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용품 제조업체 '옥소' CEO 알렉스 리

입력 2011.03.26 03:06 | 수정 2011.03.26 09:19

"우리의 회의엔 배려가 없다 '틀렸다'말할 만큼 친하니까"

옥소(OXO) 본사는 뉴욕 맨해튼 첼시에 있다. 사무실에는 내부 공간을 나누는 벽이 없다. 전체가 하나로 뻥 뚫렸다. 책상에도 칸막이가 없다. 사무실 한쪽엔 넓은 주방이 있다. 주방용품을 깎고 다듬는 공작실도 보인다. 사무실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직원 70명. 평균 나이 31세. 입사 전에 주방용품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근무 시간 대부분은 여기저기 모여서 떠든다. 디자인으로 유명한 회사이지만 디자이너는 1명도 없다. 자체 공장이나 판매 조직도 없다. 그런데도 해마다 신제품 100종류를 세계 50개 국가에 내놓는다. 일을 어떻게 해낼까. 옥소의 알렉스 리(Alex Lee) 사장은 “옥소 직원들은 불편함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일에 집중한다. 디자인·생산·판매는 외부에 맡긴다”고 말했다.

소비자가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까지 잡아내라

리 사장을 지난 4일 시카고에서 만났다. 그는 해마다 시카고에서 열리는 가정용품 전시회 준비로 바빴다. 콜라 1잔과 쿠키 몇 개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홍콩에서 태어나 20세 때 미국에 왔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했다. 옥소에 들어와 2년 만인 1996년 사장이 됐다. 그동안 회사 주인이 몇 번 바뀌었지만 15년째 사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리 사장은 서둘렀다. 첫 질문을 꺼내기도 전에 "인터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전시회장에 가서 직원들과 함께 부스(booth)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인터뷰 내내 빠른 영어로 답했다.

발명하지 않는다… '발견'할 뿐

계산된 말만 난무하는 회의는 없다'
완전히 열린 대화'가 혁신의 원동력
우리가 숨겨진 불편함을 잡아내면
소비자는 그제야 '편리함을 만끽'한다

옥소의 첫 히트상품은 당근이나 감자의 껍질을 깎는 스위블 필러(swivel peeler). 관절염 환자도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큼직한 고무 손잡이를 달았다.
―옥소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옥소는 '해결사(solution company)'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떤 물건에서든, 어떤 불편함이든 찾아내고 해결하는 회사다. 6세짜리 아이, 관절염 앓는 노인도 애먹지 않고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든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드나.

"'제법 괜찮은 물건(something pretty good)'이 이미 시장에 나와 있다. 그런데 사용자(user) 시각에서 보면 몇 가지 불편함이 있을 수 있다. 그 불편함을 옥소가 찾아내고 해결한다. 그러면 '아주 좋은 물건(really good product)'이 나온다. 더 많은 사람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제법 괜찮은 물건'에서 '아주 좋은 물건'이 된 사례를 든다면.

"사람들은 주방용품을 사용하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불편함이 있는데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옥소는 소비자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까지 잡아낸다. 계량컵을 예로 들자. 옛날 계량컵은 컵의 옆면에 눈금이 있었다. 액체나 분말을 넣다가 눈금을 읽으려면 컵을 집어올리든지, 몸을 옆으로 기울여야 했다. 정량(定量)보다 많으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채우는 일을 반복했다. 불편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계량컵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다. 옥소가 처음으로 불편함을 찾아냈다. 해결하는 방법도 내놓았다. 계량컵 안쪽에 경사를 만들어 눈금을 새겼다. 선 채로 액체나 분말을 부으면서 눈금을 읽을 수 있게 했다. 한 번에 정량을 맞출 수 있게 됐다. 옥소가 불편함을 찾아내 주니까 그제서야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옥소가 불편함을 해결해 주니까 그제서야 사람들이 편리함을 누렸다."

―기존에 있던 물건을 조금 손보는 식이다. 창의성이 없는 것 아닌가.

"세상에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발명이다. 발명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옥소는 발명하는 회사가 아니다. 옥소는 '혁신(innovation)'하는 회사다. 혁신은 '개선(improvement)'이다. 예전에 주방용 집게는 물건을 집을 때마다 손아귀에 힘을 잔뜩 줘야 했다. 집게의 두 팔을 모아주는 고정장치를 옥소가 처음으로 달았다. 다른 회사들이 다 따라왔다. 옥소가 주방용품 산업에서 새로운 표준(standard)을 세웠다. 창의성이 뛰어난 것 아닌가."

