창출"
◆아시아에서 성공 비결
―아시아 시장에 대해 처음부터 낙관했나?
"당시 모두가 중국이 엄청난 기회라고 말했다. 중국 사람에게는 도박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바카라(도박 게임의 일종)를 할 수 있게 카지노를 열기만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한 사회의 부(富)가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사이클이었다. 미국의 경우 1895~1910년 사이에 많은 유럽인이 미국으로 이주해왔다. 그들은 1980년대 이전 중국인들처럼 가진 게 거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민 2세대가 30~40대가 됐을 때 부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들은 좋은 삶(good life)을 갈구했다.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를 사고, 좋은 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싶어했다. 자신이 가진 부와 자유를 즐기기를 원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윈 회장은 아시아에서의 성공을 인정받아 최근 경제전문지 배런스(Barron's)가 발표하는 세계 최고의 CEO 3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Weekly BIZ는 15일 마카오 윈 호텔 2층에 있는 회장실에서 윈 회장을 단독 인터뷰했다. 아치형 창문 밖으로 호텔로 들고나는 손님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검은 터틀넥 스웨터에 갈색 바지, 스웨이드 구두 차림으로 방에 들어선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소파에 앉은 그는 기자 쪽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가깝고 친밀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선천성 색소성 망막염을 앓고 있다. 대롱을 통해 사물을 보듯 시야가 좁아지는 병이다.
"처음 마카오에 진출할 때 (카지노 업계의) 많은 사람이 '중국 사람은 원래부터 도박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인에게 바카라(도박의 일종)를 할 수 있는 장소만 만들어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마카오 사업은 그가 처음 중국에서 벌이는 사업이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을 떠올리며 "아주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중국인의 취향을 느끼기 위해 혼자서 홍콩 페닌슐라 호텔, 마카오 리스보아 카지노를 다니며 발로 조사했다. 골프친구인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서 '중국학' 수업도 들었다고 했다. 첫 번째 시간 부시의 조언은 '겸손하라'였다고 한다.
세계 카지노업계의 거인·거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디펠로퍼(developer·개발자)"라고 말했다. "저는 사람들이 찾아와 깜짝 놀라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저는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를 존경합니다."
그는 지금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인천공항 인근 국제업무지구 예정지를 직접 보고 돌아갔다. 윈 회장은 "내게 한국에 투자할 기회를 준다면 당장이라도 20억~30억달러(약 2조2000억~3조3000억원)를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가 허용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한국 정부가 그간 내국인 카지노 추가 허용에 난색을 표해왔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그의 바람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 그래도 윈 회장은 인터뷰 내내 강한 의지를 보였다. "라스베이거스·마카오에 이어 한국에서 또 제 인생의 한 획을 긋고 싶습니다."
"카지노를 낀 리조트는 엄청난 비즈니스를 일으켜"
"내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세상에!" 탄성을 지를 때 나는 보람을 느낀다
수십만원 호텔 숙박료 사람들은 안쓰죠… 카지노가 있으면 수백만원도 씁니다
복합 컨벤션 리조트는 수만 일자리를 창출"
◆아시아에서 성공 비결
―아시아 시장에 대해 처음부터 낙관했나?
"당시 모두가 중국이 엄청난 기회라고 말했다. 중국 사람에게는 도박을 좋아하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바카라(도박 게임의 일종)를 할 수 있게 카지노를 열기만 한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한 사회의 부(富)가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사이클이었다. 미국의 경우 1895~1910년 사이에 많은 유럽인이 미국으로 이주해왔다. 그들은 1980년대 이전 중국인들처럼 가진 게 거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이민 2세대가 30~40대가 됐을 때 부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들은 좋은 삶(good life)을 갈구했다. 루이비통이나 에르메스를 사고, 좋은 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싶어했다. 자신이 가진 부와 자유를 즐기기를 원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중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전까지 몇 달러짜리 가짜 롤렉스를 샀던 사람들이 마카오에 와서 진짜 롤렉스, 진짜 에르메스를 사고 있었다. 3억~4억명의 중국인이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2001년 마카오가 카지노 독점 체제를 깨기로 했을 때, 나는 그 대열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이 날 정도였다."