―'불편함을 찾아내는 작업'은 어떻게 하나.

"먼저 옥소가 만들고 싶은 상품군(群)을 정한다.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 5개를 추린다. 이제 불편함을 찾아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모든 제품을 사용자 시각에서 접근한다. 사용자가 아닌 사람은 불편함을 찾아낼 수 없다. 가장 열정적인 사용자라야 불편함도 가장 열정적으로 찾아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사용자는 옥소 직원들이다. 어떤 물건이든 실제로 사용해 보면서 불편함이 무엇인지 찾아낸다. 최근 5년간 옥소 직원들이 아기를 25명 낳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 여기저기에 '성난 엄마들(angry moms)'이 나타났다. '이 유아용품은 이런 점이 불편해' '저 용품은 저런 점이 불편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아용품의 가장 열정적인 사용자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그들이 등장한 덕분에 옥소가 유아용품 시장에도 진출하게 됐다."

―옥소가 일하는 방식은.

"나는 '완전히 열린 대화(totally open dialogue)'를 믿는다. 옥소 신입사원은 처음 회의에 들어오면 조금 불편할 것이다. 모두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옥소가 개발한 제품이라도 나쁜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물건이라고 해버린다. 개인에 대한 배려는 안 한다. 업무다. 나는 기업의 이사회 같은 회의가 제일 싫다. 참석자 모두가 정치적으로 계산된 말만 한다. 그러다 휴식 시간에 화장실에서 만나면 서로에게 '이러다가 회사 말아먹는 거 아냐'라고 한다. 나는 '회의 때 말하지 그랬어'라고 따진다. 옥소에 그런 회의는 없다."

―'완전히 열린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나.

"옥소 사무실엔 벽도 없고, 책상 칸막이도 없다. 언제, 어디서든 완전히 열린 대화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상대방에게 '당신이 틀렸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서로 신뢰를 충분히 쌓아야 한다. 그래서 직원들 간에 모임을 많이 만들게 한다. 피자 모임, 샐러드 모임, 수프 모임…. 뭐든지 좋다. 여름여행, 스키여행도 같이 보낸다. 일하면서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보듬어 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면서 직원들이 열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이 호기심과 창조성을 잃으면 옥소는 끝이다."

옥소 직원들의 업무는 불편함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이다. 벽도 칸막이도 없는 사무실 곳곳에서 격식 없는 회의가 수시로 열린다.
고인 물은 썩는다… 온 세상의 아이디어를 모아라

옥소는 디자인을 '생명줄(life line)'로 생각한다. 옥소가 추구하는 편리함과 기능성을 함께 담는 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내에 디자이너와 디자인 부서를 둔 적이 없다. 알렉스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했다.

―디자이너, 디자인 부서를 안 두는 이유는.

"한 세대 전에는 모든 회사가 디자인 부서를 회사 안에 두고 있었다. 회사 밖에서는 멋진 것(cool thing)이 안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 폐쇄적인 운영이 혁신을 막았다.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또 회사 안에 디자인 부서를 두면 쉽게 따먹을 수 있는 일만 자기들이 하고, 어렵고 힘든 일은 바깥에 떠넘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식으론 안 된다. 고인 물은 썩는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외부 디자인 회사 9곳을 쓰고 있다. 7곳은 미국 회사, 2곳은 일본 회사다."

―외부 회사가 어떻게 옥소가 원하는 디자인을 내놓나.

"디자인은 옥소의 핵심역량(core competency)이다. 외부 회사에 그냥 맡기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옥소의 역할은 관리(management)와 통제(control)다. 3단계를 거친다. 첫째 어느 디자인회사의 어느 디자이너가 어느 제품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한다. 둘째 옥소의 디자인 철학에 동의하는 회사에만 일을 맡긴다. 셋째 그 디자인 회사에도 옥소가 하는 '불편함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작업'을 똑같이 시킨다. 가끔은 옥소가 몰랐던 불편함을 찾아내고 해결하는 디자인 회사도 있다. 옥소의 실수가 확인될 때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옥소가 원하는 디자인, 그 이상의 디자인이 나올 수 있다. 자기 집 지하실에 틀어박혀 혼자서 뭔가를 만들어 내던 시절은 지나갔다. 온 세상의 생각을 불러들여야 하는 시대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돈을 주고 사야 한다."

―디자인을 아웃소싱(outsourcing)할 때 장점은.