―중국에 진출했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고객을 끌어들이는 비결은 뭔가?
"외국 업체들이 홍콩이나 마카오에 진출하면 으레 풍수 전문가를 고용한다. 우리 업계에서 풍수에 대한 관심은 아시아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로 관광을 오던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샐던 애덜슨(Adelson·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 회장)은 샌즈호텔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베네시안 호텔을 짓기로 했다. 그는 아시아 고객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 홍콩에서 풍수 전문가를 데려왔다. 그 전문가는 길 건너 미라지 호텔을 가리키며 '저게 풍수에 따라 잘 지은 건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당시 미라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중국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하루는 애덜슨이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떤 풍수 전문가를 썼느냐'고 했다. 내 대답은 '풍수가 뭐요?'였다. 나는 진짜 풍수가 뭔지 몰랐다. 미라지 호텔은 내가 직접 설계했다. 마카오에서 호텔을 지을 때 풍수 전문가의 말을 따르자는 직원이 있길래 "남중국해에 던져버리겠다"고 했다.
기업들이 현지화랍시고 풍수같은 피상적인 것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아시아 고객들을 더 유치하고 싶다면 풍수 전문가를 고용할 게 아니라 아시아 고객들과, 그 고객을 현장에서 대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도 중국 시장만의 특징이 있지 않나? 예를 들어 호텔 디자인 같은 미학적인 부분은 미국인과 중국인의 취향이 다를 것 같다.
"사실이다. 마카오에 진출하기 전까지 중국에서 사업해본 경험이 없었다. 더구나 우리는 '윈 디자인&개발'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건물 설계와 인테리어를 직접 한다. 결국 가장 기본 아이디어, 다시 말해 우리가 마카오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리더인 내 몫이다.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카오에서 내가 참고할 수 있는 카지노는 리스보아뿐이었다. 40년간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낡은 건물이다. 직접 가보니 카지노가 독립된 작은 방으로 이뤄져 있었다. 증축 과정에서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만 중국 고객들은 그런 환경에 익숙해했다. 수퍼마켓처럼 탁 트인 라스베이거스 스타일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문제는 건물 인테리어였다. 어떻게 하면 현대 중국의 고상함을 인테리어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때 홍콩에서 묵었던 페닌슐라 호텔을 떠올렸다. 영국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현대적인 중국의 고상함을 잘 나타낸 호텔로 이름 높은 곳이다. 그래서 혼자 페닌슐라 호텔에 묵으며 인테리어를 연구했다."
◆한국 투자 계획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그다음은 어딘가?
"아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가 아시아에서 후보지로 보고 있는 곳은 싱가포르와 한국이다. 몇주 전 인천시장과 공무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인근의 국제업무지구도 살펴봤다. 공항과 가까운 그곳은 대규모 복합리조트를 짓기에 적합해 보였다. 한국 정부가 기회를 준다면 우리 회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개발사업을 집약적으로 한국에서 펼쳐 보이고 싶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1만~5만 개 일자리가 생기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천에 새 학교와 대학을 짓는 것도 돕고 싶다.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일본인 투자자와 함께 인천국제공항 국제업무지역에 공동투자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사실이 아니다. 오카다 가즈오라는 일본인 기업가가 있다. 파친코 기계를 만드는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한다. 그는 윈 리조트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투자자로서 우리 회사 이사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오카다는 인천에 관심이 많다. 인천에다 소규모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투자계획은 윈 리조트와는 관계없다. 윈 리조트가 인천에 투자한다면 독자적으로 할 것이다."
―국제업무지역 사업자 선정이 6월 말 마감된다. 투자의향서를 제출할 계획인가?
"나는 우리의 의향을 한국 정부의 최상층(the highest level)에 전달할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카지노가 포함된 초대형 복합 컨벤션 리조트를 지어야 한다. 카지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 만든다. 최고급 호텔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하루 숙박료로 800~900달러(약 87만~97만원)를 받기 어렵다. 하지만 카지노가 있으면 사람들은 방값을 2000~3000달러(약 217만~325만원)까지 쓴다. 카지노 매출이 있어야 공연장, 극장, 쇼핑센터, 그리고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들었던 화산쇼나 분수쇼 같은 시설에 투자할 수 있다. 결국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에게도 개방된 카지노가 필요하다."
―하지만 6월 이전에 한국 정부가 내국인 카지노를 허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업자 선정) 일정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선택권은 전적으로 한국 정부에 있다. 나는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만약 저소득층이 도박에 빠지는 것이 문제라면 카지노에 멤버십 제도를 도입해 특정 소득 이하 사람의 출입을 막을 수도 있다."
◆카지노 거인이 된 도박 중독자의 아들
―아버지가 도박 중독자였다. 35만달러의 도박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당신이 카지노 사업은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도박산업 종사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디벨로퍼(개발자)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세상에'라고 말할 때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내 영웅은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다. 내 아버지가 비록 주사위 게임과 스포츠 내기에 집착하는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자식인 나에게도 많은 투자를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사립학교에 다녔고 대학(펜실베이니아대)을 갈 수 있었다."
―"카지노로 돈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카지노를 소유하는 것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도박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있고 도박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책임을 느끼지는 않나?
"1970년대부터 이 분야를 연구한 로버트 커스터(Custer) 박사는 사람들 가운데 중독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낸 적이 있다. 알코올 중독의 책임을 주류 생산업체나 유통업체에 묻지 않듯이, 카지노가 중독자를 양산해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성향이며 치료가 가능하다."
―본인도 도박을 하나?
"포커 게임을 좋아한다. 그리고 1년에 한두 차례 정도 몇 시간씩 도박을 한다. 내가 도박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고객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겠나. 작년에 몬테카를로(모나코 북부 휴양도시)로 휴가를 갔었다. 당시에는 여자친구였고 지금은 아내가 된 안드레아에게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2만5000달러(약 2700만원)를 잃었다."
―기업가로서 삶에 원칙이 있다면?
"첫째, 당신이 하는 일을 진짜 사랑해야 한다. 모든 일은 성공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즐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둘째, 힘이 펄펄 넘치는 고등학교 체조선수처럼 민첩해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기업가는 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내가 민첩함을 유지해온 비결은 우리 직원들이다. 모든 비즈니스, 특히 서비스 산업의 경우 직원들은 매일 매일 손님들의 반응을 살핀다. 사람들이 좋게 반응하는지 나쁘게 반응하는지 그들은 매일 관찰하고 거기서 변하는 대중의 기호를 읽는다. 만약 경영자가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직원들을 통해 소비자들의 변화를 빨리 읽을 수 있고, 때로는 해결책도 얻을 수 있다."
윈 리조트 그룹은
'간판' 미라지 리조트 MGM에 적대적 인수 당한 후 2005년 화려한 부활
윈 리조트는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에서 윈(Wynn)과 앙코르(Encore) 호텔을 운영하는 카지노 리조트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41억8000만달러(약 4조5000억원).
1973년 31세였던 스티브 윈은 주류 수입과 부동산 개발로 번 돈으로 라스베이거스 골든너겟 카지노를 개조한다. 윈 회장은 여기서 난 수익으로 1989년 미라지 호텔을 열었고 회사 이름도 '미라지 리조트'로 바꿨다. 트레저아일랜드(1993년), 벨라지오(1998년) 호텔도 연이어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2000년 미라지 리조트는 인수·합병의 귀재라 불리는 커크 커코리언(Kerkorian)의 MGM 그룹에게 적대적 인수를 당한다.
윈은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원 리조트사(社)를 세우며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복귀한다. MGM에 호텔을 넘긴 지 5년 만인 2005년 윈 호텔을 개장했다. 187m 높이의 호텔 지붕에 직접 올라가 TV CF를 찍기도 했다. 2002년 중국 정부로부터 마카오 카지노 운영권을 따낸 뒤 마카오에도 윈과 앙코르라는 이름의 카지노 호텔을 열었다. 현재 마카오 코타이 지역에 새로운 카지노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중국에 진출했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 고객을 끌어들이는 비결은 뭔가?