"여러 가지 상품을 한꺼번에 추진할 수 있다. 9개 회사에 1개씩만 맡겨도 동시에 9개가 돌아간다. 1~2개는 홈런을 친다. 5~6개는 괜찮은 수익을 낸다. 물론 1~2개는 햇빛을 못 보고 사라질 수도 있다. 한 번에 여러 개를 돌려야 대박을 터뜨릴 기회도 생긴다."

 
"교환·환불 요구는 평생고객 만들 기회"

모든 옥소 제품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값싼 공장을 찾아 중국으로 간 거냐"고 물었다. 알렉스는 "좋은 품질을 찾아서 간 거다"라고 답했다. 뜻밖이었다.

―'중국=값싸고 질 낮은 물건' 공식을 거부하나.

"그렇다. 애플의 아이패드, 아이폰도 중국에서 만들지만 품질이 낮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중국에서는 합당한 가격만 치르면 어떤 품질의 물건도 만들 수 있다. 중국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옥소가 중국에서 제품을 만드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중국 바로 다음에 2등이라고 할 만한 나라도 없다. 노동집약적 제품의 경우는 그렇다. 옥소가 요구하는 품질의 주방용품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이 중국에는 5000개 있다. 중국보다 임금이 싼 베트남에는 그런 공장이 127개뿐이다. 중국의 잠재적 경쟁자로 불리는 인도에는 그런 공장이 고작 50개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만한 나라들의 상황이 이렇다.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중국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비용으로 최고 품질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소의 감자깎기 칼은 8달러다. 편의점에서 파는 감자깎기 칼은 2달러다. 모두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다. 옥소 제품이 너무 비싼 것 아닌가.

"옥소는 고가품이 아니다. 감자 으깨는 도구를 보자. 할인점에서 파는 물건은 4달러, 옥소 물건은 8달러다. 할인점 물건은 6개월 지나면 못 쓴다. 그런데 독일제는 64달러다. 고가품은 이런 거다. 옥소는 가능한 한 가장 낮은 가격을 잡으려고 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고(usable),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는(affordable)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낮추기 위해 품질을 떨어뜨릴 생각은 전혀 없다."

―옥소의 정책 중에 '만족 보장(satisfaction guarantee)'이 있다. 상품에 하자가 없어도 고객에게 불만이 있으면 교환·환불해 준다는 것인데.

"옥소는 불만이 있는 고객이 나오면 평생 고객으로 뒤바꾸는 기회로 삼는다. 어느 블로그에 '옥소 수세미를 5달러 주고 사서 2~3년을 쓰니까 잘 문질러지지 않았다. 옥소에 전화했더니 아무 말 없이 새 물건을 보내줬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조회 건수가 2만건이 넘었다. '나도 그런 경험 있다' '옥소는 좋은 회사다'는 댓글이 나왔다. 고객이 불만이 있다고 하면 그걸 다른 방향으로 돌려서 '이 회사 참 괜찮구나'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면 정말 충성도 높은 고객을 갖게 된다."

위험에 도전하라. 실패한 사람을 벌하지 마라

옥소는 주방용품에서 욕실용품·정원용품·사무용품·의료용품·유아용품으로 사업분야를 넓혀왔다. 미국 시장만 상대하던 회사가 세계 50개 국가로 진출했다. 알렉스는 "새로운 도전을 멈추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옥소의 사장을 15년째 하고 있다. 경영 철학이 있다면.

"위험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모든 구성원을 격려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실패는 예상해야 한다. 10발을 쏘면 몇 발은 완전히 빗나갈 수도 있다. 실패한 사람을 벌주면 안 된다. 언제나 새로운 일을 찾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회사가 돼야 한다. 사람들에게 '옥소에서 일하고 싶다'는 흥분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

―옥소는 어떤 사람을 직원으로 뽑고 있나.

"주방용품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뽑지 않는 편이다. 특정한 업계에 경력이 편중된 사람은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똑똑한 사람들'을 찾는다. 옥소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제대로 질문하고, 해결책은 무엇인지 제대로 대답하는 회사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람은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옥소에는 다양한 전공, 다양한 인종의 남녀가 고루 섞여 있다."

―직원을 뽑을 때 가장 주목하는 특성은.

"열정(passion). 옥소에 들어와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다."

―당신은 어떻게 일하나.

"내가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대로 나도 일한다. '항상 새로운 도전에 나서라' '항상 새로운 위험에 맞서라'. 사람들을 편리하게 해주는 물건을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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