"외국 업체들이 홍콩이나 마카오에 진출하면 으레 풍수 전문가를 고용한다. 우리 업계에서 풍수에 대한 관심은 아시아 사람들이 라스베이거스로 관광을 오던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샐던 애덜슨(Adelson·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 회장)은 샌즈호텔을 허물고 그 자리에 베네시안 호텔을 짓기로 했다. 그는 아시아 고객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을 짓기 위해 홍콩에서 풍수 전문가를 데려왔다. 그 전문가는 길 건너 미라지 호텔을 가리키며 '저게 풍수에 따라 잘 지은 건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당시 미라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중국 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하루는 애덜슨이 찾아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어떤 풍수 전문가를 썼느냐'고 했다. 내 대답은 '풍수가 뭐요?'였다. 나는 진짜 풍수가 뭔지 몰랐다. 미라지 호텔은 내가 직접 설계했다. 마카오에서 호텔을 지을 때 풍수 전문가의 말을 따르자는 직원이 있길래 "남중국해에 던져버리겠다"고 했다.
기업들이 현지화랍시고 풍수같은 피상적인 것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아시아 고객들을 더 유치하고 싶다면 풍수 전문가를 고용할 게 아니라 아시아 고객들과, 그 고객을 현장에서 대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래도 중국 시장만의 특징이 있지 않나? 예를 들어 호텔 디자인 같은 미학적인 부분은 미국인과 중국인의 취향이 다를 것 같다.
"사실이다. 마카오에 진출하기 전까지 중국에서 사업해본 경험이 없었다. 더구나 우리는 '윈 디자인&개발'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건물 설계와 인테리어를 직접 한다. 결국 가장 기본 아이디어, 다시 말해 우리가 마카오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리더인 내 몫이다.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카오에서 내가 참고할 수 있는 카지노는 리스보아뿐이었다. 40년간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 낡은 건물이다. 직접 가보니 카지노가 독립된 작은 방으로 이뤄져 있었다. 증축 과정에서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지만 중국 고객들은 그런 환경에 익숙해했다. 수퍼마켓처럼 탁 트인 라스베이거스 스타일을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문제는 건물 인테리어였다. 어떻게 하면 현대 중국의 고상함을 인테리어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때 홍콩에서 묵었던 페닌슐라 호텔을 떠올렸다. 영국 느낌이 남아 있긴 하지만 현대적인 중국의 고상함을 잘 나타낸 호텔로 이름 높은 곳이다. 그래서 혼자 페닌슐라 호텔에 묵으며 인테리어를 연구했다."
◆한국 투자 계획
―라스베이거스, 마카오, 그다음은 어딘가?
"아시아에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현재 우리가 아시아에서 후보지로 보고 있는 곳은 싱가포르와 한국이다. 몇주 전 인천시장과 공무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인근의 국제업무지구도 살펴봤다. 공항과 가까운 그곳은 대규모 복합리조트를 짓기에 적합해 보였다. 한국 정부가 기회를 준다면 우리 회사가 할 수 있는 모든 개발사업을 집약적으로 한국에서 펼쳐 보이고 싶다.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렇게 되면 1만~5만 개 일자리가 생기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천에 새 학교와 대학을 짓는 것도 돕고 싶다.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뜻이다."
―일본인 투자자와 함께 인천국제공항 국제업무지역에 공동투자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사실이 아니다. 오카다 가즈오라는 일본인 기업가가 있다. 파친코 기계를 만드는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한다. 그는 윈 리조트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투자자로서 우리 회사 이사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오카다는 인천에 관심이 많다. 인천에다 소규모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투자계획은 윈 리조트와는 관계없다. 윈 리조트가 인천에 투자한다면 독자적으로 할 것이다."
―국제업무지역 사업자 선정이 6월 말 마감된다. 투자의향서를 제출할 계획인가?
"나는 우리의 의향을 한국 정부의 최상층(the highest level)에 전달할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카지노가 포함된 초대형 복합 컨벤션 리조트를 지어야 한다. 카지노는 사람들로 하여금 돈을 쓰게 만든다. 최고급 호텔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하루 숙박료로 800~900달러(약 87만~97만원)를 받기 어렵다. 하지만 카지노가 있으면 사람들은 방값을 2000~3000달러(약 217만~325만원)까지 쓴다. 카지노 매출이 있어야 공연장, 극장, 쇼핑센터, 그리고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만들었던 화산쇼나 분수쇼 같은 시설에 투자할 수 있다. 결국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에게도 개방된 카지노가 필요하다."
―하지만 6월 이전에 한국 정부가 내국인 카지노를 허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업자 선정) 일정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다. 선택권은 전적으로 한국 정부에 있다. 나는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만약 저소득층이 도박에 빠지는 것이 문제라면 카지노에 멤버십 제도를 도입해 특정 소득 이하 사람의 출입을 막을 수도 있다."
◆카지노 거인이 된 도박 중독자의 아들
―아버지가 도박 중독자였다. 35만달러의 도박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도 당신이 카지노 사업은 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도박산업 종사자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새로운 건물을 짓는 디벨로퍼(개발자)다. 내가 만든 공간에서 사람들이 '세상에'라고 말할 때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내 영웅은 (디즈니랜드를 만든) 월트 디즈니다. 내 아버지가 비록 주사위 게임과 스포츠 내기에 집착하는 불행한 사람이었지만 자식인 나에게도 많은 투자를 했다. 그 덕분에 나는 사립학교에 다녔고 대학(펜실베이니아대)을 갈 수 있었다."
―"카지노로 돈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카지노를 소유하는 것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도박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들도 있고 도박 중독에 빠지기도 한다. 책임을 느끼지는 않나?
"1970년대부터 이 분야를 연구한 로버트 커스터(Custer) 박사는 사람들 가운데 중독에 잘 빠지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낸 적이 있다. 알코올 중독의 책임을 주류 생산업체나 유통업체에 묻지 않듯이, 카지노가 중독자를 양산해내지는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성향이며 치료가 가능하다."
―본인도 도박을 하나?
"포커 게임을 좋아한다. 그리고 1년에 한두 차례 정도 몇 시간씩 도박을 한다. 내가 도박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고객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겠나. 작년에 몬테카를로(모나코 북부 휴양도시)로 휴가를 갔었다. 당시에는 여자친구였고 지금은 아내가 된 안드레아에게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2만5000달러(약 2700만원)를 잃었다."
―기업가로서 삶에 원칙이 있다면?
"첫째, 당신이 하는 일을 진짜 사랑해야 한다. 모든 일은 성공하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즐길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둘째, 힘이 펄펄 넘치는 고등학교 체조선수처럼 민첩해야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기업가는 그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내가 민첩함을 유지해온 비결은 우리 직원들이다. 모든 비즈니스, 특히 서비스 산업의 경우 직원들은 매일 매일 손님들의 반응을 살핀다. 사람들이 좋게 반응하는지 나쁘게 반응하는지 그들은 매일 관찰하고 거기서 변하는 대중의 기호를 읽는다. 만약 경영자가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직원들을 통해 소비자들의 변화를 빨리 읽을 수 있고, 때로는 해결책도 얻을 수 있다."
윈 리조트 그룹은
'간판' 미라지 리조트 MGM에 적대적 인수 당한 후 2005년 화려한 부활
윈 리조트는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에서 윈(Wynn)과 앙코르(Encore) 호텔을 운영하는 카지노 리조트 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은 41억8000만달러(약 4조5000억원).
1973년 31세였던 스티브 윈은 주류 수입과 부동산 개발로 번 돈으로 라스베이거스 골든너겟 카지노를 개조한다. 윈 회장은 여기서 난 수익으로 1989년 미라지 호텔을 열었고 회사 이름도 '미라지 리조트'로 바꿨다. 트레저아일랜드(1993년), 벨라지오(1998년) 호텔도 연이어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2000년 미라지 리조트는 인수·합병의 귀재라 불리는 커크 커코리언(Kerkorian)의 MGM 그룹에게 적대적 인수를 당한다.
윈은 2002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원 리조트사(社)를 세우며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복귀한다. MGM에 호텔을 넘긴 지 5년 만인 2005년 윈 호텔을 개장했다. 187m 높이의 호텔 지붕에 직접 올라가 TV CF를 찍기도 했다. 2002년 중국 정부로부터 마카오 카지노 운영권을 따낸 뒤 마카오에도 윈과 앙코르라는 이름의 카지노 호텔을 열었다. 현재 마카오 코타이 지역에 새로운 카지노를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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